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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그 가능성과 한계

  • [등록일]2020-04-10
  • [조회] 13504

한국영화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그 가능성과 한계




영상 미디어로서 영화의 상징성과 문화적 파급력, 산업의 규모 등은 영화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거점 콘텐츠로 활용되기 유용한 조건이 된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영화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자본과 기획력의 한계를 쉬이 넘어서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미디어 컨버전스 시대의 이 새로운 전략을 남의 것으로만 도외시할 수도 없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더 이상 미디어 전환 및 결합의 실험적 시도에 머무르지 않으며, 이미 상업적 전략으로서 그 성과들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완성도 높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구현하는 한국의 마블, 아시아의 디즈니는 가능할까. 이에 대한 단서를 기존 한국영화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시도 사례와 함께 분석하며, 그 제반 조건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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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1. 영화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trans-
1. <‘횡단’, ‘초월’의 뜻을 나타냄> 2. <다른 장소ㆍ상태로 변화ㆍ이전함을 나타냄>


한 포털사이트 영어사전에 기재된 접두사 ‘trans’의 의미이다. 이 사전적 의미를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으로 옮겨보자면, 미디어를 초월하는 스토리텔링 혹은 미디어를 변화하며 나타나는  스토리텔링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다. 어떠한 이야기가 미디어를 초월한다거나 횡단한다는 것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에서 있어서 미디어의 구분이 의미 없음을 뜻한다. 반면 스토리텔링에 있어 미디어의 이동과 관련된 (한국 학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개념들인 OSMU나 매체전환 스토리텔링에서는 미디어의 구분이 의미를 갖는다. ‘One Source’와 매체를 ‘전환’한다는 개념은 성공한 원작을 미디어를 바꿔가며 다시 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와 같은 스토리텔링의 미디어 전환 개념들에서는 원천콘텐츠의 중요성이 크다. 따라서 원천콘텐츠가 어떤 미디어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유의미해지는 것이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개념은 이와 다르다. 많은 학자들이 미디어 컨버전스(media convergence)에 있어 인용하는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다양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고 각각의 새로운 스토리가 전체 스토리에 가치 있는 기여를 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사용하는 것은 기존의 매체 전환 스토리텔링 개념과 같지만, 각각의 ‘새로운 스토리’가 전체 스토리에 가치 있는 기여를 한다는 점은 원천콘텐츠의 재생산 방식이 아닌 독립적인 이야기들이 서로 다른 미디어로 구현됨을 뜻한다. 그 각각의 미디어들이 모이면 전체 서사체를 구성하고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 완성될 것이다. 여러 미디어가 각각의 다른 이야기를 구성함으로 인해 자칫 혼잡해질 수 있는 위험을 없애기 위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에서 프랜차이즈 스토리(franchise story)는 필수적이다. 일관된 세계관과 캐릭터의 공유, 서사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말할 때 마블(Marvel)이라는 프랜차이즈를 쉽게 떠올리는 이유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마블 프랜차이즈 스토리는 코믹북(comic book)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현재 마블 프랜차이즈의 핵심 미디어는 MCU(Marvel Cinematic Universe)라고 부르는 영화이다. 미디어의 구분이 의미 없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에서 영화의 매체로서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부분이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에서는 원작 역할을 하는 원천콘텐츠보다 프랜차이즈 스토리의 메인 세계관을 담당하는, 혹은 산업적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하는 거점 콘텐츠의 중요성이 커진다. 세계 대중문화를 지배하는 미국의 여러 미디어 플랫폼 중(할리우드 영화의 문화적 파급력과 경제적 규모를 고려할 때) 영화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훌륭한 거점 콘텐츠가 된다. 할리우드 영화는 그것이 국경이든 미디어든 향유성이든 거의 모든 경계를 허물 수 있을 정도의 규모와 영향력을 갖추고 있다. 마블의 사례를 비롯해 <매트릭스>, <스타워즈>, DCU(DC Universe) 등 영화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핵심 미디어로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하지만 한국영화도 그러할까? 한국영화도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핵심 미디어로서 역할을 해왔거나 할 수 있을까? 이는 한국영화가 국내에서 할리우드와 대등하게 점유율을 경쟁하거나 봉준호 감독이 네 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등 한국영화 자체의 문화적 우수성이나 산업적 성장을 정의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여기에는 보다 복잡미묘한 산업적 문제들이 담겨있다. 일단,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고려 요소가 아니었다.



2. 한국형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한계 혹은 잠재력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이야기 내적으로는 미디어를 넓혀가며 진행될 수 있는 확장성이 강한 스토리와 세계관이 필요하다. 제작의 측면에서는 여러 미디어를 횡단하며 진행되면서도 각각의 미디어가 균일한 수준의 완성도와 이야기의 독립성을 갖추게끔 만드는 총체적 기획 능력이 요구된다. 산업적으로는 다수의 미디어 플랫폼을 소유한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필요하다. 미디어를 옮겨 다니며 능동적으로 스토리텔링에 참여하는 적극적 향유자인 팬덤(fandom) 또한 필수적이다. 이 조건들을 앞서 예로 든 마블에 적용시켜 보자. 마블은 슈퍼히어로라는 명확한 세계관과 장르성을 지니고 있다. 영화 내에서 <어벤져스(Avengers)> 시리즈와 같은 ‘캐릭터 어셈블(character assemble)’이 일어나고, 실존 공간(<아이언맨>)과 신화(<토르>), 우주(<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과거(<캡틴 아메리카>), 초자연적 시공간(<닥터 스트레인지>)으로까지 확장성이 강한 이야기 성격을 지니고 있다. <마블 디펜던스(Marvel’s Defenders)>시리즈로 대표되는 드라마 시리즈를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하고, 게임부터 단편영화까지 다양한 미디어를 독립적 스토리 라인으로 활용하는 능력 등의 기획성도 돋보인다. 마블과 합병한 디즈니(Disney)는 메이저 영화제작ㆍ배급사, 여러 TV 자회사를 비롯해 최근 OTT 서비스까지 다수의 미디어 플랫폼을 보유한 초거대 엔터테인먼트 그룹이다. 마블의 팬덤은 코믹북, 영화,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미디어 팬덤을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은 국내에서는 불가능한 조건이 된다. 특히 다수의 미디어 플랫폼을 갖춘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부재하고 그로 인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목표로 한 기획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로 인해 전체 서사체를 미디어별로 분절시켜 이야기의 새로움과 독립성을 갖추게끔 하는 온전한 의미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국내에서 실현되기가 매우 까다롭다. 한국에서는 범위를 좁혀, 한 이야기를 토대로 사용되는 미디어 플랫폼의 수가 복수 이상이 될 때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라 이름 붙이는 이유이다. 그러한 양태를 한국형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때, 여기서 가장 주목받는 미디어는 웹툰이 된다. 이는 기획과 비용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웹툰은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저비용으로 시장성을 테스트할 수 있고, 향유자의 즉각적인 반응(interaction)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비용의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실험적 장르나 스토리의 시도도 가능하다. 한국형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처럼 원작의 다시 쓰기 형태에서는 웹툰과 같은 원천콘텐츠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수많은 한국영화가 웹툰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웹툰의 팬덤이 같은 프랜차이즈 스토리로 제작된 영화의 팬덤으로 전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순히 영화의 원작 시나리오로 웹툰을 각색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상관없지만,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목적으로 했다면 이는 커다란 문제가 된다. 웹툰은 작품에 대한 팬덤보다 웹툰 자체의 장르적 팬덤 성격이 강하다. A라는 웹툰을 보는 사용자는 동시에 B, C라는 웹툰의 사용자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지만, A의 이야기가 확장되는 A’라는 영화의 관객이 될 확률은 높지 않은 것이다. 이는 반대로 케이블 드라마의 이야기를 확장한 영화 <나쁜 녀석들: 더 무비>(2019)가 스토리와 작품 완성도에서 혹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것과 대비된다. <나쁜 녀석들>은 장르 드라마와 영화라는 비슷한 향유층을 갖춘 팬덤이 있었고, 제작사인《OCN》도 팬덤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를 여는 등 팬덤을 영화로 유입시키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




물론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만큼 제대로 시도된 웹툰-영화의 확장적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 부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신과 함께>는 꽤 흥미로운 텍스트가 된다. 웹툰 <신과 함께>는 그 방대한 양과 연재 기간만큼 웹툰으로서는 드물게 작품 자체의 팬덤이 강한 콘텐츠였다. 실제로 웹툰의 주요 캐릭터인 ‘진기한’이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팬덤 커뮤니티에서의 반발이 상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는 원작의 핵심 세계관을 유지하면서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높은 CG와 스펙터클 등의 콘텐츠 자체의 강점으로 그러한 논란들을 극복했다. 그럼에도 두 편의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는 원작 웹툰의 이야기를 재생산한 것에 가깝기 때문에 여전히 온전한 의미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는 이미 후속작의 라인업이 확정된 상태이고, 여기에서는 기존의 프랜차이즈 세계관을 토대로 하면서도 웹툰에서 재현되지 않은 이야기를 다룰 예정으로 알려졌다. 팬덤이 사랑하는 ‘진기한’ 캐릭터가 등장할 것이라는 암시가 2편의 쿠키영상에 등장하는 등 작품의 팬덤을 끌어안으려는 노력도 이어졌다. <신과 함께> 프랜차이즈가 앞으로 어떤 미디어와 스토리로 확장되어 갈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영화의 후속작 이후 어쩌면 우리도 꽤 그럴듯한 한국영화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사례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형 트랜스미디어의 또 다른 사례로 <부산행>(2016)과 <서울역>(2016)을 들 수 있다. 필자는 다른 지면을 통해 <부산행>과 <서울역>의 추가적인 미디어 확장 가능성으로, AR(Augmented Reality) 게임 콘텐츠, 연상호 브랜드 애니메이션의 확장, 웹툰, 시리즈 영화로의 가능성 등을 언급한 바 있다. 간단히 요약해 영화 <부산행>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으로서 가능성을 지니는 이유는 실존 공간으로서의 현대 한국 사회와 좀비라는 세계관이 이야기를 지탱하고 있고, 역설적이게도 서사에 빈 공간이 많은 것이 확장성에 있어 장점이 되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서울역>은 서사적으로 <부산행>의 프리퀄(prequel) 역할을 하지만 (공유되는 사회비판적 주제를 배제하고) 두 개의 이야기는 ‘혜선’이라는 캐릭터를 빼면 연결성을 찾기 어렵다. 이를 통해 <서울역>은 연상호 감독 특유의 애니메이션 장르 특성을 유지하고, <부산행>은 장르영화로서 <서울역>과 완전히 다른 서사 체계를 보인다. <부산행> 역시 <반도>라는 제목으로 속편 제작이 이뤄지고 있는데, 후속작은 <부산행>의 세계관을 유지하되 시간적 배경과 캐릭터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역시 <부산행>의 열린 결말과 연계 미디어 콘텐츠와의 서사 단절성이 있기에 가능한 설정이다.  서사체로서는 완결성을 높이는 전략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총괄할 수 있는 기획 능력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부산행>이 그러한 특성을 보이고 있는 것인데, 후속작 <반도>에서 연상호라는 독특한 브랜드와 한국적 특수성이 이 프랜차이즈 세계관에 어떻게 녹여질지가 지속 가능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탄생의 관건이 될 것이다. 영화 이외에 추가적인 미디어를 활용할지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신과 함께>나 <부산행>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한국영화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활용하는 방식은 성공작에 한해 세계관을 넓혀가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한국영화에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기획된 스토리텔링 전략이라기보다 사후 확장형 서사에 가깝다. 또한, 영화의 시리즈화가 이어지지만, 영화를 거점 콘텐츠로 하여 다른 미디어로의 확장은 이뤄지지 않는다. 영화 이외의 미디어는 원작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은 앞서 살펴본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조건들을 떠올려보면 된다. 한국영화에는 영화를 포함해 여러 미디어 제작사와 플랫폼을 포괄하는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찾아보기 어렵고, 다수의 미디어를 활용해야 하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에 소요되는 자본의 문제 또한 존재한다. 미디어를 횡단하는 제작 시도 자체도 적지만, 이를 상업적으로 지탱할 미디어 팬덤도 한국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문화산업 규모와 영화에 투여되는 자본의 상대적 비대함으로 인해 한국영화가 외부 미디어로의 스토리텔링 확장보다 내적 완결성에 집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한국형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잠재력과 한국영화의 거점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이 <신과 함께>와 같은 사례로 발견되고 있다. 뉴 미디어로의 변환은 한국영화 시장에도 단순한 플랫폼 변화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기획과 스토리텔링에 대한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3. 아시아의 디즈니를 향하여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에 있어 산업과 비용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자칫 미디어의 횡단 현상 자체에만 몰두하기 쉽지만,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배경에는 다수의 미디어를 동원함으로써 콘텐츠의 수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상업적 목적이 존재함을 잊어선 안된다. 이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에 있어 기획과 비용의 문제, 시장과 산업의 요건들 - 반복해서 언급하는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같은 - 을 따지게 하는 이유이다. 한국의 영화시장은 이미 확장의 한계치에 도달했다. 마치 제로섬(zero-sum)과 같이 할리우드 영화와 점유율을 경쟁하는 방식 안에서 한국영화의 수익성은 결정돼 오고 있다. 이렇게 시장성이 답보된 상황에서 거대자본을 요하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한국영화 산업에서 시도되기가 매우 어렵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국내 시장만을 대상으로 할 때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다. 하지만 아시아 시장으로 시장을 확장할 수 있다면 조건은 달라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이미 수많은 한류 콘텐츠들이 성공을 거뒀던 아시아 시장에 대한 산업과 문화의 융합적 분석이 필요하다. 혹은 시장의 확대가 미디어의 확장을 통해 가능할 수도 있다. 시장성이 제한된 한국영화에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 꼭 필요한 이유이다. 이를테면, OTT를 단순한 콘텐츠 재생 플랫폼으로 볼 것이 아니라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생산적이고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는 스토리텔링 공간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변화는 감지되고 있다. 이미 한국 영화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CJ엔터테인먼트는 드라마 채널을 비롯해 다수의 TV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고, 애니메이션 사업으로도 확장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를 제작한 덱스터스튜디오의 지분을 작년부터 늘려오며 인수에 대한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 OTT 형태를 갖춘 플랫폼을 이미 보유하고 있지만, JTBC와 함께 새로운 서비스를 출범하기 위한 단계에도 이미 들어섰다. 여러모로 마블, 픽사, 루카스 필름, ABC 방송사, 21세기 폭스 등 수많은 미디어사를 인수 합병한 디즈니의 경로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규모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실행할 다수의 미디어 플랫폼과 제작 능력을 갖춘 한국식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시장을 확장하고, 다수의 미디어 콘텐츠를 운영할 수 있는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존재한다면, 미디어를 옮겨 다니면서 이야기를 향유할 충성도 높은 팬덤이 필요하다. 축적된 콘텐츠가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팬덤을 확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경우 한류의 주요 특징인 한류스타 마케팅을 통해 일차적으로 아시아 권역의 팬덤을 유입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스타 팬덤을 유도하는 방식은 지속성이 의심된다. 미디어에 따라 해당 배우가 출연하지 않을 때 해당 콘텐츠에 대한 사용자 이탈률이 높을 것이라는 예상이 쉽게 가능하다. 이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프랜차이즈 스토리의 팬덤으로 보기 어렵다. 결국, 이야기,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이 필요하다.



본질적으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에 있어 우선돼야 하는 것은 이야기가 여러 미디어를 횡단하면서도 지속적인 새로움을 드러낼 수 있는 세계관을 확립하는 것이다. 캐릭터, 플롯, 아이템 중심의 도식적인 기획이 아닌 미디어별 특성과 분절형 서사체를 구현할 수 있는 세계관을 우선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세계관이 절대적으로 완벽하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온전히 새로움을 추구하기 어렵다면 소비 대상에 최적화된 세계관을 찾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부산행>은 장르물이면서도 한국의 지역적 특수성을 드러내고 있고, <신과 함께>의 핵심은 동양적 사후 세계관이었다. 두 작품이 아시아 시장에서 거둔 수익과 화제성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한국과 아시아에 특화된 세계관은 아시아 시장을 타겟으로 하는 한국영화 거점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에 있어, 할리우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과 견줄 유일한 경쟁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경쟁력은 상대 우위가 아닌 차별화 요소에 가깝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움’의 홍수에 빠져 쉽게 간과하곤 한다. 대중문화에서 익숙함은 문화적 경쟁력으로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다.


다수의 미디어에 담긴 수십 개의 콘텐츠가 하나의 이야기 세계 안에서 펼쳐지는, 한국의 디즈니를 만날 수 있을까. 물론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 궁극적으로 지향할 한국 문화산업의 모델이나, 한국 영화가 추구해야 할 정답이 디즈니는 아닐 것이다. 성공적인 한국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 등장해 어떤 한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한국 영화와 문화산업에서 절대적 지배력을 행사하게 된다고 가정해 보자. 마치 세계 박스오피스의 10위권 내에 절반 이상이 디즈니 영화들로 채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분명 미디어를 구분하지 않고 시장을 독점하는 거대 기업 출현에 대한 새로운 비판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 디지털 시대의 변화하는 미디어 콘텐츠 시장에서 특장점을 지니는 전략임은 분명하다. 다만 특정 미디어에 치중되지 않고 얼마나 많은 미디어를 활용할지, 그리고 그 안에서 문화적 다양성과 실험성을 녹여낼지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 팬덤은 맹목적인 지지 세력이 아닌 능동적인 소비 세력임을 잊어선 안 된다.



참고자료

곽서연 (2019), 「2018년 세계 영화산업 현황 및 2019-2023년 성장 전망」,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이현중 (2017), 『슈퍼히어로 영화의 스토리텔링』, 박이정.
이현중 (2018),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으로서의 <부산행>, <서울역>의 확장 가능성」, 『인문학연구』 제38호,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177~206쪽.
Henry Jenkins (2008), 김정희원·김동신 역, 『컨버전스 컬처』, 비즈앤비즈


글ㅣ이현중 군산대학교 미디어문화학과 교수

     (출처 : 한류NOW 2020년 3+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