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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제작시스템 변화: K팝의 양 날개

  • [등록일]2019-01-31
  • [조회] 125

K팝 제작시스템 변화: K팝의 양 날개




2018년은 한국 대중음악계에 대격변이 일어난 해다.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앨범 차트 정복은 더 이상 한국이 세계 음악시장의 주변부가 아닌 주요 생산기지가 되었음을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백인과 흑인, 히스패닉이 삼분하던 북미 시장을 아시아권 회사의 아시아계 인종 아티스트들이 아시아권 언어로 정복하는 초유의 일이었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200’차트 정상에 오르던 날,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방시혁 대표는 일본 지인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우리가 역사를 만들고 있다.” 맞다. 그들이 만들고자 한 역사에는 한국 대중음악을 ‘내수’에서 ‘수출’ 상품으로 확산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욕망을 실현하고자 1996년 현대식 아이돌 원조인 H.O.T. 이래 22년간 많은 시도가 있었다. 단순히 해외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는 선이 아니었다. 기획과 제작 방식의 지속적인 변화를 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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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돌의 속성


대중음악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예술로서의 음악과 상품으로서의 음악이 그것이다. 내면의 영감을 음악으로 풀어내며 자신의 작품을 남기는 과정이 전자고, 그 음악이 세상에 나와 공연이나 음원, 음반 등의 여러 형태를 통해 팔리는 과정이 후자다. 예술로서의 음악은 뮤지션이 주체가 되어 음악을 만들고 이를 부르거나 연주하고 대중은 그 아티스트에게 존경과 사랑을 보낸다. 평단은 그의 작품세계에 주목해서 이를 언어로 풀어낸다. 하지만 아이돌에게는 이런 개념과 과정이 성립하지 않는다. 아이돌은 기획사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획사에서는 뮤지션을 기획하지 않고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논리에 의해 시장의 요구와 트렌드를 파악해서 이에 맞는 아이돌을 ‘기획’한다. 이는 일반적인 회사에서 물건을 생산하고 파는 과정과 같다. 아이돌이 데뷔할 때 SM이나 YG, JYP같은 대형 기획사에서 내놓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제품을 소비할 때 제품 그 자체보다는 브랜드를 본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아이돌이라도 기획사가 어디냐에 따라 사전 주목도와 성공 가능성이 달라진다. 그래서 예술로서의 대중음악에서 주체가 뮤지션이라면, 산업으로서의 대중음악에서 생산의 주체는 기획사다.


여기서 산업의 속성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산업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는 효율성과 생산성이다. 이 가치의 달성을 위해 분업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산업혁명 시기의 일이다. 단순하고 동일한 작업의 반복을 통해 개별 노동자의 기교가 향상되고 한 노동자가 전체 작업을 총괄하는 경우보다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효율성과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개별 노동자는 컨베이어 벨트의 정해진 위치에 서서 자기가 맡은 역할만을 할 뿐이다. 분업시스템은 각각의 노동자에게 생산물 전체를 맡기지 않으며 생산과정 일부분만이 그에게 속할 뿐이다. 그렇게 생산된 결과물은 이 시스템을 구축하고 노동자를 고용한 자본에 귀속되며 노동자는 생산물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해 설명한 내용이다. 이 논리는 아이돌 시스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이돌은 기본적으로 대량생산/대량소비를 목적으로 삼는다. 아이돌에게 요구되는 건 오래 두고 남는 명곡이 아니라 발매되자마자 차트 1위를 점령하며 빠른 인기몰이를 할 수 있는 트렌디한 노래다. 최단기간에 최대의 이익을 낸 후 새로운 노래로 같은 코스를 밟아야 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분업이다.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작곡가와 편곡자, 안무가와 코디네이터 등이 기획사가 마련해둔 컨베이어 벨트에 서서 각각의 직무에 충실한다. 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움직이는 제품은 아이돌 그룹이다. 무명의 소년 소녀 상태로 벨트에 투입된 연습생들은 이 벨트의 끝자락에서 아이돌이라는 제품으로 완성된다. 1990년대 중후반, 음악시장이 아이돌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한국 기획사들은 더 큰 시장을 노리게 된다.  내수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MP3의 등장으로 음반이라고 하는 음악산업의 큰 먹거리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시대의 변화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법. 그들은 아이돌이라는 제품을 팔 수 있는 다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바로 일본과 중국이었다.


2. K팝 로드(K-Pop Road): 한국 아이돌 수출사


일본 진출에 먼저 눈을 뜬 건 SM엔터테인먼트였다. 90년대 일본 아이돌 시장은 남자 그룹의 경우 스맙(SMAP)으로 대변되는 기획사 ‘쟈니스’ 천하였다. 반면 걸그룹은 파고들 여지가 있었다. 모닝구 무스메의 등장과 함께 아이돌 시장은 그 타겟이 ‘일반 대중’에서 ‘오타쿠’로 변화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절대 강자가 없었다. SM은 이 기회를 틈타 S.E.S.를 진출시켰으나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실패했다. 국내 시장의 후발주자였던 핑클에게 1인자의 자리만 내주는 결과만 초래했다. 아직 일본은 한국 기획사가 만든 한국 아이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었다. SM은 그다음을 고민했고 결국 국적을 지운 보아를 기획하게 된다. 현지 회사인 에이벡스와 합작을 선택해 일본 작곡가의 곡을 받아 일본 기획사에서 앨범을 냈다. 보아가 한국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건 이미 그녀가 큰 성공을 거둔 후였다. 보아의 새 앨범이 이미 아무로 나미에, 나카시마 미카 같은 톱 클래스 여가수들과 음반 진열대에 나란히 놓였을 때였다. ‘메이드 인 코리아’이되 브랜드는 일본인, 말하자면 OEM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보아, 그리고 SM은 예기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냈는데, 그녀가 ‘아이돌’이 아닌 ‘아티스트’로 분류된 것이다. 일본의 아이돌은 이미 ‘실력’보다는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아무로 나미에, 퍼피(Puffy)를 끝으로 아이돌에게 요구되는 건 노래와 춤 실력이 아니었다. 실력은 일본 음악시장의 주류인 아티스트의 몫이었다. 아이돌은 춤이건 노래건 어설퍼도 상관없었고 오히려 그러한 부분이 미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아는 일본의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라이브 실력으로 관객을 끌었고 자연스럽게 아티스트의 카테고리에 속하게 됐다. 이는 추후 SM의 전략에 중요한 데이터가 된다.


보아

*출처: www.smtown.com



반면 중국으로의 진출은 반쯤 해프닝으로 이뤄졌다. 중국이 중요한 시장으로 여겨지기 전인 90년대 후반부터 현지에 진출한 프로덕션들이 있었다. 이들의 주요 사업은 한국의 완성된 콘텐츠, 즉 음반과 드라마 OST 등을 중국에 파는 것이었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중국에 한국 대중문화 팬덤이 형성됐다. H.O.T., 베이비복스 등이 그런 ‘암시장’적 요소를 바탕으로 성공리에 공연까지 개최할 수 있었다. 일본 진출에 총력을 기울이던 SM은 여기서 그친 반면, 베이비복스의 소속사 DR뮤직은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를 봤다. 1999년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 현지에서 음반을 발매한 후 1년만인 2000년 11월에 중국 베이징에서 여성 그룹으로서는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해 매진시켰다. 이어 DR뮤직은 현지 법인을 설립하여 베이비복스의 중화권 활동에 박차를 가한다. 80년대 한국이 일본 문화를 동경했던 것처럼, 세기말과 세기초의 중국은 한국 대중문화에 같은 시선을 갖고 있었다. ‘한류’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열린 K팝의 동아시아 수출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베이비복스의 성공에 자극받은 SM은 아예 중국시장을 겨냥하여 새로운 남자 아이돌 그룹을 개발한다. 바로 동방신기였다. 팀명은 물론, 멤버들의 이름부터 중국 문화권을 겨냥했다. 하지만 마침 보아가 일본에서 크게 성공하면서 전략이 수정되어 동방신기 역시 일본에 진출하게 된다. 보아가 일본 회사의 전폭적 지원으로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었다면 동방신기는 말 그대로 바닥부터 시작했다. 한국에서 차트 1위를 찍은 후 곧바로 일본으로 날아가 소규모 라이브 하우스에서 공연하는 날이 이어졌다. 고생 끝에 동방신기는 마침내 오리콘 차트 주간 1위를 찍고 도쿄돔을 매진시키는 최정상급 아티스트로 성장하게 된다. 보아로 획득한 아티스트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기획 단계부터 연습생 중 메인 보컬들만 모아 팀을 만든 전략이 주효한 것이다. 동방신기를 통해 한국 아이돌은 일본에서 탄탄한 입지를 얻게 된다. 드라마로 파생된 중년층 여성이 아닌 젊은 세대들이 한국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SS501, 카라, 소녀시대까지 이어지는 일본 내 ‘한류 열풍’은 일본 대중문화시장의 메인스트림 층이 열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본에서 한국 음악이 큰 지분을 갖게됐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건 명확했다. 한국의 아이돌 제작능력이 선진국에 수출할 만큼의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즈음 중국에 본격적인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음악 시장이 빠르게 스트리밍으로 전환됐고 이는 중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불법 복제와 다운로드가 주를 이루던 중국 시장은 강력한 구매력을 갖게 됐다. 이미 중국인 멤버를 영입하여 2000년대 중반부터 중국에서 최정상급 인기를 누리고 있던 슈퍼주니어를 보유한 SM, 그리고 원더걸스의 미국 시장 정착 실패로 위기에 빠져있던 JYP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중국인 멤버를 영입하여 중화권 현지화를 노리는 전략은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아예 ‘유닛’ 단위로 한국과 중국을 분리시킨 엑소를 비롯하여 미쓰에이, 에프엑스 등 중국인 멤버가 포함된 그룹들이 현지에서 보다 쉽게 안착할 수 있었다. 보아가 ‘제조국’을 지운 OEM이였다면 그 후의 아이돌들은 한국이 기획과 제작을 맡고 현지인 멤버가 ‘부품’으로 투입되는 형태의 제작 방식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한국 아이돌의 음악이 K팝으로 장르화되어 아시아를 넘어 중남미와 유럽에서도 의미 있는 지지 기반을 획득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와패니즈’라 불리우는 해당 지역의 일본 대중문화 매니아층이 오리콘 차트 및 일본 방송에서 얼굴을 보이는 한국 아이돌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시작된 이 현상은 자연스럽게 K팝을 세계 서브컬쳐 시장에서의 주요 카테고리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2011년 SM타운의 파리 콘서트는 K팝이란 단어가 한국 언론에서 공식적인 표현으로 쓰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기성세대와 언론이 더 이상 아이돌을 ‘10대 위주의 서브 컬쳐'가 아닌 ‘문화 수출 상품’으로 받아들이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것은 시스템의 승리다. 한국의 음악시장은 아이돌 시스템이 진화하고 발전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가졌다.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가 주도한 아이돌 르네상스를 거치며 아이돌은 10대 문화를 넘어 방송, 광고 시장에 ‘젊음’을 공급하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진화했다. ‘틴 팝’이나 ‘오타쿠 상품’으로 여겨지는 타국과는 달리 메인스트림 엔터테인먼트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한국의 연습생 시스템 때문이었다. 중학교, 빠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가 트레이닝을 거치는 과정에서 그들의 일상적 관계는 배제된다. 아역 배우조차 정해진 정규 교육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서구와는 달리 한국에는 그런 의무가 없다. 일부 예술고등학교의 경우 연습생으로 들어가서 데뷔가 예정된 학생은 수업에 출석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엘리트 스포츠 교육의 시스템이 고스란히 엔터테인먼트에도 전이된 셈이다. 아이돌을 꿈꾸는 한국의 10대들은 학교 대신 기획사에서 또래와는 다른 길을 진작부터 걷기 시작한다. 기획사는 자신들의 컨베이어 벨트에 백지상태의 재료를 올려 다른 나라에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제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에 나온 아이돌은 데뷔 전부터 만들어진 팬덤을 교두보삼아 자국과 타국을 누비며 활동한다. K팝의 수출은 이런 현실과 배경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3. ‘SM의 시스템’+‘방탄소년단의 자아’= K팝의 양 날개


K팝 시스템, 또는 컨베이어 벨트는 이제 무슨 꿈을 꾸는가. SM의 남자 아이돌 NCT가 그 내면을 엿보게 해준다. NCT U란 유닛으로 지난 2016년 데뷔한 그들은 SM의 향후 전략을 가장 잘 보여주는 팀이다. NCT는 ‘한 팀’이 아니라 ‘모듈’처럼 운용된다. 이 팀은 NCT라는 브랜드 아래 NCT 드림, NCT 유, NCT 127 등 세부 그룹으로 나뉜다. 아이돌 그룹이 내부에 유닛 단위 팀을 두는 건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NCT는 그 개념이 다르다. 각 팀은 NCT라는 이름을 공유하지만 모두가 모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공유할 뿐 연합 활동이 주가 아니다. 한국 팀이 NCT 127이라는 서울의 경도(127도)에 기반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면 향후 베트남 팀은 NCT 105(하노이 경도), 대만 팀은 NCT 121(타이페이 경도) 등으로 분화가 가능한 것이다. 나이에 따라서는 미성년자들로 구성된 NCT 드림, 나이 제한 없는 NCT U 등으로도 나뉜다. 한국인 멤버의 입대나 외국인 멤버의 탈퇴 등으로 흔들리는 리스크를 없애고 NCT라는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목표 아래 탄생한 것이다. 이 계획대로라면 NCT의 유닛들이 세계에서 동시에 공연하거나 방송에 출연하는 것도 가능하다. 모든 멤버들의 일정을 맞추기 위한 수고도 필요 없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형태로든 NCT가 존재한다.  그렇다. 이것은 프랜차이즈인 것이다. 가장 발전한 형태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도 볼 수 있겠다. 이미 프로듀싱부터 스카우팅까지 국제적 네트워크를 완성한 SM이기 때문에 가능한 시스템이다. NCT는 ‘Neo Culture Technology’의 약자다. K팝 시스템을 세계 도처에 동시에 이식해 지역별로 아이돌을 생산하겠다는  야심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NCT127

*출처: www.smtown.com


SM뿐만 아니다. 지난 9월 JYP는 중국에 ‘보이스토리’라는 남성 그룹을 데뷔시켰다. 박진영이 현지에서 발굴한 13세 안팎의 소년들로 구성된 이 그룹은 데뷔와 동시에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9월 박진영이 작사, 작곡한 ‘Enough’로 정식 데뷔한 보이스토리는 이후 QQ뮤직 및 중국 최대 뮤직비디오 사이트인 인위에타이의 ‘종합 MV차트’ 1위를 차지했다. 샤오미의 스마트 워치 광고 모델로도 발탁됐다. JYP가 기획과 제작을 담당했지만 비용은 중국 최대 IT기업인 텐센트에서 전액을 투자했다. 중국의 자본력과 한국의 기획력이 합쳐진 결과물이다. 중화권 시장을 겨냥해서 중국인 멤버를 영입하던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가는 전략이다. 한국의 기획력과 중국 현지 자본의 ‘ 시’를 활용하여 더 큰 성과를 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리스크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슈퍼주니어, 엑소의 중국인 멤버들이 성공 후 팀을 탈퇴하여 현지에서 독자적 활동을 한다던가, 사드(THAAD)의 여파로 발령된 한한령으로 발생한 피해 같은 것들이 보이스토리에게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완다 그룹이 헐리우드의 ‘레전더리 픽처스(Legendary Pictures)’를 인수하여 자국의 문화장벽을 뛰어넘은 것처럼 중국 자본이 한국의 기획사를 파트너 삼아 새로운 K팝 비즈니스를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보이스토리

*출처: 보이스토리 공식 웨이보


그리고 또 하나의 모델이 있다. 마마무의 소속사인 RBW의 시스템이 바로 그것인데, 이 회사의 수익 중 30% 정도를 차지하는 건 해외 콘텐츠 제작이다. 해외 자본의 의뢰를 받아 현지 아이돌을 제작하는데 현재까지 중국에 5팀, 일본에 3팀, 인도네시아에 2팀, 베트남에 5팀을 이 방식으로 만들어냈다. 이 중에서 베트남의 켈빈 칸과 치푸, 일본의 코드브이(CODE-V) 등은 현지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SM과 JYP, 그리고 RBW, 이 세 회사의 사례는 결이 다르다. SM이 자사 아이돌 자체를 프랜차이즈화한다면 JYP와 RBW는 기획부터 제작, 그리고 활동 전반까지를 책임진다. 공통점은 20년 가까이 축적된 아이돌 시스템과 노하우 그 자체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멤버라는 ‘개인’이 아니라 기획과 제작이라는 ‘시스템’이 상품이 되는 것이다. 이는 다시 한번 아이돌 산업의 본질을 말해준다. 아이돌 산업이란 결국 ‘아티스트’ 중심의 창작업이 아니라 ‘기획사’ 중심의 제조업에 가깝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적은 탈색된다. 최종적으로 남는 건 콘텐츠 자본이며 이것은 지금 K팝이 나아가고 있는 길 중 하나이다.


또 하나의 길이 있다. 방탄소년단(BTS)이 보여주고 있는 방식이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기존의 K팝 시스템에 몇 가지가 더해지고 빠진 결과다. 그들은 처음부터 ‘제품’이 아닌  ‘작품’으로 활동하고자 했으며 스스로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썼다. 그리고 보아가 그러했듯 아티스트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빅뱅과 같은 ‘아티스트형 아이돌’이다. 소셜 미디어 시대에 걸맞은 빠르고 풍부한 콘텐츠로 ‘BTS 생태계’를 만들었다. 이런 전략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방탄소년단’이 전면에 드러나는 효과를 불렀다. 앞서 말했듯 소녀시대, 동방신기 등이 서구에 알려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 SM타운 콘서트’였음을 떠올려 보자. 또한 싸이의 ‘강남 스타일’ 신드롬이 촉발된 계기가 많은 팔로워를 갖고 있던, 한 미국 YG팬의 트윗에서 시작되었던 사실도 떠올려보자. 방탄소년단이 그런 기획사의 배경 없이 독자적인 힘을 가지고 빌보드를 제패할 수 있었던 힘은 아이돌, 또는 틴 팝보다 아티스트를 우대하는 서구 음악 시장의 경향에도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가장 크고 강력한 국제적 시스템을 구축한 SM 아이돌보다 방탄소년단이 먼저 ‘대업’을 이뤘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본은 시장 밖에 존재하는 상품을 어떻게든 상품화시킨다. 자본과 권력을 극단적으로 비난하는 음악으로 MTV와 대형음반매장을 석권했던 미국 록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의 사례가 이 아이러니를 대변한다. 바로 ‘메시지의 상품화’다. 보통, 음악에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은 ‘아이돌’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몫이다. 방탄소년단은 최근 곡 ‘IDOL’에서 국악 요소와 탈춤을 응용한 안무를 선보이며 오히려 한국적인 색을 더했다. 게다가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노래한다. 아티스트적인 속성을 보다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기획사 중심의 K팝이 콘텐츠 자본의 속성을 고도로 발전시키는 것과는 정반대의 길이다. SM의 시스템과 방탄소년단의 자아. K팝은 이제 양 날개로 난다


ㅣ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출처 : 한류NOW 2019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