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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개발자는 왜 21세기 소작농이 되었나

  • [등록일]2019-05-31
  • [조회] 170

게임 개발자는 왜 21세기 소작농이 되었나




2016년, 구로디지털단지에서 한 청년 노동자가 사망했다. 게임 개발사 직원이었다.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어느 누가 4차 산업혁명 유망 산업이자, 전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 게임산업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거라 생각이나 했을까. 이를 계기로 드러난 한국 게임산업의 병폐는 심각하다. 작품 유통사인 퍼블리셔가 수익 대부분을 점유하고 정작 콘텐츠를 제작한 개발사는 자본 잠식에 시달린다. 콘텐츠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나 다름없는 ‘창발성’도 죽은 지 오래다. 국내 소비자 대부분이 ‘양산형 게임’의 창궐에 문제를 제기하지만, 과반 이상의 개발사가 퍼블리셔의 입맛에 맞춘 작품을 내놓는다. 젊음과 도전의 대명사였던 한국 게임산업이 각종 부조리로 얼룩진 원인을 짚어보고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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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출처: 국민일보(2018.9.15.) 논란과 규제에도… 한국 게임산업은 여전히 효자노릇


1. ‘수출 효자’의 그늘


게임의 대중적 정의는 미묘하다. 한류를 구성하는 몇 가지 문화 콘텐츠 가운데 유독 예술적 가치보다는 경제적 가치가 앞선다. 그도 그럴 것이 게임은 늘 경제적 가치로 먼저 치환되어 왔다. 게임산업의 병폐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일어날 기미가 보이면 한류 콘텐츠 중 ‘수출 규모’가 가장 크다는 사실이 늘 방어 논리로 등장한다. 최근 뭇 사람들 사이에서 적잖은 인기를 누리는 게임 <배틀그라운드>는 전 세계 판매량과 e스포츠 리그 상금 규모로 대서특필됐다. 작품 자체의 창발성이나 완성도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한류의 주역으로 꼽히는 여타 문화 콘텐츠와 나란히 세웠을 때 게임산업의 성장세는 돋보인다. 실제로 한류로 묶이는 콘텐츠 총 전체 수출액의 62%가 게임에서 나온다. 국내를 넘어 해외 이용자까지 사로잡은 <배틀그라운드> 개발사의 모회사인 크래프톤(구 블루홀)은 지난해 계열사를 포함한 전사 임직원에게 평균 1,000만 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지급했다. 심지어 회사 내 프로젝트팀에 불과했던 개발팀은 ‘펍지주식회사’라는 개별 회사로 독립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례들은 대중으로 하여금 게임이 ‘돈이 되는 산업’이라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거기에 넥슨과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의 유력 게임사가 연간 조 단위의 매출을 올리고 ‘업계 최고’ 수준의 복지를 각종 매스컴에 홍보해 그러한 인식은 더욱 견고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종사자의 삶은 그렇지 않다. 세상 모든 일에 명과 암이 있다지만 게임산업은 그 대비가 더욱 극명하다. 특정 게임이 월 백억 단위의 매출을 가뿐히 기록할 때 업계 종사자 대부분은 포괄임금제와 초과 근무, 비합리적인 수익 분배에 시달리고 있다. ‘한류 효자’, ‘인기 수출 품목’이라는 수식에 가려 포착되지 않았던 현실은 지난 2016년 넷마블 노동자 과로사를 계기로 드러났다. 대체 게임산업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걸까.


2. 유통이 권력이다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게임이 나온다. 모바일 트렌드 분석 전문 업체 ‘모바일 인덱스’에 따르면 2017년 상반기에만 7,548개의 게임이 출시됐다. 한 해에 15,000개 이상의 작품이 나오는 셈이다. 2018년부터 출시 타이틀이 다소 줄었다고는 하나, 소비자 스스로 원하는 작품을 찾기 어려운 환경이다. 특히 국내의 경우 구글 플레이, 애플 앱스토어, 원스토어와 같은 오픈마켓 매출 10위권 내 게임에 수익이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수요 대비 공급이 넘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고객에게 한 번이라도 더 존재를 각인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마케팅의 중요도가 커졌고 이를 전문으로 하는 유통사, 즉 퍼블리싱 전문 업체에 권력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모바일게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대중을 상대로 한 물량 마케팅이 왕도가 됐다. 작품의 완성도보다 노출이 중요해진 시점부터 국내 게임 개발사 대부분은 제작 주도권을 잃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넷마블의 지배 구조다. <몬스터 길들이기>와 <세븐나이츠>, <리니지 2 레볼루션>을 연이어 흥행시키며 국내 대표 모바일 퍼블리셔로 성장한 넷마블은 수십 개의 제작 스튜디오를 거느리고 있다. 사업은 넷마블이 필요로 하는 게임을 스튜디오에 내려보내고, 게임이 완성되면 마케팅과 홍보는 넷마블이 담당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들 스튜디오는 내부 제작팀이 아닌 별개의 회사라는 점이다. 표면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는 갑과 을의 계약이지만, 넷마블은 단순히 제품을 유통하는 퍼블리셔의 역할을 넘어 제작 과정의 관리 감독과 성과급 지급까지 관여한다. 실제로 앞서 언급된 대표 타이틀 중 성과급이 지급된 작품은 <리니지 2 레볼루션>이 유일하다.


넷마블은 어떻게 공급 계약상의 갑 수준을 넘어선 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스튜디오 지분 상당수를 사들여 자회사로 만들어서다. 그리고 마케팅 비용을 인질로 개발사를 압박한다. 이를테면 최종 결과물의 완성도가 퍼블리셔 ‘내부 기준’에 부합하지 못할 경우 마케팅 비용을 배정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거는 식이다. 넷마블의 권력은 한 회사의 명운을 좌지우지할 만큼 강력하다. 지난 2015년 넷마블은 ‘개발사의 경쟁력을 제고’한다는 이유로 일정 기간이 지나고도 성과를 내지 못했던 세 회사를 합병시켰다. 그 회사가 <리니지 2 레볼루션>을 만든 넷마블네오다. 뿐만 아니라 자회사 간 인력 전환배치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같은 지배력을 바탕으로 넷마블은 눈부신 사업적 성과를 거뒀고, 국내의 많은 퍼블리셔가 유사한 구조를 도입하는 계기가 됐다. 본래 퍼블리셔는 개발사의 도우미를 자처했다. 마케팅과 홍보, 서비스 관련 기술 지원 등 유통에 관계된 업무를 대행해 게임 제작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수익 일부를 나누는 구조였다. 게임 개발사가 몇 없었던 산업 태동기에는 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퍼블리셔는 막대한 마케팅 비용과 유통 노하우를 무기로 지주가 되었고, 유통 경험이 없는 개발사는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100억 단위의 마케팅 비용을 조달할 방법도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발사는 대형 퍼블리셔의 ‘간택’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3. 소작농에게 ‘워라밸’은 없다


게임산업은 스타트업 성공 신화가 여전히 존재하는 업계다.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자본금 없이 사업을 시작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음에도, 자본금 1억 미만으로 설립되는 신생 개발사가 적지 않다. 게다가 이런 소규모 개발사가 게임 하나로 소위 ‘대박’이 났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단, 대형 퍼블리셔 없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는 사례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래서 대형 퍼블리셔의 ‘간택’을 받은 개발사 대표는 초조해진다. 게임을 출시하려면 퍼블리셔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퍼블리셔의 요구를 거부하면 계약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대부분의 개발사 대표가 계약 해지보다는 직원을 압박하는 방법을 택한다. 실제로 유력 퍼블리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개발 일정을 주고 납기일 준수를 요구한다.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음에도 출시일을 대중에 공개하고 일정을 맞추라 강요하기도 한다. 퍼블리셔가 정점에 있는 먹이사슬 피라미드에서 가장 ‘아랫것’인 개발자에게 문제 제기는 꿈과 같은 일이다. 특히, 국내 게임 시장은 24시간 서비스 형태로 운영되는 게임이 대부분이어서 콘텐츠 업데이트가 잦다. 다시 말해 출시 후에도 단순 유지보수 이상의 제작 업무를 이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교대 근무 시스템이 없다. 주 52시간 초과는 예삿일이고 주말 출근도 밥 먹듯 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은 이유다. 구로구근로자복지센터에서 발간한 『 게임산업 노동자, 노동환경과 건강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게임업계 종사자 중 남성은 36.2%, 여성은 32%가 주 52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주목할 점은 크런치 모드가 아닌 상태에서도 주 52시간 이상 일했다는 사실이다. 크런치 모드는 게임산업 전반에 만연한 근무 형태로, 출시 또는 업데이트를 앞두고 집중적으로 결과물을 생산하는 기간을 일컫는 은어다. 단 여기서 ‘집중’은 콘텐츠의 깊이나 질이 아닌 ‘양’을 뜻한다. 투입되는 인력은 같지만, 물리적으로 많은 양의 콘텐츠를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근무 시간이 길어진다. 크런치 모드의 ‘크런치’는 개발자를 ‘갈아 넣는다’는 의미인 셈이다. 실제로 크런치 모드일 때 하루 근무 시간이 13시간 이상이라는 증언이 많았다. 즉 평일 65시간 이상을 근무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초과 근무에 대한 수당이 적법하게 지급된다면 문제가 없다. <검은사막>의 개발사 ‘펄어비스’는 살인적인 업무 강도로 유명하지만, 초과 근무 시간에 해당하는 수당을 지급한다. 그나마 ‘펄어비스’는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퍼블리셔와 계약했고 자체적으로 서비스하는 게임이 성공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보통은 게임이 성공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전체 매출 중 오픈마켓이 수수료 30%를 가져가고, 나머지 수익에서 퍼블리셔가 60%를 가져가고 개발사가 40%를 받는다. 개발사가 자본에 허덕이는 현실은 그대로다. 퍼블리셔에 종속된 개발사가 직원에게 제대로 된 수당을 지급할까? 답은 ‘아니오’다. 현 정부가 포괄임금제를 폐지할 의사를 내비쳤을 때 유력 게임사들은 한국 게임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장시간 노동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이를 수행하지 않으면 회사가 문을 닫으리라는 불안이 만연한 산업. 이런 환경 속에서 개발자가 ‘워라밸’을 추구할 수 있을까?


4. 성공하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다행히 최근에는 성장보다 일과 삶의 균형이 우선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를 계기로 게임업계 종사자들도 콘텐츠 노동의 가치를 찾고, 퍼블리셔와 개발사 간의 종속 관계를 완화하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다. 유력 게임사에 노동조합이 생겼고, 자체 서비스에 도전하는 개발사도 존재한다. <헌드레드 소울>의 개발사 ‘하운드13’은 당초 ‘라인게임즈’와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했지만, 계약을 해지하고 자체 출시했다. 최근 상장한 게임사인 ‘베스파’ 역시 일본 자체 서비스로 성과를 거둔 개발사다. 당연히 이런 사례는 드물다. 성공한 자만이 살아남는 흥행산업의 약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격차를 해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콘텐츠 노동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 일반적인 제조업과는 다른 기준으로 노동 생산성을 측정해야 하고, 이를 기반으로 적합한 근무 시스템을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개발자는 물론 기업에도 필요한 작업이다. 넥슨과 엔씨소프트, 넷마블, 스마일게이트가 2019년 3분기부터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한 까닭이다. 주 52시간 초과 근무는 기록하지 않거나, 근무하지 않고도 업무 시간으로 등록하는 등의 ‘꼼수’ 적용을 방지하려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거쳐야만 무리한 제작 일정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게임산업의 부조리는 공포에서 비롯된다. 오랜 시간 개발한 게임이 망할 수 있다는 공포,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다는 공포. 공급이 수요를 넘어선 순간부터 개발자는 공포를 떨치지 못했고, 퍼블리셔는 이 공포를 먹이 삼아 비대하게 커왔다. 지난 2016년 ‘구로의 등대(넷마블)’에서 과로로 숨을 거둔 <길드 오브 아너>의 개발자도 그런 공포에 시달렸을 것이다. 더는 기회가 없으리라는두려움을 타파해야 불공정 하도급 문제와 포괄임금제, 크런치 모드 등으로 얼룩진 게임산업이 재미와 창발성을 좇을 수 있지 않을까.


참고자료

구로구근로자복지센터 (2017).「게임산업 노동자 노동환경과 건강 실태 조사」.『게임산업 노동자, 노동환경과 건강 연구 보고서』


ㅣ허새롬 PNN 기자

     (출처 : 한류NOW 2019년 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