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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팬덤이 음악산업의 주도권을 흔들다

  • [등록일]2021-11-19
  • [조회] 461

방탄소년단:
팬덤이 음악산업의 주도권을 흔들다





작년과 올해,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많은 부분을 바꿔놓고 위축시켰지만 그 기간 동안 방탄소년단의 질주는 나머지 세계와 무관하게 점점 거세지기만 했다. 2020년 발매한 방탄소년단의 앨범 <맵 오브 더 소울: 7(MAP OF THE SOUL: 7)>은 전 세계적으로 430여만 장이 팔렸으며, 그들의 지난 온라인 콘서트는 133만 명이 유료 관람했다. 또, 그들의 영어 싱글곡인 <버터(Butter)>는 빌보드 싱글 차트인 ‘HOT 100’에서 10주 동안 1위를 차지했으며, 이 노래는 올해 빌보드 차트에서 가장 오랫동안 차트 정상을 지킨 곡이 되었다.
올해로 데뷔 9년 차를 맞은 이 그룹은, 그들이 한때 소망했던 국내 연말 시상식의 대상 수상이라는 목표를 훌쩍 뛰어넘어 그래미 노미네이트 가수가 되었고, 이제는 그들의 행보가 전 세계 음악산업에 영향을 끼치는 수준이 되었다. 한국의 케이팝 보이밴드 하나가 이루어냈다기엔 현실감이 떨어지는 이런 성과는, 언론을 통해 좀 더 쉽고 직관적인 설명을 해주는 프레임을 통해 분석되곤 한다. ‘한류의 힘’, ‘경제적 효과’ 같은 자국주의와 문화산업론 프레임 말이다. 이 같은 프레임이 아예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방탄소년단 현상을 세밀하게 논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물며 이 거대한 현상의 원동력인 ‘팬 결집력’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하지 못한다. 방탄소년단 팬 결집력의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기존의 팬덤과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야 하는데, 과연 ‘다른’ 팬덤은 어떤 토양에서 탄생하는 것인지 그 기술적 기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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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출처: https://erizos.mx/kpop/bts-army-significado-origen-septimo-aniversario-tour/


1.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 변동


시대를 규정하는 큰 변화는 대부분 기술 변동과 함께 온다. 기술의 변동은 늘 그 안의 내용 변화를 동반하며, 이를 통해 문화적, 사회적 변화를 일으킨다. 지금은 바야흐로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과 여러 미디어간의 협력을 표방하는 미디어 컨버전스(Media Convergence)의 시대다. 이때 ‘컨버전스(융합)’라 함은 단순히 다양한 양식의 미디어 융합뿐 아니라 국경과 매체를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미디어 콘텐츠의 순환, 그리고 미디어 수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경험하기 위해 기꺼이 찾아다니는 이주성 행동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일종의 문화적 과정이다.


매체의 관점에서 볼 때, 현시대의 콘텐츠 소비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은 모바일과 구독경제이다. 음악산업계에서 히트곡을 생산하고 소비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 주체는 멜론(Melon)이나 스포티파이(Spotify) 같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이거나 유튜브(YouTube)나 틱톡(TikTok) 같은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이다. 콘텐츠 접근 양상이 앨범이나 CD 같은 피지컬 매체에서 스트리밍 매체로 바뀌면서 이제 콘텐츠 경험은 우연성이 지배하는 ‘발견’ 또는 일관된 취향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데이터베이스화를 통한 ‘큐레이션’과 ‘알고리즘’의 영역이 되었다.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 매개 커뮤니케이션을 지칭하는 뉴미디어적 성격이 지배적인데, 뉴미디어는 올드미디어에 비해 송신자와 수신자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쌍방향성이 강조된다. 신문이나 방송 같은 레거시 미디어에서 정보 제공자와 수용자가 확실히 구분되는 것에 반해, 뉴미디어 환경의 대표적 사례인 소셜미디어에서는 누구나 정보를 제공할 수 있고 동시에 제공받을 수 있다. 이런 특성이 소셜미디어를 좀더 대화적 환경으로 만들면서 결과적으로 매체 민주주의적 성격을 강화하는 효과를 낸다. 이러한 미디어 컨버전스 환경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여러 매체를 넘나들며 콘텐츠와 정보를 즐기고 반응하고 2차 창작하고 담론을 만들어내는, 바로 능동적 수용자들이다. 방탄소년단 현상의 핵심인 바로 그 팬덤(Fandom) 말이다.



2. 능동적 수용자, 팬덤


17세기 후반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팬(Fan)’이라는 용어는 ‘광신도(Fanatic)’라는 어원에서 알 수 있듯, 대중문화의 헌신적이고 열성적인 수용자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문화적 생산에서 배제된 수동적 소비자’, ‘병적으로 집착하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열정은 사회적인 부적응이나 개인적 상실을 보상받기 위한 목적으로, 상상의 관계에 집중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종의 열등감이나 병리적 증상으로 평가절하 되기도 했다.


그러나 컨버전스 문화의 수용자 특성을 팬덤만큼 잘 보여주는 사례도 없다. 팬덤은 새로운 정보를 찾아내고, 서로 흩어진 콘텐츠 간의 연결을 만들어내고, 소셜미디어에서 ‘버즈(Buzz)’를 통해 트렌드를 생성하며,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해 실시간으로 2차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등 이 시대 대표적인 참여문화적 수용자의 성격을 보여준다. 현재 영상미디어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팬덤이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팬덤이라면, 음악산업에서 가장 독보적인 파워를 보여주는 팬덤으로는 방탄소년단 팬덤인 아미(A.R.M.Y.)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방탄소년단 팬덤은 미국 중심의 팝시장 공식을 깨뜨리고, 방탄소년단을 글로벌 슈퍼스타로 키워낸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소셜미디어에서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바탕으로 방탄소년단이 내놓는 모든 콘텐츠를 실시간 트렌드로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전 세계 스타디움 투어를 오픈하자마자 전석 매진시키고, 비교가 불가한 앨범과 음원 판매 기록을 만들어내는 등 실질 구매력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렇듯 방탄소년단 팬덤이 질적인 면과 양적인 면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 중 하나로, 팬덤의 ‘확장성’을 들 수 있다.


3. 방탄소년단 팬덤 확장성의 비밀


방탄소년단 팬덤 양상을 보면 어느 순간부터 세대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2020년 팬덤 창립 7주년을 맞아 발족된 ‘아미 인구조사(ARMY Census)’는 글로벌 아미를 대상으로 대규모 인구조사를 실시했다. 전 세계 100여 개국 이상에서 40여만 명의 팬들이 참여한 이 조사의 결과, 전체 대상의 49%가 20대 이상 팬들이었으며 남성 팬은 전체의 11.3%를 차지했다. 소셜 미디어에서도 이런 양상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십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보통의 케이팝 팬덤 성격과는 달리, 소셜 미디어에는 생애 처음으로 ‘덕질’을 한다는 중년 팬들이 가득하다. 인종 문제, 성 소수자 문제, 우울증과 정신건강 문제 등 한국에서 터부시되는 주제를 음악과 발언을 통해 서슴없이 말하며 “넌 혼자 걷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방탄소년단에 대해 각계각층의 팬들이 느끼는 애착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아티스트가 보여주는 이런 배타적이지 않은 포용성에서 배태된 팬덤은 당연하게도 나이뿐 아니라 직업, 인종, 젠더, 종교 같은 부분에 있어서도 기존의 케이팝 팬덤에 비해 월등히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팬들은 멋지고 예쁜 모습을 소비하는 팬-아이돌 관계를 넘어서서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서의 감각을 방탄소년단으로부터 얻는다.


이런 동반자적 감각은 단순히 아티스트와 팬 사이에만 머무르지 않고 팬들 사이에 상호 케어를 위한 수많은 커뮤니티를 만들어냈다. 우울감과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받는 팬들을 위해 세계 각국 언어로 심리상담과 함께 위로를 전하는 심리전공자 팬들의 모임, 세계의 고통 받는 곳에 꾸준히 아미의 이름으로 기부를 실천하는 단체, 함께 한글을 공부하는 모임, 방탄소년단 관련 학술대회를 열고 학술지와 매거진을 출간하는 모임, 한식 레시피를 공유하고 함께 요리하는 모임, 커리어 개발을 위한 멘토-멘티 관계 등 다양한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팬 실천은 지역사회나 공동체 문제에까지 손을 뻗는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방탄소년단 콘서트가 취소됐을 때 팬들은 환불된 티켓값을 코로나 방역을 위해 기부했으며, 흑인인권운동(Black Lives Matter, BLM) 당시 방탄소년단의 기부에 바톤터치 하듯 백만 달러를 기부했다. 같은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유대감에서 출발한 팬들이, 이제 서로를 케어하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와 글로벌을 생각하는 공동체로 발돋움한 것이다.



흔히 배타적이라고 생각하는 케이팝 아이돌 팬덤이 아티스트를 향한 서포트를 넘어, 팬 공동체와 지역사회에 대한 서포트로 관심을 확장하는 것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방탄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고, 미약하나마 이를 되갚아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라며 스스로를 설명한다. 이들에게는 우리가 흔히 아이돌 팬이라고 생각했던 집단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가사, 인터뷰, 콘텐츠를 통해 자신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동시대인으로서 함께 존재한다는 감각을 전해주고, 위로하고,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는” 아이돌이 바로 방탄소년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이돌이라고 규정 짓는 바운더리와 관계없이 방탄소년단은 그들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존재한다.


4. 방탄소년단 현상을 둘러싼 담론 전장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후 무기력과 어두운 전망에 빠진 세계에 방탄소년단은 그간의 원칙을 깨고 100% 영어로 된 싱글을 발매하기 시작했다. 영어곡인 <다이너마이트(Dynamite)>와 <버터>,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 했던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연달아 휩쓸었고, 그중 <버터>는 10주간 1위라는 대기록을 만들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낸 영어 싱글이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인지도 역시 수직 상승했다. 서구권에서는 ‘BTS’라는 가수의 노래는 몰라도 이름은 들어봤다는 사람이 대다수이고, 인도처럼 자국 문화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나라에서도 자국의 스포티파이 스트리밍 1위 가수가 방탄소년단일 정도다.


한편, 빌보드 싱글 차트 1위가 대중이 듣는 스트리밍이나 라디오 수치보다는 팬들의 대량 음원 구매에 힘입은 바가 크기 때문에 대중성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미국의 차트 분석 전문 블로그인 ‘ChartMetric’은 지난 10월 “대중성을 규정 짓는 것은 무엇인가?(What Defines Popularity?)”라는 글을 통해 미국 내 대중성의 기준이 되는 스트리밍과 라디오의 시스템적 한계에 대해 설파했다. 스트리밍 수치가 잘 나오려면 팔로워가 많은 해당 서비스의 에디토리얼 플레이리스트(예: 스포티파이의 ‘Today’s Top Hits’)에 포함되어 더 많은 청취자들에게 노출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해당 플랫폼의 결정에 달려 있다. 그 결정은 특정 장르나 언어에 대한 선호 또는 서구 중심적 음악산업의 고정관념을 넘어서기 어렵다. 오랜 시간동안 대중성을 측정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왔던 라디오 플레이 수치 역시 마찬가지다. 방탄소년단 뿐만 아니라 미국 내 엄청난 인구수와 팬덤을 가지고 있는 배드 버니(Bad Bunny)나 제이 발빈(J Balvin) 같은 라틴계 가수들도 라디오에서 인기에 걸맞은 에어플레이를 받지 못한다. 언어에 대한 편향이 이토록 확실한데 팬이 아닌 수동적 청취자를 대상으로 하는 매체라고 해서 과연 라디오가 대중성의 척도가 될 수 있을까? 더구나 라디오 DJ들이 대가를 받고 음악을 틀어주는 페이올라(Payola) 행위는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말하자면, 지금의 대중음악계에서 수동적인 소비 형태를 대중성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사실상 그 뒤에 있는 업계의 이해관계, 문화적 선입견 등 구조적 불평등을 의도적으로 간과하는 행위인 것이다. 여기에는 팬덤을 ‘대중’으로 간주하지 않는 팬덤에 대한 차별적 시선도 함께 작용한다.



팬들은 몇 년에 걸친 노력 끝에 서구 음악산업에서 방탄소년단이라는 아티스트가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으나, 여전히 서구 아티스트와는 다른 ‘타자’로 간주되는 것을 보고 이제 본격적으로 담론장에서의 경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배담론과 경합하기 위해 팬들이 선택한 것은 대항담론적 실천이었다. 홍보와 학술적 접근을 통해 방탄소년단의 성장 서사와 음악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방탄소년단의 진지한 음악성을 담론화했고, 영어로 된 노래가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는 서구 음악계의 좁은 시야를 깨기 위해 적극적으로 한글을 배우면서 가사의 의미를 곱씹었다. 팬덤 인구의 다양성을 설득하기 위해 SNS상에 집단적으로 얼굴을 드러냈으며, 자체적으로 글로벌 팬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인구 조사를 실시했다. 방탄소년단이 인종 차별과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 대해 발언할 때 진지하게 듣고 힘을 실어줬으며, 팬들 스스로도 정치적, 사회적 불합리에 목소리 내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팬덤 아미가 행해 온 이런 대항담론적 실천은 점차 전통적인 레거시 미디어의 논조에 영향을 끼쳤고, 국내외 방탄소년단 관련 기사를 보면 몇 년 전에 비해 팬 담론을 훨씬 많이 수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이 차츰 줄어들고 SNS 같은 뉴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는 현재의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전통적인 문화적 게이트키퍼(기자, 비평가, 음반산업관련자)가 아닌 수용자들이 전개하는 담론이 커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방탄소년단 팬들은 레거시 미디어 vs 뉴미디어, 대중 vs 팬덤, 주류 vs 비주류, 영어권 vs 비영어권이라는 담론 구도를 통해, 문화적 주도권을 두고 기존 음악산업계와 끊임없는 경합을 벌이는 중이다. 오늘날 방탄소년단 현상은 팬덤의 이런 적극적인 담론적 실천으로부터 발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ㅣ이지행 미디어문화연구자

     (출처 : 한류NOW 2021년 1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