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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루과이 수교 60주년과 국제문화교류
글 최연충 전 주우루과이 대사
우루과이는 우리나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이른바 대척점에 위치한 나라이다. 수도(首都) 몬테비데오의 관문인 카라스코 국제공항에 내려 시내로 들어가노라면 라플라타강변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서 공손하게 인사하는 모습의 조각상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인 조각가 유영호의 작품인 ‘그리팅맨(Greeting Man)’이다. 유 작가는 지정학적으로 동서나 남북이 만나는 대치점 또는 대립과 갈등이 있는 지구촌 곳곳에 그리팅맨을 세워 소통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애쓰고 있다. 2012년에 세워진 이 그리팅맨 조각상은 한-우 양국간 우의의 상징이 되었고, 조각상을 둘러싸고 아담하게 조성된 ‘한국광장’은 몬테비데오의 주요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이듬해에는 산림청으로부터 직접 무궁화 묘목 50주를 공수받아 광장 둘레에 심어 무궁화동산으로 꾸몄다. 이 그리팅맨과 한국광장 조성사업은 한-우루과이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외교의 성공사례로 평가받는다. 당시 주우루과이 대사로 재임하면서 이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원했던 필자에게도 큰 보람이었다. 작가의 열정이 가장 큰 동력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어려운 고비도 많았다. 한국의 작업장에서부터 우루과이까지 머나먼 길 컨테이너 운송을 무료로 지원해준 한진해운, 그리고 부지 조성 및 작품 설치비용 일체를 부담해준 두산그룹 연강재단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사업이 결실을 맺기 어려웠을 것이다. 두 기업의 따뜻한 배려에 거듭 감사를 표한다.
수교 50주년 계기로 우루과이에 한국 문화를 알린 또 다른 주역들이 있다. 한국장학재단이 주최한 ‘지구별 꿈 도전단’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우루과이를 찾아주었던 세 젊은이들이다. 지구 반대편이라는 뜻의 영문 머릿글자를 따 오소테(OSOTE)라고 팀 이름을 붙인 이들은 17일간 우루과이에 머물면서 다채롭게 민간외교를 펼쳤다. 태극기 그리기, 투호/제기차기/한복 체험 등 이벤트를 열어 한국 민속을 알렸고, 시청 광장에서 K-pop 플래시 몹을 펼치며 이국 친구들의 환호를 받았다. 페이스북을 통해 미리 인연을 맺어두었던 많은 현지 친구들이 큰 힘이 되어주었다. 마침 그 시기에 대사관에서는 K-pop 월드 페스티벌 우루과이 예선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분위기를 띄워주면서 현지 참가자들의 관심이 크게 고조되었고 덕분에 행사를 풍성하게 치를 수 있었다. 우루과이 전통음악인 무르가(Murga) 공연팀과도 격의없이 어울리며 민간 외교관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준 신세대 젊은이들, 이들과의 인연도 고맙게 간직하고 있다.
그로부터 어느덧 10년이 흘러 이제 한-우루과이 양국은 수교 60주년을 맞게 되었다. 동양 문화권에서 60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간지상으로 한 갑자(甲子)가 온전히 돌아 시간의 큰 매듭이 지어지고 새로운 출발선에 서기 때문이다. 당연히 유관부처와 현지 대사관에서는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문화외교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멋진 아이디어를 내놓을지 자못 궁금하다. 아무쪼록 참신하고 내실있게 행사를 기획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다만, 혹시 참고가 될지도 몰라 평소 지니고 있던 개인적인 바람 몇 가지를 제언해본다.
먼저, 호세 무히카(Jose Mujica) 전 대통령 내외분의 초청 방한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무히카 전 대통령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잘 알려진 분이다. 2010~2015년 제46대 대통령으로 재임하였고 퇴임시에도 무려 65%의 지지율을 기록했을 만큼 존경받는 지도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를 우러르고 흠모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청렴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정치적 소신이 뚜렷하고 합리적인 정책 결정으로 사회경제적 안정을 이루어내었다. 인권, 과소비, 환경파괴, 기후위기 등 글로벌 이슈마다 큰 울림이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인류 보편적 가치를 강조한다. 콜롬비아 평화협상 등 국제무대에서 뛰어난 중재조정 수완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이 시대의 현자(賢者)이며 철인(哲人) 지도자이다. 부인인 루시아 토폴란스키 여사도 지극히 검소하고 겸손한 분이다. 무히카 대통령과 함께 젊은 시절 사회정의를 부르짖으며 도시 게릴라 활동을 한 평생 동지이다. 역시 존경받는 정치인이며 상원의원과 부통령을 지냈다. 두 분의 삶은 그 자체가 감동적인 대하드라마이다. 이런 두 분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한다면 양국간 우의는 한층 깊어질 것이다.
다음으로, 양국의 축구 레전드들을 다시 불러 모아 자선경기를 갖도록 해보자. 우루과이라면 곧 축구 아닌가. 우루과이는 1930년 제1회 월드컵 개최국이자 우승국이다. 월드컵을 두 차례나 품에 안았고 코파아메리카 대회에서도 15번이나 우승한, 남미를 대표하는 축구 강국이다.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축구팬이라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전에서 우리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주었던 루이스 수아레스의 그림같은 결승골을 기억할 것이다. 수아레스는 악동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순박하고 다감한 선수다. 전성기를 지났음에도 여전히 많은 팬을 갖고 있다. 수아레스를 비롯하여 당시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했던 디에고 포를란과 에딘손 카바니 등이 와서 박지성, 안정환, 이영표, 이운재 등과 어울려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경기에 앞서 다양한 팬 서비스를 선사하고, 중간 휴식시간에 미니 K-pop 콘서트를 곁들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아울러 자선경기의 수익금으로 양국 청소년들의 교류 프로그램을 지원하거나 불우 아동을 돕는 재원으로 쓴다면 한층 뜻깊은 행사가 될 것이다.
끝으로, 카를로스 빌라로(Carlos Vilaro) 작품을 국내에서 감상할 기회가 오기를 기대한다. 카를로스 빌라로(1923~2014)는 우루과이 근대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도예가, 조각가이다. 피카소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받고 화풍도 많이 닮았지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밝고 화려한 색채를 구사하며 자신의 개성을 살려나갔다. 대서양에 면한 도시 푼타 델 에스테에 있는 ‘카사 푸에블로(Casa Pueblo)’는 그가 30여년에 걸쳐 직접 지은 보금자리이자 작품 활동의 산실이다. 그 자체로 예술품과 다름없는, 곡선 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빼어난 건축물이다. 필자는 시간 날 때마다 자주 이곳을 찾았는데, 언제나 따뜻하게 맞아주던 노작가의 선한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이임 인사차 마지막으로 들렀을 때 조만간 한국에서 빌라로 작품전시회를 열자고 약속하였는데, 그로부터 얼마 후 허망하게 별세하셨다. 우루과이 정부는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빈소를 차리고 거장을 추모했다. 한국을 사랑한 작가 카를로스 빌라로 유작전을 서울에서 열 수 있다면 우리 국민들이 우루과이를 더 가까이 느끼고 우루과이 예술을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남미의 강소국 우루과이는 지정학적으로 좌우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라는 대국을 마주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을 가까이 두고 있는 우리와 여건이 비슷하다. 정식 국호는 우루과이 동방 공화국(Oriental Republic of Uruguay)이다. 우리도 동방(東邦)이니 묘한 인연이다. 1825년 4월 우국지사 33인이 모여 만천하에 독립을 외친 것도 우리의 기미 독립선언과 흡사하다. 6.25 전쟁때는 당시 기준으로 200만불 상당의 군용모포를 지원해준 고마운 우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껏 우루과이를 잘 모른 채 데면데면하게 대해 왔다. 이제 수교 60주년을 넘어선 만큼 양국이 새로운 차원에서 더 깊은 우호협력의 시대를 활짝 열어가기를 기대한다. 다양한 문화 교류를 통해 서로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것이 그 디딤돌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