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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원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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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을 찾아온 신라 이야기

  • [등록일] 2017-11-20
  • [조회]523
 

‘경주 국립박물관’의 귀한 신라의 유물들이 이란을 찾아와서 ‘이란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신라와 페르시아, 공동의 기억’이란 제목으로 전시되는 이번 신라 유물들 전시회는 11월 5일(일)부터 12월 15일(금)까지 약 6주동안 전시되었다. 전시회에 앞서 11월 4일 (토)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경주 국립박물관 관계자들과 이란 국립박물관 관계자, 이란의 각종 언론 매체들이 참석한 기자 간담회가 있었다. 기자 간담회가 끝난 뒤에 한국 대사관과 한인회 교민들도 함께 참여한 개막식 행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이번 전시회의 열기를 보여주었다.

 

신라(기원전 57 ~기원후 935)는 한국의 대표적인 고대왕국으로서 약 천년 동안 존속하였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는 4세기~6세기의 거대한 왕릉들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으며 수많은 금제 장신구들이 출토되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 중에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외국의 유물들도 발견되었는데, 이란의 페르시아 유물들도 포함되어 있다. 7세기 후반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한 이후에 실크로드를 통하여서 페르시아의 문화와 사람들이 신라로 들어온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이란은 유구한 교류의 역사를 같이 공유하고 있으며 신라와 페르시아는 역사적으로 여러 공통점이 있음을 신라 유물들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신라 유물이 전시된 ‘이란 국립박물관’ 전시회장과 개막식 행사 모습>

 

한국에서 예전에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대부분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방문하여고대 천년 왕국 신라의 유물들을 직접 둘러보면서 감탄한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경주에 있는 고대 신라의 유물들은 지금도 한국의 학생들에게 유적지 관광으로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란의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와의 사랑 이야기는 <쿠쉬나메>라는 책을 통하여서 다큐멘터리, 연극, 오페라 등 여러 방송매체로 제작되어 널리 알려져 있다. 페르시아와 신라가 고대로부터 문물을 교환하였을 뿐만 아니라 핏줄을 통하여서도 하나로 맺어져 있다는 이야기는 한국과 이란 모두에게 흥미로운 내용을 간직한 신화로 남아있다.

 

특히, 신라 유물들 중에서도 한반도에 없는 동물인 사자상이 유명하다. 페르시아 왕국의 상징인 유물들 중에서 대표적 동물인 사자를 상징하는 유물이 고대 신라 유물에 있다는 것은 두 나라의 연관성을 나타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라의 향가인 ‘처용가’에 나오는 ‘처용’이 신라인이 아닌 고대 페르시아인이라는 설도 있다. 국보급 유물들 중에서도 장식보검, 문관 토용과 사자상은 페르시아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유력시 되는 유물들이다. 문관 토용은 큰 눈의 깊음과 턱수염, 큰 코가 페르시아인을 닮았다는 설이 있다. 장식 보검도 한국의 전통적인 검과 다르다.

 


<경주국립박물관 ‘유병하’ 관장이 이란 언론 기자들에게 유물을 설명하는 모습>

 

전시회장은 세 개의 전시실과 한 개의 영상 관람실로 되어있다. 전시회 팜플렛은 이란어와 한국어 두 개로 만들어져 있다. <제 1전시실에는 황금의 나라, 신라> 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고대인들은 사람이 죽어서도 부귀영화를 이어 나가길 바라면서 금제품을 무덤 안에 묻었다. 신라의 수도 경주에 있는 왕릉 속에서도 금으로 만든 각종 장신구가 많이 발견되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신라는 8세기~9세기에도 중국 당나라에 각종 금제품을 선물로 보냈다고 한다. 페르시아 출신의 지리학자인 ‘이븐 코르다드베’는 그의 저서 <도로와 왕국의 책>에서 신라에 대해 “이 나라에는 금이 많고 무슬림들이 일단 들어가면 그곳의 훌륭함 때문에 정착하고야 만다”라고 하였다. 신라는 오랜 시간 동안 ‘황금의 나라’로 인식되었다.

 

<제2 전시실에는 신라인의 삶>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신라는 여러 곳에 궁궐을 지었는데 인공 정원인 월지를 조성하여 건축과 조경에서 화려함을 더하였다고 한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당시 경주에는 부유한 사람들의 화려한 대저택인 금입택이 35채가 있었고, 신라 말기인 880년에도 민가에 기와집이 즐비했다고 한다. 당시 서라벌의 신라인들은 호화로운 도시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신라가 527년에 국가가 불교를 공인한 후에는 절은 하늘의 별만큼 많고 불탑은 기러기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불교 사찰이 많았다고 한다.

 



<신라의 국보급 유물들이 ‘이란 국립박물관’에 다양하게 전시된 모습들>

 

<제3 전시실에는 신라와 페르시아> 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신라는 ‘선덕여왕’을 비롯하여 세 명의 여왕을 배출한 유일한 나라이다. 비슷한 시기의 사산조 페르시아에도 ‘푸란도흐트’ 등의 여왕이 있었다. 4세기 ~6세기 신라의 왕릉에는 신라와 외국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페르시아 풍의 유리 용기가 대표적이다. 외국 유물들 중에는 수입한 것과 자체 생산한 것도 발견되었다.

 

이번에 전시된 신라시대 유물들은 모두 국보급 유물들로서 계림로 장식보검(보물 제635호)과 금제관식(국보 제87호), 용강동 무덤에서 발견된 문관토용(흙으로 빚은 인물상), 교동 사자상, 금관총 금제 관식,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 금관총 금제 허리띠, 문화재 102건이 포함된 신라시대 유물 144점이 전시되었다. 경주 역사유적지구는 2000년 11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신라시대 유물이 이란 국립박물관에서 6주동안 전시되는 만큼 많은 이란 사람들과 외국사람들이 찾아와서 관람할 것이다. 한국인 2세들도 가족들과 함께 많이 찾아와서 신라의 위대한 유물을 관람하며 한국의 문화유산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 사진출처: 통신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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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명 : 김남연[이란/테헤란]
  • 약력 : 현) 테헤란세종학당, 테헤란한글학교 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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