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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포인트를 맞은 2017년 한국 대중문화, 포스트 한류를 말하다

  • [등록일]2017-12-28
  • [조회] 1269

2017년이 마무리되고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있던 한해였다. 다사다난했다는 말의 너머에 있던 한해다. 이 한해 속에서 한국 대중문화도 여러 변곡점을 거쳤다. 분명 2017년은 한국 대중문화의 터닝 포인트로 기억될 것이다.


올해 한국 대중문화의 특징을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 만큼 변화와 엇갈림이 많았다. 올해는 1월 막을 내린 tvN 드라마 <도깨비>를 제외하곤 엄청난 화제를 모은 드라마는 없었다. 2017년을 강타한 대중가요도 없었다. 모두가 엄지손가락을 세울 만한 영화도 없었다. 대중문화 콘텐츠에서만 본다면 흉년이나 다름없다. 이는 변화의 분기에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시 치고 올라갈 바닥까지 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시대의 분기에는 퇴행과 진화가 동시에 이뤄지는 법이다.


올해 한국 대중문화의 키워드를 꼽자면 욜로(YOLO)다. 대중문화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짙게 영향을 미쳤다. ‘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인 욜로는 한번 뿐인 인생을 즐기면서 살자는 뜻이다. 개인주의적이며, 자유주의적이다. 주체적이며 능동적이다. 미국에서 불어 닥친 욜로 열풍은 지난해 촛불 시위와 올해 대선 정국을 거치면서 한국에서 독특하게 진화했다. 촛불 시위가 정치적인 성향과는 별개로 각 개인의 선택이 집단으로 뭉쳐 발화된 것처럼, 대선을 거치면서 개인의 성향들이 패거리 문화처럼 응집된 것처럼, 개인주의적인 욜로 문화가 집단주의로 변화했다.
개개인의 취향이 SNS 등을 통해 공통으로 연결되고, 다시 이 취향은 헤게모니를 장악하곤 했다. 이 주도권 쟁탈전은 올 한해 대중문화에 깊게 영향을 미쳤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소비자의 선택은 응원하는 콘텐츠는 밀어주고, 경계하는 콘텐츠는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좋게 말하면 능동적인 소비자의 선택이 강화됐고 나쁘게 말하면 소비자의 조리돌림이 커졌다. 이 능동적이고 개인주의며, 동시에 공격적이고 집단적인 소비자들은 대중문화의 주요 소비자층인 2030 여성들이란 점도 특이점이다. 이는 지난해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여성주의 물결 혹은 그 반대인 여혐 현상과도 맞물려 있다.


<군함도>는 올 여름 가장 주목받는 영화였다. 1,300만명을 동원한 <베테랑> 류승완 감독의 신작에 황정민, 송중기, 소지섭, 이정현 등 화려한 출연진으로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군함도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탈출이란 소재로 제작돼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관심이 상당했다. 꼭 봐야 할 영화, 애국영화로까지 칭송받았다. 막상 영화가 공개되자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이 비난의 겹은 층층이었다. 일베로 지칭되는 극우, 민족주의에 관심 깊은 관객, 여성혐오가 민감한 사람들, 스크린독과점에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들, 무엇보다 보고 싶었거나 또는 원했던 것과는 다른 내용에 실망에 드러낸 사람들이었다. 이 겹겹의 사람들은 <군함도>에 엄청난 조리돌림을 가했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소비자의 반응이었다. 이런 반응은 김수현 주연 영화 <리얼>부터 출발했다. <리얼>은 영화적인 성취에 대한 문제 제기 뿐 아니라 영화에 내제된 반여성주의적인 시각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115억 원이 훌쩍 넘는 제작비에 김수현이란 한류스타가 출연했는데도 관객은 47만 명에 불과했고 결국 손익분기점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를 받아들어야 했다. <리얼>에 대한 비난이 영화 흥행에 악재가 된 건 물론이다. <브이아이피>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에서 여성 캐릭터들을 묘사한 방식에 대한 조리돌림이 극심했다. 역시 결과는 흥행 부진으로 이어졌다.


반면 여성 주인공 영화에 대해선 응원의 목소리가 컸다. 여성 원톱 액션영화인 <악녀>, 김혜수 주연 영화 <미옥>, 위안부 문제를 다른 시선으로 조명한 <아이 캔 스피크> 등에 대해선 응원의 목소리가 상당했다. 이런 일련의 흐름들 속엔, 적극적인 대중문화 소비자의 행태가 그대로 반영됐다.


    
영화 <군함도>와 <아이 캔 스피크>, <미옥> -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뿐 아니다. TV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도 적극적인 여성 소비자들의 선택과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 아직 방영 전인 tvN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과 <나의 아저씨>에 대한 이른 비판이 일었다. <미스터 선샤인>은 <태양의 후예>, <도깨비>를 집필한 시청률 보증수표 김은숙 작가의 신작에 이병헌과 김태리가 호흡을 맞춘다. <나의 아저씨>는 <미생>, <시그널>의 김원석 PD와 <또 오해영>의 박해영 작가가 손을 잡고, 이선균과 아이유가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아직 방영도 되기 전인 이들 드라마에 벌써부터 비판이 쏟아지는 건, 남녀 주인공의 나이 차이 때문이다. 40대 중반 남성과 20대 초반 여성의 로맨스에, 도움을 주는 남성과 혜택을 받는 여성이라는 구도 때문이다. 아직 보지 않은 콘텐츠의 주요 배역의 캐릭터 설정만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건 그 만큼 소비자들, 그 중에서도 여성 소비자들이 능동적이고 공격적으로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YG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인 양현석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JTBC <믹스나인>도 비슷한 처지다. <믹스나인>은 양현석이 각 기획사들을 돌며 연습생들을 살피고 데뷔시키는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인 <K팝스타>에서 주로 덕담을 해왔던 심사위원 역할을 맡았던 양현석은 <믹스나인>에선 독한 말을 하는 심사위원으로 캐릭터를 설정한 듯 하다. 그렇지만 더 가진 자와 더 권력자로 설정된 그의 독한 말은, 시청자들에게 불편함을 줬다. 그리하여 양현석과 <믹스나인>에 대한 보이콧으로 이어졌다. 반면 여성MC들이 진행하는 MBC에브리원의 <비디오스타>, 온스타일 <뜨거운 사이다>가 두터운 팬덤을 만들고 있는 건 능동적인 여성 소비자들의 반응으로 얻은 결과다.


 
시청자들의 상반된 반응이 나타난 <K팝스타>와 <믹스나인> - 출처 : 각 프로그램 페이스북


K팝은 한걸음 더 나간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은 능동적인 팬들의 성원으로 미국에 강제 진출 당했다. 방탄소년단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erican Music Awards, 이하 AMAs)’에 입성했다. K팝 그룹 최초다. 올해로 45회를 맞은 AMAs는 빌보드, 그래미와 함께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으로 꼽히는 권위 있는 시상식. 앞서 싸이가 엄청난 인기를 몰고 온 '강남스타일'로 MC해머와 함께 무대를 펼친 적은 있지만 K팝 아이돌 그룹이 AMAs 무대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방탄소년단의 공연에서 미국 팬들이 한국의 팬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한국 팬들처럼 각 멤버들의 이름을 합창하고 열광하는 모습이 미국 방송에 그대로 소개됐다. 이런 반응들로 방탄소년단은 AMAs 공연 이후 구글 트렌드 검색 1위에 올랐다.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를 지켜본 전 세계 팬들의 리액션 동영상이 유튜브에 2,000개가 넘는다. 방탄소년단은 미국의 인기 토크쇼 <엘런 드 제네러스 쇼(The Ellen DeGeneres Show)>와 제임스 코든의 <더 레이트 레이트 쇼(The Late Late Show)>, <지미 키멜 라이브(Jimmy Kimmel Live!)> 등에도 출연했다. 지난 2012년 싸이가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던 연말 ABC 신년 특집방송 <딕 클락스 뉴 이어즈 로킹 이브(Dick Clark's New Year's Rockin' Eve) 2018> 녹화도 이미 마쳤다.


방탄소년단의 미국 진출은 이 아이돌그룹의 한국에서의 위상과도 비교된다. 방탄소년단은 중소 기획사 출신이라 한국의 여러 시상식이나 여러 무대에선 상대적으로 대형 기획사 출신들보다 적게 노출된다. 한국을 넘어선 전 세계 팬들의 능동적인 응원이 방탄소년단의 지금을 가능하게 됐다.


미국 인기 토크쇼 <엘런 드 제네러스 쇼>에 출연한 BTS - 출처 : ELENTUBE 캡쳐


AMAs에서 BTS를 직접 소개한 체인스모커스와 함께 한 BTS - 출처 : BTS 트위터


능동적인 소비자들의 선택이, 때로는 비이성적이게 느껴지는 조리돌림이 분명히 한국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짙은 영향력을 드러낸 게 2017년 대중문화의 중요한 지표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소비자들, 특히 2030 여성 소비자들의 선택과 행동은 2018년에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춰 진화되는 건 대중문화 콘텐츠에 필수적이다.


올해 대중문화 콘텐츠에 시대를 반영하는 뚜렷한 결과물은 없었다. 이 와중에 소비자들은 분명 변하고 있다. 변하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시대적인 요구다. 이 요구는 콘텐츠들의 대항해 시대를 맞아 더욱 다양하게 분출될 것 같다.


이미 다채널 시대로 접어들면서 한국 뿐 아니라 세계의 이용자들은 더 많은 콘텐츠, 더 많은 한류 콘텐츠를 요구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구입하고 제작하는 건 한국시장이 아니라 전 세계 한류 소비자를 겨냥한 것이다. 이런 시대를 맞아 콘텐츠 제작업체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영화 투자배급사가 쇼박스와 NEW가 드라마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CJ E&M이 만든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은 지난 달 24일 코스닥 상장과 동시에 주요 테마주로 떠올랐다. 한류 콘텐츠에 부응하는 시장의 요구가 한층 커지고 있다. 사드 배치 이후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중국 자본은 슬슬 돌아올 기미를 보이고 있다. 한류 최대 소비 시장인 일본도 다시 한류 콘텐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걸그룹 트와이스가 올해 일본 NHK <홍백가합전>에 한국가수로는 6년 만에 다시 출연하게 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변화의 분기점에, 다시 한류의 지평선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를 능동적인 소비자들이 이끌고 있다. 바야흐로 한류 콘텐츠는 분명 시대의 변환점에서 분기를 맞았다. 이제 포스트 한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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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명 : 전형화
  • 약력 : 머니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