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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K팝을 뛰어넘다

  • [등록일]2020-11-27
  • [조회] 354

BTS, K팝을 뛰어넘다




BTS 현상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최첨단 문화 현상을 이끌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 글은 BTS 현상의 본질에 대한 분석을 통해 BTS가 새롭게 만들고 있는 K팝의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논한다. 먼저 히트곡 ‘Dynamite’의 빌보드 1위가 가지는 음악사적인 의의를 살펴본다. 또한 BTS의 예외적인 성공이 K팝의 성공과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지, 그리고 21세기 한류 시대의 K팝 붐과는 어떤 음악적, 문화적 차별점을 가지고 있는지 미국 사회에서 아시안 아티스트가 갖는 위상에 대한 논의를 통해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시대에 BTS 현상이 갖는 의미와 그 문화적 잠재력에 대해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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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출처: https://www.bulatlat.com/2020/06/22/activism-hits-bts-fandom/


1. ‘Dynamite’의 빌보드 1위와 그 의의


BTS가 K팝의 역사를 완전히 새로 쓰고 있다. ‘Dynamite’가 한국 대중음악이 본격적으로 세계시장에 도전한 2000년대 이래 단 한 번도 정상을 밟지 못했던 미국 빌보드의 메인 차트 ‘HOT 100’에서 1위를 차지한 데에 이어, 미국 가수 제이슨 데룰로(Jason Derulo)의 ‘Savage Love’가 BTS의 리믹스 버전 참여에 힘입어 또다시 1위로 올라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성공이 단발적인 성과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지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K팝이 미국에서 보여준 성공은 싸이나 BTS와 같은 극히 일부의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한다면 매우 일시적이며 그 범위 또한 국지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향이 있었다. 미국 현지의 굴지의 레이블, 프로모터, 라디오 방송국, 그리고 일반 대중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미국 팝 음악과 달리 K팝은 늘 충성스러운 소수의 팬들이 뿜어내는 집중적인 화력에 의지해야만 했다. 가령 앨범이나 신곡이 발매되면 첫 주 동안 팬덤이 구매와 스트리밍을 집중시켜 빌보드 차트에서의 좋은 성적을 꾀하는 방식이다. 라디오를 비롯한 주요 방송국의 서포트는 전혀 기대하기 어렵고, 그나마 가장 높은 수치를 뽑아낼 수 있는 것이 발매와 동시에 화력을 뽐낼 수 있는 첫 번째 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미국 시장에서는 인디 레이블 정도의 파워에 불과한 K팝이 시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전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으로 얻어진 성적은 일시적인 것으로 간주 되어, 종종 미국 주류 음악 팬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첫 주에 높은 성적을 거두고 두 번째 주부터는 빠르게 차트에서 ‘아웃’되는 현상은 K팝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간주되었다. 불리한 인종적, 언어적, 시장 구조 안에서 K팝이 겪은 어려움을 감안해 본다면 이 같은 비판이 물론 정당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계는 K팝이라는 산업이 가진 최대치로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적어도 BTS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BTS는 차트에서의 지속성이라는 부분 하나만으로 이미 K팝의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Dynamite’라는 곡이 가진 대중적인 매력과 전략적 이점을 간과할 수 없다. 우선 ‘Dynamite’는 BTS가 본격적으로 내놓은 최초의 영어곡이다. BTS는 그간 영어곡과 같은 맞춤형 현지화 전략을 통해서 미국 시장에 진출할 마음은 없다는 의도를 분명히 해 왔다. 동시대 K팝 그룹들이 일찍이 미국 시장에 최적화된 영어 곡이나 앨범을 발매하는 와중에도 BTS는 현지 일반 음악 팬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한글 가사의 곡들을 고집해 왔다. 물론 최근 몇 년 사이 발표된 니키 미나즈(Nicki Minaj), 시아(Sia), 할시(Halsey) 등 팝 가수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일종의 현지화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차트의 상위권 곡들 대부분이 소위 ‘콜라보’ 곡들로 채워지는 미국 팝 산업의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이것이 BTS만의 독특한 상업적 이점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Dynamite’는 전례를 깨고 영어버전으로 전격 발표되었는데, 장르 역시 최근 몇 년간 빌보드 차트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경쾌한 펑키-팝 스타일을 취했다. 가사에는 미국 대중들이 쉽게 반응할만한 문화적 코드들이 담겨 있고, 미국 팝의 우상인 마이클 잭슨을 오마주한 댄스 안무들도 그들의 감성을 자극할만한 것이었다. 아직까지 미국 시장에서 라디오가 갖는 높은 비중을 감안한다면 라디오 친화적인 곡은 분명 큰 이점을 가진다. 하지만 큰 흐름에서 바라볼 때 ‘Dynamite’는 단순히 현지화의 성공이라기보다는 적어도 지난 3년간 쌓아온 BTS의 명성이 제 때에 모멘텀을 얻어 폭발한 것에 불과하다. BTS는 2018년에 발표한 ‘Fake Love’ 이래 올해 초 ‘On’까지 꾸준히 빌보드 싱글 차트 ‘Top 10’ 곡들을 내놓았고, 그 순위 역시 10위에서 8위로, 다시 4위로 의미 있는 상승곡선을 이미 그리고 있었다. ‘Dynamite’의 성공이 그 어떤 신박한 전략보다는 그간의 누적된 인기와 신뢰를 통해 얻어진 결과였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더 합리적인 이유다.


2. K팝과 BTS-pop


이 즈음해서 BTS의 성공을 K팝의 성공과 등치시키는 의견도 있다. BTS가 한국 대중음악 신(Scene)이 낳은 가장 큰 스타이며, K팝의 성장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존재이니만큼 일견 타당하게 들린다. BTS를 통해 K팝의 존재감이 더더욱 확고해진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BTS의 등장과 성공이 갖는 특별함, 그리고 그들이 다른 K팝과 구분되는 여러 가지 지점들을 살피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의 결과론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필자는 그들이 신인이었던 2014년 미국에서 그들이 마치 인디뮤지션과 같은 행보를 통해 최초의 ‘아미(Army)’를 규합해 나가는 과정을 운 좋게 현장에서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그들은 최고의 프로모터나 언론의 도움 없이 기존 K팝 팬들의 신뢰를 획득해 나가기 시작했고, 기존에 K팝에 관심이 없었던 새로운 대중들을 K팝 시장으로 이끌어냈다. 한류나 K팝 팬과 구분되는 소위 ‘BTS-pop’의 팬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은 레거시 미디어나 방송의 권력에 의지하지 않고 SNS를 중심으로 한 뉴 미디어의 혁명, 일종의 풀뿌리 운동과 같은 온라인에서의 소통과 연대를 통해 그들을 가로막은 제도권의 장벽을 하나하나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이는 K팝 소비형태의 변화, 궁극적으로는 K팝 팬덤의 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K팝의 세계진출이 본격화된 2000년대 이후, K팝은 한류라고 하는 커다란 틀에 종속되어있는 움직임에 불과했다. 한류의 가장 중요한 헤게모니는 여전히 드라마가 쥐고 있었고, K팝은 드라마를 통해 파생된 팬덤과 기존의 아시안 팝에 익숙한 소위 ‘아시안 컬쳐 팬’의 연합 형태를 띄고 있었다. 하지만 BTS 현상은 기존의 한류 콘텐츠나 K팝 팬덤을 뛰어넘는, 새로운 형태의 독자적인 음악 팬덤을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차별점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같은 흐름이 가능했던 것은 기존의 K팝과 구분되는 BTS의 매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기존 K팝 아이돌과 다른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태도, 음악이 주는 진솔한 감동을 이끄는 청춘의 서사, 그리고 사운드와 비주얼의 미학은 K팝이 아닌 온전히 BTS만의 매력이었고, 국적성(Nationality)이나 지역성(Locality)을 제거한 차가운 매력을 가진 기존 K팝과는 다른 인간적이며 유기적인 매력을 가진 BTS의 색이 되었다. 공장형 시스템과 에이전시의 수완의 결과쯤으로 K팝을 폄하하던 미국 주류 언론과 팬들의 시선이 변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오히려 한국 언론보다도 먼저 BTS를 이 시대 가장 중요한 그룹 중 하나로 호명하기에 이르렀다. 외국이 먼저 슈퍼스타로 인정한 최초의 K팝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3. 내러티브의 힘


여기서 BTS의 기적적인 성공이 이끌어낸 두 가지 중요한 변화를 함께 언급해야만 한다. 하나는 진정성 있는 담론과 내러티브, 즉 ‘이야기’가 음악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K팝의 가능성이다. K팝에서 가사는 오랜 시간 동안 부차적이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어차피 글로벌 K팝의 입장에서 한국어 가사는 해외 팬들에게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기획사의 입장에서 K팝의 본령은 그 무엇보다 비주얼과 퍼포먼스가 가진 매력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판단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BTS의 성공은 그것이 K팝의 성공 방정식이면서 한계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결국 K팝이 아이돌 산업의 모델로 삼은 것은 미국의 보이밴드/걸그룹 문화와 일본의 아이돌 산업이다. 하지만 이 두 나라에서 소위 ‘아이돌’ 류의 팝스타는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인기 스타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보이밴드’는 음악에 무지한 어린 소녀들이나 듣는 음악쯤으로 치부되기 일쑤고, 이는 음악적 진정성을 담보한 것으로 믿어지는 록, 포크, 힙합 음악과 달리 중요한 예술로서 간주되지 않는다. K팝이 아시아권에서의 놀라운 성공에도 불구하고 서구 음악시장, 특히 미국에서 어느 정도 이상의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다.


BTS의 음악은 화려한 퍼포먼스나 트렌디한 음악 이외에도 그들 음악에 내포된 문학적, 철학적, 신화적 요소들로 주목을 받고 있다. 팬들은 물론 언론과 학계가 그들의 세계관과 메시지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들의 음악이 담은 다양한 메시지와 의미를 분석하기 위한 세미나와 수업도 개설되고 있다. 형식적으로 ‘보이밴드’를 취하고 있는 아시안 그룹임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이 같은 BTS의 성공은 K팝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었다. BTS 이후에 등장한 대부분의 그룹들이 그 어느 때보다 자신에게 솔직한 메시지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음악, 메시지, 그리고 태도가 일치된 진정성 있는 음악은 이제 아이돌 음악에서도 적극적으로 요구되는 하나의 시대정신이 되었다. 이는 그간 ‘공장형 음악이라고 비판받아온 K팝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중요한 첫발이 된다. BTS의 새로운 행보가 K팝에 새로운 가능성을 던져줌과 동시에 내재적으로 갖고 있던 위험요소 하나를 자연스레 제거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성을 담보한 이야기와 그 내러티브가 갖는 힘은 이들의 팬들이 자연스럽게 사회의 부정의에 맞서게 만드는 힘이 된다. BTS의 팬을 ‘정치적’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이들은 적어도 BTS의 음악이 갖는 힘과 긍정적 메시지를 바탕으로 BTS 현상을 자랑스럽게 하기 위해 중요한 국면에서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세에서 ‘노 쇼(No Show)’ 사태를 일으키며 존재감을 과시했고, 흑인인권운동(BLM, Black Lives Matter)에서는 BTS의 기부금을 매칭하며 BTS 현상이 아티스트만이 아닌 아티스트와 팬덤이 함께 만들어가는 현상임을 행동으로 증명했다. 이들이 이같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수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BTS의 음악이 가진 긍정적인 힘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K팝이 지난 세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영역으로의 진출인 셈이다.



4. 주류 음악으로서의 새로운 가능성


또 하나, BTS의 성공은 K팝이 미국 내 ‘하위문화’가 아닌 ‘주류’ 음악으로서 재정의될 가능성을 열어나가고 있다. BTS 현상 이후 등장한 대부분의 K팝 아티스트들은 비교적 순조롭게 빌보드 앨범 및 싱글 차트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하나의 새로운 길이 닦인 것이다. 물론 이를 K팝 시장의 자연스러운 확장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고, 여러 그룹들이 자신만의 매력과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결과라 평가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실질적인 물꼬를 BTS가 텄다는 것이다. BTS가 처음 미국 시장에 도전했던 2015년경, K팝은 흥미롭지만 보편적이지 못한 하위문화적 현상으로 인식되었다. 전 세계를 휩쓴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성공은 오히려 미국 사회에서 아시안이 가지고 있던 전형적인 이미지를 역으로 활용했다는 점 때문에 K팝이 가진 독특함만을 부각시키고 강화하는 측면도 있었다. 이는 역사적으로 아시안이 미국 사회에 받아들여진 방식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아시안, 특히 그중에서도 아시안 남자는 성적 매력이 없는 존재로 비추어지는 것이 보통이었고, 이 같은 선입견 때문에 흑인이나 라틴계도 아닌 남자 아시안 스타가 할리우드 영화나 대중음악에서 성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져 온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강남스타일’ 이전에 미국 시장에서 아시아권 스타가 거둔 사실상 유일한 성과라 말해도 틀리지 않을 사카모토 큐의 ‘Sukiyaki’ 역시 센세이션에 가까웠던 음악의 반응과는 별개로, 노래 가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본 음식을 노래 제목으로 삼은 일종의 엑조틱(Exotic)한 아시안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사례였다. 서양 여성과는 다른 이국적 매력으로 종종 서구 남성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는 아시안 여성들과 달리 아시안 남성은 미국 주류 대중문화가 매력적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존재였고, 그래서 아시안 팝스타라는 목표는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요원한 미션으로만 보였다. 그런데 그것을 BTS가 바꾸고 있는 것이다.


BTS는 미국인들이 가진 아시안 음악 혹은 아시안 인종에 대한 여러 가지 편견을 동시에 깨고 있다. 그것은 BTS가 이뤄낸 성과들 중에서도 가장 유쾌한 것이다. 미국의 대중들에게 BTS는 지적이면서 동시에 재미있고, 예의가 바르지만 솔직하며 거침없는 아티스트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아시안 연예인이 갖지 못했던 새로운 이미지다. 학교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지만 ‘너드(Nerd)’나 ‘기크(Geek)’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이미지에 갇혀 있거나, 유교적인 예의범절은 칭찬받지만 자유분방한 이미지가 없어서 팝 가수로서는 물론이고 스타 연예인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고 여겨졌던 아시아인의 한계를 BTS가 보기 좋게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BTS의 미국 팬들은 과거 그들이 아시안 가수들을 바라보고 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BTS라는 팝스타를 대하고 있다. 그들에게 BTS는 미국의 어느 팝 스타와 다를 바 없는 현대적이고, 쿨하며, 섹시하고, 귀여운, 하지만 동시에 스마트한 아티스트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반응이 같은 인종인 아시안 뿐 아니라 유럽계 및 남미계 백인들, 그리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흑인들에게서도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인종이나 문화권의 사람들이 보았을 때도 매력적인 ‘남성’, 하지만 서구권의 마초와는 다른 섬세한 젊은이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은 문화적으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이것은 단순히 BTS라는 아티스트의 개인적인 성공 따위로 이해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BTS는 K팝 뿐 아니라 아시안의 위상 자체를 올려놓고 있는 것이며, 이것은 최근 미국 사회 내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맞물려 새로운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적어도 BTS 시대 이후에 등장할 가수와 연기자들은 그간 미국 주류 사회 내에 뿌리 깊게 박힌 인종적 편견을 얼마든지 적극적으로 맞설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의 실마리를 이렇게 확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성과는 K팝이 가진 고정적 이미지, 혹은 장르적 한계라고 여겨져 왔던 부분을 극복하며 주류 시장에서 우뚝 선 부분이다. 그간 K팝은 철 지난 미국 팝 스타일을 뒤늦게 모방 혹은 차용하는 방식으로 작은 규모의 시장들을 중심으로 인정을 받거나, 첨단이지만 보편적이지 못한 사운드로 마니아적인 음악으로 여겨지거나, 혹은 평범한 ‘버블검 팝’, 다시 말해 듣기 편하고 따라 부르기 편한 틴에이저 용 팝 음악으로 평가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BTS는 현재 미국 대중음악의 가장 핵심을 이루고 있는 힙합을 전면에 내세웠고, 힙합이 가진 공격적인 태도와 솔직함, 거칠고 자유분방한 태도를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 기존의 K팝과는 다른 방법론을 택했다. 이들 역시 달콤한 버블검 팝에 기반을 둔 대중적인 사운드를 간간이 선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BTS라는 거대한 음악적 세계관을 이루는 아주 일부의 요소에 불과할 뿐이다. 이들은 늘 최신의 트렌드와 실험적인 면모를 결합시켜 이를 독창적인 세계관과 스토리텔링 속에 녹여냄으로써 기존의 K팝과도, 현재 미국 시장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힙합과도, 그리고 영미권의 평범한 보이밴드 류의 음악과도 다른 음악적 성격을 구축하고 있다. 팬들은 그것을 ‘BTS-pop’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5.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BTS의 힘과 매력


이 과정에서 K팝이 지난 20년간 쌓아온 문화적 기술의 유효성과 그 잠재력을 가장 높은 수준으로 활용하고 있는 BTS의 최근 공연들이 가진 독특한 성격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K팝은 소위 ‘유튜브 혁명’ 이래로 서구팝의 그 어떤 장르보다도 소셜 미디어를 통한 소통과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기술적 구현에 온 힘을 쏟아 왔다. 하지만 K팝이 추구해온 문화적 기술이라는 것은 단순히 오프라인 콘텐츠의 온라인 전환(Conversion)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BTS의 최근 활동에서도 그 본질적 차이가 잘 드러나 있다. BTS의 모든 콘텐츠와 그들의 온라인 활동은 즉각적인 소통과 무한한 확장, 그리고 이를 통한 팬들의 실시간 동참이라는 시스템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이것은 ’위버스’와 같은 독창적인 커뮤니티형 플랫폼을 중심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놀이터이자 세계가 되어 그 성격이 더욱 강화된다. 여기서 앞서 언급한 ‘내러티브’로서 BTS의 음악이 갖는 장점이 오롯이 빛을 발한다. 이들의 콘텐츠는 음악이나 뮤직비디오에 그치는 것 이 아니라 웹툰이나 스토리를 통해 또 다른 세계관을 만들며, 이들이 서로 긴밀하고 일관적으로 연결되면서 소비자들에게 끊임없는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비주얼이나 콘셉트 정도에 머무르는 기존의 K팝과는 다른 파괴력을 갖는다.


장기화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전 세계 팝 아티스트들이 별다른 돌파구를 모색하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도 BTS의 상업적인 잠재력은 오롯이 빛나고 있다. BTS의 ‘방방콘’과 ‘Map of the Soul On:E’ 공연은 K팝이 그간 준비해온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시연하면서 팬데믹 시대에 가장 성공적인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 공연들의 성공을 단순히 특수효과나 카메라워크 같은 기술적 성취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BTS가 지난 수년간 보여줬던 트랜스미디어(Transmedia)적인 소통과 연대감의 궁극적인 결과물이었다는 점이다. 음악의 매력이 작은 화면을 뚫고 나오기 어려워진 언택트 공연 시대에, BTS는 화려한 테크놀로지 속에 담긴 인간적인 매력과 변함없는 팬들과의 연대감을 통해 오히려 그들 커리어 사상 가장 눈부신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기술은 물론이고 콘텐츠의 매력이 하루아침에 쌓아 올려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6. 대중음악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가 쓰여지다


글을 시작하며 BTS가 K팝의 새로운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고 말했지만, 이는 BTS가 이루어낸 혹은 여전히 만들고 있는 혁명적인 변화와 그들이 향후 만들어낼 가능성에 비한다면 약소한 표현일 수 있다. BTS는 한류의 한가지로서 논해졌던 K팝을 그 자체로서 유의미한 세계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나아가 K팝이라는 틀에 구속받지 않는 방식으로 그 틀마저 깨부수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남기는 영향력은 한국 대중음악 산업의 틀에서 파악할 수 없는 정도의 크기에 이르렀다. 100년 이상의 근대적 산업체계를 갖춘 미국 대중음악에서 BTS는 비틀스의 등장 이래 그들이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외부적 충격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남기고 있는 충격은 비틀스가 만든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질의 것이다. ‘팝’이라는 절대적인 세계와 그 중심으로서 미국 대중음악 시장은 그 관용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그 중심을 영미권 이외의 아티스트에게 내어 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BTS의 등장으로 그 공고한 흐름에 금이 가고 있다. 여전히 그들이 쌓아 올린 주류 음악 시장의 벽은 높고 그것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BTS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BTS가 보여준 건 단순히 미국 시장에서 아시안 그룹이 성공할 수 있다, 혹은 K팝이 주류에 진출할 수 있다는 정도의 개념이 아닌, 하나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새로운 질서를 다시 세울 수 있다는 새로운 상상력인 것이다. 이것은 K팝의 역사가 아닌 현대 서구 대중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써야 할 중대한 변화로 이해되어야 한다.



글ㅣ김영대 음악평론가/ 에스노뮤지콜로지 박사

     (출처 : 한류NOW 2020년 1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