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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헐리우드를 모두 사로잡은 배우, 천의 얼굴 최민식

  • [등록일]2014-09-24
  • [조회] 5405

배우 최민식에게 2014년은 겹경사가 나란히 찾아온 다복의 해다. 영화 <명량>으로 데뷔 25년 만에 ‘천만 관객 배우’라는 타이틀에 등극했고, 비슷한 시기에 첫 헐리우드 데뷔작인 <루시>가 개봉하며 전 세계 흥행 수익 3억 달러(한화 3102억원)를 돌파했다. 상반된 두 캐릭터를 훌륭하게 그려내면서 배우로서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이순신’과 ‘미스터 장’이 그리는 양극단에 관객들은 빠져들 수 밖에 없다. 그는 그렇게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몸으로 이야기 한다. 여기, 이러한 사람들이 있다고. 최민식이 아닌 극 중의 캐릭터를 바라보라고……

 

 

그러나 그는 <명량>에 출연을 결심하면서부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영웅이자 역사상 세종대왕과 함께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인 ‘이순신’을 연기하는 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 분명하다. 이미 명실공히 한국의 대표 연기파 배우로 공인된 최민식이 연기하는 ‘이순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 또한 그의 부담감을 배가 시켰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실재했던 한국 역사상 최고의 인물을 모사하기 보다는, 그 인물 자체가 되기 위해 남다른 책임감과 사명감을 통해 각고의 노력과 고민을 했다고 한다. 난중일기를 보며 ‘이순신’이 가진 특성과 일상적인 디테일을 하나하나 이어 붙이고, 죽음까지 불사하겠다는 승리에 대한 갈망을 가슴 안에 품었다. 그렇게 최민식은 ‘이순신’으로 다시 태어나 저돌적이고 의지가 강한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대장부가 되었다. 본인의 연기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는 희망을 밝힌 그 덕택에, <명량>은 스크린 독점, 다소 고르지 못한 드라마 구성에도 불구하고 유례없는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최민식을 25년 만에 처음으로 ‘천만 관객 동원 배우’라고 불리게 해준 작품인데, 그의 반응이 의외다. 단순히 수치만으로 이 작품의 성패가 갈리기 보다는 영화 내적으로 논의가 되고, 논란이 일고, 또 관찰이 있었으면 한다는 조심스러운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가 개봉되면 의례 출연 배우들이 공중파 보도국의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영화를 홍보하곤 하는데, 그는 예능은 커녕 그 어떤 광고나 작품 외 행사에도 얼굴을 비춘 적이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산업으로 받아들이기 보다, 본질적인 작품으로서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 것처럼 보인다. 현재의 모습에서 안주할 수 있는 부분을 찾기보다는 더 넓은 바다와 더 먼 산을 볼 줄 아는 배우. 그것이 베테랑 배우가 된 지금도 자신의 연기가 부끄럽다 말하는 최고의 배우로 만든 것이 아닐까?

 

또 다른 작품, <루시>에서 최민식은 “영화를 구했다(월스트리트 저널)”고 평가될 정도의 극찬을 받았다. 다소 부진 했던 영화의 평점을 높여주며 이전 영화 ‘솔트’와 ‘본 레거시’의 북미 흥행 수익을 넘어서는 데 일등 공신의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그가 연기한 ‘미스터 장’은 주인공 ‘루시’를 위험에 빠뜨리고, 그녀의 복수심을 불러 일으켜 갈등의 중심에 서는 악역이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람객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가 영화 스크린에서 내뿜어댄 악함, 카리스마를 찬탄할 수 밖에 없었다. 며칠 전 본 <명량>에서 많은 한국인들의 감성을 자극했던 명장 ‘이순신’ 역할을 분하더니, 며칠 새에 그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여 다시 관객들을 찾은 것이다.

촬영 전까지 최민식은 대부분 부하들에게 명령 혹은 지시하는 연기가 대부분인 캐릭터를 맡았다고 생각했다 한다. 그러나 뤽 베송 감독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미스터 장’이 직접 선두에 서서 무게가 상당한 기관총을 양 손에 뽑아 들고 커튼이 펼쳐지는 모양으로 난사하는 씬을 구상한 것이다. <올드보이>(2003) 오대수를 연기하는 최민식의 영상을 보고 그를 캐스팅했다고 하는 뤽 베송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악한 본질이 보다 극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되기를 원한 것이다. <쉬리>(1998) 이후의 25년만의 총기 액션신이었지만, 최민식은 감독의 디테일한 요구 사항을 모두 이행해 내었다고 한다. <루시>를 본 관람객들이 하나같이 명장면으로 꼽는 총기 난사 장면은, 최민식의 연기력에 기대를 걸었던 뤽 베송 감독과 실제로 그것을 연기해낸 최민식의 감각적인 콜라보였던 셈이다.

또 다른 명장면은 바로 ‘미스터 장’이 첫 등장하여 주인공인 ‘루시’를 대면하는 부분이다. 이 장면에서 최민식은 ‘루시’를 향해 한국어 대사를 하는데, 이는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주인공이 느낄 불안함과 두려움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설정되었다. 이 때문에 한국인들이 같은 장치를 통해 불안감을 느낄 수는 없겠지만, 다른 작품에서는 느낄 수 없던 최민식의 발성과 목소리를 통해 이 장면이 전달하고자 하는 심각함에는 동화될 수 있다. 그의 존재감이 뿜어내는 악역의 아우라가 우리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몰아넣기 때문이다.

단순한 장면의 하드웨어적인 소품이 아니라, 캐릭터의 존재감 자체가 가져오는 공포는 관람객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그리고 최민식은 자기자신의 존재가 그러한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안으로는 연기력의 내실을 다지고, 밖으로는 철저한 캐릭터 분석을 통해 새로운 존재감의 아우라를 발현해나는 배우이다. 그렇게 그는 제 3의 전성기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거쳐나가고 있는 것이다.

2014년 최민식의 연기 스펙트럼을 더욱 극대화 시켜준 <명량>, <루시>,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배우 ‘최민식’을 통해 작품의 호평을 이끌어내었다는 점이다. 명량은 천만 관객을 돌파하고 흥행 수익면에서 성공을 거뒀지만 작품의 내러티브, 즉 서사 적인 면에서 관람객의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평이 많았다. 실제로 ‘최민식의, 최민식에 의한, 최민식을 위한 이순신 영화’에 불과했다는 평에 동감한 관람객들이 대다수였고, 그 외 음향, 대사 처리, CG의 부조화 등도 한계점으로 꼽혔다. <루시>는 평범한 악당의 능력에 비하여 지나치게 전지전능한 위력을 가진 주인공 혼자만의 사투를 장면으로 나열하여 역시 관객들의 공감이나 심리적 서사를 충분히 그려내지 못했다는 언론 리뷰에 그쳤다. 두 작품 모두 드라마가 부족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 부분에서 입체적인 인물을 생동감 있게 연기해 낸 최민식의 공로가 그만큼 컸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다시 한 번 배우의 역량이 작품의 전체적인 평가, 성패를 어떻게 좌지우지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고, 오랜 시간 동안 연극 무대와 영화의 가장 낮은 곳에곳부터 내공을 쌓아온 대한민국 대표 배우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싶게 만들었다.

최민식은 동국대 재학 시절, 〈구로 아리랑〉(1989)으로 첫 영화를 시작하여, 졸업 후 바로 연극 배우로 활동한 뒤에야 KBS 드라마 <야망의 세월> (1989)에서 꾸숑 역을 맡아 인기를 실감하게 되었다. 그 이후, <넘버 3>를 통해 연기력에 대한 극찬을 받으며 영화 스크린에 데뷔했고 역작으로 평가되고 있는 <쉬리>를 통해, 당시 이미 정점을 찍고 있던 한석규와 함께 열연하여 당해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줄곧 한국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단의 중심에서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충무로 터줏대감으로, 〈올드보이〉(2003)에서의 선 굵은 연기로 해외 전문가들의 큰 찬사를 받으며 배우 인생에서의 절정기를 맞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