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전체 검색영역
  • Twitter
  • Facebook
  • YouTube
  • blog

전세계 40여개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KOFICE 통신원들이 전하는 최신 소식입니다.

각 국에서 사랑받고 있는 한류소식부터 그 나라의 문화 소식까지 매일 매일 새롭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멕시코로 망명한 젠 루이스 빈라 왕자

  • [등록일] 2021-08-30
  • [조회]171
 


카메룬 젠 루이스 빈라 왕자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억압, 인권 유린 뉴스로 온 매체가 떠들썩하다. 난민 문제 역시 화두로 떠올랐다. 멕시코 역시 아프간 난민 요청을 처리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난민은 아프간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현재 멕시코에 거주 중인 젠 루이스 빈라(Jean Louis Bingna) 카메룬 왕자가 대표적인 사례다. 카메룬 바분 술탄 궁전에서 태어나 야운데 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학위를 받은 그는 카메룬 국가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싸우기 위해 창설한 인민연합(UPC)정당의 창립자, 루벤 엄 니오베(Ruben Um Nyobé)의 외손자이다. 1990년에, 모스크바에서 카메룬으로 귀국해 외할아버지의 정당을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 헌신했다.

 

카메룬이 당시 처했던 정치적 갈등, 사회경제적 조건의 배경은 왕자가 인류의 보편적 권리와 가치를 위한 싸움을 시작하기 위해 새로운 정당(Parti du Nouveau de Cameroun)을 창설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 이유로 카메룬 정권에 암살 위협을 받은 왕자는 7명의 이사회 구성원과 아프리카를 떠나야 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젠 루이스 빈라 왕자는 2011년 멕시코로 망명다. 그 이후에도 그는 멕시코에 거주하며 인권과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고 다른 프랑스어권 및 아프리카 국가의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인류를 위한 교육, 문화 및 원조 활동에 대한 그의 탁월한 성과와 리더십으로 2014년 다문화대학(CUDEC)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에도 인권 수호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다른 푸에블라대학, 멕시코주행정대학 등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다양한 공립 및 사립 교육 기관뿐 아니라 국내 및 국제적 명성이 높은 다양한 기관 및 조직에서 강의해오고 있다. 멕시코의 취약계층을 돕는 행동 역시 멈추지 않고 있다.

 


 

카메룬의 독립 지도자 루벤 엄 니오베. 왕자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하다. - 출처 : wikimedia>

 

왕자는 처음 난민 자격으로 몇 년 동안 멕시코에서 머물렀다. 카메룬에서 그의 외할아버지 루벤 엄 니오베는 독립의 아버지로 기억되는 인물로, 인종 차별에 맞서 넬슨 만델라와 함께 싸운 위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왕자는 자신을 혁명적 혈통의 왕자로 정의한다. 멕시코시티 산 코스메(San Cosme) 소재의 아파트에 거주하며 인권 운동가 겸 교사로 일하고 있다.

 

왕자는 정치적 이유로 국가를 떠나야만 했기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다. 그는 왕좌의 상속인이 될 권리, 12명의 아내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는 전쟁과 부족 분쟁으로 분열된 자신의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그의 왕자 권리를 포기했다. 그가 표현한 카메룬은 32년 동안 장기집권한 대통령, 언론의 부자유, 교육의 권리 불인정, 소수의 기득권 세력 등으로 설명된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역사책 그 이상이다. 나는 너무 복잡한 삶을 살았다.”라고 묘사한다.

 

우리 가족의 모든 삶은 인권, 여성, 문화, 어린이 및 모든 사람의 권리가 존중되는 인류를 위한 투쟁 중 하나이다. 그것이 내가 멕시코에 있는 이유이다. 나는 세계의 다른 지역을 여행하고 싶거나, 일자리의 문제로 고국을 떠난 사람들과는 다르다. 망명은 정치적 견해로 선택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저항과 억압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14세에 처음 시위에 참여하여 당시 재학하던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그는 '작은 혁명 동아리'를 조직했는데 구성원 3명이 사망하고 체포되며, 대학동아리방도 불타는 수모를 겪었다. 그는 합법적으로 등록된 300개의 정당이 있지만, 1982년 이래 집권한 정부에 대해 반대를 던진 정당은 5개뿐이었다. 새로운 정당(Partie Nouveau Cameroun)을 구성할 권리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으나 만 1년이 걸렸고, 이를 요구하는 집회에서는 3,000명이 체포됐으며 300명이 사망했다고 말한다.

 

당시 프랑스 대사는 그의 여동생과의 친분으로 왕자의 이름이 정부가 제거하기로 한 사람들 목록에 포함돼있음을 알렸다. 왕자는 같은 날 밤, 당 지도부를 만나 미국, 프랑스, 영국 등에 망명을 신청한 후 여성 분장을 하고 동지들과 함께 탈출했다. 최종적으로는 멕시코에서 정치적 난민으로 받아들여졌다.

 

멕시코에 정착한 그는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 지역 사회 또는 개인 등 약 9억 명을 대상으로 하는 조직, 프랑코포니(Francophonie) 프로젝트에 전념하고 있다. 동 단체는 언어의 보존 및 연구뿐만 아니라 문화 보급, 교육, 민주주의의 확장 및 기술 격차 해소 등에 중점을 두고 활동해오고 있다. 임무에는 멕시코 문화 홍보도 포함된다.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그는 대한민국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며 한국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도 언급한 바 있다.

 

멕시코에서 거주하는 필자는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문화와 생각을 접하게 된다. 젠 루이스 빈나 왕자 다음에는 어떤 사람, 어떤 문화를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된다. 좋은 인연,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소개할 수 있길 바라본다.

 


젠 루이스 빈라 왕자와의 줌(Zoom) 인터뷰 출처 : 통신원 촬영

통신원이미지

  • 성명 : 조성빈[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멕시코/멕시코시티 통신원]
  • 약력 : 전) 재 멕시코 한글학교 교사 현) 한글문화원 원장
  •  
  • 등록된 글이 없습니다.
  •  
  • 덧글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