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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상통하는 우리 장인정신을 무대화

  • [등록일]2023-07-06
  • [조회] 4324

독일과 상통하는 우리 장인정신을 무대화

-한-독 수교 140주년 기념으로 ‘사기장’과 ‘매듭장’을 춤과 음악과 시로 기리다-



글 윤대성 편집장 (월간 댄스포럼)



 ‘생각하는 손’ 공연은 한국의 ‘헤파이스토스 찬가’다. 고대 그리스에서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노래하며 장인을 찬양했다면, 이 무대는 한국의 무형문화재 ― 흙으로 사기를 빚는 사기장과 실로 매듭을 만드는 매듭장 ― 를 춤과 음악과 시로써 기린다. 공예의 세계를 극장으로 옮겨왔다.

 국립무형유산원이 처음 자체 제작해 2021년 초연한 ‘생각하는 손’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한-독 수교 140주년을 맞은 올해 양국에서 공연을 갖는다. ‘마이스터(Meister)’의 나라 독일에 그와 상통하는 우리의 장인정신을 소개하는 것이다. 서울 공연은 6월 3-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있었다. 독일 공연은 9월 26일 베를린에 위치한 1,700여 석 규모 프로시니엄 극장 아드미랄스팔라스트(Admiralspalast)에서 치러진다.



 공예와 춤의 만남

 손이 생각한다는 건 뭘까? 그 자체로 ‘장인’을 의미하는 이 표현은 리처드 세넷의 저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손과 머리는 하나이며, 그 사이의 긴밀한 대화가 반복적 습관을 만들기에 훌륭한 장인의 손은 필연적으로 ‘생각하는 손’이라는 것. 그러니 전통 공예 보유자의 작업 과정을 담은 이번 공연에 더없이 적절한 제목이 되었다.

부제는 ‘흙과 실의 춤’이다. ‘흙’은 무려 300년 동안 9대째 도자기를 빚고 있는 김정옥 도예가 가족을, ‘실’은 50년 세월 매듭을 지어온 김혜순 장인을 가리킨다. 이들은 직접 무대에 올라 항아리를 빚고, 매듭을 짜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름하여, 무형문화재 보유자의 ‘작업 무용극’. 작업 과정에 방점을 두기 위해 춤이 빛나지 않도록 구성했다는 독특한 취지의 공연이다.

 발레 무용가 김용걸이 합류한 점도 신선하다. 전통문화유산을 다룰 땐 한국무용가의 손길을 으레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기획을 총괄한 김희정 연출가는 특정 장르의 춤이 아닌 ‘올라운더’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동양인 최초로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한 김용걸은 안무가로선 발레와 현대무용을 넘나들어왔다. 국립무용단 스타 무용수 김미애가 부인인 만큼 한국무용에 대한 이해도 깊다. ‘생각하는 손’에서 김용걸은 현대의 춤을 추구하되 문화재 ‘살풀이춤’부터 발레 파드되까지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나의 그릇은 가마에서 태어나 사람들의 친구가 된다”

 김정옥 사기장 가족은 도자 가문 영남요에서 가업을 잇고 있는 3대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김정옥 보유자와 아들 김경식 전승교육사, 손자 김지훈 이수자가 그 주인공이다. 

 무대미술가 박동우는 이들의 작업 과정을 부각하기 위해, 창덕궁 부용정에서 영감을 얻은 정자를 만들었다. 도예가들은 각자 정자에 앉아 물레에 진흙덩이를 올리고 발물레질을 시작한다. 그 과정의 소리와 음악은 작곡가 정순도가 사기장 작업실에서 채취한 음향을 재료 삼아 만들었다.

 1부 사기장 파트에서 무용수는 흙이다. 날것의 점토에서 반죽이 되었다가, 다시 항아리가 되어 가마 속으로 들어간다. 안무자는 공예의 과정을 형상화하는 데 방점을 뒀다고 말한다. 첫 장면에서 수조 안으로 굴러 들어가는 무용수의 모습은 점토가 물을 만나는 과정이다. 김정옥 장인이 발로 밟아 반죽하는 모습을 보고 물 위를 ‘걸어다니는’ 장면을 만들었다. 마지막에 장인이 사발과 항아리를 완성하면, 무용수들은 구워질 사기가 되어 가마 속으로 들어간다. 

 전기물레로 만든 것과 다르게, 발물레를 쓴 도자기는 극히 일부만이 불 속에서 살아남는다고 한다. 그러니 장인의 사기가 된 댄서들은 덤덤하게 죽음을 각오하고 나아간다. 장인의 내레이션과 오버랩되는 이들의 모습은 ‘생각하는 손’의 기획의도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김희정 연출가는 공연의 핵심을 이렇게 적는다. “기술 발전이 중심인 세계에서 소외된 인간의 노동, 그리고 그 근원을 지키려는 힘, 그것은 바로 최고의 경지를 향해 달려가는 장인의 손이다.”



 “매듭의 흔들림은 삶의 모습과 같다”

 김혜순 매듭장은 시누이였던 고 김희진 명예보유자에게 기술을 사사했다. 현대자수를 전공한 그가 남편의 누이에게서 소명을 이어받은 것이다. 전통매듭의 기술은 단순히 끈을 엮어 짓는 것만이 아니다. 누에고치에서 직접 명주실을 뽑아내고, 그 실을 염색해 꼬아 끈으로 만드는 지난한 과정을 포함한다. 즉, 매듭은 살아있는 생명에서 시작되어 인간사 맺고 푸는 인연처럼 오랫동안 얽혀온 ‘생명’과 ‘세월’의 집합체이다.

 김혜순 장인은 이렇게 말한다. “끈을 맺고 잇는 일은 마치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과 같습니다. 끈 떨어진 사람이란 의지할 곳이 없이 외롭고 불쌍한 처지를 말합니다. 이처럼 인연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 인연이 바로 매듭입니다. 우리의 맺고 푸는 인간관계를 상징하는 매듭은 영롱한 세계의 이슬을 만들어 가는 작업입니다.” 

 이 모든 과정과 의미가 춤의 소재가 됐다. 첫 장면은 누에의 춤이다. 흰 천을 고치처럼 뒤집어 쓴 댄서들이 몸을 굼틀며 허공에 치댄다. 명인의 작업 중에 실을 감는 ‘해사’와 꼬는 ‘합사’는 무대를 크게 가로지르는 역동적인 동선과 군무의 꼬임으로 시각화했다. 한국무용가 김미애가 특별출연해 보유자의 한 많은 인생을 ‘살풀이춤’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흔들림의 멋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다. 선비의 허리춤에 달린 매듭이 걸음에 맞추어 한들거리듯, 피날레는 그 흔들림을 극대화하도록 동작을 보여준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완 시인의 구절처럼, 흔들림은 결국 삶의 모습이 된다.



 우리 모두의 ‘헤파이스토스’

 ‘생각하는 손’의 제작진은 공예의 세계를 옮겨오기 위해 그들의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쏟아냈다. 차로 서너 시간은 떨어진 깊은 산골에 찾아가 도자기가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실을 한 가닥씩 뽑아 타래를 엮고 끈을 짜 매듭을 짓는 과정을 낱낱이 훑어왔다. 그 결과 ‘얼레’와 ‘물레’를 구분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모습에서 이제는 환골탈태의 경지에 올랐다. 사기장과 매듭장 두 장인의 무대는 역시 이 공연예술가들의 ‘장인정신’으로 만들어졌다.

 명장의 본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불완전한 영혼으로 ‘완벽’을 갈구하는 도공의 자세. 관객의 눈가가 으레 촉촉해지는 것은, 오직 그 일에만 전념해온 보유자의 겸허한 침묵이 우리 안의 가장 존엄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장인’을 펴낸 리처드 세넷은 이렇게 말한다. “굽은 발로 절룩거릴지라도 그 자신이 아니라 자기 일을 자랑스러워하는 헤파이스토스. 우리 자신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존엄한 인간의 모습이 바로 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