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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산업의 위기사(危機史) : 1910년부터 현재까지

  • [등록일]2020-12-11
  • [조회] 674

영화산업의 위기사(危機史) : 1910년부터 현재까지




코로나의 창궐 이후로 영화산업은 그야말로 ‘초토화’되었다. 좀 부드러운 표현으로 에두르고 싶지만, 그것은 현재의 비극을 서술하는데 충분치 못한 표현일 것이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4개 부문을 석권한 이후로 한국 영화에 쏟아졌던 국제적인 관심도, 업계 내에서 예언되었던 한국 영화의 눈부신 미래도 현재로선 마치 일어나지 않았던 일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극장 매출은 70% 가까이 감소했고, CGV, 메가박스, 롯데 시네마 등 메이저 극장 체인 3사는 연일 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급기야 지난 10월 19일, CGV는 3년 내 119개의 직영지점 중 35~40개를 줄인다는 목표 아래 단계적 조치를 밟겠다고 밝혔다. 발표를 먼저 한 것은 CGV이지만, 다른 극장들도 비슷한 수순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상황이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버라이어티(Variety), 포브스(Forbes)를 포함한 다수의 매체는 미국의 가장 큰 극장 체인들 중 하나인 AMC가 조만간 파산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현재의 국면이 심히 걱정스러운 상황이긴 하나 돌이켜 보면 세계적인 극장, 혹은 영화산업의 위기가 지금이 처음은 아니었다. 영화산업은 전염병으로, 혹은 텔레비전과 넷플릭스와 같은 라이벌 매체의 부상으로 큰 타격을 받아왔다. 이 글에서는 100여 년 전, 초기 영화산업이 직면해야 했던 첫 번째 위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극장과 영화산업을 위협했던 중대한 사건들을 알아보기로 할 것이다. 영화산업이 각각의 위기를 어떻게 대처했는지 살펴보면서 현재 우리가 처한 난제의 해법을 찾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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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출처: Jeff Greenberg/UIG via Getty Images

https://www.axios.com/movie-industry-china-coronavirus-0b573c57-f9ac-44c8-b090-bfc610d00b6c.html


1. 영화산업의 위기


1-1. 스페인 독감(1918)

1912년 기준, 미국에선 이미 2만 개가 넘는 영화관이 성행하고 있었다. 당시 전 국민의 75%가량이 일주일에 한 번씩 영화관람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거동이 가능한 모두가 극장을 다닐 정도로 영화가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황금기는 잠시였던 것으로 보인다. 1918년 가을, 스페인 독감이 발병하면서 산업은 큰 폭으로 움츠러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5억만 명이 넘는 감염자를 낳은 스페인 독감에 대응하기 위해 플루 밴(Flu Ban)이 내려졌고, 당시 미국 극장의 80~90%가 몇 달간 문을 닫아야 했다. 새 영화들은 개봉이 연기되었다. 현재의 코로나19로 인한 영화산업과 매우 비슷한 상황이다. 제작사들은 전염병이 완화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자금력이 약한 작은 제작사들은 영영 문을 닫거나 큰 제작사들로 합병되었다. <미국영화산업의 역사 (The History of American Film Industry)>의 저자, 벤자민 햄튼(Benjamin Hampton)은 이때 살아남은 제작사들이 궁극적으로는 할리우드의 황금기에 업계를 쥐락펴락했던 메이저 스튜디오들로 발전했다고 언급한다. 결국 팬데믹이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을 탄생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1-2. 파라마운트 판결(Paramount Decree, 1948)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텔레비전의 증가로 인한 관객의 감소로 침체기에 있던 할리우드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무소불위의 권력과 영예를 누리던 이른바 빅5 스튜디오 (20th Century Fox, Paramount, MGM, ROK, Warner Bros.)와 리틀3 스튜디오(Columbia, Universal, United Artists)가 유지하던 수직계열식 운영, 즉, 제작·배급·상영을 함께 하던 운영방식에 대법원이 제재를 가한 것이다. 1948년에 이루어진 United States vs. Paramount Pictures 재판에서 대법원은 독점금지법(Antitrust law)에 기반하여 파라마운트(Paramount)로 하여금 상영, 즉 극장운영을 포기하도록 했다. 당시 이들이 소유한 극장의 수는 전미의 1류관 중 65%에 육박했다. 결국 이 판례로 인해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가장 큰 수익원이었던 극장운영을 중단해야 했다.



다년간 독과점과 담합을 일삼으며 승승장구했던 스튜디오들에게 드디어 정의가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이들에 대한 처벌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독점금지법을 위반했던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그 전력으로 인해 새롭게 부상하는 노다지 땅, 텔레비전 산업에서도 참여를 박탈당했다. 이에 이들은 곧 새로운 자구책을 모색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독립 영화제작자들과의 협업이다. 그간 자신들의 대형 스튜디오에서 A급 감독들을 데리고 거대 프로젝트 영화를 만드는 것이 할리우드의 관행이었다면, 파라마운트 판결 이후로 예전처럼 거대한 비용을 투자할 수 없는 상황에서 큰 프로젝트보다는 젊고 작은 영화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메이저 영화사들은 20~30대의 신진 영화 프로듀서(Stanley Kramer, Harold Hecht-Burt Lancaster 팀 등), 감독(John Schlesinger, Sydney Lumet, Mike Nichols 등), 배우들(Dustin Hoffman, Dennis Hopper, John Voight 등)의 영화에 투자·배급하는데 주력하였고, 이러한 변화는 영화사의 또 다른 신화, 뉴 할리우드 영화들의 탄생을 가져왔다. 자금이 위축되면서 오히려 영화의 새로운 스타일과 질적 성취가 일어난 것이다.


1-3. 텔레비전의 부상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에서는 영화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사회변화가 일어나는데 그중 가장 결정적 변화는 교외화(Suburbanization)다. 종전 후 돌아온 청년들이 가정으로 돌아가거나 가정을 꾸리면서 교외화가 급속히 진전되었다. 1947년에서 53년 사이 교외의 인구는 43%가 증가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대도시에 위치해 있던 극장과 멀어지게 되고 텔레비전은 빠른 속도로 영화 혹은 극장의 대체재가 되었다. 이 당시 유행하던 ‘TV 디너(Dinner)’는 텔레비전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텔레비전은 빠른 속도로 일상에 침투했다. 사람들은 더이상 차려입고, 돈을 내며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필요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파라마운트 판결이 내려진 같은 해, 4개의 텔레비전 네트워크가 일주일에 7일, 저녁 시간 내내 방송을 내보내는 풀 프라임 타임 방송(Full Prime-Time Broadcasting)을 시작했다. 전성기 할리우드에서 이름을 날리던 배우들, 감독들도 발 빠르게 텔레비전과의 공존을 모색했다. 1955년부터 1965년까지 CBS에서 방영된 ‘알프레드 히치콕 프레젠츠(Alfred Hitchcock Presents)’는 텔레비전 네트워크와 영화계 거장의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한 첫 번째 결과물로 영화사의 중추적인 이행기를 반영하는 프로그램이다.



텔레비전의 위협에 살아남기 위해 영화산업은 여러 가지 대안을 강구 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술적인 혁신이다. 텔레비전 시청자를 다시 극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더 매력적인화면을 제공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 영화산업은 두 가지 기술적 차별화를 선보였다. 그것은 와이드스크린과 테크니컬러(Technicolor)의 도입이다. 그러나 넓은 화면에 선명한 색으로 영화를 본다는 엄연한 장점에도, 이러한 혁신은 높은 비용과 복잡한 사용법 등의 이유로 곧바로 관객몰이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이 후 이러한 기술적인 진보가 1975년 <조스(Jaws)>로 시작된 블록버스터의 성행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므로 넓게 보면 텔레비전으로 인한 위기극복에 일조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1-4. 스트리밍/넷플릭스의 성장

스트리밍 플랫폼 중 단연 선두를 차지하는 넷플릭스는 1997년 DVD 대여 사업으로 시작했다. 당시 초대 가입자 중 한 명이었던 필자는 웹사이트 계정에서 원하는 영화를 골라 놓으면 우편으로 DVD들이 날아온다는 이 시스템에 전율했다. 아마도 다수의 유저들이 그랬을 것이다. 무엇보다 넷플릭스는 연체료를 부과하지 않았다. 다른 콘텐츠 렌탈 업체(블록버스터, 할리우드 비디오)와는 달리 연체료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점은 넷플릭스에 있어 급성장 요인으로 작용했다(공영일, 2010). 2007년 스트리밍 서비스로 전환한 넷플릭스는 약간의 부진을 극복하고 혁신을 거듭하며 스트리밍 사업을 구축해 나갔다. 특히 이들은 2012년 드라마 시리즈, <릴리 해머(Lilyhammer)>를 직접 제작하면서부터 기존의 콘텐츠를 스트리밍만 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콘텐츠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넷플릭스의 제작 사업은 할리우드로부터 강한 반발을 이끌어냈다. 왜 아니겠는가. 소니나 폭스 같은 대형영화사 입장에서 보면 안 그래도 스트리밍으로 극장 관객이 줄고 있어 불안한 가운데 제작 시장에서도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또한, 극장 개봉을 거치지 않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은 예술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모바일용 영화상품 정도로 폄하되었다. 그러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옥자(Okja)>가 2017년 칸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선택되면서 이런 시선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칸 영화제의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가 극장 상영을 거치지 않은 영화는 칸 영화제의 최고 영예인 ‘황금카메라상(Palm d’Or)’ 을 받을 수 없다고 언급하여 궁극적으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가 패한 셈이지만, 이듬해 넷플릭스의 <로마(Roma)>가 평론가들의 찬사와 아카데미 작품상을 석권하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에 대한 예술성 논란은 완전히 종식되었다. 이후 디즈니 플러스 등의 스트리밍 업체들이 생겨나며 넷플릭스의 성장률이 주춤하는 듯 했으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넷플릭스는 더욱더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1-5. COVID-19 그리고 한국의 영화산업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률이 급증하던 2020년 3월을 기점으로 영화 관객의 수는 국가마다 차이가 있음에도 60~70% 정도가 감소했다. 한국의 경우, 극장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2%가 감소했고 현재 상영관 감축이 현실화되고 있는 중이다. 할리우드의 경우, 새로운 제임스 본드 시리즈인 <노 타임 투 다이(No Time To Die)>를 포함한 다수의 블록버스터 개봉이 내년으로 미루어진 상태이며, 디즈니의 대작 <뮬란(Mulan)>은 개봉을 미뤄오다가 결국 디즈니 플러스의 PVOD(Premium Video On Demand, 관람료는 30달러)를 통해 가까스로 공개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제작비 260억 원이 투입된 송중기, 김태리 주연의 SF영화 <승리호>는 몇 차례 극장 개봉이 연기되다가 결국 넷플릭스 개봉으로 결정되었다. 손익분기점이 700만인 이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했을 시, 그 수에 다다를 수 없는 것이 명백하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넷플릭스와 그 외 OTT 사업의 부상으로 ‘극장의 종말’이 예언되던 가운데 영화산업 역시 별다른 대안 없이 지내 온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 코로나로 인한 폐해는 1918년 스페인 독감 이래 가장 큰 위기라고 언급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위협적이다. 극장들은 띄어 앉기와 소독과정을 강화하며 관객을 안심시키려 하지만 관객 수는 극복되지 않고 있으며, 코로나로 인해 얼어붙은 영화시장으로의 투자도 큰 폭으로 줄은 상태다. 한 영화인은 CGV가 극장의 축소를 발표한 지 며칠 안 되어 진행하던 영화의 투자가 취소되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극장의 쇠락이 영화산업 침체의 직격탄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어가는 셈이다. 반대로 스트리밍 업체, 특히 넷플릭스의 경우 미국 기준, 2020년 상반기 가입자는 2천5백만 명이 증가, 한국의 경우 9월 기준 가입자의 수는 330만 명으로 이는 지난해 대비 2배로 증가한 수치다.



다시 말해 코로나로 인해 영화관람의 형태 자체가 바뀌었고 정착해가는 중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극장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로 인해 영화산업은 어떻게 바뀔까? 1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위기를 극복해 온 극장은, 그리고 영화산업은 이번 코로나 위기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지난 몇 달간 화수분처럼 쏟아지고 있는 국내와 해외 기사들의 예측은 모두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코로나 이후 극장은 관객을 되찾을 것이며, 영화산업 또한 예전의 활기를 회복할 것이라는 다소 로맨틱한 낙관론으로, 누군가는 극장의 종말을 예견하며, 영화산업 또한 스트리밍 산업에 종속될 것이라는 암울한 비관론으로 코로나 종식 이후를 점친다. 물론 늘 그랬듯, 현실은 반반이기 마련이다. 극장이 무서운 속도로 축소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넷플릭스와 여타 다른 OTT 가입자 수, 이들의 영화의 스트리밍, 혹은 다운로드 수가 증가했다는 것은 영화의 소비 자체는 줄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극장은 떠났지만, 영화를 떠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극장은 또 다른 혁신으로 집에 뿌리를 내린 관객을 불러내야 할 것이다. 파라마운트 판결과 텔레비전의 성장으로 도산 위기를 맞은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한쪽으로는 작고 빛나는 영화들로 뉴 할리우드 시네마라는 혁명을 일으키고, 다른 한쪽으로는 ‘블록버스터’라는 영화상품을 개발함으로써 관객을 되찾았듯, 현재의 한국 영화도, 극장도, 다양한 장르와 스케일의 영화와 다양한 관람형태로 관객을 모을 채비를 해야 할 것이다. 지난 6개월간 대작들이 상영을 미루면서 중, 저예산의 다양한 장르 영화들이 개봉했고 장기상영 되었다. 이는 어쩌면 코로나 사태가 아니었다면 목도할 수 없었던, 예기치 않은 작은 기적이기도 하다. 위기의 정점(頂點)을 지나는 현재를 암울하게만 보아선 안 되는 이유다.



글ㅣ김효정 수원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객원교수

     (출처 : 한류NOW 2020년 1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