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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점에 도달한 예능가 쏠림현상

  • [등록일]2017-12-11
  • [조회] 1588

예능가 쏠림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급변하는 미디어 생태계에서 예능 프로그램 수명이 점점 짧아지는 가운데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너도나도 인기 소재에 편승한 결과다. 이러한 쏠림현상은 다시 그 소재에 대한 시청자들의 피로도를 높이며 프로그램이 단명하는 데 일조한다. 한마디로 악순환이다.


올해 예능계를 지배한 것은 여행 프로그램과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었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의 경우 이 장르의 부흥을 이끌었던 엠넷의 <슈퍼스타K>와 SBS <케이팝스타> 시리즈가 종영되면서 시효가 만료된 것으로 여겨졌으나, 상반기에 엠넷이 방영한 아이돌 연습생 오디션 <프로듀스 101> 시즌2가 대성공을 거두며 열기가 재점화됐다. KBS가 크게 주목받지 못한 아이돌그룹을 대상으로 한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 유닛>으로 음악 경연 유행 대열에 합류했고, 뒤이어 대형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가 군소기획사를 찾아다니며 우수한 아이돌 연습생을 선발하는 JTBC <믹스나인>을 선보였다. 또 다른 대형기획사 JYP는 자사의 보이그룹 멤버를 결정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스트레이 키즈>를 엠넷을 통해 방영 중이다. 이 외에도 tvN의 무명 가수 오디션 <수상한 가수>, 각 분야 음악 거장들이 한 자리에 모인 엠넷 <더 마스터-음악의 공존> 등이 새로 방영되긴 했으나, 이를 제외하면 대부분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이라는 점에서 예능가 쏠림현상이 더 두드러졌다.


 
왼쪽) <믹스나인> 제작발표회 - 출처 : 프로그램 공식 홈페이지 / 오른쪽) <윤식당> 메인 포스터 - 출처 : 프로그램 공식 블로그


여행 프로그램은 이보다 심각하다. 올해 들어 현재의 행복을 가장 중요시하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신조어로 인생은 한번 뿐이라는 삶의 태도를 말함)’가 대중문화 트렌드로 급부상하며 그 대표적인 소비 방식인 여행이 함께 주목을 받았다. 이와 함께 범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여행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왔고 그 소재 또한 비슷비슷해 예능계 쏠림현상의 정점을 찍게 됐다. 먼저 상반기에는 대놓고 ‘욜로’를 외치는 여행 예능이 줄을 이었다. 여행지의 여유와 쿡방을 결합한 tvN <윤식당>, tvN의 전원여행기 <주말엔 숲으로>와 섬 여행기 <섬총사>, 온스타일의 걸그룹 여행기 <다이아's 욜로트립> 등이 여기에 속한다. 연예인 가족들도 이 유행에 편승했다. 연예인 2세들의 자립 여행기를 표방한 tvN <둥지 탈출> 시리즈를 비롯해서 연예인 아내들의 일탈 여행기를 그린 SBS <싱글 와이프>, 추성훈 가족의 몽골 여행기를 담아낸 SBS <추블리네가 떴다> 등이 그 사례다. 이들 여행 프로그램은 한식당 창업이라는 독특한 간판을 내건 <윤식당> 정도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차별점을 찾아볼 수 없다.


사실 예능가 쏠림현상은 국내만의 사정은 아니다. 2000년대부터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대중문화 시장을 장악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유행 현상은 가장 대표적 사례다. 영국의 <팝 아이돌(Pop Idol)>, <더 엑스 팩터(The X Factor)>,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 <더 보이스(The Voice)>,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 <아메리카 갓 탤런트(America's Got Talent)>, <유 캔 댄스(So You Think You Can Dance)>, <프로젝트 런웨이(Project Runway)> 등은 자국의 흥행폭발을 넘어 세계 각국에 프로그램을 수출해 지구촌을 서바이벌의 열기로 들썩이게 만들었다. 국내에서도 <코리아 갓 탤런트>, <보이스 코리아>,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등 여러 수입판이 인기리에 방영된 바 있다.


일본 예능의 경우에는 ‘식도락의 천국’ 답게 음식 소재 프로그램의 쏠림현상이 눈에 띈다. ‘구르메 방구미(グ―ルメ番組)’라는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다. ‘구르메’는 미식가, ‘방구미’는 방송을 뜻하는 말로 국내의 쿡방이나 먹방을 생각하면 된다. 일본의 국민 그룹으로 불렸던 스마프(SMAP)가 해체되기 전까지 무려 20년 넘게 진행한 인기 버라이어티 <스마스마(SMAP X SMAP)> 속 핵심 코너이자 요리 쇼인 ‘비스트로 스마(Bistro SMAP)’를 비롯해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구르메 방구미가 일본 텔레비전을 점령하고 있다.


 

왼쪽) <아메리칸 아이돌> 마지막 시즌 포스터 - 출처 : ABC.com / 오른쪽) <스마스마>의 코너 ‘비스트로 스마’ - 출처 : 프로그램 홈페이지
 

예능의 쏠림현상에는 여러 원인이 작용한다. 특히 대중의 정서와 취향에 가장 민감한 분야가 예능인만큼 이를 결정짓는 시대적 상황은 특정 프로그램 유행 현상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 단적인 예로 서바이벌 오디션의 전 세계적 흥행에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시대의 무한경쟁체제가 대중들의 감수성을 지배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 받는다. 그런가 하면 일본 구르메 방구미의 유행에도 거품 경제가 붕괴한 뒤 가성비 좋은 음식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증가하고 1인 가구가 확산된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올해 국내 예능의 쏠림현상도 마찬가지다. 아직 데뷔하지 못한 중소기획사 아이돌 연습생이나 잊힌 가수들을 대상으로 한 서바이벌 오디션 유행은 과거에 비해 한층 열악해진 생존환경을 반영한다. 중소기획사 아이돌 연습생은 스스로를 ‘흙수저’라 지칭하며 데뷔의 힘겨움을 토로하고, 무명 가수들은 그 힘든 데뷔 관문을 통과한 뒤에도 여전히 살아남기 힘든 현실을 이야기한다. 여행 예능의 유행 역시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여행에 대한 관심을 증폭 시킨 ‘욜로’ 트렌드 자체가 장기불황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내 집 마련이나 안정적인 노후 계획 등 미래에 대한 대비책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는 태도가 ‘욜로’로 나타난다. 이를 증명하듯 올해 등장한 여행 예능에서는 유난히 알뜰 경비를 강조하는 장면이 많다. <윤식당>은 아예 가계를 열어 장사를 했고, <둥지탈출>에서도 최소의 경비로 여행하거나 자급자족으로 체류비를 마련하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최근 예능계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외국인 예능 유행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일견 국내 체류외국인이 200만 명을 넘어선 다문화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보인다. 지난 7월 법무부가 발간한 ‘2016년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 체류외국인이 200만 명을 돌파한 것은 통계작성 이후 최초이며, 전체 인구의 약 4%를 차지한 것 역시 처음 있는 일이다. 실제로 국내 거주 외국인 숫자가 희소했던 과거에는 ‘외국인 장기 자랑’ 류의 명절 특집 프로그램에서나 외국인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러나 국내 체류 외국인이 100만 명을 돌파한 2000년대 중반 들어 본격적인 외국인 예능 1세대라 할 수 있는 KBS <미녀들의 수다>가 등장했다. <미녀들의 수다>가 종영한 이후 명맥이 끊긴 외국인 예능을 다시 부활시킨 JTBC <비정상회담>의 방영 시점도 마찬가지다. 필리핀 출신의 귀화인 이자스민이 ‘다문화 1호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 국내 체류 외국인 비율이 3%를 넘어서는 등 다문화 사회로 이행 중이던 시기적 배경이 맞물린다.



인구대비 체류외국인 비율 - 출처 : 정책브리핑 보도자료


물론 최근의 외국인 예능 유행은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현재 방영 중인 외국인 예능 프로그램으로는 MBC 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JTBC <나의 외사친>, tvN <서울 메이트>, SBS <내 방 안내서> 등이 있는데 이들 프로그램은 기존의 외국인 예능과 달리 출연자 대부분이 여행객이거나 현지인이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는 <비정상회담>을 통해 얼굴을 알린 국내 체류 외국인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진행자나 가이드 역할에 그칠 뿐, 실제로 프로그램을 이끄는 이들은 처음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들이다. <서울 메이트>는 세계 각국에서 프로그램 출연을 희망한 외국인을 선발해 서울에 거주하는 연예인들의 집에 묵게 하고, <나의 외사친>은 반대로 연예인이 외국에 나가 현지인의 집에 체류한다. 외국인과 국내 유명 인사들의 주거 교환을 그린 <내 방 안내서>에서도 외국인들은 일시적인 여행자다.


이처럼 국내 거주 외국인이 아니라 여행객, 현지인 등 진정한 외부자로서의 출연자들은 상당히 유의미한 차별점을 만들어낸다. 바로 한국에 대한 호감의 시선이다. <미녀들의 수다>와 <비정상회담>의 외국인들이 장기 체류자로서 경험한 한국 사회의 여러 면모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포함해 가감 없이 이야기한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요즘의 외국인 예능 출연자들은 국내 친구들의 초대를 받은 방문객으로서 한국을 즐기거나, 또는 국내 연예인들과 교류하는 현지인으로서 따스한 우정을 쌓아간다. 요컨대 이들 프로그램에는 하나같이 외국인의 눈을 통해 한국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확인받고자 하는 인정욕구가 잠재되어 있다. 말하자면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을 검증하는 필수 질문인 “두 유 노우 김치?”의 예능판인 셈이다.


단적인 예로 이들 프로그램에는 외국인들이 김치를 즐기는 모습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독일편에서는 한식 애호가 마리오가 김치의 우수한 영양가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고, 핀란드편에서는 김치를 처음 접한 외국인들이 그 맛을 극찬하며 ‘폭풍 먹방’을 선보이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서울 메이트>에서도 프랑스인 파비나와 엘레나가 김치 사랑을 외치는가 하면, 멕시코인 로드리고와 바리에르가 집주인 이기우의 모친이 한상 가득 차려낸 ‘한국 집밥’에 열광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나의 외사친>에서는 이탈리아를 방문한 오연수가 체류 마지막 날 집주인 조반나 가족을 위해 김치전과 김치볶음밥을 요리해주고 찬사를 받는 광경이 등장했다. 결국 현재 외국인 예능의 인기는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조국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 시대에 다시금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회복하게 해주는 데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왼쪽) <서울메이트> 공식포스터 - 출처 : 프로그램 공식 블로그 / 오른쪽)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핀란드편의 한 장면 - 출처 : 프로그램 캡쳐


이런 측면에서 최근의 외국인 예능 유행은 예능가 쏠림현상의 가장 안이한 형태처럼 보인다. 과거 <미녀들의 수다>와 <비정상회담> 같은 프로그램이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등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비추는 외부자의 시선을 보여준 것과 달리, 이들 프로그램은 고유의 시선을 지니지 못한다. 우리가 그들에게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진부한 ‘미라클 코리아’의 판타지가 있을 뿐이다. 전문 예능인에서 배우들, 배우들에서 준 일반인과 다름없는 연예인 가족들로 새로운 얼굴을 찾아 이동하는 예능의 대상이 이번에는 외국인이라는 또 다른 얼굴을 찾은 것에 불과하다.


예능가 쏠림현상은 오랜 고질병과도 같은 것이기에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외국인 예능 유행 현상에서는 이 같은 게으른 복제가 이제 임계점에 다다른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더욱이 요즘에는 방송사 간의 모방 뿐 아니라 제작진의 자기복제까지 겹쳐져 문제점이 한층 두드러진다. 예컨대 <수상한 가수>는 MBC <복면가왕>을 연출한 민철기 피디가 전작을 살짝 변주한 것이고, <둥지탈출>은 MBC <아빠 어디가>의 김유곤 피디가 출연자 연령만 사춘기와 청년 세대로 옮긴 것과 같다. <믹스나인> 또한 <프로듀스 101> 한동철 피디의 자기복제품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바깥에서는 중국의 국내 예능 베끼기가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 상황에서 국내 방송사의 제살 깎아먹기식 복제 경쟁은 이에 대한 대처마저 어렵게 한다. 


예능가 쏠림현상을 줄이고 다양성을 이루기 이해서는 결국 창의력이라는 기본에 다시금 초점을 맞춰야 한다. 미디어 생태계가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창의력의 중요성은 오히려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업체였던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 콘텐츠의 놀라운 완성도를 바탕으로 미국 드라마 시장을 뒤흔들고 이제는 세계 영화 시장마저 넘보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기존의 관습을 깨는 새롭고 파격적인 시도만이 프로그램 단명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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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명 : 김선영
  • 약력 : TV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