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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수교와 국제 문화교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한다

  • [등록일]2024-03-05
  • [조회] 3130

시론① 국제문화교류의 패러다임

가수교와 국제 문화교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한다


글 이동연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




 국제 문화교류의 새로운 지평과 패러다임 전환 

 2019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은 UN 소속 191개 국가 중 189개국과 수교를 맺고 있다. 수교를 맺지 않은 나라는 쿠바와 시리아인데, 오랜 노력 끝에 2024년 2월 14일 쿠바와 대사급 수교를 맺는 성과를 올렸다. 수교한 국가와 매년 행사를 개최한다면, 매년 190개 국가에서 수교 기념행사가 열릴 것이고 10년 단위로만 한정해도 매년 많은 수교행사가 기다리고 있다. 올해에도 10년 단위 국가 수교국으로 “브루나이”(40주년), “우루과이”(60주년), “라이베리아”(60주년), “이탈리아”(140주년)가 기다리고 있다. 

 국가수교를 기념하는 행사들에는 많은 유형이 있지만, 그중에서 문화행사가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과거에 국가수교 문화행사들을 보면 주로 선진국 중심으로 대통령 순방에 맞추어 국립예술단체들이 주도하는 공연과 전시가 주를 이루었다. 말하자면, 선진국 중심, 국가원수 중심, 국립기관 중심의 행사가 수교를 기념하는 문화행사의 전형이었다. 그래서 국가별 수교를 기념하는 문화행사들은 주로 문화정책 기획의 전문성이 우선 고려되기보다는 대통령실의 정무적 판단이나 외교부의 외교 정책 방향이 더 중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으로 2010년 이후 한류와 케이팝이 글로벌 열풍을 몰고 오면서 케이팝 아이돌 그룹들이 국가 수교행사에 참여하는 사례들이 많아졌다. BTS, 블랙핑크, EXO, 트와이스 등 유명 아이돌 그룹들은 대통령의 국빈방문이나 주요국가 수교행사가 있을 때, 핵심 내빈으로 참가하여 해외 정상회의나 현지 케이팝 팬 미팅에서 큰 호응을 얻기도 한다. 케이팝 아이돌 그룹은 수교 문화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홍보 대사로 활약한다. 그러나 최근의 문화 수교행사에 동원되는 케이팝 아이돌 그룹이나 유명 연예인들의 참여가 자주 반복되다 보니 식상해 보이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일정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장기적인 문화교류 정책의 방향과는 맞지 않아 보인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순방할 때, 브루노 마스나 테일러 스위프트를 데리고 오지 않듯이 글로벌 위상이 높아진 한국의 국격을 생각할 때는 문화수교 행사는 이제 유명 팝스타의 동원을 통한 일시적인 주목보다는 말 그대로 특별한 계기를 일상적 교류로 전환하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교류의 문화적 축적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국가수교를 계기로 행해지는 문화교류는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가의 경계를 가로질러 다양한 문화교류가 이루어지는 이른바 글로벌 문화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2018년 새롭게 출범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하 '진흥원')의 출범은 해외문화홍보원과 함께 국제문화교류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부여받게 되었다. 특히 국가 수교행사와 같은 계기성 사업들이 매우 일회적으로 진행되었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진흥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진흥원이 국제문화교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중요한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국가수교를 위한 문화교류의 패러다임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다음 네 가지 관점이 중요하다. 



일회성 기획에서 장기 전략 기획으로 

 첫째, 일회성 기획에서 벗어나 전문성을 갖춘 장기 전략 기획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통상 국가수교를 기념하는 문화행사들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년 많은 국가와의 수교를 기념하는 기획을 반복하다 보니, 주로 일회성 행사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자연스럽게 장기적인 교류 기획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대게 국가수교 문화행사들은 10년을 주기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게 아니다. 적어도 2-3년 전에 해당 국가의 외교적 특성과 역사문화적 특성을 고려하여 문화교류를 위한 전문위원회 구성을 통해 각 분야별 세부 계획과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10년을 주기로 진행하는 국가 수교행사들은 경우에 따라서, 체계적이고 내실 있는 문화교류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동안 미진했던 분야와 새롭게 추진해야 하는 사업들이 수교기념 문화행사들을 계기로 마련될 수 있다면, 새로운 문화교류의 장을 열 수 있다. 가령 한-불 수교 120주년과 13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교류 행사들은 매우 오래전부터 기획되어 프랑스 현지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프랑스 문화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었고,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에서 인적 교류가 잘 이루어졌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국가수교를 기념해서 행사 위주의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뿐 아니라 해당 국가에서 활동하는 한국학 연구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문화, 예술, 인문 분야에 지식인들의 네트워크를 탄탄하게 형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최근에 필자가 워싱턴 DC와 버지니아주 소재 3개 대학에서 한류와 케이팝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는데 미국 동부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교수진과 연구자들의 현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들은 현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가르치고 있어서, 교육자이기도 하면서 한국문화의 매개자이기도 하다. 이들이 장기적인 문화교류를 위한 역할을 가질 수 있다면, 지속가능한 문화교류를 위한 인적, 물적 거점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선진국 중심 교류에서 다원국 중심 다양성 교류로  

 둘째, 선진국, 중심국 중심의 문화교류에서 벗어나 ODA 국가, 권역별 다원 문화교류로 전환해야 한다. 매년 10년 단위로 맺은 수교 국가의 수는 대체로 10개국 내외이다. 매년 많은 국가의 수교기념 문화행사들을 챙겨야 하는 한계 때문에, 예산과 시간상 주요국가 중심으로 교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럴 경우, 대부분 선진국이나 외교적 주요국가 중심으로 문화교류 행사를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결국 국가별 국제 문화교류는 몇몇 주요 선진국 중심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다. 



 국제문화교류의 패러다임이 바뀌려면, 그동안 우리가 중시하지 않았던 국가들, 권역상 멀리 떨어진 국가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전략적 문화교류가 필요하다. 국제 문화교류는 구체적인 기획과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관행상 친한 국가, 편한 국가 중심으로 수렴되는 관성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이번 쿠바 수교를 계기로 카리브해 국가들과의 문화교류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필자는 음악과 관련한 교류를 위해 쿠바를 3번이나 방문했는데 방문할 때마다 쿠바의 예술적 잠재성과 쿠바인의 한류 사랑이 엄청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쿠바의 문화예술과 관련한 인프라가 너무 취약해서 대등한 문화교류를 진행하기가 불가능하다. 쿠바음악인들은 쿠바의 무수히 많은 음악 자원들을 디지털화해서 “멜론”과 같은 디지털 음악플랫폼을 만들고 싶어한다. 또한 시설이 열악한 음악 스튜디오와 라이브클럽의 리모델링을 원하기도 한다. 또한 <쿠바 국제재즈 페스티벌>(1월), <쿠바 살사축제>(2월), <쿠바디스코>(5월) 등 매월 열리는 쿠바 음악축제에 한국의 음악인들이 참여해주길 원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협력 지원이 지속된다면, 쿠바와의 국교는 이른 시간 안에 훨씬 강해질 것이다.




일방향 교류에서 양방향 상호교류로 

 셋째, 국가수교 문화행사가 해당 국가에서만 열리지 않고, 국내에서도 열리는 양방향 상호교류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통상 국가수교 문화행사는 우리가 해당 국가에 가서 진행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국제문화교류로서 한국의 위치는 매우 양가적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과의 문화교류 시에는 주로 자비를 들여 공연과 전시 프로그램을 현지에 가서 진행하지만, 해당 국가들이 자신들의 비용을 들여 국내에서 동등하게 문화행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드물다. 반대로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한국보다 경제적 상황이 안 좋은 국가와 문화교류를 진행하는 경우에는 우리가 해외에 나가거나, 해당국이 한국에 들어와서 문화행사를 할 때, 대게 비용을 우리가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국가수교를 기념하는 문화행사의 경우에도 한국의 글로벌 위상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등등한 위치에서 상호 호혜적인 문화교류 행사를 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의 문화예술이 해외에 나가 그 나라 국민에게 호응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해당 국가의 문화예술이 국내에 소개되어 우리 국민에게 다양하게 소개되는 것도 중요하다. 사실 한국의 문화예술과 문화콘텐츠를 해외에 소개하는 것만 국제 문화교류가 아니다. 다양한 국가의 문화예술 콘텐츠가 국내에 소개되어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안방에서 글로벌 문화의 다양성을 체험하는 상호주의 국제 문화교류는 시대적 흐름이 되었다. 일례로 작년 한-캐나다 수교 6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벌였고, 2024-5년에는 한-캐나다 상호문화교류의 해로 정해서 캐나다의 문화예술이 국내에도 많이 소개될 것으로 보인다. “아웃바운드”(outbound) 국제 문화교류에서 “인바운드”(inbound) 국제문화교류를 동시에 추진하는 문화교류 정책은 글로벌 시대의 “상호문화주의”(inter-culturalism)에 부응한다. 




중앙정부 중심 교류에서 민간과 로컬 중심 교류로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국가수교 문화행사라 할지라도 교류의 주체는 민간과 로컬중심이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수교 문화행사들이 주로 그 나라의 수도에서 국공립 공연예술 단체중심으로 진행되는 틀에서 벗어나 민간 예술단체들이 많이 교류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기획해야 한다. 더불어 양국의 지역 도시 간 문화교류의 기회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진흥원에서 2023년까지 추진했던 <지역문화 국제교류 지원사업-지역, 잇다> 사업은 이른바 “글로컬”(glocal) 시대에 국가 대 국가의 교류에서 로컬 대 로컬의 교류를 목적으로 한다. 국가수교 문화교류의 기회가 있을 때, 각국의 로컬 문화예술인과 예술단체, 문화유산의 교류가 강화되면 훨씬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진흥원은 2024년 국가수교 문화행사의 기대효과로 “상호주의 문화교류 확대 및 국가 간 우호 증진”, “장르 다양화를 통한 한국문화 관심 환기”, “국내 예술인 역량 강화 및 교류 지속화 기대”를 중시한다. 이러한 기대효과들이 제대로 실현이 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국제 문화교류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일회성 기획에서 장기 전략기획으로, 중심국에서 다원국으로, 일방향에서 양방향으로, 중앙정부에서 민간과 로컬로 문화교류의 패러다임이 전환될 수 있다면, 한국의 국제문화교류 정책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