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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원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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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예 작품, 미국인들을 매료시키다

  • [등록일] 2019-07-06
  • [조회]67
 

LA 한인타운 인근, 윌셔(Wilshire)가를 운전하고 가다 보니 문화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에 우리 한글이 보인다. 띄어쓰기가 하나도 되지 않은 한글 문장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 누군가의 서예 작품 같아 보였다. 궁금증이 발동하여 자세히 들여다보니 LA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현재 전시되고 있는 서예전, <선을 넘어서: 한국 서예의 예술(Beyond Line: The Art of Korean Writing)>의 안내 포스터이다. 생활에 쫓기다가, 귀한 전시의 오프닝을 놓치고 말았다. 지난 616일부터 시작된 <선을 넘어서> 전시는 오는 929일까지 약 3달 반 동안, LACMA의 레즈닉 파빌리언(Resnick Pavilion)에서 계속된다. 오프닝은 놓쳤지만, 전시는 봐야겠다는 생각에 지난 74(), 독립기념일 휴일 오후, LACMA를 찾았다. 평소보다 훨씬 덜 붐비는 전시관에서 연휴의 한가로움을 즐기며 작품들을 감상하는 안젤리노들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서예전을 기획한 LACMA의 큐레이터, 스테픈 리틀(Stephen Little)은 한글에 대해 아름답고, 디자인이 심플하며 무척 현대적이다. 컴퓨터 그래픽 디자인 측면에서도 아름다운 디자인을 창조할 가능성이 크며, 유연한 글자로 다양한 디자인이 가능하다고 칭찬했다. LACMA의 디렉터인 마이큰 고반(Michael Govan)은 서예전을 시작하며 이번 전시는 서예라는 렌즈를 통해 한국의 역사, 문화,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말했다.

 

지난 616, LACMA<선을 넘어서> 전시를 시작하며 특별 이벤트를 열었다. 복원된 숭례문의 상량문을 쓴 서예가 소헌 정도준 선생이 LACMA의 빛 조형물(Urban Light) 앞에서 개막 서예 퍼포먼스를 펼친 것. 그는 초대형 화선지에 사람 키만한 붓을 양손으로 잡고 힘차게 붓을 놀려 문화의 힘이라는 네 글자를 써 내려갔다. LACMA 담당자는 방문객들이 생전 처음 대하는 서예 퍼포먼스에 적잖이 감동하는 모습이었다고 전한다. 정도준 선생이 다른 구절을 모두 놔두고 굳이 문화의 힘이라는 글귀를 쓴 이유는 김구 선생이 하셨던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이 문화의 힘이요, 이는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남에게도 행복을 주는 것이라고 하셨다라는 말에 기인한다. 정도준 선생은 또한 한자로 '원원유장(源遠流長 샘이 깊으면 멀리 흐른다는 뜻)'을 썼다. 그는 LA를 시작으로 한국의 서예가 더 멀리 뻗어 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구절을 썼다고 전한다.

 

이번 서예전에 전시된 90여 점의 작품들은 선사시대로부터 현대까지, 한국 서예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서예를 표현한 매체도 한지는 물론이고 도자기, 금속판, 직물 등 다양했다. 전시된 서예 작품들을 쓴 이들은 왕과 학자, 승려, 노비 등 사회의 각계계층이 총망라됐다. 추사 김정희와 신사임당 등 한국 서예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었다. 입구에 전시된 서세옥 작가의 <사람>은 흰 한지에 까만 먹으로 힘차면서도 단순하게 사람의 형태를 그린 것으로 강렬하게 방문자들의 시선을 끈다.

 

윌셔 거리에서 휘날리던 전시를 알리는 글귀가 적힌 족자도 눈에 띄었다. “흘성루예로구나. 앞을 보니 눈부시다. 천봉을 주름잡아 둘러 이 어이 저러한고.”로 시작되는 글귀는 서예가 김충현 선생이 정의당 선생의 <금강시>를 쓴 것. 일중 김충현 선생은 통신원이 졸업한 창문여자중학교와 창문여자고등학교의 이사장이기도 했던지라,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미국 땅에서 김충현 선생의 작품을 대하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경원원년이 새겨진 벽돌 조각도 한국에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LA까지 와 안젤리노들에게 한국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백자 연적과 붓, 벼루 등 운치 넘치는 문방사우를 LACMA에서 대하는 느낌도 남달랐다. 황성신문독립신문의 판본도 전시돼 있었다. 서예는 아니지만 인쇄물 역시 한글의 글씨체를 볼 수 있는 좋은 단서였다.

 

개막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던 정도준 선생의 작품, <관해정>은 서예라기보다는, 글자들의 배열과 필체가 마치 앙리 마티스의 <댄서(Dancer)>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진한 감색의 한지 위에 금박으로 (Emptiness)’를 써넣은 김순옥 작가의 작품 역시 서예라기보다는 극도로 단순화된 추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박대성 작가의 <산고수장, 금수강산> 두 폭의 작품을 보던 한 현지인 여성이 통신원에서 묻는다. “저 작품 뜻이 무언가요?” 도저히 뫼 산 자(), 높을 고 자() 뒤에 오는 글자들을 알아볼 수가 없어 산이 높다는 뜻밖에는 잘 모르겠어요.”라며 옹색하게 답을 해주었는데도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한국의 문화, 너무 깊고 멋져요.”라는 칭찬까지 받았다.

 

김종원의 <문문자자 금강경, 그 서적 변상>을 대하며 이 작품을 만든 작가의 진지한 표정을 상상해봤다. 글씨가 그림으로, 또 새로운 상징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안상수체로도 유명한 안상수 작가의 <해변의 폭탄 물고기>는 또 다른 상징의 체계로 방문객들을 초대하는 작품이었다.

 

전시 공간 가운데는 벽면에 기억 니은 디귿 등 자음들을 길게 늘어놓은 곳도 있었다. 현지인들은 이국적이지만, 아름다운 글자에 매료된 모습이었다. 중국 사신들이 글씨를 보고 이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말하게 했던 안평대군의 액자는 그의 기개를 짐작하게 할 만큼 힘찼다. 전시작품 중 압권은 광개토왕비의 비문을 찍어내 전시한 것이다. 내용이 많아 벽면 하나를 완전히 차지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속에서도 글씨를 쓰고 조각한 장인의 솜씨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세월을 뛰어넘어 후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었다.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로제타 스톤에 미치지 못할 이유가 없는 유물이다.

 

재닛 파머(Janet Palmer)라는 여성은 방탄소년단의 나라, 코리아의 언어 중 글을 예술로 만들어 전시한다고 해서 왔습니다. 한국인들이 부럽네요. 자신들만의 독특한 언어 체계가 있어서요. 그리고 한국인들은 방탄소년단의 <달려라 방탄>을 보면서 따로 영어 해석을 참고하지 않고도 곧바로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어요? 한글은 보기에도 무척 아름다운 글씨인 것 같네요.”라고 말한다.

 

한글은 흘려 써도 좋고 또박또박 써도 좋다. 두껍게 써도 좋고 가늘게 써도 멋지다. 물론 이번 전시에는 한자 서예 작품도 있었지만 한지에 표현된 한글을 보며 다시 한번 세종대왕님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전시장을 나섰다.

 


<서세옥 작가의 작품, 사람>

 


<고구려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글자가 새겨진 벽돌>

 


<전시회에서 만난 문방사우>

 


<서예가 김충현 선생의 작품. 정의당의 금강시>

 


<광개토왕비에 새겨진 작품들>

 


<안평대군의 서예작품>

 


<정도준 작가의 관해정>

 


<박대성 작가의 산고수장, 금수강산>

 


<김종원의 문문자자 금강경, 그 서적 변상’>

 


<백자에 그려진 서예작품들>

 





<전시 공간에 걸린 작품>

 

사진 출처 : 통신원 촬영

통신원이미지

  • 성명 : 박지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미국(LA)/LA 통신원]
  • 약력 : 현재) 라디오코리아 ‘저녁으로의 초대’ 진행자.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 수료. 마음챙김 명상 지도자. 요가 지도자.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미주 한국일보 및 중앙일보 객원기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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