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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과몰입과 WHO 국제질병분류 등재결정의 함의
세계보건기구(WHO)가 2019년 5월 25일 게임이용장애를 국제질병분류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WHO의 결정이 국내에 영향을 미치면서 정부 부처, 업계, 학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각기 다른 주장들이 난립하고 있다. 이 글은 게임이용장애의 국제질병분류 등재결정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포괄적인 관점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먼저, WHO의 결정을 둘러싼 여러 주체가 어떤 입장 차이를 보이는지 비교한다. 다음으로,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일이 갖는 타당성과 불합리성은 무엇인지 함께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향후 게임문화/산업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게임과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어떤 고려들이 필요한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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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출처: 게임샷(2019.8.23.). 게임 질병코드, 찬반 격렬한 가운데 문화계도 '반대'
1. WHO, 게임이용장애의 국제질병분류 등재결정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이하 ‘WHO’)가 2019년 5월 25일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에 포함하는 국제질병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제11차 개정안(이하 ‘ICD-11’)을 통과시켰다. 게임이용장애는 도박중독과 함께 중독성 행동장애(disorders due to addictive behaviours) 범주에 포함된다. ICD-11은 2022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게임이 대중문화/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미국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협회(ESA), 유럽 인터랙티브소프트웨어협회(ISFE), 영국 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 산업연맹(UKIE) 등 여러 국가의 관련 기관에서 WHO의 결정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한국 역시 WHO 결정을 적극적이면서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을 중심으로 이번 결정 이전부터 반대의견을 비쳐 왔고, 등록 결정 직후 WHO에 반대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게임업계와 플레이어(게이머)들도 반대 운동에 동참 중이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해당 결정을 2025년(5년 주기 개정) 한국표준질병사인코드(Korean Standard Classification of Disease and Cause of Death, 이하 ‘KCD’)에 반영할 예정이다. WHO의 결정이 국내에 영향을 미치면서 관련 사회 담론은 난맥상을 띠게 되었고, 엄밀하지 못한 논의들이 확산했다. 정부 부처, 업계, 학계의 입장이 수렴되지 않고,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에 대한 각기 다른 주장들이 난립했다.
이 글은 게임이용장애의 국제질병분류 등재결정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포괄적 관점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많지 않은 지면을 통해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인지 아닌지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무엇보다 그 시비 가림이 본고의 목적인 것도 아니다. 그동안 이뤄져 왔던 다양한 논의를 더듬어보고, 그 결과를 토대로 우리가 앞으로 게임과 게임이용장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지 단초를 제시하는 데 초점을 둔다.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WHO의 결정을 둘러싼 여러 주체(정부 부처, 업계, 학계)가 어떤 입장 차이를 보이는지 비교한다. 둘째,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일이 갖는 타당성과 불합리성은 무엇인지 정리한다. 셋째, 앞으로 게임문화/산업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게임과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어떤 고려들이 필요한지 살펴본다.
2. WHO 결정을 둘러싼 여러 주체들의 입장
WHO의 결정을 두고, 정부 부처(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교육부 등), 게임업계, 학계(인문학, 사회과학, 의학) 등 게임을 둘러싼 여러 주체의 각기 다른 입장들이 충돌했다. 주체별 입장은 WHO의 결정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동안 게임에 대해 가져왔던 시선의 연장 선상에서 WHO 결정을 바라보는 것에 가까웠다. 때문에 입장차도 게임이용장애 국제질병분류의 근거나 타당성을 찾는 일보다는, 주체 간 갈등의 단초로 작용했다. 심지어 정부 부처조차도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서로 다른 입장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부처별 임무와 소관 영역에 따라 동일 대상에 대해 다르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임에도, 일관되지 않은 견해들이 사회적 혼란을 더하는 데 기여했음은 분명하다. 주체별 입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1. 보건복지부: 게임중독은 질병이며, 대책이 필요하다
먼저, 보건복지부는 WHO의 결정이 “공중보건학적으로 봤을 때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할 만한 과학적 근거에 따른 것”이라 본다. “국제적 기준을 국내에 도입해 게임중독 현황을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게임을 즐기는 수준인지 중독수준인지를 알 수 있다”(강주리, 2019. 5. 27.)는 것이다. 물론 WHO의 ICD 개정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강제는 아니지만,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학술연구·보건행정 등에 있어서 국제적인 비교가 가능해진다(김충령·홍준기, 2019. 5. 28.). 다른 한편, 게임중독이 문제일 뿐 게임 자체가 질병인 것은 아니라 부연한다(김아름, 2020. 4. 13.). WHO의 결정을 KCD에 반영한다 해도 결국 핵심은 게임중독 현황 파악을 통한 예방과 치료이므로, (문화체육관광부나 게임업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게임산업 규제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강주리, 2019. 5. 27.)고 주장한다. 사실 보건복지부는 WHO 이슈 전부터 게임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2013년 게임을 술, 도박, 담배와 묶어 4대 중독물질로 관리하겠다는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이하 ‘게임중독법’)’에도 찬성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2015년에는 게임과 게이머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는 게임중독 공익광고를 내보냈고, 청와대가 나서 광고 방영을 조기 중단하기도 했다(문영수, 2015. 2. 16.). 뿐만 아니라 그동안 게임 디톡스 사업과 함께 ‘인터넷·게임중독 정신건강기술 개발사업 연구’ 등 게임중독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런 점에서 WHO 결정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확고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도 보건복지부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국내 도입을 위한 중장기적 대책을 논의하고 준비 중이다(김미희, 2020. 1. 30.).
2-2.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반면, 문화체육관광부는 (보건복지부와는 다르게) WHO가 수긍할 수 있는 과학적 검증 없이 내린 결정이기에 그것의 국내 도입을 반대한다. “2022년 WHO 권고가 발효되더라도 권고에 불과하고 국내에 적용하려면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므로, “사회적 합의 없이 게임이용장애를 KCD에 반영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 문화체육관광부의 기본입장이다(강주리, 2019. 5. 27.). 이에 따르면 WHO의 결정은 아동·청소년이 문화적·예술적 생활에 참여할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그렇다 해서 건전한 게임문화 조성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때문에 건전한 문화조성을 위한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속 노력이 절실하다 본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2019년 5월 보건복지부가 주도하는 정책협의체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보건복지부-문화체육관광부 간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2019년 7월 국무조정실이 직접 나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 문제 관련 민·관 협의체(이하 ‘민·관 협의체’)’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2-3. 여성가족부: 아무튼 아동·청소년 보호 관점으로 게임에 접근하겠다
여성가족부의 경우,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관련해서는 다소 거리를 두는 모양새를 취한다. 직접적인 입장을 피력한 적은 없으나, 여성가족부가 게임에 우호적인 부처는 아니었다. 심야시간대 청소년들의 온라인게임 플레이를 제한하는 ‘강제적 셧다운제(shutdown)’의 주무부처이고, 게임사 매출의 최대 1%를 중독치유기금으로 징수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던 ‘인터넷게임 중독 치유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하 ‘1% 징수법’)’을 적극 추진하기도 했다. 게임을 논의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상이 아동·청소년이며, 여성가족부는 그에 대한 보호관점에서 게임에 접근해왔다. 이에 민·관 협의체에도 여성가족부 관계자가 정부위원으로 참여 중이고, 2019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여성가족부 장관이 게임이용 규제 도입검토와 관련해 “아동·청소년 보호관점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할 것”이라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김미희, 2020. 1. 30.).
2-4. 민·관 협의체: 부처 간 공동연구·실태조사를 통해 해결방안 모색이 필요하다
민간·정부위원 22명으로 구성된 민·관 협의체는 현장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수렴, 그리고 부처 간 공동연구·실태조사 추진을 통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도입 문제의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에 민·관 협의체가 제안한 다음 세 가지 연구가 2020년에 이뤄질 예정이다. 첫째,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의 과학적 근거 분석’으로, WHO 결정에 대한 과학적·객관적 검증을 꾀한다. 둘째, ‘게임이용장애의 국내 실태조사’다. WHO의 게임이용장애 진단기준에 따른 국내 진단군 현황과 특성을 조사한다. 셋째,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 분석’인데, 이를 통해 질병코드 국내도입 시 문화·산업·교육·보건의료 등 사회 여러 영역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것이 목적이다(곽혜진, 2019. 12. 20.). 논의 결과는 차치하더라도 민·관 협의체는 합의되지 않을 것 같았던 정부 부처 간 의견을 조율하기 위한 근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해당 연구·조사를 통해, WHO 결정의 국내 도입에 대한 정부 부처 차원의 큰 방향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관련 주체들의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2-5. 산·학·관 공대위: 질병코드 국내도입 시 게임산업이 흔들린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을 비롯 국내 게임학회·협회·기관 등 88개 단체는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구성, WHO의 결정이 있던 2019년 5월 25일 성명서를 통해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지정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며, “국내도입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질병코드 지정은 국제연합(UN) 아동권리협약 31조에 명시된 문화적·예술적 생활에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청소년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라면서 “미국 정신의학회의 공식 입장과 같이 ‘아직 충분한 연구와 데이터 등 과학적 근거가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또, “4차 산업혁명 시대 가장 중요한 게임과 콘텐츠산업의 뿌리가 흔들리는 상황”이라며 질병코드 국내 도입 후 이어질 수 있는 게임산업 규제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강주리, 2019. 5. 27.). 이후 공대위는 관계부처 공식서한 발송, 관련 연구 수행,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상의 슬로건 공유 등을 통해 게임질병코드 국내 도입 반대 움직임을 펼치고 있다.
3.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한다는 것
3-1. 게임중독? 과몰입!
그렇다면 게임이용장애는 과연 질병일까? 질병이라 한다면, 그것을 중독성 행동장애에 해당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을까? WHO는 이 질문에 대해 ‘Yes’라 답했지만, 많은 연구자와 플레이어가 그 답을 부정하고 있다. 플레이어들(특히 아동과 청소년)이 게임에 몰두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게임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현상에 대해 논의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은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일부 연구와 언론들이 게임에 대한 과도한 시간과 행동투입을 ‘중독’으로 규정하고, 게임 이용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역기능을 병리적 관점에 초점을 두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게임중독’은 엄밀한 학문적 개념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수사적인 표현에 가깝다(윤태진 등, 2018, 5쪽). WHO의 결정 역시 게임중독론이 그래왔듯 ‘물질남용’에 근거를 두고 있어 게임 플레이를 미디어 소비로 이해하지 않는다. 게임중독이 병리학적 정신장애로서 심각한 임상적 손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 게임이용의 병리화가 오히려 치유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WHO에 따르면 게임이용장애는 ① 플레이 빈도·강도·시간 등에 대한 통제가 힘들고, ② 게임 플레이를 점점 더 중요하게 여기게 돼 게임을 관심사나 일상적 행위들보다 우선순위에 놓으며, ③ 부정적 결과를 초래함에도 게임을 계속하거나 더 많이 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열거된 양상들은 다분히 행동적·심리적이나, 양상의 기원에 대한 문화적·현상학적 이해는 부재하다는 지적도 가능하다(Bean, et al., 2017).
다시 이야기하지만, 이 글에서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여부를 결론 내리긴 어렵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게임이용장애가 중독성 질병이라는 명제가 과학적으로 확증된 바는 없다는 수준에서 정리할 수는 있다. 그러므로 아직은 과도한 게임이용에 ‘질병’이나 ‘중독’보다는 ‘과몰입’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과몰입은 선입견을 배제하고 현상 자체를 말할 때 쓰는 단어다. 게임에 많이 몰입하는 것을 중독이라 표현하는 순간, 게임을 중독물질로 대하는 생각이 전제에 깔린다(강민혜, 2020. 3. 20.). 그리고 (게임을 많이 하는 행위가 중독이냐 과몰입이냐보다) 중요한 것은 게임이 우리 일상과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게임에 대해 과몰입하는 플레이어들이 틀림없이 존재하며,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방지하고 해결하기 위한 고민이 요구된다는 사실이다(강신규, 2019).
3-2. 게임이용장애의 국제질병분류 등재에 대한 맥락적 이해
그런 점에서 WHO의 결정이 시대적 고민에 부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측면도 있다. WHO는 건강에 관한 규정을 생리학적 차원에서 사회·제도 전반에 걸치는 개념으로 확장해오고 있으며, 그 경향성이 ICD-11에도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생리학적 차원을 넘어서는 사회·제도 문제에 대한 관심은, 장시간 게임에만 몰입하는 현상을 병리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더욱이, WHO의 결정이 일부 연구와 언론들이 말하듯 게임 전체를 질병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규정상으로 질병의 대상이 되는 상태는, 조건에 부합하는 숙련된 정신과 전문의를 통해 진단될 수 있는 경우에 한한다. 설사 그 조건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게임 전체가 질병의 매개체라거나 모든 플레이어가 환자라고는 할 수 없다. 정리하자면 WHO는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제도 제반의 여러 조건을 질병코드에포함하려는 기조를 지니고 있고, 그 맥락 안에서 과도한 게임이용 행위가 문제일 수 있다는 인식 하에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로 등록하려는 것이라 하겠다. 또, ICD-11이 비록 특정 상태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있다고는 해도 과학적 방법론의 특성상 절대적인 규정이 아니며, 또 다른 반증에 의해 언제든 부정될 수 있음을 WHO도 충분히 경험을 통해 인지하고 있다. ICD-10에서 질병으로 분류되던 젠더 관련 일부 항목들이 ICD-11을 통해 개정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으로 등록된다고 하지만, 이것이 불변의 낙인인 것처럼 이해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이동연·박이선·이경혁·최준영, 2019).
3-3. 게임이용장애의 국제질병분류 등재가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 영향
그럼에도 WHO의 결정이 우리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일련의 긍정적이지 못한 영향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첫째, 게임에 대한 사회적 낙인효과다. 제도화의 주체가 WHO라는 점에서 게임이용장애의 국제질병분류 등재결정은, 국제기구 차원에서 게임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상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특별한 경우(사행성이 있는 콘텐츠 등)를 제외하고는 어떤 이용가능한 문화콘텐츠에도 (그것이 많든 적든) 향유의 결과를 질병으로 간주하는 경우는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어쨌든 WHO의 결정은 게임(과몰입만이 아니라 전반)이 유해하거나 위험한 것이라는 이미지를 준다.
둘째, 실제 게임규제 강화의 논리로 쉽게 활용될 수 있다. 가령, 게임을 과하게 플레이하는 것이 질병이 된다면, 타당성과 실효성으로 인해 논란이 돼왔던 강제적 셧다운제에도 ‘아동·청소년이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한다’는 확실한 명분이 생길 수 있다. 현재 온라인게임에만 적용되고 있는 셧다운제를 모바일게임으로까지 적용하는 것 역시 어렵지 않은 일이 된다. 2014년 4월 강제적 셧다운제 합헌 판결 이후 게임중독법, 1% 징수법, 모바일게임 셧다운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셋째, (보건복지부는 부정했지만) 게임산업에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 작용할 확률이 매우 높다. 질병코드 국내 도입 시 게임은 지나칠 경우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간주될 수 있기에 정부 차원의 게임산업 진흥정책도 제동이 걸리거나 방향 전환할 수밖에 없다. 개발업체들의 사기 저하도 필연적이다. 물론 WHO의 결정은 국제적 차원의 이슈이긴 하지만, 과거 강제적 셧다운제 합헌판결이 유수 게임 개발사들의 해외이탈 움직임을 촉진했음도 감안해야 한다.
넷째, 플레이어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산·학·관 공대위가 주장하는 것처럼 게임하는 주체로서의 아동·청소년의 권리를 부정한 것으로 이해 가능하다. 제도 차원의 낙인찍기가 가정 내 부모의 역할까지도 주체적이지 못한 것으로 만듦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강화는 아동·청소년이 아닌 플레이어들의 게임 이용까지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4. 생산적인 논의를 위하여 고려돼야 할 지점들
결국, WHO의 결정과 관련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비판적 수용이 아닌 비판적 성찰이다. 게임과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대국적인 인식 제고를 통해, (그렇지 않다면 더욱 좋겠지만) 설사 질병코드가 국내에 도입된다 해도 과도한 게임 이용과 그렇지 않은 정도를 잘 구분하고, 더 바람직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해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 고려돼야 할 지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게임에 대한 담론을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비유할 수 있다. 게임은 그것을 만지는 장님이 누구냐에 따라 문화도 될 수 있고, 산업도 될 수 있고, 장애나 중독물질이 될 수도 있는 코끼리다. 때문에 게임을 문화로 가정(혹은 전제)하고, 그 대척점에 산업·경제·기술·보건의학 등을 위치시킨 후 “아니야, 그래도 게임은 문화야” 식의 논의를 펼치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체별로 특정한 방식으로 게임을 규정하고 상대편을 비판하면서 정작 상대편 논의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거나 게임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라 치부하는 모습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모두의 논의를 받아들여 더이상 코끼리라 말할 수 없는 괴물을 만들자는 뜻은 아니다. 서로의 세계에서 바라보는 코끼리를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에 대한 논의는 주체별 입장과 이익에 기반한 한계를 규정하지 않고, 다양한 것이어야 한다.
둘째, 게임은 하나의 큰 덩어리가 아니다. 플랫폼별·장르별·타이틀별로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갖는 경우가 많아, 그것을 설명하는 데 있어 한데 모으기 어려운 다양한 관점과 방법들이 요구된다.다른 문화콘텐츠가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라면, 게임은 ‘해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게임 전문가나 수준급의 플레이어라 해도 접해보지 않은 게임을 논의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굉장히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게임도 있다. 단순히 게임을 하나의 대상으로 보고, 몇몇 기준만을 적용해 그 플레이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이유다. 보다 세분화된 관점에서 게임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WHO를 비롯한 정부 부처, 민·관 협의체, 공대위의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빠져 있는 것이 플레이어다. 플레이어를 염두에는 두되 중요하게 고려하고는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제도와 정책의 최종 도착점은 산업도 문화도 아닌 플레이어다. 게임산업도 문화도 플레이어에서 비롯된다. 더군다나 (두 번째 고려점의 연장 선상에서) 게임은 직접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많은 정보와 경험을 지닐 수밖에 없는 문화콘텐츠다. 제도와 정책의 당사자들, 그리고 게임을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을 멀리한 채로 게임과 게임이용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서는 안 될 것이다.
참고자료
강민혜. “게임 리터러시 알고 게임을 제대로 활용해보자”. 《소년중앙》. 202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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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혜진. “‘게임중독’은 질병?… 질병코드 도입 위한 실태조사 실시한다”. 》《서울신문》. 2019.12.20.
김미희. “게임질병의 시대 ⑤ 문체부·복지부·여가부의 서로 다른 셈법”. 《게임메카》. 2020.1.30.
김아름. “WHO의 ‘게임 권장’엔 침묵한 복지부”. 《파이낸셜뉴스》. 2020.4.13.
김충령·홍준기. “문체부 “게임病 인정 반대”… 복지부 “검토해야 한다””. 《조선일보》. 2019.5.28.
문영수. “보건복지부 ‘게임 중독 광고’ 논란, 결국 청와대서 중재”. 《아이뉴스24》. 2015.2.16.
윤태진 등 (2018). 「게임과몰입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 연구」. 한국콘텐츠진흥원.
이동연·박이선·이경혁·최준영 (2019).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장애 질병코드 도입 파급효과 연구」. 한국게임산업협회.
Bean, A. M., Nielsen, R. K. L., van Rooij, A. J., & Ferguson, C. J. (2017). “Video game addiction: The push to pathologize video
games”. Professional Psychology: Research and Practice. 48(5). pp.381~383.
글ㅣ강신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미디어광고연구소 연구위원
(출처 : 한류NOW 2020년 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