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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025 한국-이탈리아 상호문화교류의 해:
로마에서 시작된 새로운 문화 여정
글 아리랑TV 송유진 기자 (문화·기획취재팀)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는 흔히 서양 문명의 대표 도시이자 살아있는 교과서라고 불린다. 2000년이 넘는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보존되어 있어, 서양 문명의 역사를 그대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부터 이 서양 문화의 심장과 같은 도시 곳곳에서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이자, 2024-2025 한국-이탈리아 상호문화교류의 해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과 이탈리아의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은 양국 간의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상호문화교류의 해를 선포했다. 그 여정의 공식적인 첫 발걸음은 5월 4일, 로마에서 시작되었다. 이번 사업의 목적은 수교 140주년 기념행사를 확장하고, 양국 간 문화예술 교류를 발전시키며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상호문화교류의 해’ 기간 동안 공연 예술 및 시각 예술 분야에서 인적, 문화적 상호교류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필자는 문화체육관광부 출입 기자로서 ‘상호문화교류의 해’ 개막에 맞춰 로마를 방문했다. 개막 행사 전 이탈리아 현지 언론과 한국 기자단과의 기자회견에서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140년이라는 오랜 수교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분야에서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전예진 주이탈리아한국문화원장 역시 현재 이탈리아에서 한국은 케이팝, 드라마, 영화 등 현대 문화 중심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앞으로 2년간 추진할 ‘상호문화교류의 해’는 양국이 보유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더 많이 소개하고 교류하고자 한다.
개막 행사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 중 하나인 아르젠티나 국립극장에서 열렸다. 개막 공연은 한국 전통예술공연인 국립국악원의 ‘세자의 꿈’이었다.
현지 관객들로 700석 극장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보며 한국의 전통 문화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자의 꿈’은 조선시대 왕의 아들이 성인식을 마치고 진정한 군주가 되기 위해 하루 동안 백성들의 일상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모습을 담은 궁중 무용 공연이다. 한국 전통악기와 춤으로 구성된 이 공연은 관객들의 열렬한 반응을 얻었고, 특히 사물놀이 공연 때 가장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공연이 끝난 후 많은 사람들이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는 등 여운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벌써부터 문화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5월 4일 개막 공연으로 시작된 ‘한-이탈리아 상호문화교류의 해’는 앞으로 이탈리아에서 전역에서 다양한 문화교류 사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현재 로마 시내 주요 관광지인 콜로세움 고고학 공원(비너스 신전, 셉티조디움)과 진실의 입 광장에서 한국 중견 조각 작가 박은선의 대표작 5점이 전시되고 있으며, 하반기에는 K-콘텐츠 B2C 행사, 한국 관광박람회, 한국을 소개하는 단편영화 제작 등이 계획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이탈리아 여행업계 관계자 초청 팸투어, 박물관 네트워크 펠로우십 추진, 한-이탈리아 민간 문화예술단체 간 국내 협업 프로그램(공식인증사업, 쌍방향국제문화협업) 지원 등이 예정되어 있다.
로마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서울에서 ‘한-이탈리아 상호문화교류의 해’ 공식 로고를 디자인한 주한이탈리아대사관 공식 디자이너 안드레아 베세라와 만나 로고의 디자인 과정과 그 의미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12년 전 한국을 처음 방문한 그는 한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한국에 왠지 모르게 집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코로나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생활을 시작한 안드레아는 로고 디자인 의뢰를 받았을 때부터 이 로고 디자인이 양국 간 문화교류의 시작이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의 목표는 서로 문화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요소가 아닌, 자국에서는 너무나도 유명하고 잘 알려져 있지만 상대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그 무언가를 담아내는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이탈리아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콜로세움이나 피사의 탑,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아닌, 또 이탈리아 사람들이 한국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궁이나 탈이 아닌 서로에게는 새롭지만 각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화적 요소를 말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로고가 바로 한국의 갓을 쓴 이탈리아의 단테이다.
단테는 이탈리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작가이자 시인, 언어학자이자 정치이론가, 철학자이며, 갓은 조선시대 성인 남자들이 외출할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할 예복으로 우리 민족의 의생활에 필수품이었다. 안드레아가 디자인한 로고는 보티첼리가 그린 단테의 초상화의 아웃라인을 따서 머리 부분에 갓을 씌워 양국의 단순한 교류를 넘어 서로의 가치와 문화를 공유하고 연결하는 상호문화교류의 해 사업의 의미를 담아냈다.
문화는 단순히 보거나 듣기 좋은 감상거리가 아닌 그 이상의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소프트 파워라고 일컫는 것처럼, 겉보기에는 강해 보이지 않지만 서로의 문화를 조금씩 알아가고, 경험하며, 흥미를 가지게 되면 국가 간의 단단한 교량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서로 간의 친밀함과 호감은 경제 교류, 인적 교류 등으로 이어져 더욱 풍성한 교류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한-이탈리아 상호문화교류의 해’가 성공적으로 개최되어 양국 간의 140년 우정이 그 이상으로 지속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