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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예술(K-Art)과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
글 양초롱 (조선대학교 회화학과 겸임교수)
이 글은 국제화 시대 한국 예술이 신뢰와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고민해야 할 여러 지점을 모색해 보고자 작성한 것이다. 이런 모색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사실, 문제는 예술(가)에 있지 않다. 예술을 이용하는 대상(인)에 있다.
1. 지금의 한국, 확장된 예술?
지난 2023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최고의 예술, 모두의 문화’를 위한 “문화예술 3대 혁신전략”과 “10대 핵심과제”를 발표했다. 그 가운데 특히 예술인 지원 방식의 변화가 시선을 끌었다. 기존의 개인 단위 소액의 다(多)건, 일회성 및 직접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대규모 프로젝트, 다년간·간접 지원 방식으로 대전환하기 때문이다. 물론 유통, 향유, 국제교류 등 대규모 사업이 성장할 수 있게 문화예술 지원기관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고, 지원기관의 체계 역시 전면 재정립하여 정책 추진력과 효과성을 높이겠다는 당연하지만, 상투적인 의지 또한 피력했다. 기존의 문화 지원 대상의 범위는 유사하지만, 분야별 (순수) 예술 전문성을 강화하고, 집중력 있는 정책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한국 문화의 가능성 및 예술인 성장을 위해 지원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 사업 대상이 전문 회사 및 해당 당사자에게 지원될지, 다목적 형태로 만들어진 주식회사에게 이익을 줄지, 그 결과를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것이다. 그러나 지원기관의 대전환이 있지 않은 한, 새로운 정책이 처음 의도한 결과를 얻기란 쉽지 않다는 점은 확실하다.
이론가가 미래의 예언자는 아니다. 그러나 이론가는 과거(역사)와 현재의 관계에 기반해 현 사회의 현황과 동향을 예측해가며 시대적 요구를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포착해 낸다. 지난 몇 십 년간 문화예술의 가장 큰 변화는 문화 향유자의 증대와 동시에 문화예술인들의 확대일 것이다. 이런 변화는 문화예술계에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까? 혹은 이런 현상이 어떤 문제점을 잉태하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는 문화의 제공자를 종종 ‘예술가’로 생각한다. 그렇기에 여러 형태의 예술가를 양성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예술가라는 명칭의 외연과 내포의 ‘모호함’이 놓여 있다. 사회는 일반적으로 직업 및 활동에 적확한 명칭을 지칭한다. 그러나 일상은 적확한 명칭 너머 자신에게 ‘유리한’ 명칭을 사용한다. 1인 회사의 대표, 1인 팀원의 팀장, 문화 일반의 활동가지만 예술 기획자 등. 사실, 기술자 역시 문화 제공자로서 무척 중요한 일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때로는 ‘예술가’로 지칭한다.
그렇다면, 예술인은 어떤 ‘특정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매체’를 잘 다루는, 즉 능숙하게 다루는 자를 ‘기술자’로 지칭한다. 그러나 ‘예술가’는 특정 매체에 ‘완전한’ 기술 사용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더라도(그러나 어느 정도의 능숙함은 필요하다.), 그 이외의 또 다른 부분(철학, 표현력, 내용 등)이 더해질 때 기술자와는 다른 영역에 자리 잡게 된다. 이들은 상하 혹은 엘리트/하부 구조의 단위로 ‘위치’에 있는 게 아닌, ‘다른’ 영역(분야)일 뿐이다. ‘어디에서’ 전시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다. 그러나 모두가 비슷한 영역에 함몰되어 그 분야만을 추구하는 게 현 사회의 일반적 현상이라면, 그 사회의 다양성은 어떻게 보장받을까? 어디를 가나 ‘미술관’, 커피를 마셔도 ‘갤러리’, 누구를 만나도 ‘아티스트’, 어디에서나 ‘작품 판매’, 잠시 쉬며 보는 것마저 ‘예술’이라고 한다면, 이 사회는 정말 예술로 가득한 세상일까? 아니면 예술로 획일화된 세상일까?
2. 트렌드화된 예술? 예술의 변이체! 디지털 예술의 폭주
정확한 시점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2022년 하반기 이후부터 ‘디지털 K-Art’, ‘융합 예술 K-Art’, ‘AI와 결합된 K-Art’, ‘미술의 K-Art’라는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사실 ‘K-Art’는 ‘K-Pop’의 국제적 열풍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예술이 K-pop을 따라 명칭화되고, 이제 K-Art는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 그렇다면 K-Art에서 예술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예를 들어 2023년 (주)한국딥러닝이 주도하는 [K-Art AI 수묵화 생성 프로젝트]는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사업이다. 2019년 설립 이후 동종업계 대비 성장률 400%를 달성해가고 있는 이 회사는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여러 문화사업기관의 동시적 지원으로부터 출발했다. 이 사업을 통해 누구나 ‘아티스트’가 될 수 있고, 세계 시장에서 ‘한국 수묵화’의 위상을 높임으로써 세계 시장(종종 NFT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기사가 포털에 업로드된다. AI K-Art는 어떤 방식으로 세계 미술 시장을 점령하는 것일까? 한국 수묵화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원동력은 ‘예술가’인가? ‘AI’인가? ‘AI 활용자’인가?
디지털 예술은 왜 이러한 ‘미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주목을 받고 있을까? 디지털 예술의 목적은 사실 ‘자본’ 그 자체다. 그런데도 디지털 상품은 시장에서 ‘(예술)작품’으로 불린다. 우리는 상품의 ‘내용’에 관한 기사보다는 항상 ‘거래 가격’의 이슈화에 매몰되어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여전히 한국은 슈퍼앱 기반 NFT ART 메타플랫폼 구축, 가상과 현실 사이의 작품을 경험할 수 있는 커뮤니티 생태계 구축 개발 등을 지원하는 신생 기업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은 예술 대중화와 블록체인 기술 대중 수용을 목표로 다양한 온·오프라인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하기도 한다. 바야흐로 ‘예술’과 ‘산업’의 융합이 실현된 듯하다. 디지털 아트의 새로운 스타들이 미술계로 진입하고, 무엇보다도 ‘디지털 아트’, 즉 정체성 없는 새로운 자들-디지털 유령-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AI 아티스트’도 등장하고 있다. 다양한 산업 분야가 국가 지원을 등에 업고 예술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지만, 사실 이 세계는 ‘예술’과 ‘일반’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세계다. 디지털 매체는 모든 이에게 제작자를 넘어 ‘아티스트’의 자격을 부여 - 오히려 스스로 자격을 부여하는 -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아트의 일부인 NFT ART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미술 생태계 차원을 개방한다. 물론 그 차원이 우리에게 어떤 희망과 절망을 가져다줄지는 아직 가늠하기 힘들다. 예술은 그야말로 유례없는 호황인 듯 보이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새로운 영토를 발견한 것처럼 환호하는 듯이 보인다. 한국 사회는 비약적인 기술 발전에 따른 예술의 산업화에 대한 유례없는 낙관론을 견지하고 있다. 예술가의 시간, 탐구, 전문성, 작품의 깊이와 부피, 밀도 등에서 이전의 모든 것과 다른 방식으로 증식하는 디지털 아트는 예술가의 창조적 에너지보다는 ‘예술가’라는 호칭에 더 큰 관심을 둔다. 그래서 허구와 맹종, 그리고 ‘사기’가 난무한다. 그러나 우리는 블랙홀과 같은 이 디지털 세계를 막을 수 없다. 경제, 국제 정부, 글로벌 자본 등이 블랙홀의 배후 세력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산업과 예술의 ‘상호작용’은 그 자체로 이해관계를 둘러싼 삶의 도구이며 전장(戰場)이다.미술의 변이체, 용어 남발, 디지털 기술의 무분별한 적용 등은 우리의 삶과 예술에 대한 기존의 이해에 충격을 가할 정도로 위협적이며 그 자체로 디지털 팬데믹이라 할 수 있다. 산업 육성이라는 명목 아래 공공 부서들이 문화예술의 산업화에 따른 신생 기업, 개인 개발자를 양성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비전문성에 기반한 디지털 산업 투자가 급속도로 진행 중이다. 여전히 관련 전문가와 예술가는 화려한 빛의 그림자로 소외되며, 혹여나 자신의 정당한 몫을 주장하기라도 하면 예술의 세계화에 불만을 품은 안티 산업화, 안티 국제화 세력처럼 간주 될 수 있다. 쏟아져 나오는 디지털 예술이라는 물에 침수당하기 전에 우리는 디지털 세계에서 문화적 물체가 선별되고 소비되는 과정에 대해 분석하고 성찰해야만 한다.
3. K-Art? 한국 미술의 행보와 국제적 신뢰
오프라인에서 미술은 여전히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각 대상의 정체성(상업 갤러리, 사립미술관, 공립미술관, 일반 공간, 예술 프로젝트 등)에 맞게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예술의 고유한 창조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엔데믹 이후, 미술의 국제 관계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한국 미술의 국제 전시 또한 그 격이 한층 더 높아진 듯하다. 그와 동시에 한국 미술 기관 스스로 여러 전략을 통해 한국 작가에 대한 다양한 발굴을 진행한다.
대표적으로 몇몇 사립미술관은 한국 작가와 서구 작가의 균형적인 전시를 기획한다. 호암미술관에서는 <니콜라스 파티>의 개인전과 함께 서도호, 강서경, 김윤신, 김창렬 등 한국 작가들의 회고전 전시를 계획한다. 실험적인 미술 전시를 선보여 왔던 아트선재센터는 2024년 전시를 위해 ‘횡단’, ‘시간’, ‘가능성’이라는 키워드 중심으로 동시대 미술 전시를 펼친다. 이는 국제적 전시 테마인 지구, 환경, 기후 등의 문제를 제시하고, 현재 지구의 위기 속에서 미술이 보여주는 가능성과 시·공간의 본질적인 의미를 탐구하는 실험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전시기획들은 동시대 미술이 시대적 과제를 감각적으로 예민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결을 형성한다. 동시에 아트선재센터는 매년 젊은 작가 소개 전시를 해외와 국내를 선별해 전개한다. 리너스 반 데 벨데(Rinus Van de Velde)와 댄 리(Dan Lee)의 전시, 우정수와 이요나 개인전, 싱가포르 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호추니엔(Ho Tzu Nyen) 개인전, 서도호 개인전 등을 통해 관람객은 국내와 해외 작가들의 다양한 시선, 즉, 문화의 이동과 교차, 지구의 삶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리움 미술관은 개관 20주년 기념으로 <필립 파레노 개인전>(2024.02.28~07.07)을 연다. 이 개인전은 뮌헨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Haus der Kunst)기관과 협력해 이루어진다. 하반기에는 <아니카 이 개인전>(2024.09.05.~12.29> 전시로, 기술과 생물, 감각을 연결하는 실험적 작업을 전개해온 한국계 미국 작가의 작업을 소개한다. 이렇듯 리움 미술관은 해당 기관들과 협력하며 국제적 관계망을 넓히고, 한국 작가의 여러 발굴 또한 진취적으로 미술의 주도적인 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주요 상업 갤러리인 국제갤러리 역시 서울점(K1, K2, K3)에서 순차적으로 다양한 개인전을 펼친다. 강서경, 김윤신, 회퍼, 수퍼플렉스 등이 다가온다. 특히 기후변화의 위협을 우리 일상 속 풍경으로 은유화한 수퍼플렉스는 K1과 K3 두 공간에 걸쳐 인류가 새로이 마주할 세상 속의 조각 및 회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동시에 부산점에서는 김용익, 김영나 등의 개인전이 개최될 예정이다. 블록체인 및 AI에 대한 관심을 모두 담아내는 이 새로운 작품군은 디지털 혁신과 유기적 아름다움의 수렴 과정을 시각화하는 시선을 선보인다. 이렇듯, 국제갤러리는 회화·조각에서 설치·영상, 미디어· 디지털 아트까지 동시대의 다양한 양상을 선보이는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시선을 국외로 돌려보면 대형 미술프로젝트는 여전히 자국의 위상과 국제적인 관계 및 미술계의 주요한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2024년 4월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을 맞이해 서구 내 한국 작가와 큐레이터가 주요 활동을 펼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제60회 국제미술전 한국관 전시를 총괄할 예술감독으로 야콥 파브리시우스 덴마크 아트 허브 코펜하겐 관장과 이설희 덴마크 쿤스트할 오르후스 큐레이터를 선정하였다. 이들이 제안한 <오도라마 시티(ODORAMA CITIES)>기획안은 한국 향기 여행(Korean scent journey)을 통해 구정아 작가의 신작들로 펼쳐진다. 한국의 여러 도시를 대표하는 향을 제작 및 설치하여 건축적 공간에 시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구정아 작가 특유의 감각이 전시에서 발현될 것이며, 한국관은 감각적인 경험을 양산하고, 기억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장소로 기능할 것이다.
광주비엔날레 역시 15회를 맞이하여 2024년 9월 개막을 앞두고 니콜라 부리오 예술감독을 선정해 활발한 준비를 진행 중이다. [판소리-21세기 사운드 스케이프]는 한국 판소리를 통해 전시 공간을 세 가지 음운 현상에 빗대어 표현한다. 이는 포화된 행성부터 분자와 우주의 세계까지 지구 생태계의 가장 큰 현안을 이해하기 위한 ‘공간’을 위한 탐색이다. 전시의 첫 번째 섹션인 ‘라르센 효과(Larsen effect)’는 인간의 여러 활동으로 포화상태가 된 공간의 의미를 은유화해 보여준다. 두 번째 섹션의 ‘다성음악(Polyphony)’은 세계의 복잡성에 주목하는 것, 세 번째 섹션의 ‘태초의 소리(Primordial sound)’는 빅뱅의 첫 번째 소리를 은유화 한다. 마지막으로 전시 바깥의 ‘광주 양림동’을 활용하며 ‘거리’와 ‘도시 공간’의 다양한 면모를 예술로 연출하며, 일상적 공간이 지닌 힘과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렇듯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각 기관, 즉 상업 갤러리, 예술센터, 미술관, 예술 프로젝트 등이 자신의 목적과 방향에 맞춰 다양한 형태의 전시를 선보일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와 달리 디지털 예술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드디어 디지털 예술이 미술관에 입성하는 것일까? 서울시는 ‘서서울미술관’의 2024년 11월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 문화적 경험을 확장하는 미술관의 방향을 지니는 이 미술관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해 미술관 운영을 고도화하고, 다양한 예술 자원과 정보를 연계한 온라인 교육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디지털 약자의 접근성을 확대하는 디지털 격차 해소 방안도 마련한다. 아마도 전국의 디지털 미술관의 모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전국의 지역에서는 미술관을 가장한 여러 형태의 운영 방식(대부분 위탁)으로 이루어지는 미술관이 설립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떨쳐내기 쉽지 않다.
4. 지금, 우리의 미술
아직 미술의 전문적 제도화를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 미술사의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고, 작가 이외의 미술 관계자들의 성장은 더 느린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이 전문성을 보장받으며, 자신이 받은 보장을 사회에 다양한 형태로 환원하며 기여할 수 있도록, 우리는 그들에게 신뢰를 줘야 할 것이다. 그때, 한국 사회는 우리 시대의 (진짜) 예술가를 잃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이전의 전시들이 주로 명화를 중심으로 하는 ‘블록버스터’로 진행되었다면, 현재의 전시들은 현대미술 작가, 특히 개인전이 강세이다. 흥미로운 것은 ‘거장’, ‘세계적인’, ‘ 슈퍼스타’로 지칭되는 표현들이다. 흔히 ‘회고전’에 붙는 ‘거장’ 역시도 여전히 활발한 작가들, 즉 젊은 작가들에게도 붙는다. 우리는 ‘스타’를 창출하는 예술의 세계를 보고 있다. 참으로 유혹이 많다. 미술계에서조차도 진정한 예술인을 파악하기 어렵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 평생 작업을 하며 버텨가는 작가의 창작 시간과 노력이 이름 모르는 자의 인기에 가려진다. 그런데도, 여전히 꿋꿋하게 자신만의 길을 노정하고 있는 한국 미술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대의 문제적 사유를 확장하는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러한 노력을 지속할 때, 세계는 한국 미술의 힘과 가능성을 ‘지속해서’ 주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