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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코리아시즌, 하반기에 정점 달려
1년 내내 영국에 흐르는 K-컬처
글 이세은 (객원 에디터)
지난 6월 29일, 2023 코리아시즌 기자간담회가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최됐다. 비가 쏟아지는 여름날 오전, 북촌에 위치한 아트선재센터 부근은 한층 차분했고, 한국적인 정취를 고즈넉이 풍겼다. 이날 간담회에는 2023 코리아시즌에 참여하는 문화예술 주역들이 모여 참여 소감과 작품 소개, 준비 과정 등에 대해 공유했다. 궂은 날씨임에도 많은 기자들이 간담회에 참석해 코리아시즌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현장에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정길화 원장을 비롯해 문체부와 진흥원 관계자들이 자리했고, 참여 아티스트로는 무용팀 무버의 김설진 예술감독과 김기수 안무가, 현대무용가 안은미, 배삼식 극작가, KBS교향악단 손유리 공연기획 팀장, 시각예술 아티스트 이진준과 김희천 작가가 참석했다.
시대의 초월, 세계의 확장
문체부는 진흥원과 함께 ‘코리아시즌’을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다. 코리아시즌은 K-컬처의 확산 잠재력이 큰 국가를 대상으로 연중 문화교류 행사를 집중적으로 개최하는 사업이다. 작년 멕시코에 이어 올해 선정국은 ‘영국’으로, 2023년은 한-영 수교 14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다. 코리아시즌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연중’. 수교 행사 혹은 국가 간 문화행사를 단기간이나 일회성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닌, 연중 내내 개최하여 한국문화의 매력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문화·인적 교류를 확장하는 데 목적을 둔다.
1년 내내 개최되는 만큼, 프로그램 역시 방대하다. 무용·국악·클래식·시각예술·영화·한식 등 총 11개의 다양한 장르를 1년 동안 영국에서 소개한다. 2023 코리아시즌의 슬로건은 ‘시대의 초월, 세계의 확장’이다. 영국 현지에서도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다양한 한국의 문화예술을 소개함으로써 교류의 접점을 넓히고, 문화의 확장을 꾀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 정길화 원장은 간담회 인사말에서 “창의성과 다양성을 높인 작품을 통해 문화교류의 진정성을 이끌어내겠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영국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회로 막을 연 2023 코리아시즌은, 5월 피아니스트 김선욱(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의 무대, 그리고 제주도 출생의 시각예술가 제인 진 카이젠의 신작 발표회(테이트 모던)를 개최했다. 지난 4월부터 6월까지는 김설진 감독이 이끄는 그룹 ‘무버(MOVER)’가 영국 9개 도시에서 순회공연을 펼쳤다. 특히 영국 최대 힙합 댄스 페스티벌인 ‘브레이킹 컨벤션’의 20주년 무대에 올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우리의 삶을 표현한 작품 <메리고라운드(MERRY-GO-ROUND)>를 선보이며 큰 주목을 받았다. 메리고라운드의 안무가 김기수는 “과거에는 우리가 미국, 영국 문화를 동경하면서 춤을 췄다면, 이제는 유럽권에서 한국 댄서들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 놀란 점은 팀 단위를 넘어서 한국 댄서 개개인에 대한 관심 역시 뜨거웠다는 점”이라며 현지 반응을 전했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포커스 온 코리아>
2023 코리아시즌은 하반기에 정점을 달린다. 프로그램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서 마련한 한국 특집주간 <포커스 온 코리아(Focus on Korea)>. 1947년에 시작된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매년 4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세계적인 축제로, 8월 3주간 무려 3,000여 개의 공연이 열린다. 그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한국인 아티스트가 오른 적은 있으나, 우리나라 작품과 아티스트들을 시리즈화하여 선보이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페스티벌의 5개 국제 협력국 중 유일하게 한국만이 특집 주간으로 소개되는 점 역시 K-컬처의 뜨거운 인지도를 방증한다. 에든버러 페스티벌과 같은 세계적인 축제에 초청받는 것은, 성공적인 문화교류를 위한 적확한 요소를 자연스레 갖출 수 있게 한다. 이미 입증된 축제의 정체성과 인지도, 교류의 접점을 넓힐 수 있는 물리적 공간(축제 현장) 확보, 현지 문화예술 인사들과의 인적 네트워크 등을 효율적으로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커스 온 코리아(Focus on Korea)’에 오르는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노부스 콰르텟의 현악 4중주 ▲국립창극단 <트로이의 여인들> ▲KBS교향악단(피에타리 잉키넨 지휘, 첼리스트 한재민 협연) ▲피아니스트 손열음 리사이틀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강 리사이틀. K-클래식의 세계적 위상에 걸맞게 세계를 주름잡는 한국 클래식 연주자들의 활약을 기대해 볼 만하다. 간담회에 자리한 KBS교향악단 손유리 공연기획 팀장은 “세계인들이 모이는 축제인 만큼 K-클래식의 저력을 보여주고자 잘 알려진 레퍼토리(드보르작과 차이콥스키)를 선정했다. 책임감을 가지고 연주에 임할 것”이라며 포부를 드러냈다.
국악 고유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국립창극단의 <트로이의 여인들> 역시 관전 포인트다. 트로이 전쟁 신화를 기반으로 한 에우리피데스의 원작과 장 폴 샤르트가 각색한 동명 작품을 기반으로 새롭게 쓴 극본에, 판소리를 입혀 재탄생시킨 창극(한국 음악극) 무대가 펼쳐진다. 본 작품은 2016년 한국 초연 이후 싱가포르, 영국, 네덜란드, 미국 등지에도 오르며 해외 평단에게도 이미 인정받은 작품이다.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의 극본을 새롭게 쓴 배삼식 작가와 유럽 고전을 아시아의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작품으로 명성을 얻은 연출가 옹켕센이 의기투합하여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고전의 힘을 선사한다. 배삼식 극작가는 “인류 보편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서양고전을 창극에도 녹여내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는데 <트로이의 여인들>은 그 결실을 맺은 작품이다. 창극이 갖고 있는 드라마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번 공연을 위해 에든버러 극장 관계자들과 긴밀히 협업하며 작은 뉘앙스 하나하나 정확하게 담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전통예술과 순수예술의 힘
에든버러 페스티벌 이후의 라인업 역시 화려하다. 9월에는 안은미 댄스 컴퍼니의 <드래곤스(Dragons)>가 런던 바비칸센터와 맨체스터 라우리 극장에서 열린다. 초월적 힘과 지혜를 상징하는 ‘용’을 주제로 세계화 속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몸의 언어로 표현하며 새로운 시대를 탐험한다.
11월에는 한국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예술가로 손꼽히는 김희천 작가의 영국 첫 개인전이 헤이워드 갤러리와 주영한국문화원에서 동시 개최된다.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에 대해 질문하는 작가의 새로운 시도는 미술계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7월부터 10월까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뉴미디어 아티스트 이진준 작가의 미디어아트가 주영한국문화원 및 이씨(ESEA) 컨템포러리에서 열린다. 주제는 <들리는 정원>. 12년 만에 열리는 이 작가의 개인전이다. 정원은 자연과 인간의 경계 공간으로, 정원은 자연을 요소로 갖추어지지만, 정원 자체는 인간이 만든 인공적 공간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풍경과 심상에 관한 동아시아의 철학을 담고, 나아가 인간과 환경의 관계,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의 변화에 주목한다.
2023 코리아시즌의 프로그램은 대중문화보다 순수예술에 초점을 두고 있다. 진흥원의 기존 수교행사 역시 대중예술보다 전통 및 순수예술이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는 여러 의미를 시사한다. 매년 현지 수요 조사를 하면 케이팝을 비롯한 대중예술에 대한 호응도가 순수예술보다 높게 나타나지만, ‘장기간’, ‘인적 네트워크’, ‘현지 기관과의 우호적 관계’ 등 문화교류에 있어 핵심적인 부분을 구축해가기 위해서는 대중예술뿐만 아니라 한국 전통예술과 순수예술의 적극적인 추진은 반드시 필요하다. 대중예술은 민간 영역에서도 일부 자생이 가능하다면, 공공의 영역에서는 한국 전통과 순수예술을 통한 교류에 더욱 힘을 실을 의무를 갖고 있다. 순수예술을 통한 심도 있는 사유는 인간 개개인에 대해, 나아가 서로의 문화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번 간담회에서는 문화교류에 대한 철학적 담론과 의의 정립에 대한 견해도 나왔다. 안은미 감독은 “K-컬처가 뜨고 있는 이 시점에 서로의 문화에 대해 알아가고 토론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늘길 바란다. 작품 관람을 넘어 문화예술 교류에 대한 철학적 이해와 구체적 이론이 마련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2023 코리아시즌의 하반기는 7월 1일부터 3일까지 열린 한국 식문화 행사가 순조로운 스타트를 끊었다. 앞으로 이어질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이 큰 가운데, 올해 2회차를 맞이한 코리아시즌이 향후 한국문화를 알리는 데 있어 문화교류의 물리적·심리적 단계를 낮추는 모범 선례로 나아갈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