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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의 감정노동 '365일 24시간 연중무휴'

  • [등록일]2019-04-04
  • [조회] 1301

아이돌의 감정노동 '365일 24시간 연중무휴'




본고는 K팝(아이돌) 산업의 화려한 외양 뒤에 감추어진 아이돌의 혹독한 노동 현실에 주목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K팝 산업은 세계무대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지난 20년간 수많은 국내 청소년들을 그들의 잠재적 노동자원으로 흡수해왔다. 해당 산업 내에서 노동자로 위치된 아이돌과 연습생은 노동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시킨 인-하우스 시스템 속에서 훈련을 받으며 사생활이 통제되고 박탈되는 상황을 기꺼이 감수한다. 또한, 아이돌이 노동자이자 상품이라는 이중적 위치에 놓이기 때문에 ‘감정노동’이라는 새로운 양식의 노동을 수행한다는 점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소셜미디어가 아이돌의 주요 홍보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그들의 일상은 24시간 감시의 대상이 되며 감정노동은 365일 연중무휴의 형태로 진행된다. 더욱 가공할 만한 사실은 감정노동이 인간 고유의 영역에 속하던 ‘감정’을 노동의 자원으로 삼기 때문에 감정노동자는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동시에 감정노동은 감정을 생산하고 인적 교류를 촉발한다는 점에서 그동안 인간적 영역에 속하던 요소들을 경제적이고 도구적인 영역으로 변환시키기까지 한다. 아이돌의 감정노동이 초래할 수 있는 결과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이 글은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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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출처: KBS2 <본분 금메달> 방송 캡쳐



1. 화려한 외양, 혹독한 노동


K팝 산업은 2000년대 중반부터 아시아 지역에서 소위 ‘신한류’를 주도했고 2010년대에 들어서는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의 주목과 관심을 끌고 있다. 세계무대에서 고공 행진을 이어가면서 K팝 산업은 국가적 찬사의 대상으로 그 입지를 굳히고 있다. 이와 더불어 아이돌 제작 시스템은 효율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획기적인 ‘인재 양성 프로그램’으로 주목받고 있다(김수아, 2013; 원용진·김지만, 2012). 하지만, 아이돌 생산 시스템 내에서 아이돌과 연습생들이 직면해 있는 노동 현실은 오랫동안 베일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몇 차례에 걸쳐 아이돌과 기획사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고 법적 다툼이 이어지면서 화려한 외양 뒤에 감추어진 아이돌의 혹독한 노동 현실이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2017년 그룹 샤이니의 멤버 종현의 안타까운 자살 소식은 아이돌 산업의 그림자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냈다. 심각한 우울증이 자살의 직접적인 동기라고 밝혀졌지만, 종현이 마음의 병을 얻게 된 데에는 극심한 경쟁과 완벽주의 추구에 따른 내적 스트레스와 자유와 권리를 제한당하며 통제적 환경에 놓여 있던 아이돌의 노동 현실이 상당 부분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라 판단된다. 이 사건은 K팝의 성장과 세계무대로의 진출이 아이돌과 아이돌 스타를 꿈꾸는 연습생의 희생을 담보로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현재 아이돌 지망생의 숫자는 100만 명에 이른다. 급증한 지망생의 숫자와 1990년대 후반 한국 사회에 불어 닥친 IMF 한파 사이에는 논리적 연관성이 존재한다. 경제 위기를 기점으로 한국 사회가 본격적으로 도입한 신자유주의 논리는 노동시장과 교육 등 각계 분야로 침투하면서 청소년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쉴 수 없게 만들었다.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소수의 명문대에 들어가야 한다는 통념이 청소년들에게 완전한 현실로 다가오면서 그들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졌다. 이전부터 경쟁은 존재했지만 그 강도가 이전과는 다른 수준으로 극심해진 것이다. 이때 아이돌 산업은 지친 삶으로부터 휴식을 갈망하는 청소년들에게 안정적으로 오락거리를 제공했고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불안과 인고의 시간을 전제로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급속한 성장세를 이어온 아이돌 산업이 청소년들에게 유의미한 숫자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공부만을 유일한 생존 전략으로 여겼던 청소년들이 입시지옥을 벗어나 탈출구를 모색할 수 있게 된다. 좋은 학벌을 통해 신분 상승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10대들은 아이돌 산업을 삶의 돌파구로 여기고 ‘아이돌 스타’를 꿈꾸며 연예기획사로 찾아가기 시작한다. 100만 명에 달하는 지망생의 숫자는 바로 이처럼 신자유주의를 배경으로 청소년과 아이돌 산업 사이에 형성된 연쇄 회로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많은 숫자의 인력이 모인 만큼 K팝 산업에는 치열한 경쟁 구도가 형성되었다. 아이돌 스타를 꿈꾸는 10대들은 기획사 오디션을 먼저 통과해야 하는데 이 오디션을 통과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아이돌 고시’라고 불린다. 아이돌 지망생이 아이돌 고시를 통과해 연습생이 될 확률은 대략 1% 미만으로 추정되며 이들이 다시 연습생 시절을 거쳐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할 수 있는 확률은 0.01%에 불과하다(이동연, 2010). 혹독한 경쟁을 뚫고 데뷔한다고 해도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 해에 적으면 50개, 많게는 100여 개의 그룹이 데뷔하는데 이중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는 팀은 극소수이고 ‘스타’가 될 확률은 매우 낮다. 대형기획사의 오디션을 통과하지 못한 아이돌 지망생들은 중소기획사에서 일정 기간 연습생 생활을 거친 후 다시 대형기획사의 오디션을 보거나 회사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중소기획사에서 데뷔하게 된다. 어느 곳에서도 데뷔하지 못한 연습생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 아이돌 연습생이 일반 직업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김수정·김수아, 2015). 연습생이 되고 난 후 그들의 노동을 더욱 고되게 만드는 것은 기획사들이 채택하는 ‘인-하우스 시스템(In-house system)’이다. 아이돌 연습생은 인-하우스 시스템을 통해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받는다. K팝 스타가 되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건은 ‘외모’이며 그 외의 요소는 기획사에서 주도하는 강도 높은 훈련과 연습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이 기획사들의 통념이다.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하기 위해서는 짧으면 2년, 길게는 10년가량의 연습생 생활을 거치는데 이는 춤과 노래뿐 아니라 외국어, 연기, 개인기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인 트레이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형수술과 다이어트 역시 아이돌이 되는 필수단계로 여겨진다. 이처럼 아이돌과 연습생의 노동 현실은 혹독한데, 2010년 한국 정부에서 실시한 한 조사 결과에서는 아이돌 연습생을 포함한 청소년 연예인이 하루 평균 8시간 이상 노동을 하고 그중 41%는 야간에 이루어지거나 주말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Kang, 2015).


또한, 아이돌과 연습생의 노동은 육체 중심의 노동에서 정신노동으로 확장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초기의 아이돌 제작 시스템은 전문가 중심의 트레이닝 위주로 구성되었었다. 기획사가 각 분야별 전문가를 초빙해 아이돌 제작에 필요한 모든 기획과 구성을 담당하도록 하고 연습생들은 전문가들의 지시와 훈련을 따르는 구조였다. 그러나 아이돌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배제되면서 창의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특히 과도하게 표준화된 시스템 속에서 탄생한 아이돌이 서구 시장에 진출하기에 무리가 있을 거라는 문제가 제기되자 아이돌에게 정신노동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구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방탄소년단의 경우 스스로 곡과 가사를 써 팬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도 아이돌에게 더 창의적인 정신노동을 요구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아이돌은 직접 노래를 만들고, 안무를 짜고, 무대 공연을 위해 기획력을 발휘하도록 요구되고 있다. 아이돌과 연습생은 선배 아이돌의 뮤직비디오와 무대 영상을 찾아보며 발성법과 안무 동작, 공연기법을 정보로 처리해 머릿속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한다. 그리고는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에서 데이터베이스에서 정보들을 추출한 뒤 재조합의 기술을 발휘해 결과물을 내놓는다. 이처럼 정보를 처리하고 생산하는데 투여되는 정신노동은 아이돌의 창의성을 성장시키는 데에 기여하지만, 그들의 노동 강도를 더 높이는 결과 역시 초래한다.


정리하면 K팝 산업은 스타가 되기를 희망하는 10대들을 흡수해 그들을 과열된 경쟁 속에 밀어 넣음으로써 급격한 성장을 거둘 수 있었다. 경쟁과 선택의 원리는 아이돌의 노동 효율성과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이었다. 극심한 경쟁 속에서 아이돌과 연습생은 육체와 정신을 모두 가용 자원으로 활용해 자신의 능력과 품질을 향상시켜왔다. 여기서 아이돌과 연습생이 감당해야 하는 강도 높은 노동은 K팝 산업의 화려한 외양 속에 가려진 어두운 그림자인 셈이다.


2. ‘노동자’인 동시에 ‘상품’이라는 이중적 위치


육체와 정신 모두 가용 자원으로 활용해 강도 높은 노동을 수행한다는 점이 아이돌과 연습생의 특수한 노동 속성의 전부는 아니다. 아이돌이 노동자이면서도 동시에 상품(commodity)이라는 이중적인 위치에 있다는 점을 먼저 인식해야 아이돌 노동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 아이돌 가수는 그 자체로 서비스 상품이다, 오락 서비스 상품. 따라서 아이돌은 제조업 분야에 투여되는 육체노동이나 정보 서비스 산업에 투여되는 정신노동과는 다른 양식의 노동을 수행한다. 상품으로서의 아이돌은 감정노동이라는 새로운 양식의 노동을 수행한다. 감정노동이란 ‘임금을 받기 위해 외부로 드러나는 얼굴 및 신체적 표현을 만들고자 감정을 관리’하는 행위를 말한다(Hochschild, 1983/2009). 다시 말해 감정노동은 자신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관련된 ‘표현규칙들’을 익혀서 이 규칙들을 얼굴이나 신체를 통해 실행시키는 행위이다. 상품으로서의 아이돌에게 자신의 감정은 늘 관리와 조율의 대상이다. 아이돌이 무대를 선보일 때 그들의 감정 관리 능력은 두드러진다. 고된 연습을 통해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더라도 아이돌은 빠른 비트의 댄스곡을 공연하는 무대에 오르게 되면 즐겁고 신나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또 얌전하고 소극적인 성격을 지녔더라도 ‘센 언니’ 혹은 ‘상남자’ 컨셉의 곡을 공연하게 되면 감정노동을 통해 강렬한 눈빛과 자신감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섹시한 표정을 짓거나 윙크를 하며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날리는 경우도 아이돌이 느끼는 본연의 감정과 상관없다면 감정노동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상품으로서의 아이돌은 끊임없이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고 조율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창출한다. 각각의 아이돌 그룹은 특정 이미지가 기획사로부터 부여된다. 해당 그룹에 속한 개별 멤버는 그룹 전체의 이미지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역할과 컨셉을 부여받고 그에 맞추어 감정을 연기한다.


아이돌의 감정노동이 무대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인-하우스 시스템은 트레이닝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아이돌의 대외적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회장에 의해 도입되었는데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수만은 1992년 큰 비용을 투자해 힙합 가수 현진영을 데뷔시켰는데 그가 데뷔 직후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이수만에게 엄청난 손실을 입혔다. 이 일로 이수만은 소속연예인 사생활 관리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곧 인-하우스 시스템을 정착시켰다(Seabrook, 2012). 인-하우스 시스템 혹은 토탈 매니지먼트 시스템은 아이돌과 연습생들에게 술과 담배, 개인 휴대폰, 연애 등을 모두 금지하고 사생활의 모든 측면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다. 또한, 기획사는 아이돌과 연습생에게 선배 가수나 방송국 및 소속사 직원들에게 항상 90도로 인사하도록 하는 등의 인사예절을 강조하고 매너와 겸손한 마음을 가르치면서 ‘인성’교육을 인-하우스 시스템에 포함시키고 있다(김수정·김수아, 2015). 인사예절과 매너, 겸손한 마음을 훈련해 내재화함으로써 팬들과 마주한 어떤 상황에서도 내면화된 겸손함이 자동으로 배어 나올 수 있게 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기획사는 연습생이나 소속 가수가 분쟁을 일으키거나 회사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이면 팀에서 탈퇴시키거나 심할 경우 계약 해지함으로써 기획사와 연습생(소속 가수) 간 수직적 구조를 공고히 한다(박성모, 2015). 인성교육이 연습생이 느끼는 불합리함과 10대로서 느낄 수 있는 불안감, 반항심을 잠재우기 위한 용도로도 활용되는 것이다.


아이돌의 감정노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더욱 두드러진다(원용진·김지만, 2012). 오디션 쇼에서 보여지는 아이돌의 감정노동은 ‘목소리(voice)’의 가치를 주장했던 쿨드리(Couldry, 2010)의 논의와도 맥이 닿는다. 쿨드리는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가치가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리얼리티 쇼에 출연하는 유명인은 감정노동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억제하고 지배적인 사회 가치를 재생산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풍경을 확대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유명인은 늘 전문가적 능력과 합리성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기업이나 정부가 개인에게 기대하는 가치를 충실히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 감정표현에서 늘 진솔함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감정노동을 노동(방송)시간 이후에도 지속하며 이를 통해 지배적인 사회 가치가 그들의 삶과 일상 속에 녹아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인데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돌과 연습생은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분노와 저항을 절대 표출하지 않는다. 그들은 늘 선택과 배제의 논리에 순응하고 경쟁에서 탈락하는 시점에도 제작진에게 “잊을 수 없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하며 감사함을 전한다. 자신의 실패가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긍정적이고 인내력 있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최근 리얼리티 쇼와 소셜미디어가 아이돌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되고 사생팬들이 등장하면서 아이돌의 감정노동은 그야말로 ‘365일 24시간 연중무휴’체제가 되었다. 카메라는 아이돌의 사생활을 상품으로 바꾸어 놓는 기제이자 그들의 감정노동을 감시하는 권력이다. 지금은 해체된 걸그룹 2NE1의 산다라박이 과거 두 편의 리얼리티 쇼에 출연해 거의 다른 사람인 듯한 모습을 보인 바 있는데 이는 리얼리티 쇼에 등장하는 아이돌의 이미지가 감정노동의 결과로 구성된 것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김보년, 2010). 자신의 일상을 카메라 앞에 전시해야 하는 아이돌은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고 조율하며 늘 즐거운 표정을 짓고 주변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는 모습을 연출한다. 한편, 한국 사회의 젠더 체계는 아이돌의 감정노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데 가령 남자 그룹에게는 비교적 자유로운 감정표현이 허락되지만 걸그룹에게는 여성의 수동성을 담보로 한 고도로 절제된 감정표현만이 허락되며 팬을 거스르는 표현은 시도조차 할 수 없는 행위로 간주된다(김수아, 2017).


아이돌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감정노동은 그들의 개성을 몰살시키고 대체 가능한 존재로 그들을 바꾼다. 아이돌은 부속품 같은 존재가 되며 이 과정에서 노동자로서의 아이돌은 ‘소외(alienation)’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Kang, 2015; 박성모, 2015). 정치경제학 내에서 발전된 ‘소외’ 개념은 생산된 상품이 노동자를 배신하고 그와 거리를 두며 노동자에게 모욕감과 상처를 입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도한 감정노동으로 소외를 경험하는 아이돌이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자신의 소속 그룹을 갑자기 탈퇴하는 사건 역시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극심한 경쟁을 이겨내야 하는 아이돌이 리얼리티 쇼와 소셜미디어 활용을 자제하고 감정노동을 멈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돌 산업 내에서는 ‘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해당 문제를 관리 가능한 부분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지만,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어떻게 K팝 산업 내부에서 과열된 경쟁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사생팬의 활동을 법적으로 제한할 방안은 무엇인가?’, ‘아이돌과 연습생을 대상으로 어느 정도의 휴가가 정당한가?’, 이런 질문들이 대책 마련의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3. 감정노동이 가진 또 다른 함정


여기에서 아이돌의 감정노동은 더욱 면밀히 관찰될 필요가 있다. ‘감정’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에 속한 것으로 경제적 영역과는 거리를 둔 것으로 여겨져 왔다. 바로 이처럼 인간적 영역에 속한 ‘감정’이 서비스 산업 분야에서 노동의 자원으로 활용되고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며 도구화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감정노동’이라는 새로운 양식의 노동은 인간적 영역이 자본의 논리에 잠식되고 이 과정에서 소외를 경험할 가능성을 증대시킨다. 앞부분에서 아이돌의 감정노동을 ‘착취’와 ‘소외’에 연관 지어 논의한 이유도 노동자의 감정이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고 도구화되면서 노동자 자신을 배반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노동’을 착취와 소외의 개념에 제한적으로 연결해 분석하는 것은 서비스 산업 중심으로의 경제 구조 개편과 더불어 발생하는 인간 경험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그렇다면 감정노동과 관련해서는 어떤 논의가 더 필요할까. 감정노동은 노동자의 감정을 자원으로 삼는 동시에 ‘감정’ 창출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이돌과 연습생은 육체와 정신, 감정을 모두 노동의 자원으로 이용하지만, 노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감정’ 생산에 있다. 아이돌이 노동자이면서도 상품이라는 점은 그들의 노동이 감정 생산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팬과 대중에게 위로와 흥분, 열정, 편안함과 만족감, 소속감 등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이돌 노동의 목적인 것이다. 가령 아이돌들은 무대가 끝나고 나면 팬과 대중을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함으로써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려 한다. 깊이 숙인 고개는 감사한 마음과 겸손함을 표시하는데 겸손은 아이돌과 연습생들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이다. 아이돌과 연습생은 늘 겸손한 모습을 보이되 위축된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 겸손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이돌과 연습생에게는 정교한 형태의 감정노동이 요구된다. 이처럼 아이돌과 연습생에게 고난도의 감정 관리기술이 요구되는 것은 팬과 대중에게 긍정적 감정을 불러일으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돌은 감정노동을 능숙하게 수행하면서 동료들과 가까운 관계를 맺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시청자들에게 특정 감정을 유발하기 위함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늘 예의를 갖추고 미소를 띠어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실수를 감싸며 자기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이돌이 이처럼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이미 그들 사이에 동료 의식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이돌 세계에서 동료는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무대에 함께 오르며 합숙 생활을 통해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람이므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분명 아이돌에게 여러모로 유리한 도구적인 속성도 포함된 일이다. 아이돌의 일상은 모두 카메라를 통해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소셜미디어 콘텐츠 형태로 시청자와 팬에게 전달되어 특정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김수아, 2011). 아이돌 가수를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과도한 경쟁심을 드러내는 참가자는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참가자 대부분은 경쟁자들과 협조적 관계를 유지한다. 이 또한 대중에게 긍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대표적인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 2 참가자들

*출처: 미디어오늘(2018.5.30). '아이돌 노동으로 본 새로운 인간관계'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점은 감정노동을 통해 생성되는 ‘감정’이 인적 교류를 활성화하고 사회적 관계를 확대시키는 원천이라는 점이다. 인간의 고유한 영역에 속하는 ‘감정’은 인간관계를 촉발하고 공동체적 삶을 구성하고 인적 교류를 활성화하는 요소이다. 아이돌이 수행하는 감정노동이 팬과 대중에게 감정을 생성하고 있다면 이는 그들 사이에 인적 교류와 관계가 촉발되고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아이돌의 감정노동은 인간적 영역에 속한 감정을 자원으로 이용해 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감정을 생성하고 인적 교류를 촉발한다. 인간관계가 경제적·도구적 행위로서의 감정노동 때문에 촉발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감정노동이 지닌 또 다른 함정인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적 행위와 경제적·도구적 행위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서로 뒤섞이며 새로운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그동안 인간적 관계와 공동체 형성 등의 요소는 반자본주의적 프로젝트의 핵심 원리로서 자본으로부터의 착취와 억압을 끊어내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실현시킬 수 있는 요소로 이해되어왔지만 이제 역설적으로 감정노동에 의해 그것들이 촉발되고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다.


서비스 산업에서 인간적 행위와 도구적 행위가 뒤섞이고 있는 현상을 두고 국내외 학자들은 인간적 행위가 도구적인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비스 산업의 확대와 더불어 인간관계가 자본에 의해 포섭당하고 있다고 분석하며 비관적 견해를 견지해왔다. 박성모(2015)의 경우 자본주의 논리가 인간관계로 침투해 해당 관계를 도구적인 것으로 만들면 노동자는 관계로부터 소외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크룩 등(Crook et all, 1992, 61)은 상품의 형식이 사람의 모든 영역으로 퍼져나가며 상품화된 영역과 상품화되지 않은 영역의 구분이 사라지는 현상을 ‘과도한 상품화’라고 개념화하고 이런 현상을 인간적 의미 상실의 징후로 분석했다. 딘(Dean, 2009)과 마라찌(Marazzi, 2011) 역시 인간적 행위가 도구적 수준으로 추락하면서 인간이 평등이나 연대 등과 같은 공동체적 비전을 발전시킬 수 없게 되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공동체와 연대, 호혜 등 인간적 측면이 경제적·도구적 영역으로 포섭되고 있는 가운데 착취와 소외의 문제를 해결하고 민주주의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단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 감정노동으로 인해 촉발되는 인간관계가 전적으로 도구적이며 인간적 측면을 갖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트와 네그리(Hardt, 1997; Hardt & Negri, 2004)는 서비스 산업 중심으로의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해 성찰하면서 자본주의가 모든 인간성과 인간관계를 지배할 수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서비스 산업 중심 국면에서 시장의 논리가 인간적 영역을 잠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인간적 영역을 전면적으로 지배하고 잠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노동이라는 새롭게 출현한 노동 양식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일은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경제적 활동을 축소시키고 ‘인간적이기만 한’ 활동을 확대하는 일을 쉽게 이룰 수 있다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감정노동의 두 번째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활동 속에서 인간적 측면을 발견하고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일 수 있겠다. 물론 아이돌 산업에서도 말이다.



참고자료
김보년 (2010). 「당신의 아이돌은 안녕하십니까 : 리얼리티 프로그램 속 아이돌의 감정노동」.『문화과학』제64권. 265-277쪽.
김수아 (2013). 「K-POP과 신한류에 대한 텔레비전 담론 :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글로벌 성공 이야기 구조를 중심으로」.『언론정보연구』 제50권 1호. 45-83쪽.
______ (2017).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 아이돌 그룹의 ‘공정한’ 선발을 위한 모험」.『문화과학』 92권. 285-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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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방희경 서강대학교 언론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출처 : 한류NOW 2019년 3+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