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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관람가'가 촉발한 영화계 열정페이 논란이 ‘헛발질’인 이유

  • [등록일]2018-01-19
  • [조회] 2010

지난해 12월 24일 종영한 JTBC <전체관람가>는 여러모로 영화계를 둘러싼 화두를 던진 프로그램이다. <전체관람가>는 한국 영화계의 내로라하는 영화감독 10명이 3,000만 원의 한정된 예산으로 12분 내외의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과정과 완성본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명세, <웰컴 투 동막골> 박광현, <말아톤> 정윤철, <마담뺑덕> 임필성, <비밀은 없다> 이경미, <상의원> 이원석,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봉만대, <계춘할망> 창감독, <똥파리> 양익준, <지슬> 오멸 감독 등 화려한 면면의 감독들이 참여했다. 배우들의 라인업도 못지않다. 전도연, 이영애 등 톱스타들이 감독과의 인연을 계기로, 또는 프로그램 취지에 공감해 동참했다.


<전체관람가>는 비록 단편영화지만 영화 촬영의 진행 과정을 방송에서 자세히 소개했다. 일반적인 영화 메이킹 필름이 주로 배우들에 초점이 맞춰 있다면, <전체관람가>에는 시나리오 작업부터 제작진 섭외, 콘티 제작, 오디션, 배우 섭외, 현장 촬영 진행 등등 영화 촬영의 이면을 보여줬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좋은 단편영화들도 탄생했다. 게임 속 세상을 남다르게 표현한 정윤철 감독의 <아빠의 검>, 성인 영화가 아닌 가족 영화에 도전한 봉만대 감독의 <양양>, <마담뺑덕> 임필성 감독의 <보금자리>, 강렬한 연기와 메시지를 담은 창 감독의 <숲 속의 아이>, 간접흡연으로 이웃 간 갈등 등을 풀어낸 이경미 감독의 <아랫집> 등 화제작이 두루 방송을 탔다. 시청률은 1%대에 그쳤지만 매회 방송 직후 포털사이트의 검색어를 도배할 만큼 화제를 모았다. 


<전체관람가>는 한국영화의 풀뿌리인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영화 촬영의 이면을 살핀다는 프로그램 취지를 십분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방송 직후부터 논란이 인 건 편당 3,000만원이란 제작비 때문이다. 3,000만원은 일반적인 단편영화 촬영에 크게 부족한 돈은 아니다. 그러나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양질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단편이라고 해도 부족한 돈인 것만은 분명하다. 때문에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만들려 감독들이 인맥을 활용하는 모습들이 전파를 탔다. 좋은 말로 재능기부, 나쁜 말로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듯한 모습이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소개된 것이다. 더욱이 예능 프로그램이기에 영화 만들기의 고생담이 재미의 한 요소로 삽입되면서, 프로그램이 방영될수록 열정페이 논란이 더욱 불거졌다.


실제 <전체관람가>에서 단편 <거미맨>을 찍은 박광현 감독은 인건비가 모자라 사비를 털어야 했다. 몽골에서 <파미르>를 찍은 오멸 감독은 총 9명의 현지 스태프를 꾸렸는데 감독 스스로 배우에 스태프 업무까지 맡아야 했다. <거미맨>이 방영된 직후 영화 <소수의견> 원작자인 손아람 작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거미맨> 제작 견적은 최소 3억원은 될 것 같다”며 “예산 3,000만원에 맞추기 위해 온갖 무보수 노동이 투입된다. 방송 성격상 예산 한계를 둘 수 밖에 없다는 건 이해하지만 방송이 착취를 재생산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예산 3,000만원은 13년 전 국가인권위원회가 15분짜리 인권옴니버스 영화 제작을 위해 지원한 편당 제작비가 5,000만원이었던 것과 비교되면서 더 질타를 받았다.


열정페이 논란이 계속되자 정윤철 감독은 페이스북에 반박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정윤철 감독은 “<전체관람가> 단편제작이 스태프들의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한국영화계 병폐에 동참하고 있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정 감독은 “헤드 스태프를 제외한 일반 스태프들은 비록 며칠이지만 상업 장편과 크게 차이 없는 일당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이어 “물론 후반작업이나 CG 등은 감독의 친분으로 업체 대표에게 부탁해 싸게 도와달라고 소위 구걸을 했지만 그걸 열정페이 강요라고 한다면 영화인들이 오로지 돈만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오해”라고 덧붙였다. 정 감독은 “한국영화 산업의 노동자 권익 보호는 당연히 지켜나갈 중요한 가치”라면서도 “자기가 관철시킬 논리의 정당화를 위해 재료를 함부로 선정하여 밀어붙이는 건 위험하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주장했다.


사실 정윤철 감독의 이 항변이야말로 <전체관람가> 열정페이 논란에 대한 적합한 해명인 동시에 한국영화산업의 문제점에 대한 자기변명이다. 일반적으로 10분 내외의 단편영화를 만드는 데 3,000만원은 적은 금액이 아니다. 다만 <전체관람가>에 참여한 유명 감독들은 영화 만듦새를 높이려 그 이상을 스스로 투입하려 한 것이다. 양질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돈이 필요한 건 당연지사. 그리하여 유명 배우와 헤드급 스태프들은, 그러니깐 원래 많은 돈을 받는 인력들은 <전체관람가>를 하면서 적은 돈을 감수해야 했다는 것이다. 정 감독은 이걸 “열정 페이는 분명 나쁜 것이지만 열정 그 자체까지 색안경을 끼고 보려들면 안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즉 감독들의 선택에 고급 인력들이 열정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대신 일반 스태프들은 여느 상업영화와 큰 차이 없는 일당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 정 감독은 후반작업과 CG 등은 감독의 인맥으로 싸게 도와달라고 했다고 적었다. 이 논리는 적어도 <전체관람가>에는 합당하다. 그렇기에 <전체관람가>가 가난하고 힘없는 영화 스태프들의 열정페이를 강요했다는 지적은, 정 감독 말마따나 확인도 안하고 성급하게 일반화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 한국영화산업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정윤철 감독의 항변이야말로 문제점을 드러낸다. 현재 표준계약서 도입으로 영화 스태프들의 급여는 상당히 현실화됐다. 표준계약서를 적용한 영화 촬영장의 연출부 막내 스태프는 통상 월 250여만원을 받는다. 4대 보험이 적용된다. 휴일 규정도 적용된다. 문제는 이렇게 표준계약서가 적용되는 게 현장 스태프 뿐이라는 것이다.



정윤철 감독이 싸게 부탁했다는 CG, 후시녹음, 편집 등 후반작업 업체들의 편당 계약비는 5년 전과 큰 차이가 없다. 영화 마케팅 업체들이 한 편당 받는 금액도 10년 전과 큰 차이가 없다. 미술, 의상 등도 마찬가지다. 시나리오 작가들이 받는 금액도 신인인 경우 편당 3,000만원 내외다. 10년 전과 큰 차이가 없다. 영화에 참여하는 많은 스태프들 중 유독 현장 스태프들만 복지와 인건비가 현실화됐다. 이는 영화산업노조 집행부 상당수가 촬영, 조명, 연출 등 현장 스태프들인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영화계에는 현장 스태프들은 박봉에 고생을 엄청나게 한다는 정서가 있다. 감독 우선주의가 강한 한국영화계에서, 감독과 현장 스태프들이 동고동락하기에 배려의 우선 순서가 된 까닭도 있다. 밖에서 힘쓰는 사람은 고생하고, 안에서 애쓰는 사람은 덜 고생한다는 분위기도 없진 않다. 그렇기에 후반작업은 업체 대표에게 부탁해서 싸게 했다는 말이, 현장 스태프에게는 상업영화 못지않게 돈을 줬다는 말과 같은 선상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전체관람가>에 불거진 열정페이 논란은, 현장 스태프들의 열정 착취를 강요한 것처럼 지적했기에 미흡했다. 오히려 더욱 깊은 지적이 있어야 했다. 수박 겉핥기식의 비판을 위한 비판은, 되려 한국영화 산업에 대한 불신과 편견을 조장한다.


현재 한국영화산업은 기형적이다. 표준계약서 도입은 빛과 어둠이 같이 있다. 비단 현장 스태프와 다른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격차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표준계약서 도입이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걸 주목해야 한다.


필름으로 영화를 찍던 시절, 불과 10년전이다. 영화 스태프는 도제식 운영에 열정페이를 강요당하며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영화에 대한 헌신과 필름이 주는 제약 때문이었다. 필름 값이 비싸기 때문에 찍을 수 있는 횟차에 한계가 있었다. 필름 값이 아까워서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번 찍을 수가 없었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영화 촬영 현장이 바뀌면서 찍을 수 있는 한계가 사라졌다. 디지털은 얼마를 더 찍든지 가격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더 많은 촬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데다, 빠른 영화를 선호하는 추세로 바뀌면서 컷수가 많아졌다. CG가 더욱 중요하게 되면서 소스 촬영도 늘었다. 일단 찍어놓고 보는 장면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제한된 스태프 인원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촬영량이 늘어났다. 이런 이유로 영화제작가협회와 영화산업노조가 합의해 2015년 1월부터 표준계약서가 도입됐다. 각 스태프마다 연차에 따라 임금이 지급되고, 시간별로 임금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비로소 현장 스태프들이 숨 쉴 여지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표준계약서가 도입되면서 이번에는 영화제작자들이 볼 멘 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2시간에 촬영 준비를 마치는 스태프와 4시간에 촬영 준비를 마치는 스태프에 동일 임금을 적용하는 게 맞느냐는 원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3년차에 포커스를 맞추는 스태프보다 10년차인데 포커스를 못 맞추는 스태프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은 표준계약서를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각각의 주장은 산업의 발전을 위해 분명히 필요하다. 논의가 이뤄져서 더 좋은 방법으로 개선돼야 한다. 아울러 현장 스태프 뿐 아니라 영화 각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임금도 현실화돼야 한다. 그래야 더 고급 인력들이 영화 산업으로 유입될 수 있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TV드라마 작가 지망생들은 갈수록 느는 건, TV드라마 작가가 훨씬 많은 돈을 벌기 때문이다.


문제는 표준계약서 도입으로 한국영화 평균제작비가 5억원 이상 늘었지만 투자수익률은 마이너스란 점이다. 갈수록 투자수익률 마이너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40~60억원 규모의 중급 예산 영화들을 점차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 제작비가 늘어나는데 인권비가 차지하는 비용이 높으면 다른 예산을 줄이기 마련이다. 후반작업, 마케팅 등등에 들어가는 돈을 줄인다. 그러면 영화 만듦새가 줄고 관심도 적어 흥행에 실패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뤄진다. 그런 까닭에 80억원 이상, 100억원대 영화를 만들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더 많은 제작비를 들이는 영화를 만들어야, 더 많은 주목을 받고, 더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들이 제작자와 투자사 사이에 퍼지고 있다. 한국영화의 다양성이 중급 규모 영화에서 나온다며, 이런 영화들이 많이 늘어야 한다는 지적이 매번 나오지만, 현실은 이렇다. 아이러니하게도 표준계약서 도입이 불러온 그늘이다.


그럼에도 영화산업이 위축되지 않고, 성장이 지속 된다면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표준계약서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한편 영화 산업 종사자들에게 고른 혜택을 줄 수 있는 노력을 할 수 있다. 다양한 중급 영화들을 시도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반면 투자가 위축되면 현장은 자본의 논리대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06년에도 표준계약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렇지만 2007년부터 영화산업 거품이 빠지고 산업 전체가 위태로워지자 표준계약서 도입 논의 자체가 사라졌다. 한국영화산업이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르고, 2억 관객 시대가 열리면서 표준계약서가 도입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영화산업이 놓인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대기업이 극장과 배급을 겸업하는 걸 금지하는 영비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도종환 문화부 장관이 각각 의원이던 시절 대표 발의했다. 스크린 독과점을 막기 위한 법안이지만 효과는 불투명한데다 만일 법안이 통과된다면 투자가 위축될 게 불 보듯 뻔하다. 극장과 배급을 겸하는 CJ E&M과 롯데엔터테인먼트, 메가박스 플러스엠이 각각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를 포기할 리가 없기에 배급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투자배급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배급사가 곧 투자사다. 위헌 가능성이 있는 탓에 법안 통과가 쉽지는 않지만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영화산업 발전을 위해, 열정페이 논란이 끝없는 영화산업 종사자들을 위해, 사실 가장 시급한 건 극장요금 인상이다. VOD시장이 커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국영화 산업은 극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유지된다. 극장요금이 인상되면 사실상 전 산업 종사자들에게 고른 혜택이 돌아간다. 그럼에도 영화 스태프들의 열정페이는 문제라고 지적하지만 그걸 해결하기 위해 극장요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하면 크게 반대한다. 모순이다.


<전체관람가>는 의미있는 시도였다. 최근 한국영화에 사라지다시피 한 다양한 색깔의 영화들을 단편이나마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다른 것이 주는 미덕을 상기시켰다. 감독들과 JTBC가 협의해 IPTV 판권 수익 3,000만원을 독립영화협회에 지원하기도 했다. <전체관람가>로 열정페이에 대한 논란이 인 것도 반갑다. 헛발질이긴 해도 주위를 환기시켰다. 논란으로만 끝날 게 아니라 한국영화산업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공론의 장이 만들어진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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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명 : 전형화
  • 약력 : 머니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