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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40여개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KOFICE 통신원들이 전하는 최신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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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의 조선인 신학생

  • [등록일] 2020-09-23
  • [조회]117
 

말레이시아 북부 지역의 아름다운 섬 페낭에는 파리외방전교회가 운영하는 성직자 양성소인 페낭 신학교가 있다. 페낭 신학교는 종교 박해로 신학교를 세울 수 없었던 아시아 지역에서 사제 양성소 역할을 하면서 한국을 포함해 중국과 일본, 태국 미얀마 등 아시아 각지의 신학생들이 이곳에서 사제 수업을 받았다. 페낭 신학교의 역사는 1665년 파리외방전교회가 태국의 아유타야에 개교한 ‘천사들의 신학교’에서 출발한다. 이후 신학교는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 등으로 이전했다가 1808년 페낭 풀라우 티쿠스로 옮겨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조선은 1855년을 시작으로 1858년과 1882부터 1884년까지 신학생을 파견했고 이 가운데 12명이 사제 서품을 받았다. 

 


<조선 신학생들이 공부하던 옛 페낭 신학교 모습 - 출처: '가톨릭평화신문'>

 

1855년 현 청주교구 배티 성지에서 생활하던 이만돌(바울리노), 김요한, 임 빈첸시오 3명의 조선인 신학생은 메스트로 신부의 뜻에 따라 최양업 신부가 페낭으로 보낸 최초의 조선 유학생이다. 세 명의 유학생들은 1854년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가 있는 홍콩으로 건너간 후 1855년 ‘페낭신학교 조선인신학생 1기’로 페낭 신학교에 입학했다. 1880년대 한불조약 체결로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자 조선에서는 본격적으로 페낭 신학교에 유학생을 보냈다. 1882년부터 1884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21명의 신학생이 페낭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페낭에 유학한 신학생들이 모두 풍토병으로 고생하자 조선교구는 1890년부터 1892년까지 모든 신학생들을 귀국시켰다. 당시 페낭 신학교에서 공부한 조선 신학생들의 기록은 최승룡 신부가 발견한 사진에 남아있다.

 


<1886년 페낭 신학생 사진 - 출처: 마르코성지순례>

 


<1888년에서 1890년 사이로 추정되는 '우도 신부와 조선인 신학생들'사진 - 출처: '안성신문'>

 

최승룡 신부가 2003년 발견한 사진에는 1886년 페낭 신학생 사진과 1888년에서 1890년 사이로 추정되는 우도 신부와 조선인 신학생들 사진이 있다. 1886년 조선인 신학생을 포함한 페낭 신학생이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에는 풍토병으로 페낭을 떠나 귀국한 네명을 제외한 17명의 조선인 신학생 모습이 남아있다. 또한 1889년에서 1890년 사이에 우도 신부와 함께 촬영한 조선인 신학생 사진에서는 신학교에서 공부한 조선인 유학생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풀라우 티쿠스에 있는 샤스팅 신부 성상. 옆면에는 '성 샤스턍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한글 문구가 적혀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아시아 복음화에 큰 역할을 한 페낭에는 조선인 신학생들과 조선에서 순교한 신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탄중 붕가에 위치한 페낭 신학교에는 한국이라는 순교지명과 함께 새남터 순교장면을 담은 그림과 한국의 순교자와 성인을 그린 그림 그리고 한국가톨릭의 순교역사에 관한 책자를 전시하고 있다. 또한 풀라우 티쿠스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마리아 성당(Church of the Immaculate Conception)에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로 처음 조선에 오셨다가 순교한 샤스탕 신부의 동상이 있다. 조지타운의 페낭교구박물관에서도 조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곳에는 조선에서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유해와 천주교 박해인 신유박해(1801)의 전말과 순교자의 행적 등을 적은 ‘황사영 백서’ 사본을 찾아볼 수 있다. ‘황사영 백서’는 신유박해 때 제천 배론으로 피신한 황사영(1775-1801)이 신유박해에 대한 설명과 함께 순교자 체포 등에 대해 가로 62cm, 세로 38cm의 흰 명주천에 가는 붓으로 써내려간 기록이다.

 


<페낭교구박물관에 보관된 김대건 신부의 유해 성합 - 출처: 통신원 촬영>

 


<페낭교구박물관에 보관된 '황사영 백서' 사본 - 출처: 통신원 촬영>

 

조선인 신학생들이 공부했던 페낭 신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거니플라자와 거니파라곤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옛 모습 대부분이 사라졌다. 하지만 쇼핑몰 공사 당시 페낭 신학교 건물의 일부인 성요셉학교를 허물지 않고 보존하여 과거의 일부 모습을 지금도 만나볼 수 있다. 이역만리 말레이시아에 위치한 페낭은 이렇게 한국 한국 천주교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으며, 페낭에서도 조선 초기 가톨릭 신자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 참고자료

《안성신문》 (20. 9. 23.) <35. 1929년, 미리내에서의 삶과 죽음>, http://www.assm.co.kr/1693

《가톨릭평화신문》 (03. 5. 11.) <19세기 말 페낭신학교 조선 유학생 사진 공개>,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179600&path=200305

《가톨릭평화신문》 (17. 2. 19.) <[다시보는 최양업 신부] (23) 3년간의 사목 중심지>,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671762&path=201703

《가톨릭평화신문》 (04. 1. 1.) <특별탐사-페낭신학교를 가다 <1>>,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190718&path=200312

《가톨릭평화신문》 (19. 6. 16.) <[서울대교구 순교자 현양위원회 공동기획 아시아 교회 복음화 길을 따라서] 아시아 순교자의 영적 고향, 말레이반도 -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1>>,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755184&path=20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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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명 : 홍성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말레이시아/쿠알라룸푸르 통신원]
  • 약력 : 현) Universiti Sains Malaysia 박사과정(Strategic Human Resource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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