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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강하면 그림자도 짙다, 곪아 터진 K팝의 3대 환부

  • [등록일]2019-12-06
  • [조회] 885

해가 강하면 그림자도 짙다,
곪아 터진 K팝의 3대 환부




K팝 시장이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거기에선 부지불식간 부정과 불신이 독버섯처럼 자란다. 해가 강할수록 그림자가 더 짙고, 각종 악재는 그 그림자 속으로 더 꽁꽁 숨어든다. K팝이 가장 뜨거운 시간을 보낸 2019년은 오히려 K팝의 3대 환부(患部)가 드러난 해이기도 하다. 일명 ‘버닝썬 게이트’는 YG엔터테인먼트(YG) 소속 가수들을 중심으로 한 가요계의 모럴 해저드를 백일하에 드러냈고, 음원차트 조작 논란은 음반에서 음원으로 재편된 가요 시장의 고질적 문제를 다시금 건드렸다. 또한, 케이블 채널 《Mnet》 <프로듀스X101>의 투표수 조작 파문은 2000년대 방송가와 가요계를 접수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민낯이 수면 위로 올라온 일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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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출처: 일간스포츠(2019.8.28). [종합IS] ‘또 경찰조사’ 승리, 버닝썬→원정도박, 9개월 타임라인


1. 들어가며


해가 중천(中天)에 떴을 때, 그림자는 가장 짧다. 하지만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점점 그림자가 길어진다. 그리고 그 그림자에 숨어 있던 속내가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유례없는 흥행을 누리고 있는 K팝 시장이 딱 이런 모양새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섭렵했던 K팝이 이제는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이 세계 3대 음악 시상식이라 불리는 ‘빌보드 뮤직 어워드(Billboard Music Awards)’,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erican Music Awards)’를 석권하고 블랙핑크, 몬스타엑스 등의 인기가 국경을 넘었을 때만 해도 K팝 그림자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2019년은 K-팝의 3대 환부(患部)가 드러낸 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일명 ‘버닝썬 게이트’는 YG엔터테인먼트(YG) 소속 가수들을 중심으로 한 가요계의 모럴 해저드를 백일하에 드러냈고, 음원차트 조작 논란은 음반에서 음원으로 재편된 음악산업의 고질적 문제를 다시금 건드렸다. 또한, 케이블 채널 ≪Mnet≫ <프로듀스X101>의 투표수 조작 파문은 2000년대 방송가와 가요계를 접수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민낯이 수면 위로 올라온 일대 ‘사건’이었다.


2. 버닝썬 게이트, K팝이라는 이름의 복마전


버닝썬 게이트를 한마디로 정리하긴 어렵다. 워낙 방대하고 다양한 사건이 엮여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닝썬 게이트가 K팝의 위기를 수면 위로 끌어낸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말, 서울 강남에 위치한 클럽 버닝썬을 찾았던 20대 김모 씨는 보안 요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올해 1월, ≪MBC≫가 ‘맞은 사람이 오히려 가해자로 몰렸다’는 취지로 이 사건을 크게 보도한 후 대중의 관심이 증폭됐고 곧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가 버닝썬의 주요 주주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버닝썬에서 마약이 유통된다는 의혹과 함께 수사 선상에 오른 버닝썬의 관계자들에게서 마약 양성 반응이 나오며 이 사태는 일파만파 번졌다. 또한, 버닝썬 측이 해외 투자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승리가 투자자를 대상으로 성매매를 알선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리고 이런 정황이 담긴 ‘단톡방’(단체 대화방)이 존재했고, 이 단톡방에 가수 정준영, FT아일랜드의 최종훈 등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버닝썬 게이트는 승리의 소속사인 YG를 넘어 K팝 전반으로 확산됐다. 결국 정준영 등은 불법 동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유포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고, 이들과 친분이 있던 로이킴, 씨엔블루의 멤버 이종현 등이 소속사에서 퇴출당하거나 활동을 중단했다.



승리로 시작된 의혹은 YG의 수장인 양현석 대표 프로듀서로 향했고 양 대표는 원정 도박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이 와중에 YG에 투자했던 세계적 명품업체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그룹이600억 원대 투자금을 회수하는 등 ‘탈(脫) YG’ 흐름이 가속화됐다. 올해 1월 초 5만 원대였던 YG의 주가는 지난 9월 2만 원 선이 무너지며 1만9300원까지 하락했다. 그 사이 시가총액은 약 9,000억 원에서 4,000억 원대로 급락했다. 이후 주가가 반등하며 10월 중순 2만5000원대를 회복했지만, YG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버닝썬 게이트가 발단이 된 YG의 추락은 K팝 시장 전체 이미지를 훼손시켰다. 미국 ≪CNN≫, 영국 ≪BBC≫ 등 주요 외신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K팝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일련의 사건들은 K팝의 모럴 해저드를 화두로 던지기 충분했다. 이번 이슈가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K팝의 주체 중 적잖은 이들이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보통 20세 전후에 데뷔하는 아이돌 가수들은 대다수 10대 초중반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다. 각 연예기획사의 트레이닝 시스템 하에서 그들은 춤과 노래 연습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며 남들과는 다른 학창시절을 보낸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그들은 적절한 인성 교육을 받고 있는가?’ 스타는 작은 스캔들 하나로도 엄청난 이미지 타격을 받는다. 그래서 주요 연예기획사들은 연습생시절부터 그들의 주변을 관리한다. 스마트폰과 SNS 사용도 통제받고, 교우 관계 역시 소속사의 관리 대상이다. ‘나쁜 물’이 들지 않게 하려는 방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그들의 올바른 인성을 길러 줄 전인 교육이 뒷받침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아이돌 그룹 출신으로 지금은 배우로 활동 중인 A는 “연습생 생활을 떠올리면, 외모 관리 때문에 배불리 먹을 수 없어서 항상 배가 고프고 ‘과연 데뷔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에 떨었던 것 같다”며, “여기서 도태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악바리 같은 근성은 늘었지만, 주변을 살피고 스스로를 다스릴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고 토로했다. K팝 가수들의 도덕성 제고가 필요한 이유는 그들을 좇는 수용자의 대다수가 아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10대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상으로 삼는 아이돌들의 노래와 춤을 흉내 낼 뿐만 아니라 스타들의 말투와 생각도 자신에게 투영한다. 우상의 그릇된 행동조차 팬들에게는 모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방탄소년단이 보여주기식 춤과 노래가 아닌, 청춘의 아픔과 성장을 대변한 메시지로 전 세계 10~20대들의 공감을 사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 좋은 예다. 방탄소년단은 정규 2집 <WINGS>로 글로벌 음악 시장을 흔들기 시작한 2017년, ≪빌보드≫와 가진 인터뷰에서 “전 세계적으로 젊은 세대들은 사회, 정치적으로 비슷한 주제를 공유한다. 이러한 주제들은 굉장히 중요하고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한다. 그 누군가가 방탄소년단이 되고, 우리가 더 큰 목소리로 그 문제들에 관해 얘기할 수 있게 된다면 더욱 큰 힘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그들이 속한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 프로듀서 역시 “성장과 청춘이란 주제가 젊은이들의 공감을 이끌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최근에는 가요기획사들이 연습생들의 인성 교육을 강화하고 학교에서 또래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늘리는 등 고질적인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적절한 심리 상담도 병행한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을 갖춘 몇몇 유명 소속사를 제외하면 버닝썬 게이트 후에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K팝을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한국의 대표 문화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버닝썬 게이트를 계기로 드러난 환부를 완전히 도려내려는 자정 노력과 동시에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3. 음원차트 조작 의혹, 사재기는 존재하나?


요즘처럼 대한민국 대중에게 미국 빌보드차트가 가깝게 느껴진 때가 있었던가? 2012년 가수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이 빌보드 싱글차트 ‘핫 100’ 2위에 오르며 한국 가요계가 뜨겁게 달아오른 후 7년 만인 올해, BTS는 빌보드 앨범차트인 ‘빌보드 200’의 정상을 밟았다. 이후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인 샤이니, 엑소, NCT의 정예 멤버들로 구성된 슈퍼엠(SuperM)이 미국 공식 데뷔 열흘 만에 또다시 ‘빌보드 200’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 음악 시장을 들끓게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한국 가요계가 더욱 갈증을 느끼는 이유는 “왜 우리는 이런 공신력 있는 차트가 없나”라는 의문 때문이다.



지상파 3사가 절대적 권력을 갖던 시절, 방송국 가요 프로그램의 순위는 인기의 척도였다. 하지만 10, 20대 초반 팬들의 실시간 문자 투표와 음원 스트리밍, 방송 출연 점수 등이 차트에 반영되면서 방송사 가요 프로그램은 ‘아이돌의 놀이터’가 됐다. 두터운 팬덤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솔로 가수들은 아무리 탄탄한 가창력과 좋은 노래로 무장해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구조가 됐다. 결국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 트로피는 ‘그들만의 리그’의 전리품이 되었고, 대중적 인기의 상징보다는 각 소속사가 언론사에 배포하는 보도자료 속 수식어 정도로만 쓰이게 됐다. 그 사이 가요계는 음반 시장에서 음원 시장으로 재편됐고 유력 음원 사이트의 순위가 더욱 믿음직한 차트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음원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실시간 차트 역시 아이돌 팬덤의 먹잇감이 되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특정 그룹의 팬덤은 상대적으로 전체 음원 스트리밍 빈도수가 떨어지는 새벽 시간대, 좋아하는 아이돌의 노래를 동시다발적으로 플레이하며 순위를 끌어올렸다. 아침 출근길만 되면 아이돌 노래가 순위표 상단을 차지한 이유다. 각 음원 사이트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차트 프리징’을 실시했다. 새벽 1시부터 아침 7시 사이에는 실시간 차트를 운영하지 않는 것이다. 이후 특정 그룹의 노래 순위가 급등하는 행태는 크게 줄어들었다. 대신 그 자리는 요즘 발라드곡이 차지하고 있다. 빼어난 가창력을 갖췄지만 이름과 얼굴이 생소한 신인 발라드 가수들의 노래도 적지 않다. 막상 들어보면 “노래가 좋다”고 할 만한 곡도 꽤 있지만, 이토록 장시간 높은 순위를 유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이를 두고 “사재기의 결과물”이라는 쓴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과거 몇몇 아이돌 그룹이 다수의 음원사이트 아이디를 확보해 특정곡을 반복 스트리밍하는 사재기 행위로 급격히 순위를 끌어올린 후, “1위를 차지했다”는 식의 보도자료를 배포해 다시금 관심을 환기시키는 ‘반칙’을 행한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 사재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고 감시의 눈도 많아지면서 음원이나 앨범을 몰래 대량 구매하는 행태는 많이 사라졌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사재기 논란이 본격화된 시기는 지난해 중순 가수 숀과 닐로의 노래 ‘웨이 백 홈(Way Back Home)’과 ‘지나오다’가 장기간 음원 순위 1위를 차지했을 때다. 대중에게 낯선 이름인 이들이 유명 아이돌 가수들을 제치고 차트 상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며 “사재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업계 반응이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JYP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인 박진영은 자신의 SNS에 “(사재기 의혹에 대해)이미 유관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에 조사를 의뢰한 회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저희 또한 업계의 여러 회사와 이 문제에 대해 논의 후, 문화체육관광부, 공정거래위원회에 우선 조사를 의뢰하고 추가 결과에 따라 검찰에 고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1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음원 사재기 수사의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이쯤 되자 가요계 내부에서는 “사실상 일반적으로 의심되는 형태의 사재기는 없거나 아예 적발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사재기가 사실로 밝혀지면 단순한 구설을 넘어 가요계 퇴출까지 감수해야 할 분위기이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사재기를 통해 순위를 끌어올릴 엄두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인 발라드 가수들의 잇따른 차트 점령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몇몇 가요 관계자들은 “SNS를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바이럴 마케팅이 사재기로 오해받는다”고 입을 모은다.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이란 ‘입소문 마케팅’을 의미한다. “노래가 좋다”는 입소문을 내면서 더 많은 이들이 해당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유혹한다는 의미다. 가요계의 바이럴 마케팅은여러 SNS 중에서도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딩고 뮤직’을 비롯해 ‘일반인들의 소름 돋는 라이브’, ‘너만 들려주는 음악’ 등 아이돌 댄스 뮤직보다는 발라드와 같은 잔잔한 음악을 즐기는 팔로워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채널이 주로 바이럴 마케팅 창구로 활용된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이들의 마케팅 방식은 다양하다. 가수들이 신곡을 내면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해 컴백 무대를 펼치고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앨범을 홍보하던 건 구식이다. 각 가수의 콘셉트에 맞게 야외 버스킹을 하거나 따로 영상을 제작하기도 한다. 노래방 콘셉트나 음주 라이브 영상을 만들어 다양한 페이지에 게시해 불특정 다수가 이를 접하게 만든다. 단, 전제는 있다. 객관적으로 판단할 때 ‘노래가 좋아야’ 한다. 한 SNS 바이럴 마케팅 관계자는 “아무리 유명한 가수가 노래를 발표해도 곡이 대중적이지 않고 멜로디가 매력적이지 않으면 팬들 사이에서만 스트리밍되다가 순위가하락할 수밖에 없다. 반면 누가 들어도 괜찮은 노래는 신인이 불러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며 “요즘 대중은 미디어가 보여주는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주입받는 게 아니라 본인이 선호하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찾아가기 때문에 이런 대중의 기호를 노린 마케팅 수단일 뿐 불법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4. 취업 사기로 불린 <프로듀스X101>, 공정 경쟁의 실종


한동안 대한민국은 ‘오디션 공화국’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09년 7월 ≪Mnet≫ <슈퍼스타K>가 등장했고, 재능만 있으면 연예인이 될 수 있는 등용문이 전 국민에게 열렸다. “60초 후에 공개합니다”라는 방송인 김성주의 멘트가 시청자들을 애타게 만들었고 에어컨 수리공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슈퍼스타K 2> 우승자 허각의 스토리에 모두가 감동했다. 당시 수백만 명이 실시간 문자 투표에 참여한 것에 더해 역대 유료플랫폼 최고 시청률(18.1%, 닐슨코리아 기준)까지 기록하며 케이블 채널의 위상을 바꿔놓았다. <슈퍼스타K> 시리즈의 성공에 발맞춰 ≪MBC≫ <위대한 탄생>, ≪SBS≫ <K팝 스타> 등 지상파도 유사 프로그램을 런칭했고, 래퍼 오디션 ≪Mnet≫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 10대들의 랩 대결을 그린 <고등래퍼> 등이 연이어 성공했다.  오디션 열풍이 한풀 꺾일 무렵 ≪Mnet≫ <프로듀스 101>이 등장했다. 아이돌을 꿈꾸는 연습생이나 이미 데뷔했으나 흥행에 실패한 아이돌 가수들이 참여한 만큼 무대 퍼포먼스와 출연진의 외적인 매력 등이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대중 역시 열광했고 이 시리즈를 통해 발굴된 그룹 아이오아이, 워너원, 아이즈원 모두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모든 게 완벽해 보였던 찰나, 문제가 터졌다. 올해 방송된 네 번째 시즌 <프로듀스X101>의 진행 과정에서 순위 조작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데뷔조에 들 것으로 보였던 유력연습생들이 마지막 경연에서 탈락했고, 1-20위 최종 득표수에서 ‘7494.442’의 배수라는 특정 패턴이 반복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의도적인 순위 조작 없이 이런 결과가 나올 확률은 로또 복권 1등에 당첨할 확률보다 낮다는 전문가의 분석도 나온 상황이다. 뿔이 난 시청자들은 자체적으로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렸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변호사까지 선임한 후, 제작진을 사기 및 위계에의한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 고발했다. 결국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이 과정에서 지난 7월과 8월 CJ ENM과 데이터 보관업체 등을 대상으로 압수수색까지 진행했다. 또한 <프로듀스X101> 데뷔조 일부 멤버의 소속사까지 압수수색했다. 일부 매체는 “수사 과정에서 최종 순위가 인위적으로 바뀌어 일부 불합격자가 합격자로 둔갑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프로듀스X101>의 이전 시리즈뿐만 아니라 또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인 <아이돌학교> 진행 과정에도 불공정한 조작이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특히 <아이돌학교>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으나 결국 고배를 마신 출연자 이해인의 아버지는 10월 초 이해인의 ‘DC 인사이드 공식 갤러리’를 통해 “만약 (투표를) 조작한 것이 증거로 드러나면 두 번이나 딸을 희롱한 것이고 도저히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행동인 것 같아 너무 억울해서 글을 올린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번 논란은 아이돌 가수가 되겠다는 10대 청소년들과 20대 초반 청년들의 꿈을 담보 삼았기에 더욱 크게 지탄받고 있다. 이들에게는 유력 연예기획사의 연습생이 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고, 설사 연습생이 된다고 하더라도 정식 데뷔를 보장받을 수는 없다. 그런 이들에게 ‘실력만 있으면 데뷔할 수 있다’는 모토로 시작된 오디션 프로그램은 꿈의 무대이자 공정한 경쟁의 터전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속에도 불공정 담합이 있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출연자를 비롯해 그들의 꿈을 지지하며 유료 문자 투표에 참여한 시청자들도 박탈감과 허탈감을느낄 수 밖에 없다.


이는 결국 K팝 아이돌을 양성하는 제작시스템의 모순과 맞닥뜨린다. 실상은 힘이 있는 소속사에 몸담은 이들에게 더 많은 데뷔의 기회가 돌아가고, 방송사와 유력 기획사들의 짬짬이를 통해 당락이 뒤바뀔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긴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아직 수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프로그램 진행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시청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프로그램 안에서도 불공정한 경쟁이 자행된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실력이 아닌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누군가의 꿈이 송두리째 짓밟힐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K팝 제작시스템 전체가 부덕한 것으로 매도될 수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또한, 방송 과정을 통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낱낱이 공개되는 연습생들의 감정 노동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확산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정식 데뷔할 수 있을지언정 매스미디어 뿐만 아니라 SNS 등을 통해 항시 그들의 이야기가 안줏거리가 되고 언제든 대중의 손가락 놀림 몇 번으로 인해 평가의 도마 위에 오르는 출연자들의 삶은 질은 결코 높을 수 없다. 이런 감정 노동을 감수할 수 있는 원동력은 가수가 되겠다는 그들의 열망이다. 그렇기에 그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불공정한 행태는 더욱 대중의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만든다. <프로듀스X101>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청소년 오디션 프로그램 투표 조작은 명백한 취업 사기이자 채용 비리”라며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을 위해 문자 보낸 팬들을 기만하고 큰 상처를 준 것이다. 청소년들에게도 민주주의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준다”는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의 지적을 찬찬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글ㅣ안진용 문화일보 기자

     (출처 : 한류NOW 2019년 1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