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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 3월 한국영화의 성적이 좋지 않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3년 <7번방의 선물>(1,281만 명)과 2014년 <수상한 그녀>(865만 명)가 2월의 영화시장을 완전 장악했던 것과 비교하면, 분명 <오늘의 연애>(189만 명), <허삼관>(95만 명), <강남 1970>(219만 명), <쎄시봉>(171만)의 성적은 꽤 실망스럽다. 하지만 <7번방의 선물>이나 <수상한 그녀>는 당시 배급사가 300만 명 정도를 목표로 한 영화였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오히려 쏠림 현상을 일으킨 이 영화들이 비정상적으로 잘 된 경우였다. 작년 천만영화가 쏟아진 이후의 후유증도 있고, 이만하면 한국영화가 숨 고르기를 할 때가 됐다. 더불어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피로도가 누적된 것은 아닌가 체크를 해 볼 필요는 있다. 3월에는 권력에 대한 야망과 욕정을 담은 사극 <순수의 시대>까지 12일 동안 고작 4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치면서 참패를 당했다. 그 동안 극장에서 효자손 노릇을 톡톡히 한 로맨스, 느와르, 복고풍 드라마, 사극까지 모조리 무너진 셈이다. 그나마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만 겨우 이름값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개봉한 <살인의뢰>에 더욱 시선이 가는 것은 배급이 씨네그루㈜다우기술이기 때문이다. 역시 메이저가 아닌 중소배급사가 스릴러를 중간 사이즈 규모로 개봉해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둘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결과부터 살펴보면, <살인의뢰>는 개봉 5일 동안 53만 명을 모았다. 겨울 영화시장의 성수기가 끝나고 3월 중순에 개봉한 점이나 개봉 첫날의 스크린 수가 481개인 것을 고려하면 큰 점유율을 차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3월 14일(토)의 관객수가 18만 명으로 나쁘지 않은 흐름이었지만, 다음 주 16일(월)의 관객이 4만 명으로 크게 줄면서 적신호가 켜졌다. 현재 <살인의뢰>의 흥행 패턴을 보면 대략 손익분기점으로 예상되는 170만 명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연쇄살인범에게 가족을 잃은 피해자의 복수극 <살인의뢰>는 사형을 언도받아도 처형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 제도의 문제점을 슬쩍 건드리고 있다. 연쇄살인범의 만행과 제도적 모순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촉매제로 활용되고 있다. 으레 입소문이 나면 관객들의 울분이 흥행요소로 작동할 수 있다고 판단한 기획이지만, '소재주의'라는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무엇보다 <살인의뢰>의 난관은 스릴러의 쾌감과 사회적인 화두,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자 하는 시도에서 기인한다. 기본적으로 <살인의뢰>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기 위해 노력한 영화다. 그 진정성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지만, 그런 도전정신이 오히려 늪에 빠지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영화적으로 평가하자면, 오락성과 사회성, 두 축에서 어느 것도 뚝심있게 밀어붙이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액션이나 서스펜스의 재미는 다소 부족하고, 드라마는 공감대를 형성할 정도로 감정의 깊이를 확보하지 못한다.
범죄와 현실의 연계성을 찾는 것이 어느 정도 마케팅적인 노림수로 통하면서, 최근 스릴러 영화들은 공소시효 같은 제도적 한계를 건드리고 있다. 그간 스릴러 영화들의 패턴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2000년대는 실화 사건 위주였다. 미제사건을 다룬 영화들이 줄줄이 나왔다. 2003년 1980년대 연쇄살인극 <살인의 추억>이 525만 명이나 볼 정도로 큰 흥행을 일으킨 이후, 이런 소재의 영화들이 기획 단계에 들어갔다. 실화를 토대로 현상 수배극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그놈 목소리>는 2007년 314만 명의 관객을 모으고 큰 사회적 이슈로 회자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또 2011년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다룬 <아이들...>은 186만 명이 사건의 진실을 일고 싶어했다. 그 와중에 2007년 <세븐 데이즈>가 등장하면서 범죄 스릴러 영화의 색깔이 크게 변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미드의 영향을 받아 이야기의 속도가 빨라지고 영화 편집이 스타일리시하게 돌변했다. 이런 류의 영화는 범인 찾기 게임이나 반전을 영화적 재미로 적극 활용하면서 관객과의 두뇌싸움을 주도했다.
최근에는 실화극이나 범인찾기 게임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현실의 부조리나 모순, 암울한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담기 시작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호러 영화들이 시장에서 사라지고 더 각광받는 것이 스릴러라는 점이다. 특히 여름 시장에서 호러 영화가 붕괴되면서 불안과 긴박감, 사회적 이슈를 토대로 한 스릴러들이 성공을 거두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13년 7월 말에 개봉한 <더 테러 라이브>와 8월에 개봉한 <숨바꼭질>이다. 여기에 작년 여름, 비리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끝까지 간다>가 나오면서 점점 주인공에 몰입된 관객들이 심리적 압박을 당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마치 RPG처럼 1인칭 시점으로 액션 게임을 짜릿하게 즐기는 기분이었다.
따라서 최근의 성공 사례와 비교해도 <살인의뢰>는 스피디한 방식으로 주인공(동시에 관객)을 혼란에 빠뜨리는 영화와는 거리가 있다. 너무 뒤늦게 불시착한 영화처럼 민첩하지 못하게 전적으로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이다. 물론 성폭력과 학대를 고발하는 <도가니> 류의 사회성 드라마라면 그런 정공법이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인 이슈를 스릴러의 뼈대 안에서 해결하려는 <살인의뢰>는 사회성 짙은 주제의식, 폭발적인 감정을 고조시키는 드라마, 스릴러의 묘미 등 어떤 것도 도드라지게 소화하지 못한다. 형사 태수(김상경)의 여동생이 강천(박성웅)에게 희생당하고, 그를 태수가 뺑소니범으로 잡는다는 첫 설정부터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우연성에 의존한다. 하지만 이것을 영화적 허용이라고 생각하고, 쉽게 넘어간다고 해도 드라마가 서서히 힘이 빠지는 것을 막을 순 없다. 캐릭터들의 연기대결이나 호흡도 마찬가지다.
또한 연쇄살인범을 다루는 시각이나 방식도 이성보다는 강렬한 자극만이 남을 뿐이다. 2008년 <추격자>의 영민(하정우)이나 2010년 <악마를 보았다>의 경철(최민식)같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면서 더 이상 이해할 필요가 없는 '타자' 사이코패스가 스크린을 점령했다. 강천은 그런 캐릭터들의 계보를 충실히 잇는 괴물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세계>의 중구 캐릭터 이후 제2의 연기인생을 살고 있는 박성웅이 섬뜩하게 연기를 잘 할수록 영화는 이질감이 생긴다. 그의 연기적 아우라가 지나치게 픽션적인 상상력으로 뻗어나가고 있기에 사회 문제를 냉철하게 다룬 리얼리즘 영화와는 결이 다르게 다가온다. 애초에 강천이 다시 살인을 벌이는 들판에서 태수가 총을 뽑는 방식의 엔딩은 결코 데이비드 핀처의 <세븐>(1995)이나 제2의 <살인의 추억>이 될 수 없다.
할리우드식의 스릴러도 감정에 깊이 호소하는 한국식 드라마도 실패하고 만다. 태수의 후배 형사로 나온 조재윤의 외침('왜 경찰에게 총을 쏘는 거야!')이 아무런 호소력을 얻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드라마에 몰입하기 어렵다는 반증이다. 연쇄살인범에게 복수하기 위한 살인의뢰. 범죄자(조폭)와 피해자의 숨겨진 계약. 이것이 그나마 차별화된 방식으로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이들의 밀담(거래)은 스릴러의 미래를 약속하진 않는다. 앞으로도 불안이 팽배한 대중심리나 사회적 쟁점을 재해석하기 좋은 최적의 장르는 스릴러가 될 것이다. 한국영화의 풍요로운 원천을 위해, 한국형 스릴러는 더욱 영리하게 진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