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전체 검색영역
  • Facebook
  • Twitter
  • Youtube

문화&이슈

문화산업 현장의 가장 뜨거운 소식을 전문가들이 진단합니다.

우리나라 문화계의 가장 최신 소식부터 흐름 진단까지 재밌고 알찬 정보를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전합니다.

‘미디어 허브’ 싱가포르: 동남아 한류의 견인차

  • [등록일]2019-07-26
  • [조회] 317

‘미디어 허브’ 싱가포르: 동남아 한류의 견인차




2017년 11월에 발표된 문재인 대통령의 신남방정책은 뒤늦은 감이 있으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외교정책이다. 아세안은 해외시장 다변화를 위해, 그리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공조에 반드시 필요한 전략적 파트너이다. 동남아시아와의 관계 강화에 있어 ‘공공외교’가 많이 거론되고 있으며, 한류는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공공외교의 기반이자 핵심이다. 지난 20여 년간 동남아시아는 한류가 지속적으로 발전한 지역이다. 일본, 중국, 서구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으나, 동남아야말로 한류 발전의 견인차였다. 그중 싱가포르는 동남아의 경제·문화·외교의 중심지로서, 그리고 동서양 문화의 교차로로서 한류의 중요한 시장이다. 같은 중견국가로서 한국과 싱가포르는 한쪽은 콘텐츠 수출국으로서 그리고 다른 쪽은 콘텐츠 마켓으로서, 공공외교적 협력의 여지가 매우 크다. 본고를 통해 한국 문화콘텐츠가 싱가포르 내에서 어떤 방식으로 수용되는지, 싱가포르에서 전개되는 한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


*메인 이미지 출처: 싱가포르 정부 공식 홈페이지


1. 신남방정책


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은 아세안(ASEAN) 국가들과의 협력관계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4강에 준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사람(people), 평화(peace), 상생번영(prosperity)의 ‘3P’를 기조로 한 신남방정책을 통해 경제뿐 아닌 외교, 안보, 문화예술, 인적교류의 영역에서도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신남방정책을 대한민국 국가발전 전략의 핵심이라고 강조한 문 대통령은 “아세안은 우리의 미래”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전격적인 외교선언은 2016년 사드(THAAD) 사태 이후 벌어진 중국과의 관계 경색과 무관하지 않다. 학계와 전문가 그룹은 그동안 중국에 경도되었던 대외시장 정책을 재고하고 해외시장을 다변화할 것을 정부에 조언해왔다. 이는 또한 아세안과의 공조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보다 다각적으로 모색하겠다는 정부의 포석이기도 하다. 아세안 10개국은 모두 남북한과 수교 상태이며, 아세안이 주축이 된 ARF(ASEAN Regional Forum)는 북한이 참여하는 역내 유일의 다자안보 협의체이다. 실제로 작년과 올해에 걸쳐 두 차례 열렸던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싱가포르와 베트남이 선택되었다는 점은 동북아 다자협력에 있어서 아세안의 중요성을 웅변한다. 더욱이 최근 미·중 갈등이라는 불안한 대외경제 환경을 고려할 때 현 정부의 신남방정책은 시의적절할뿐더러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전체인구는 6억 4000만명에 달하며 30세에 불과한 평균연령을 특징으로 하는 젊고 역동적인 아세안은 매년 5%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 중이어서 생산기지이자 소비시장으로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온 지역이다. 여러 조사기관은 아세안의 경제 규모를 2030년 세계 4위, 2050년 세계 3위로 전망하고 있다.


2. 공공외교와 한류


동남아시아와의 관계 강화에 있어 ‘공공외교’가 많이 거론된다. 공공외교란 외국 국민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자국의 역사, 문화, 전통, 가치관 등에 대한 국제적 호감 및 공감대를 높임으로써 외교 관계를 증진시키는 활동과 전략을 가리킨다. 공공외교는 특히 강대국에 비해 하드파워와 전통적 개념의 소프트파워가 열악한 국가들에게 효과적인 외교술로 평가받는다.


아세안과의 공공외교와 관련해 한류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한류라는 단어는 드라마 <겨울연가>에 빠진 일본의 아줌마 팬, <별에서 온 그대> 인기에 따른 중국의 치맥 열풍, 그리고 최근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의 BTS 팬덤(A.R.M.Y.)을 떠올리게 하지만, 사실 동남아시아야말로 1990년대 후반 한류 발생 초기부터 한류가 지속적으로 성장해 온 지역이다. 일테면 일본과 중국에서의 한류가 역사 문제와 외교 문제로 인해 악화와 반등을 반복하며 전개되었던 것과 달리 동남아에서의 한류는 비교적 꾸준히 발전되어 왔다. 필자가 현지조사한 바, 2009-10년경에 원더걸스의 노래 ‘노바디(Nobody)’는 싱가포르, 쿠알라룸푸르, 마닐라 등 동남아 대도시의 쇼핑몰과 거리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당시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 하면 ‘노바디’야말로 필리핀의 ‘국민가요’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으며, 조금 황당한 사건이긴 하지만 ‘노바디’를 모른다는 이유로 마닐라 시내의 행인 간에 시비가 생겨 결국 살인사건으로 비화된 일까지 있을 정도였다. 트랜스젠더 무희들의 퍼포먼스로 유명한 방콕의 클럽에서 200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가장 많이 연주되고 또 관객과 어울려 일명 ‘떼창’으로 이어지는 음악은 K팝이다. 2012년 여름을 시작으로 해 전 세계적으로 전개됐던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 당시, 이 곡의 유튜브 조회 수가 가장 높았던 지역은 동남아였으며, 지난해 블랙핑크의 ‘뚜두뚜두(DDU-DU DDU-DU)’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K팝 뮤직비디오’ 1위에 등극했을 때, 그 시청 비중이 가장 높은 지역도 동남아였다. 짝퉁이라 비하되기도 하지만, 수많은 K팝 워너비 그룹이 활동하는 동남아에서 한류는 지역문화와 공존하며 아시아인들 사이에 공통의 감성을 형성하고 있다. 전세계 외국인들을 상대로 해 한국에 대한 호감도 조사를 실시하면 동남아에서 가장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된다. 자, 그렇다면 동남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이자 코스모폴리탄한 도시인 싱가포르에서 한류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이로부터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3. 싱가포르, 미디어 허브


싱가포르(Singapore, 말레이어로 ‘Singapura,’ 한문 표기는 新嘉坡)는 문화교류에 있어서 매우 흥미로운 국가이다. 서양과 동북아를 이어주는 말레이반도 남단에 위치한 도시 국가로서 1819년 영국 동인도회사의 개발과 함께 근대사를 시작한 싱가포르는 가히 문화와 문명, 인구와 자본의 교차로라 할 만하다. 초기 영국의 자본과 식민적 관료체계는 중간관리자와 하위 노동자로 인도인, 중국인, 말레이인 등을 대거 고용함으로써 다인종·다민족 사회의 토대를 갖추었다. 1965년 독립 이후에도 기업 친화적인 정부 정책과 시민들의 높은 영어구사 능력은 해외로부터의 투자 유인과 인재 유입의 최적 조건이 되어 싱가포르는 지역의 무역 중심이자 다문화적 국제도시로 그 명성을 떨치게 된다. 국가 내부적으로도 민족 간·인종 간 균형과 화합은 정부 정책의 근간이다. 정부는 종교와 민족에 따라 서로 다른 사회관습과 전통을 허용하고 있으며, 정규 교육과정과 행정 및 언론 체계를 통해 영어, 말레이어, 중국어, 인도 타밀어의 병용과 병기를 불가결의 조건으로 규정한다. 위와 같은 지리적·인종적·언어적 특색은 오늘날 동남아 한류 전파의 중심지로서 싱가포르가 기능하도록 이끌었다. 우선, 인구 중 높은 화교 구성(총인구의 76%)은 동남아 국가 중싱가포르에서 한류가 일찍 안착하는 데 기여했다.


주지하다시피 한류는 1990년대 후반에 중화권을 중심으로 해 발전했다. 중국어 자막이 입혀진 한국드라마는 중국 대륙과 대만, 홍콩을 거쳐 전 세계 화교 사회로 전파되었는데, 싱가포르 화교 사회의 한국드라마 수용은 싱가포르 내 기타 언어권으로 한류가 확산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또한, 싱가포르와 주변국 간의 관계를 주목해야 한다. 동남아 소비문화의 중심지인 싱가포르에서 인기를 얻은 한국 콘텐츠는 싱가포르와 인종적·언어적·지리적으로 상호 연결성을 지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싱가포르인들은 휴양과 쇼핑을 위해 주변 말레이시아 도시와 인도네시아령 빈탄섬 등에서 주말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싱가포르의 말레이계 민족은 말레이시아 미디어를 청취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말레이시아인들도 싱가포르 미디어에 쉽게 노출된다. 싱가포르에 단기 노동자로 취업한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미얀마인들은 싱가포르 유행을 자국으로 전파하는 연결고리이다. K팝 제작사들은 동남아에서 콘서트를 기획할 때 싱가포르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그 이유는 싱가포르인의 높은 구매력뿐 아니라 교통의 중심으로서 싱가포르가 갖는 접근성이 동남아 다른 지역의 팬덤을 유인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 2018년부터 연례행사로 개최되는 ‘한류팝페스트(HallyuPopFest)’는 동남아 최대 규모의 K팝 페스티벌이다. 10여 개 팀의 K팝 가수들이 3일간1 공연하며, 이 기간 중 팬들은 스타와의 하이파이브 세션과 포토세션을 가질 수 있으며, 아이돌 워너비들을 위한 오디션 행사도 병행된다. 지난 5월 25-26일에 있었던 2019년 ‘한류팝페스트’에는 슈퍼주니어, 효린, 위너, 오마이걸, 몬스타엑스 등이 참가했다.


전통적으로 강한 분야인 마이스산업(MICE: Meetings, Incentives, Conferencing, Exhibitions)에 더해 1990년대 후반 이래 창조산업 발전을 국가과제로 설정한 싱가포르는 지적재산 보호법의 강력한 시행과 국제도시로서의 여러 장점을 무기로 하여 미디어산업 진흥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이에 호응한 루카스 필름 등 글로벌 미디어기업들이 싱가포르에 지사를 설치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정부와 함께 콘텐츠마켓을 개최하고 있다. 동남아의 미디어 허브를 지향하는 싱가포르에서 2000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아시아 티비 포럼 앤 마켓(Asia TV Forum & Market)’은 매년 50여 개국 6천여 명의 방송관계자들이 참가하는 아시아 최대의 콘텐츠 시장이다. 또한, 2014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싱가포르 미디어 페스티벌(Singapore Media Festival)’은 만화, 그래픽노벨, 비디오게임, 토이 등이 결합된 콘텐츠산업과 코스어2를 비롯한 소비자들 간의 연례행사이자 산업동향과 떠오르는 트렌드를 확인하는 핵심 이벤트로 자리 잡고 있다. ‘싱가포르 미디어 페스티벌’은 2018년부터 별도의 행사였던 ‘아시아 티비 포럼 앤 마켓’, 영화 견본시장인 ‘스크린 싱가포르(Screen Singapore)’, ‘싱가포르국제영화제(Singapor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아시안 아카데미 크리에이티브 어워드(Asian Academy Creative Awards)’ 등을 통합하여 운영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있다. 콘텐츠 유통의 혁신을 주도하는 넷플릭스는 지난 2016년에 한국시장에 진출했으나 서울에 정식 지사를 내지 않고 싱가포르에 소재한 아시아태평양 지사가 서울 사업을 지휘하고 있다.





4. 싱가포르의 한류, 그리고 한국


사실 한류 이전에 한국은 싱가포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였다. 일본에 버금가는 경제 강국이라는 자신감에 더해 한국보다 일찍 그리고 보다 폭넓게 서구화의 세례를 받아온 싱가포르인들은 파업과 대학가 시위, 북핵 문제만으로 국제뉴스에 노출되곤 했던 한국에 큰 관심이 없었다. 2001년경만 해도 싱가포르인들은 한국인을 만나면 북한에서 왔는지 남한에서 왔는지를 물었다. 해외여행을 해본 사람들은 공감하는 것인데 이 질문은 묘하게 한국인의 자존심을 긁는다. 아니,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노력해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었는데 우리를 겨우 북한과 비교한단 말인가! 하는 심리이다. 게다가 한국 기업들이 싱가포르의 주요 건설공사를 수주해왔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단순화시켰다. 당시에 싱가포르에 거주했던 필자는 싱가포르인들이 일본에 대해서는 귀여운 캐릭터와 맛난 음식, 깊은 문화적 전통을 연결 지어 상상하고 호감을 보였던 것과 달리 한국에 대해선 대체로 무관심하거나 단편적으로 사유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식이 바뀐 것은 <대장금>(2003-2004)의 인기부터였다. 싱가포르인들은 한국음식을 찾고 한국문화 전반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시내 어학원에서는 한국어 강좌를 개설했으며, 대학생들은 한국으로 교환학생 가기를 희망했다. 여러 조사를 일별해도 현재 싱가포르에서 한국의 이미지와 인식은 매우 우호적이다. 흥미롭게도 한류는 싱가포르 내 사회통합에 기여하고 있다. 문화적 차이가 극명함에 따라 대중문화 소비를 달리했던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학생들은 K팝 수용이라는 공통 취향을 통해 소통하고 화합한다. 이와 관련해 보이밴드 빅뱅은 리셴룽 총리를 비롯해 대통령과 정재계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한 싱가포르 독립 50주년 기념 행사 ‘SG50’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가수로 출연, 공연했다. 2014년 12월 31일 저녁 9시부터 2015년 1월 1일 새벽 1시 30분까지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에서 개최되고 지상파《 채널5》를 통해 전국에 생방송된 이 행사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연예인들이 다수 출연해 축하 무대를 만들었는데, 빅뱅은 새해맞이 불꽃놀이가 끝난 후 무대에 올라 약 50분간 공연을 진행했다.


글로벌 미디어산업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볼 때 한류는 매우 흥미로운 성격을 지니고 있다. 지난 천 년 동안 문화수입국에 머물러있던 한국이 문화수출국으로 부상함으로써 강대국의 지배라는 국제 정보문화 질서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지점에서 볼 때 같은 중견 국가로서 한국과 싱가포르는, 한쪽은 콘텐츠 수출국으로서 그리고 다른 쪽은 콘텐츠 마켓으로서, 공공외교적협력의 여지가 매우 크다. 싱가포르가 한국과 직접적인 정치·경제적 경쟁을 하지 않는다는 점, 일본에서의 혐한류와 중국식의 콘텐츠 규제와 같은 부정적 요소가 싱가포르에 없다는 점 등이 싱가포르 한류의 안정적인 지속·발전에 긍정적 기여를 하고 있다. 더욱이, 싱가포르가 갖고 있는 동서양 문화의 교차로라는 특징은 한국 문화콘텐츠의 테스트 베드로서 싱가포르가 가진 중요성을더해간다. 싱가포르는 동남아 한류의 견인차이다


글ㅣ심두보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출처 : 한류NOW 2019년 7+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