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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생 제도와 불공정 계약이 초래하는 아이돌 인권문제

  • [등록일]2019-03-28
  • [조회] 1765

연습생 제도와 불공정 계약이 초래하는 아이돌 인권문제




K팝으로 불리는 아이돌 산업은 지난 20여 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국내 10대들의 전유물에서 해외 시장 지분을 넓혀가며 한류 수출 첨병으로 위상을 높였다. 그 기반에는 연예기획사가 연습생 선발부터 트레이닝, 팀 구성, 음반 제작, 매니지먼트까지 아우르는 아이돌 제작 시스템이 있다. 이 시스템은 트렌디한 음악과 기량 높은 스타들을 배출하는 순기능을 했지만, 기획사가 연습생·가수와 종속 관계를 형성하면서 불공정 계약, 과도한 사생활 규제 등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그중 가장 최약 계층인 연습생의 불안정한 계약 관계, 폭행과 성추행 피해 등이 노출되자 문화체육관광부는 권리 보호 사각지대에 있는 연습생 실태를 인지하고 표준계약서 제정에 나섰다. 가수들은 지난 2009년 표준계약서가 도입되면서 불공정 계약 관계가 어느 정도 개선됐지만, 전속계약 분쟁, 관리란 명목으로 행해지는 횡포는 반복되고 있다. 이런 부작용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인형”이란 해외 미디어의 비판을 받으며 K팝 한류에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심어주기도 했다. K팝 시장의 체질을 개선하려면 기획사는 가수와 파트너 개념으로 인식을 전환하고, 가수들의 자발성과 자생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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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출처: 한국일보(2018.10.22). 비명이 터졌다, 악몽 된 'K팝 스타의 꿈'




1. 아이돌 제작 시스템의 희생양, 연습생


아이돌 가수가 꿈이던 20대 A군은 연습생으로 몇몇 연예기획사를 전전했지만 결국 데뷔가 무산됐다. 이름있는 첫 회사에서는 경쟁에서 쳐져 방출됐고, 두 번째 회사에선 데뷔조에 들었지만 막판 탈락했다. 나이가 차자 급한 마음에 들어간 영세 기획사에선 약속한 데뷔가 차일피일 미뤄졌다. 회사는 경영난으로 데뷔 계획을 철회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연습생이던 A군은 20대 초반까지 가수란 꿈만 보고 달려와 다른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다. 문턱에서 좌절을 맛보자 노력이 부족했다는 자책에 한때는 우울증약도 복용했다. 지금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친구들과 작게나마 장사를 해볼까 생각 중이다. 가요계에는 매년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배출되지만, A군처럼 4~5년의 시간을 쏟고도 탈락하는 연습생들이 부지기수다. 엠넷 ‘프로듀스 101’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데뷔가 꿈”이라고 간절하게 울먹이는 연습생을 쉽게 볼 수 있는 이유다. 10대의 꿈과 자본을 지렛대 삼은 아이돌 산업은 기획사의 상업성과 가수의 성공 의지가 결합해 빠르게 해외 시장 지분을 차지하며 ‘한류의 첨병’이 됐다. 그 과정에서 독특한 트레이닝 체계인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구축됐다. 자생적으로 탁월한 재능을 갖춘 원석을 데뷔시키는 해외 팝 시장과 달리, 기획사가 연습생 선발부터 트레이닝, 팀 구성, 음반 제작까지 가수 한 팀(명)을 탄생시키는 전 과정을 리드하는 구조다. 이 시스템 안에서 형성된 권력 관계는 기능적으로 우수한 콘텐츠를 만들어냈지만, 가수의 인권이란 부분에선 취약점을 드러냈다. 상대적으로 가장 취약 계층인 연습생은 주로 미성년자로 기획사와의 계약 관계가 불안정하고 일부는 폭언과 폭행, 성추행 등의 위험에 노출돼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K팝 스타가 되기 위한 필수 관문인 연습생이 처한 현실을 들여다보고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2. 아이돌 연습생 인권실태


문화체육관광부의『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대중문화예술기획업체(기획사) 수는 1천952개로, 소속 연습생은 1천440명이며 그중 1천79명(74.9%)이 가수 지망생이다. 연습생 대부분은 오디션을 거친 10대 청소년들로, 계약서를 쓰지 않는 테스트 기간에는 ‘예비 연습생’(견습생), 계약서를 쓰면 ‘연습생’, 신인 그룹 멤버로 정해지면 ‘데뷔조’로 불린다. 오디션 관문을 통과하면서부터 데뷔조에 들어야 하는 치열한 경쟁 구도에 놓이는 것이다. 비교적 규모있는 기획사 연습생들은 노래(보컬/랩)와 춤, 악기, 연기, 외국어 등의 교육을 받으며, 매월 성취도를 평가받는다. 중고교생은 하교 후 오후에 연습실로 나와 평균 밤 10시까지 커리큘럼을 소화한다. 집이 지방이거나 외국인인 연습생들은 회사가 마련해준 숙소 생활을 하며 관리를 받는다.


연습생 세부 인력 현황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2017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보고서』


이들은 학교에 재학 중이지만 또래와 다른 환경에 놓이니 학업은 자연스레 뒷전이 된다. 근래에는 연습생 신분으로 오디션 방송에 출연하는 이들도 있어 정상적인 학업 병행이 쉽지 않다. 연습생들이 연예 활동에 관대한 편인 예술고등학교에 몰리는 이유다. 이들은 오전 수업만 받은 뒤 학교에 스케줄 관련 공문을 내고 일정을 소화하거나, 연예 활동을 위해 검정고시를 염두에 두고 자퇴하기도 한다. 특히 데뷔가 임박한 연습생들은 학업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아 새벽까지 하루 대부분을 연습실에서 보낸다. 15세 미만 청소년 연예인은 학습권과 휴식권, 수면권 등 인권 보장 차원에서 밤 10시부터 새벽 활동이 제한됐지만, 연습생의 경우 관련 규정의 사각지대에 있다. 이들 중 성취도를 인정받아 ‘예비’ 꼬리표를 떼면 연습생 계약서를 쓰게 된다. 연습생 계약서는 계약 기간, 계약 해지에 따른 위약금,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행동에 대한 책임, 상호 신의 원칙을 성실하게 이행할 의무 등 가수의 전속계약서 축소판이다. 차이가 있다면 상세한 수익 관련 분배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계약 기간은 통상 3년이지만, 나이와 성장 가능성 별로 천차만별이다. 최근엔 연습생 연령이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낮아지면서 계약 기간이 길어지는 경향도 생겨났다. 한 기획사 신인개발 팀장은 “중고등학생은 보통 3년 계약을 한 뒤 연장 혹은 방출한다”며 “초등학생일 경우 재능이 확실하면 7년, 가능성이 있는 정도면 3~5년 가량 계약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7년에는 연습생 계약서 일부 조항이 불공정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SM·YG·JYP·로엔(현 카카오M)·FNC·큐브·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DSP미디어 등 8개 주요 기획사 연습생 계약서의 불공정약관을 바로잡으면서다. 공정위는 계약 해지 때 투자 비용의 2~3배를 청구하는 위약금 조항은 직접 투자 비용(실비)만 부담하도록 했고, 연습생 기간이 끝난 뒤 같은 기획사와 전속계약 한다는 조항도 우선 협상 의무로 완화했다. 당시 8개 기획사는 문제 조항을 수정했지만, 다수가 여전히 억대 위약금 등 불합리한 조항을 계약서에 포함하고 있다. 연습생들이 계약 해지 분쟁에서 억대 위약금을 요구받았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기획사가 가수 육성과 데뷔의 전권을 쥐다 보니 심각한 부작용도 노출됐다. 일부 연습생들은 트레이닝 기간 중 당한 폭언과 폭행, 성추행 등의 피해를 호소했다. 지난해 10대 밴드 ‘더이스트라이트’의 이석철·승현 형제의 폭로는 충격을 줬다. 이들은 데뷔 전인 2015년부터 기획사 프로듀서로부터 상습 폭행당했다며 “K팝 시장에서 아동학대와 인권 유린이 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1세대 아이돌 그룹을 발굴한 한 기획사 대표는 연습생 성추행 혐의로 지난해 12월 항소심서 유죄가 인정됐고, 또 다른 신생 기획사 여성 대표는 남자 연습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올해 초 고소당하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인권 보호 사각지대에 있는 연습생 실태를 인지하고, 지난해부터 업계와 협의해 표준계약서 제정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문체부가 공개한 ‘대중문화예술분야 연습생 표준계약서’ 초안은 ▲ 계약 기간 3년 초과 금지 ▲ 교육 무상 제공 및 수익 분배 시 공제 불가 ▲ 교육 직접비 연습생별 계상·관리 및 연습생 요구시 공개 ▲ 인격권 침해 행위나 부당한 금품 요구 금지 ▲ 기획업자, 임원, 직원의 성범죄 확정판결 시 연습생 계약 해지 가능 등을 골자로 한다. 현재 이 초안은 업계 이견이 나와 조정 단계로, 최종 논의가 마무리되면 시행된다. 연예인(대중문화예술인) 표준계약서와 마찬가지로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이다. 문체부 대중문화산업과 관계자는 “연습생들의 기본 권익을 보장하려는 취지”라며 “최근 연습생 폭행과 성폭력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제기됐고, 계약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연습생도 다수여서 보편 계약서를 통해 권익을 보호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연습생 표준계약서가 권고 사항이란 점에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연습생 권리 보호에 대한 업계 인식을 환기시킨다는 측면에서 의미있는 행보로 볼 수 있다. 연예인 표준계약서 사용률도 도입 7년 만인 2016년 기준 84%로 확대된 만큼, 공정한 관계의 토대를 만드는데 일조할 것이란 해석이다.


3. 데뷔 이후까지 이어지는 족쇄


꿈꾸던 데뷔를 한 가수도 불과 10년 전까진 기획사와의 관계에서 철저한 ‘을’의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기획사와 전속계약이 연예인에게 지나치게 불공정한 ‘노예 계약’이란 지적이 나오자 지난 2009년, 계약 기간을 7년으로 한 표준계약서가 도입됐다. 10년이 넘는 장기 계약, 과도한 사생활 규제로 인한 인권 침해 등의 문제가 개선된 전환점이었다. 이와 맞물려 2009년 7월 인기 절정의 동방신기 세 멤버(김재중, 박유천, 김준수)가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전속계약 분쟁을 제기해 사회적인 관심을 촉발했다. 셋은 13년 장기 계약, 기획사에 유리한 수익 분배, 부당한 위약금 등을 문제 삼았고 3년 4개월 만에 합의로 분쟁을 마무리했다. 이 분쟁은 기획사에 종속된 가수가 대형 소속사를 상대로 권리 주장을 한 상징적인 사건이었지만, JYJ로 뭉친 세 멤버는 그 대가로 방송 출연 길이 막히는 고충을 겪었다. 이후 가수의 권리가 보호받는 방향으로 어느 정도 개선됐지만, 전속계약 분쟁은 고질병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는 가수를 육성하고 수익을 배분하는 모든 과정을 기획사가 주도하는 구조적인 틀 때문이다.


마찰을 빚는 가장 큰 쟁점은 수익 분배다. 기획사마다 차이는 크지만, 업계에 따르면 대략 5인조 이상의 한 팀이 데뷔 앨범 한장을 내기까지 레슨비, 숙소비, 앨범 및 뮤직비디오 제작비, 의상비, 마케팅비 등 평균 10억~20억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비슷한 그룹 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데뷔와 동시에 인기를 얻기는 어렵고 2~3장 앨범을 내는 동안 투자는 지속된다. 수익 정산은 1개월 혹은 3개월 단위로 하지만 수익 분배는 투자 비용이 상쇄된 뒤부터여서 빛을 보지 못한 가수들은 몇 년간 스케줄을 소화해도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기 어렵다. 영세 기획사일 경우, 2~3년 안에 소속 가수를 띄우지 못하면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워 앨범 제작과 가수 지원에 손을 놓는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갈등은 분쟁으로 비화된다. 한 신인 걸그룹 부모들은 “대표가 적자라면서 2년째 앨범을 미뤘다”며 “연습할 공간도 지원하지 않고 방치해 계약 해지를 요구하자 투자 비용의 3배에 달하는 위약금을 내라고 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걸그룹 아버지도 “정산을 하면서 3년간 적자라고 했다”며 “투자 비용이 20억원으로 BEP(손익분기점)를 맞춘 뒤부터 수익 분배가 가능하다길래 20억원에 대한 내역을 요구했다. 내역서가 허술해 항의하자 그 자리에서 비용 10억원을 탕감해줬다. 주먹구구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처럼 오랜 시간과 고비용이 투입돼 리스크가 큰 산업이다 보니, 가수에게는 성공과 인기 유지를 위한 엄격한 관리가 요구된다. 기획사들은 표준계약서 도입 이후 과거보다 연예인 사생활 영역을 인정해주는 편이지만, 인기에 비례해 타격이 커 여전히 사생활 규제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지난해 큐브엔터테인먼트가 회사와 상의 없이 교제 사실을 인정한 가수 현아와 펜타곤 이던의 퇴출을 발표한 것도 과도한 사생활 규제이자 횡포라는 지적이 일었다. 팬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소속사는 퇴출을 번복했지만 한 달이 지나 결국 두 사람과 계약을 해지했다고 알렸다.


전속계약서에 명시돼 있지 않더라도 가수의 동의 하에 인지도를 쌓는 일정 시점까지 ‘연애 금지’, ‘개인 휴대전화 사용 금지’, ‘흡연 금지’ 등 규칙을 정해놓은 기획사들은 다수다. 아이콘의 바비는 지난해 MBC TV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연애 금지도 있고, 숙소에 있다가 집 앞 편의점에 갈 때도 보고한다. 운전면허를 따는 것도 안 된다”고 소속사 내부 규율을 공개했다. 가수들은 과도한 도덕성을 요구받고, 성공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놓이면서 정서 불안 등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2017년 12월 그룹 샤이니 종현의 갑작스러운 사망이 사회적으로 충격을 주면서 가요계가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2008년 데뷔한 샤이니 태민은 최근 솔로 앨범 발매 인터뷰에서 “보이는 삶이어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고, 사건 사고도 조심해야 하는 것은 힘든 점”이라고 중견 아이돌로서 느끼는 감정을 털어놓았다. 심리적인 고통으로 팀을 이탈하는 멤버도 생겨났다. 2017년 6월 걸그룹 AOA를 탈퇴한 초아는 당시 “불면증과 우울증을 치료하고자 약도 먹어보고 2년 전부터 스케줄을 점점 줄여왔지만, 피곤에서 오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결국 모든 활동을 중단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름도 알리지 못하고 무대에서 내려온 가수들의 상실감과 박탈감은 더욱 크다. 지난해에도 소년공화국, 보너스베이비 등 계약 기간 7년을 못 채우고 활동을 중단하며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진 팀들은 다수다.


4. 가수와 기획사 간 상생의 파트너십 필요


소속사와의 분쟁, 사생활 규제, 정신적인 고통 등 일련의 부작용들은 지난 20여 년간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기반으로 꽃피운 K팝 한류에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심어줬다. “제작사의 기획으로 길러진 소년과 소녀들”, “공장에서 찍어내는 인형”이란 해외 미디어의 비판은 K팝 그룹들이 해외에서 대거 활약하는 동안 반작용처럼 따라붙었다. 세계적인 그룹이 된 방탄소년단이 해외에서 높게 평가받은 대목 중 하나도 음악에 자신들의 진정성 있는 목소리를 담으며 K팝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K팝 시장은 가수들의 자발성과 자생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획사와 가수가 아이돌 육성 시스템에 뿌리내린 종속 관계에서 벗어나, 상생하는 파트너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보통 유명세를 얻은 스타는 기획사와 자연스럽게 파트너십으로 전환되는데, 연습생 때부터 동등한 사고가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음악평론가 강문 씨는 “서구 사회에서 꼬집듯 육성 시스템의 기반이 빈약한 것은 연습생의 인권이 취약하다는 측면 때문”이라며 “자생적이고 자발적인 아이돌 문화로 옮겨 가려면 트렌디한 산업을 이끈다는 제작자들부터 인권을 중시하는 사회 변화에 발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ㅣ이은정 연합뉴스 기자

     (출처 : 한류NOW 2019년 3+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