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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과 기술을 매개로 세상과 소통, 더스튜디오케이(THE STUDIO K) 홍혜진 디자이너

  • [등록일]2018-06-20
  • [조회] 624


옷과 기술을 매개로 세상과 소통하다
더스튜디오케이(THE STUDIO K) 홍혜진 디자이너


패션 디자이너의 이미지는 화려하다. 컬렉션에서 쇼를 마치고 모델들과 인사를 나누는 디자이너의 모습을 보면 ‘별세계’를 보는 듯하다. 그들은 어떤 경력을 쌓고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의 컬렉션을 선보이는 걸까? 독특한 아이디어와 실험적인 시도로 한국을 넘어 글로벌 패션산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홍혜진 디자이너를 만나 브랜드의 론칭 과정에서부터 컬렉션 준비, 아이디어 도출 방법 등 패션 디자이너의 면면에 대해 들어보았다.





지난 2006년 ‘더스튜디오케이(THE STUDIO K)’를 론칭하며 꾸준히 디자이너의 철학이 담긴 감성과 자신만의 색을 확실히 보여주는 디자이너 홍혜진. 그녀의 컬렉션은 항상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시도로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미디어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통해 증강현실 기술을 접목하기도 하고, 때로는 현대미술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이런 다각화된 분야의 주제와 영감은 모두 그녀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서 파생된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재해석해 옷으로 표현하고, 다시 그 옷을 매개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는 본인이 생각하는 사회의 일부분을 자기 방식대로 재창조해서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패션 디자이너니까 옷을 매개로 해서 사람들에게 저를 둘러싼 것들을 보여주는 거죠.”



세상 밖으로 나온 디자이너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던 그녀. 패션 디자이너 출신으로 대학 의상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어머니는 딸이 자신 같은 디자이너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딸은 과학자가 꿈인 공부 잘하는 아이였다. 과학고를 가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랐지만 여느 집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할 만한 그녀의 진학 희망은 어머니의 반대에 가로막혔다.
“저는 여느 디자이너처럼 예고와 미대를 나왔어요. 하지만 호기심이 많고 공부 잘하는 아이이기도 했죠. 과학고를 간다고 했을 때도, 미대가 아닌 다른 학과를 간다고 했을 때도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어요. 결국 미대에 진학했지만 제 성향을 숨길 수 없었는지 공부를 좀 오래 했어요. 서른 살까지 박사과정을 밟았거든요.”
보통 디자이너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 디자이너 브랜드, 동대문이라는 세 가지 루트 중 하나를 밟기 마련이다. 하지만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던 홍혜진 디자이너는 오랜 시간 학교에서 학업을 이어나가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의상과 교수인 부모님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호기심 천국’이었고 한번 첫 장을 연 책은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까지 절대 내려놓지 않을 만큼 지욕(知浴)이 강했던 그녀는 서울에서 자신이 안 들어본 의상과 강의는 아마 없을 것이라며 웃는다.
“사실 디자이너가 이론을 베이스로 하는 직업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스스로 너무 오랫동안 실무경험이 없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이 아니었으면 그런 생각이 덜 했을 텐데, ‘내가 공부를 잘한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자격이 있나’라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예술경영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그녀는 논문을 중단하고 과정을 수료했다. 열심히 축적한 이론을 실무로 확인하고 싶어졌다. 비로소 사회로 나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책으로 배운 디자인 브랜드 론칭


성공한 인디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손꼽히지만 사실 그녀는 취업에 실패해 창업에 도전한 케이스였다.
“두 곳 정도 입사를 시도했는데 실패했어요. 너무 특이한 이력이 발목을 잡았죠. 그때 당시 가장 잘 나가는 대기업 모 브랜드에 막내 디자이너로 들어가려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서울대 출신이라는 제 이력에 당황하더라고요. 그러더니 디자인팀이 아닌 정보실을 가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는 정보실이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트렌드를 리서치해서 디자이너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주는 핵심 부서였지만 말이에요(웃음).”
실기 베이스의 아트스쿨 출신인 그녀는 디자이너로서 당연히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취업에 두 번 정도 시도하고 실패한 뒤, 창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10년 전만 해도 디자이너 브랜드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어요. 이상봉, 지춘희 선생님 등 한국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가 한번 부흥한 이후에 맥이 끊긴 상황이었거든요. 한마디로 패션의 암흑기였죠.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갈등했어요. 하지만 디자인을 하기로 결심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창업밖에 답이 없는 것 같았어요.”
공부 말고는 해본 적이 없는 그녀는 창업을 준비하기 위해 책을 펼쳤다. 구글링으로 영국에서 출판된 〈디자이너 브랜드 시작하기〉라는 책을 찾아 아마존으로 주문했다. 책에서 ‘홍보대행사’를 통해서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한다고 되어있기에 매뉴얼을 그대로 따랐다.
“사실 정말 막막했어요. 그때는 벤치마킹할 디자이너 브랜드가 없었거든요. 영국은 사실 인디 디자이너 브랜드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죠. 아무것도 모르니 책을 보고 하나하나 참고해서 브랜드 론칭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어요.”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브랜드 론칭과 동시에 갤러리아 백화점에 입점되며 큰 주목을 받은 그녀의 시작은 여타 인디 디자이너 브랜드들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패션 브랜드 론칭은 보통 봄·여름(SS) 시즌에 많이 해요. 여름옷이 저렴하고 예뻐서 접근성이 좋거든요. 그런데 저는 3월부터 론칭에 대해 공부하면서 준비를 시작했더니 어느새 10월 초가 다 되었더라고요. 게다가 처음 시작하는 신진 디자이너치고는 다소 야심찬 라인업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테일러링(Tailoring)이나 가죽, 모피 같은. 보통 인디 디자이너가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가죽이나 모피를 내놓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가죽이나 모피가 ‘좋아서’ 선택했지만, 남들과는 다른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기에 백화점 론칭이라는 성공적인 스타트를 끊을 수 있었다.
“브랜드 컬렉션을 한번 선보이고 평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어머니 후배 중에 한 분께 요청을 드렸어요. 그런데 마침 그 분이 백화점 바이어와 함께 옷을 봐주러 오신 거죠. 덕분에 백화점에서 론칭을 한 디자이너 브랜드가 되었어요.”
얼결에 행운이 찾아온 것 같지만 충분히 준비된 상태였기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녀가 준비한 모피와 가죽제품은 테일러링이 복잡하게 들어가서 국내 제작이 어려운 제품이었다. 결국 지인의 소개로 홍콩의 명품 쿠튀르 공장을 소개받아 겨우 완성된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렇게 완성된 컬렉션은 바이어뿐만 아니라 고객들의 눈도 사로잡았다. 이제 막 론칭한 그녀의 브랜드는 한 달 만에 1억 원이라는 매출을 올려 단기 팝업에서 시작된 계약이 1년 더 연장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후로부터 3년 뒤, 그녀는 첫 번째 쇼를 선보이게 된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크게 주목받은 인상적인 무대였지만 이 또한 시작은 ‘얼떨결에’였다.
“2009년 가을·겨울(FW) 시즌을 기점으로 서울컬렉션의 시스템이 바뀌는 데 제가 그 수혜를 받은 케이스예요. 그때 신인 디자이너를 지원하기 위해 ‘제너레이션 넥스트’라는 파트가 생겼거든요. 활발히 활동하는 신인 디자이너 10명을 선정해 쇼 데뷔를 시켜주었죠. 모델, 사진, 영상, 음악, 연출까지 세트로 모든 것을 지원해줬어요. 제 첫 쇼는 그렇게 치러졌고요.”
컬렉션 테마를 생각하고 디자인을 시작해 완성하기까지 총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녀가 선택한 주제는 ‘큐브’였다. 패턴을 뜰 때 사각의 종이에서 시작한다는 것에 착안한 발상이었다. 기본이 되는 큐브의 형태가 그녀가 생각하는 가장 ‘유기적인’ 인간의 몸까지 가는 과정을 재해석해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오로지 6면의 큐브를 이용해 옷을 만들었다. 큐브를 모태로 하는 다양한 형태의 구조와 오리가미(Origami) 기법이 실험되었다.
“첫 데뷔이다 보니 임팩트를 주고, 컨셉추얼함을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주제였는데 실제로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쇼가 끝난 후 입점 문의가 쇄도했는데 실제로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쇼룸에서 입점 제의가 오기도 했죠.”


 

홍혜진 디자이너는 2018년 서울패션위크에서 ‘Real Fake’ 쇼라는 콘셉트의 이색적인 컬렉션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