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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한국 스트릿 댄스 문화에 미친 영향

  • [등록일]2022-01-18
  • [조회] 2729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한국 스트릿 댄스 문화에 미친 영향





본 글은 《Mnet》 스트릿 댄스 오디션 프로그램인 <스트릿 우먼 파이터(Street Women Fighter, 이하 스우파)>의 성공이 한국 스트릿 댄스 문화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고자 한다. 고찰에 앞서 스트릿 댄스 문화와 연계된 하위문화와 힙합 문화에 대해 알아보고, 이와 관련된 스트릿 컬처와 스트릿 댄스 특성에 관해 설명한다. 또한 한국 스트릿 댄스의 발전과정과 현황을 살펴보는 동시에 <스우파>의 인기 요인을 살펴보면서 국내 스트릿 댄스 문화에 미친 사회적 영향과 전망, 정책에 관해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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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출처: Eugenio Marongiu/shutterstock

1. 하위문화의 특성과 힙합 문화

문화는 인간의 사상, 신념, 가치, 윤리, 행동, 언어, 음식, 의복 등의 생활양식이 묻어난 삶의 양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에는 다양한 세부 문화들이 존재하며, 그 문화 안에 지역의 풍습과 삶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다. 문화라는 커다란 카테고리 안에 가장 대표적인 세부 문화로 주류문화와 하위문화(Subculture)를 들 수 있다. 주류문화는 우리가 흔히 지배문화라고 할 수 있는 제도권 교육, 부모들의 기성문화, 정치, 경제 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가치와 윤리를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문화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하위문화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하위문화를 주류문화에서 벗어난 저항성과 일탈을 지닌 문화로 인식하고 있다. 쉽게 표현하자면 주류문화는 다수가 인정하고 지향하는 문화이며, 하위문화는 소수가 즐기는 문화로 주류문화로부터 벗어난 비주류 문화이다.


역사적으로 하위문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불안정한 사회적 상태를 반영해 등장했으며, 1950년대 후반 노동계급문화 주체를 대변하던 ‘모드족’에서 70년대의 ‘펑크족’에 이르는 청년문화의 형태를 말한다. 하위문화로 대변되는 청년문화는 두 가지 문화 형태에 대한 반발로 생성되었다. 그것은 부모문화와 지배문화인데, 이 두 가지 문화는 한 사회의 지배적 가치를 생산한다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억압적 형태에서 차이점을 갖는다. 부모문화에 대한 반발은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전통적인 윤리의식과 규범에 관한 것이고, 지배문화에 대한 반발은 경제적, 정치적 착취로 인한 문화적 불평등에 관한 계급적 편견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청년 하위문화는 전후 영국의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 과정 속에서 부모가 간직한 검열의 윤리의식을 거부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배계급의 노동력 착취를 거부하는 움직임 속에서 생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이동연 역, 1998). 여기서 부모문화와 지배문화에 대한 거부가 바로 하위문화의 특성인 저항성과 일탈로 나타난다.


정리하자면 하위문화의 특성은 기성세대의 지배적인 가치와 윤리로부터 벗어난 것이며 지속성보다는 가변적, 생성적인 청년문화라는 것이다. 또한 다수보다는 소수가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것이며 상황에 따라 가치와 윤리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위문화를 키워드로 표현하면 저항, 일탈, 즐거움, 가변성, 생성적, 자율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위문화의 특성을 간략하게 살펴보는 동안 하위문화와 연계된 문화를 찾을 수 있다. 위에서 요약한 키워드만 보더라도 금방 떠오르는 문화가 바로 ‘힙합 문화’이다. 하위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힙합과 연관성을 두고 있으며, 힙합 문화를 줄여서 편하게 ‘힙합’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힙합 문화를 힙합 음악인 ‘랩(Rap)’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힙합 문화를 정확하게 이해할수 있도록 간략하게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힙합 문화는 ‘디제이(DJ)’, ‘엠씨(MC)’, ‘그라피티(Graffiti)’, ‘비보이(B-boy)’의 4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디제이’는 기존에 있는 음악을 자신의 음악으로 믹싱(Mixing)하여 틀어주는 사람이다. ‘엠씨’는 대표적으로 《Mnet》 <쇼미더머니> 방송에 나와 멋지게 랩 대결을 하는 랩퍼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라피티’는 스프레이 페인트, 일명 ‘락커’로 벽, 전철 등에 자신만의 모양과 글자, 그림 등을 그려 넣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비보이’의 ‘B’는 바로 ‘Break Beat-boy’의 약자로 브레이크 댄스를 전문적으로 추는 사람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브레이크 댄스(Break Dance)’, ‘브레이킹(Breaking)’, ‘비보잉(B-boying)’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브레이킹’ 명칭으로 ‘2024년 파리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브레이킹’으로 표현하도록 하겠다. 브레이킹을 추는 비보이들은 다수가 지향하는 주류문화의 삶에서 크게 벗어나 있고, 브레이킹이 사회의 주류적 관념에서 추구하는 학업과 진학, 사회적 성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청소년의 저항적 몸짓이라는 점에서 하위문화라고 해석할 수 있다.


2. 스트릿 댄스 문화의 특성


‘스트릿 댄스(Street Dance)’는 한 장르의 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스트릿 댄스에는 1960~70년대 형성된 ‘올드 스쿨(Old Skool)’인 브레이킹, 락킹(Locking), 팝핑(Popping), 왁킹(Waacking) 등이 있으며, 1980년대 이후 형성된 ‘뉴 스쿨(New Skool)’인 프리스타일 힙합, 하우스(House), 크럼프(Crump) 등도 포함하고 있다.


스트릿 댄스는 미국에서 탄생한 춤이며 ‘스트릿 문화(Street Culture)’에서 파생된 춤으로도 보고 있다. 스트릿 문화는 1950~60년대 미국의 흑백 간의 불평등 해결을 폭력이 아닌 다른 창조적인 것으로 해결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생성되었으며, 주로 흑인과 히스패닉인들의 자유의 갈망과 반사회적 성향의 정체성으로 형성되었다. 특히 스트릿 문화는 다양한 민족성이 드러나는 특성을 가지는데, 단일 문화에서 벗어난 다양한 문화의 융합으로 이루어져 현시대에 맞는 생동하는 문화이자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미래지향적 문화이며, 여기서 파생된 춤이 스트릿 댄스이다(천성욱·박성진, 2021). 스트릿 댄스의 ‘스트릿(Street)’은 직역하면 ‘길거리’로 해석되는데 열려있는 공간의 의미로 특정 장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 보편화, 일반화된 것으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대상만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대중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파악하자면 스트릿 문화는 그 시대 현상을 내포하는 ‘유행’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트릿 문화의 유행하는 특성은 스트릿 댄스를 유행하는 춤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스트릿 댄스는 세월이 지나도 시대의 새로운 흐름과 음악 스타일에 맞춰 변화하고 개발되면서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케 한다(송유리·김현남, 2017).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제적, 인종적으로 하위문화 그룹의 삶과 밀접하게 얽혀서 발생한” 스트릿 문화의 스트릿 댄스는 현시대의 요구에 맞게 지속적으로 진화, 발전하며 제도권으로 진입하면서 주류문화로 편입되고 있다(김수인?송유리, 2019, p. 83). 이러한 의미에서 스트릿 댄스는 스트릿 문화에서 파생되었지만 하위문화의 포괄적인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스트릿 댄스에는 힙합 문화에서 발전된 브레이킹과 프리스타일 힙합, 하우스 댄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다. 바로 ‘스트릿 댄스’와 ‘힙합 댄스’라는 용어의 사용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댄서와 학자들이 두 용어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두 용어 중 한 용어는 틀린 것이라고 하지만 국내외에서 댄서와 학자 모두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틀린 것보다는 같은 의미라고 보아야 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1999년 전까지만 해도 ‘스트릿 댄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브레이크 댄스’, ‘힙합 댄스’, ‘힙합 춤’이라는 용어들을 사용하다가, 1999년 국내 최초의 국제 대회인 ‘코리아컵 월드 힙합 페스티벌’ 개최 이후 스트릿 댄스라는 용어가 국내에 유입되면서 사용하게 되었다(이우재, 2016).


스트릿 댄스는 자유롭고 비형식적, 비정규적이다. 스트릿 댄스는 돈을 내고 스튜디오에서 배울 수 있는 기존의 아카데믹(Academic) 무용에 반하는 것으로, 다양한 계층이 길거리, 클럽, 하우스 파티 등 자유로운 공간에서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따라서 스트릿 댄스는 반아카데미(Anti-academic)의 상징으로 길거리라는 뜻의 스트릿(Street)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최종환, 2012). 이렇듯 스트릿 댄스는 순수무용인 발레와 현대무용처럼 정식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발전하였다기보다 스트릿 댄서들이 자유로운 공간에서 자유롭게 춤추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하였기 때문에 비정형화되어 있어 체계화된 스튜디오 교육화가 어려웠다. 특히 클럽과 하우스 파티에서 디제이가 틀어주는 음악에 따라 표현된 즉흥적인 움직임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 스트릿 댄스이기에, 스트릿 댄스는 자유성, 즉흥성, 독창성, 역동성, 흡수성, 대중성이 나타난다(김상우, 2012).


3. 한국 스트릿 댄스 발전과정과 현황


한국 스트릿 댄스의 역사는 어떤 장르의 춤을 집중적으로 다루느냐에 따라 그 양상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1980~2000년대 초 사이에는 대부분 브레이킹을 위주로 발전해 왔다. 이를 대변하듯 2005년 국정홍보처는 세계에 한국을 홍보할 대표 브랜드로 반도체, 한복, 축구, 드라마와 더불어 브레이킹을 선정했으며, 이는 대중들에게도 가장 많이 알려진 스트릿 댄스 장르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한국 스트릿 댄스의 유입과 발전과정을 브레이킹을 중심으로 이끌어 가되 포괄적인 스트릿 댄스의 역사적 의미를 유지하면서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스트릿 댄스는 1980년대 미국의 팝가수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인기와 더불어 그의 대표 춤인 ‘문워크(Moonwalk)’가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한국에 유입되었다. 이와 함께 스트릿 댄스 영화인 <플래시댄스(Flashdance)>(1983), <브레이킹(Breakin’) 1, 2>(1984), <비트 스트릿(Beat Street)>(1984)이 세계적인 춤 열풍을 몰고 왔고, 1985년 미국 레이건 대통령 2차 취임식 때 TV로 방영된 브레이킹 축하 공연이 한국의 젊은이들을 스트릿 댄스인 브레이킹에 열광하게 하였다. 이는 곧 한국 1세대 스트릿 댄서들의 활동으로 이어졌지만, 1980년대 말부터 군대 문제와 경제적인 이유로 춤을 그만두는 댄서들이 늘어나며 활동은 점차 줄어들고 침체기에 들어갔다. 1990년대 중반, 일본과 미국에서 스트릿 댄스 관련 영상 자료들이 유입되면서 본격적인 한국 스트릿 댄스 역사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이때 스트릿 댄스의 다양한 장르가 함께 넘어와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때부터 활동을 시작한 스트릿 댄서들을 중세시대의 예술 침체기에서 깨어나 재생과 부활을 뜻하는 ‘르네상스’의 뜻을 빌려 ‘한국 스트릿 댄스 르네상스 1세대’라고 칭한다. 이 당시는 스트릿 댄스를 창조적으로 유입한 것이 아니라 해외 춤 영상 자료에 나타난 춤을 그대로 모방하던 시기였다(이우재, 2010).



한국에서 해외 춤 자료를 보며 한창 모방하던 시기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 발생한다. 해외 댄서들과 직접적인 교류가 없던 시기에 한국에서 스트릿 댄스 국제 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1999년 개최된 ‘코리아컵 월드 힙합 페스티벌’로 말미암아 모방을 일삼던 국내 댄서들은 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는 모방에서 변형을 거쳐 창조를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대회를 통해 국제적인 정보가 개방되고 세계적인 스트릿 댄서들과의 국제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었고, 이와 더불어 규모가 큰 국제 대회들이 국내에 개최되기 시작하며 스트릿 댄스에 관련된 전문지식이 체계화되고 춤에 적용되면서 점차 한국의 스트릿 댄스는 국제적으로 도약하게 되었다(최종환, 2012). 1999년 국제 대회 이후, 한국은 창조적인 무브를 만들기 시작해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브레이킹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독일의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에 2001년 한국의 연합팀이 최초로 출전하여 퍼포먼스 부문 1위를 차지했고, 2002년에는 단일팀으로 우승을 거머쥐면서 한국 스트릿 댄스는 세계 최정상에 등극했다. 이후 스트릿 댄스의 다양한 장르들도 세계 메이저 대회에서 잇달아 우승하면서 한국은 스트릿 댄스 강대국으로 우뚝 서게 된다. 한국은 그야말로 다른 나라에 비해 이례적이고 발 빠른 성장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이우재, 2016).



세계 메이저 대회에서 한국의 비보이들은 팀으로 참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서로 연합하여 대회에 나가기도 했는데, 이들이 계속 우승을 석권하자 유럽의 메이저 대회에서 대회를 독식한다는 이유로 한국 연합팀 참가를 금지시켰다. 한국 스트릿 댄스는 이미 세계 무대에서 최강자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도 한국의 방송과 언론에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다만 스트릿 댄서들과 춤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이 정보를 교환하며 자부심을 갖는 정도였다.


이러한 와중에 새로운 사건이 일어난다. 오랫동안 공연예술계에서는 극적인 이야기를 스트릿 댄스로 만들어 공연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화려한 움직임만을 강조하는 스트릿 댄스로 극적인 이야기를 연출하고 안무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스트릿 댄서들이 모여 안무와 연출, 출연을 맡아 작품을 만든 것이 그야말로 ‘대박’이 난 것이다. 스트릿 댄스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일반인들에게도 전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공연 예매율 1위를 차지하고 방송과 언론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그것이 바로 2005년에 시작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다. 이 작품 이후, 스트릿 댄스로 이루어진 ‘댄스컬(댄스+뮤지컬)’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전문적인 공연예술계의 투자와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 기세와 함께 스트릿 댄서들의 국제 대회 우승 소식도 방송매체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스트릿 댄스에 관한 학술연구도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한국 비보이들의 국제 대회 우승은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는 이유에서 방송사들이 특집방송으로 다루기까지 하였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에서 브레이킹 팀이 공연을 한 것과 같이 한국에서도 국내 브레이킹팀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되어 공연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만큼 그 당시 한국에서도 스트릿 댄스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때가 2001~2008년 사이, 한국 스트릿 댄스가 정점에 오른 시기이기도 하다.


대략 2008년 이후 한국 스트릿 댄스는 점차 쇠퇴기에 들어서게 된다. 스트릿 댄스의 대중적인 인기에 힘입어 많은 스트릿 댄스팀이 생성되었고, 비슷한 콘텐츠로 잦은 방송 출연과 매체에 노출된 활동으로 희소성을 점차 잃게 되었다. 이에 많은 팀들이 팀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적인 해결에 집중하게 되었고, 이런 와중에 팀별 경쟁심화로 행사와 공연 가격을 경쟁적으로 내리게 되면서, 갈수록 형편은 어려워지고 대중들의 관심도 멀어져 기업의 지원과 행사가 줄어드는 좋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이는 팀 해체, 활동 중단으로 이어져 한국 스트릿 댄스는 점진적으로 하향세를 보였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Mnet》에서 방영한 <댄싱 9> 시즌 1~3으로 다시 스트릿 댄스 붐이 잠깐 일어나긴 했으나 오래 지속되진 못했다. 하지만 SNS 이용 확산으로 유튜브, 페이스북, 틱톡, 인스타그램의 짧은 영상 업로드에 장점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 춤이었다. 그중에서도 신체의 화려한 움직임을 지닌 스트릿 댄스가 SNS를 타고 전파되면서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댄서들이 자신의 춤을 SNS에 업로드 하여 국제적으로 알리는 등, 굳이 공연과 댄스 배틀을 하지 않아도 댄서로서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방송과 연계되어 유명해지기도 하고, 그런 유명세를 타고 다양한 일과 댄스 레슨을 하며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메이저급 국제 대회 공연 및 심사위원으로 초청되는 등,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SNS다. 이는 물론 오래전부터 스트릿 댄서들의 활동과 실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스트릿 댄스의 하향세에도 묵묵히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 있다. 경제가 어려워도 교육사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일까 아니면 한국의 교육열을 증명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스트릿 댄스가 그 특성상 도저히 전문교육이 힘들다는 편견을 깨고 중·고등 교육기관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2000년대 중반 평생교육을 목표하는 학점은행제 학교에서 스트릿 댄스 관련 학과를 개설했다. 그 이후 서울 지역 대학 안에 4년제 학사학위가 수료되는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스트릿 댄스를 직업으로 희망하는 청소년들도 학위를 수료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2009년 예술고등학교에 실용무용과가 신설되면서 스트릿 댄스의 전문교육 사업은 박차를 가하게 된다. 스트릿 댄스 교육은 학원뿐만 아니라 학점은행제 학교를 중심으로 분포되다가 점차 정식대학교에 신설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스트릿 댄스의 대중적인 인기도 한몫하였지만,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무용과가 위기를 맞게 되자 그 방편으로 스트릿 댄스를 ‘실용무용’ 이라는 교육적인 용어로 바꾸어 전공으로 개설하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서울, 경기 지역 4년제 정식 대학교와 전문대학에 개설된 실용무용 전공이 대략 10곳에 이르며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또한 대학원에서도 실용무용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곳이 신설되어 스트릿 댄스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스트릿 댄서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딴따라’, ‘공부 못하는 아이’라는 기존 사회적 인식에서 벗어나 예술가, 박사, 전문가, 지식인, 학자, 교수로서의 역량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4. <스우파>의 인기 요인


<스우파>는 《Mnet》에서 2021년 8월 24일부터 9부작으로 방송한 스트릿 댄스 경연 프로그램이다. 시청률 2.9%로 닐슨코리아 최고시청률을 기록한 <스우파>는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스트릿 댄스를 하위문화에서 주류문화로 끌어올리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 방송이기도 하다. <스우파>의 성공에 출연한 모든 댄서들의 노력과 헌신 그리고 말없이 뒤에서 희생한 프로그램 관계자들에 있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들의 노고와 더불어 오랫동안 스트릿 댄서들이 힘들게 닦아놓은 기반으로 프로그램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스우파>의 첫 번째 성공 요인은 댄서 개인에게 맞는 캐릭터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스우파>는 댄서들이 지닌 개성을 살린 캐릭터에 서사를 넣었는데, 요즘 시대가 요구하는 ‘센언니’, ‘걸 크러쉬(Girl Crush)’, 즉 시청자들이 환호하는 강한 여성의 이미지를 살려 스트릿 댄스 이미지에 잘 흡수시켰다. <스우파> 댄서들의 이러한 강한 여성의 이미지는 아이돌에게 편중되어 있던 여성 팬층을 <스우파>에 열광하게 만들면서 더욱 강력한 팬덤을 구축할 수 있었다. 또한 댄서 캐릭터에 서사를 입혀 상대 댄서와의 긴장 관계를 극대화하면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이와 더불어 상대 팀 댄서들에 대한 갈등 구조를 일상적인 언어와 제스처로 적나라하게 표출하여 시청자에게 부정적인 반응보다 친근한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는 점도 눈여겨볼만 하다.


두 번째 성공 요인은 스트릿 댄스의 정수인 ‘댄스 배틀’의 방식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점이다. 댄스 배틀은 댄서 개인의 실력을 음악과 분위기에 맞춰 즉흥적으로 표현하며 상대를 위협하는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는 형식이다. 댄스 배틀은 1970년대 미국 뒷골목에서 탄생했다. 갱들 간의 세력 다툼에서 사상자가 발생하자 이러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폭력 대신 춤(브레이킹)으로 대결을 하는 댄스 배틀이 시작되었으며, ‘배틀’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평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유태균?정은영, 2009). 갱들의 싸움을 폭력 대신 춤으로 해결하면서 탄생된 힙합 문화인 댄스 배틀이 스트릿 댄스 전 장르로 퍼지게 되어 <스우파> 방송에서까지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스우파>는 댄서 캐릭터에 인생 스토리를 입혀 상대 댄서와의 춤 대결 때 서사적 긴장 구조를 높여 댄스 배틀의 흥미를 상승시켰다. 특히 상대와 원수처럼 지내다가 댄스 배틀을 통해 서로의 공통점을 보여주며 화해로 마무리한 모습은 댄스 배틀의 평화의 의미를 잘 표현했다. 댄서들의 장점인 몸의 언어를 사용하여 춤 대결을 하면서 상대를 관찰하고 이해하며 화해한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재미와 새로운 문화를 선사했다고 파악된다.


세 번째 주목할 점은 댄서들의 ‘백업 댄서’라는 주변인에서 주인공으로의 변화이다. 그동안 가수 뒤에서 춤으로 공연 분위기를 높여주는 댄서로 인식되어온 백업 댄서는 무대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가수의 주변인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스우파>에서 댄서들은 무대의 주인공으로서 화려한 퍼포먼스와 댄스 배틀을 통해 자신만의 춤 스타일을 유감없이 발휘함으로써 춤 실력과 아티스트로서의 가치도 인정받게 되었다. 이를 통해 가수의 백업 댄서가 아닌 가수와 협업하는 아티스트로, 주변인에서 주인공으로서의 인식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시청자들에게 주변인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넘어 노력과 인내를 통해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관철시키는 모습으로 자아실현의 성취감과 대리만족을 주었다고 해석된다.



네 번째, SNS를 통한 스우파의 ‘밈(Meme)’적 현상이다. 스우파에서 보여진 댄스 배틀 장면과 화려한 퍼포먼스는 SNS를 통해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져 지속적으로 전파되고 있으며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시청이 가능하다. 그리고 댄서들뿐만 아니라 방송국에서도 적극적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다양한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어 방송이 종료된 상황에서도 그 인기가 시들지 않고 있다. 특히 <스우파> 댄서들이 보여준 재미난 말투, 행동, 패션, 춤, 안무 등은 클립 영상으로 공유되면서 사람들이 따라 하거나 패러디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것을 ‘밈(Meme)’이라고 하는데, 영국의 진화학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만든 이론으로 그 특성은 생물학적인 유전이 아닌 뇌에서 뇌로 유전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모방이다. 이 모방을 통해 한 사람이 지닌 매력과 특징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어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스우파>의 다양한 영상들이 SNS를 통해 전달되면서 흥미롭고 특별한 행동, 말투, 패션, 안무 등이 사람들의 모방을 거쳐 지속적인 공유와 전달이 이루어진다. 실제로 프로그램 중, 특정 미션 안무는 방송 즉시 유행이 되어 밈으로 퍼져나가는 동시에 일반인과 연예인들도 따라 하게 되었고, 이 영상을 SNS에 업로드하면서 더욱더 많은 밈이 확산되어 <스우파> 인기몰이에 크게 기여했다. 이처럼 전문 스트릿 댄서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와 춤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영향력을 확산시키려는 밈적 욕구가 있다고 한다(이우재, 2020). 이래서일까, 스우파 댄서들의 밈적 욕구을 통한 밈적 현상은 <스우파>가 상당한 인기를 끌 수 있는 촉진제가 되었으며, 방송이 종영된 상황에도 사람들이 모방한 영상을 SNS에 끊임없이 올리고 다른 예능 방송에서도 모방이 이어지는 등 그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또한 시대적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아 활동량이 적어져 주로 SNS 소비와 TV 시청 시간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들이 <스우파>의 인기 요인이자 인기가 지속될 수 있는 이유라고 판단된다.



5. <스우파>가 스트릿 댄스 문화에 미친 영향과 전망


<스우파>의 성공 여파로 여러 방송매체에서도 이와 유사한 스트릿 댄스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스우파>를 통해 스트릿 댄서들의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하여 <스우파> 전과 후의 댄서들에 대한 대우도 달라졌다. 이는 사회적 가치와 연결되며 경제적 가치로 나아간다. 특히 <스우파>에 출연한 팀들의 공연비는 기존 백업 댄서로 받던 금액에서 기존에 협업하던 가수들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개런티로 상승되었다. <스우파> 성공 여파로 광고 촬영과 더불어 예능 출연은 그들의 출연료를 상승시키는데 충분할 역할을 했으며, 이들은 댄서이면서 연예인이라는 두 가지의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로써 백업 댄서에서 가수와 협업하는 아티스트로 인식이 전환되고, 협업 댄서이자 안무가로서의 사회적 인식 개선과 더불어 전문직이라는 직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유로 차기 스트릿 댄스 관련 방송에서 출연료와 댄서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고, 댄서들도 <스우파>의 성공을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가치를 재평가하는 계기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스우파>의 인기와 사회적 영향으로 최근 KISO(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인 포털 인물정보 서비스에 ‘댄서’ 직업란이 신설되어 ‘스트릿 댄서’, ‘비걸’, ‘비보이’가 직업명으로 등재되었고, 이와 함께 ‘안무가’로 ‘댄스안무가’, ‘무용안무가’도 등재되었다(조성준, 2021). 사회적 인식변화와 직업분류체계 개정은 <스우파> 열풍이 스트릿 댄스 문화 전반에 미친 큰 영향을 보여준다.


대중들에게 <스우파> 열풍이 직접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시청자들이 ‘관람’에서 ‘참여’하게 됐다는 것이다. 뉴스와 언론에서 <스우파> 이후, 사람들이 취미 또는 전문적으로 춤을 추게 되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스우파> 홀릭으로 인해 댄스학원에 다양한 연령대의 등록이 20% 정도 증가하였고(이정후, 2021), 전문적으로 춤을 추는 사람도 늘어나 예술고등학교와 대학에 분포된 실용무용과의 학생지원율도 증가하고 있다(마숙종, 2021). 이처럼 <스우파>의 성공으로 스트릿 댄스와 관련된 교육은 댄스학원뿐만 아니라 정규교육인 예술고등학교와 대학교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예고와 대학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스우파>의 성공 여파로 그동안 하위문화로 인식되던 스트릿 댄스가 본격적으로 주류문화로 올라서게 된 점은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면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주류문화로서의 대중들의 기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우파 댄서들과 스트릿 댄서들의 끊임없는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다양한 연령층과 문화예술계의 전문가와 지식인들의 저변 확대를 위해 춤 실력에 버금가는 성숙한 인성과 지성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스트릿 댄서들 간의 오만, 질투, 시기심으로 인해 잘못을 지적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이해와 포용, 배려가 앞서야 할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스트릿 댄스가 대중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문화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댄서들의 관리와 더불어 정책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안무 저작권법 제정이다. 음악은 저작권 보호로 저작료를 받지만 안무 작품은 그렇지 않다. 이에 안무자의 창작품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와 관련된 전문가와 단체 등의 협의를 통해 안무 저작권법이 빠른 시일 안에 제정되어야 한다. 한편, 삼양식품은 대한브레이킹경기연맹에 브레이킹 저변 확대와 꿈나무 육성을 위해 3년간 5억 원을 지원할 것을 발표했다(이효정, 2021). 문화의 양과 질의 동반 성장을 위해, 정부도 스트릿 댄스 스타를 희망하는 청소년들과 전문 댄서들에게 목표를 잃지 않고 도전할 수 있도록 국내 및 국제 대회를 활성화하고 국립 스트릿 댄스 단체 창단 등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추진·반영해야 한다. 인재 양성은 올림픽 금메달 획득과 국위선양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이 되며, 다음 세대의 출연으로 문화의 발전을 지속 장기화 시킬 수 있다. 또한 스트릿 댄스의 공연예술, 영상매체, 과학기술과의 융합, SNS의 다양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정책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정책과 추진은 스트릿 댄스를 한국문화로 성장시키려는 주도적인 목적을 지녀야 한다. 실례로 프랑스가 ‘국립브레이킹단’을 창단하고 2024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면서 미국의 브레이킹을 개최국의 권한으로 정식종목으로 채택한 것은 자국 문화로 성장시키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실례를 통해 더이상 해외에서 유입된 스트릿 댄스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 칭송하기보다는, 비판적으로 재수용하여 한국적인 문화로 흡수, 성장시켜 다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댄서 그리고 대중들 모두 힘을 모아 응원하고 노력하였으면 한다. 이렇게 만든 문화는 우리의 것, 우리의 문화, 한국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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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ㅣ이우재 서울예술대학교 공연학부 실용무용전공 교수

     (출처 : 한류NOW 2022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