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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는 더이상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 [등록일]2024-11-07
  • [조회] 634

2024 아시아송 페스티벌 X 문화잇지오

한류는 더 이상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글 황남웅(문화예술 기획자)



 한강, 한류, 그리고 교류

 한국에서 국제적인 교류의 장을 펼치기에 가장 적합한 곳 중 하나를 꼽으라면, 한강이 빠질 수 있을까. 이는 단순히 한강이 한국에서 랜드마크로서 갖는 입지 때문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갖는 독특한 맥락 덕분이다. 한강은 서울의 복판을 가로지르는 경계선인 동시에, 서로를 촘촘히 잇는 관계망이기도 하다. 서울 거주자는 물론이고 국내외 관광객들에게도 활짝 열린 공간으로, 하루에도 수십만 명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방문하는 광장이다. 분명 이 곳 만큼이나 다양한 목소리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는 국내에서 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2024 아시아송 페스티벌(이하 아송페)’이 한강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세팅부터 제대로란 생각이 들었다. 각양각색의 문화를 넓은 품으로 수용할 수 있는 한강에서 노을과 함께 무르익어갈 무대와 객석이 데자뷔처럼 떠올랐다. 가보기도 전에 떠는 호들갑일지도 모르겠으나, 한강에서 재현될 한류의 열기와 그 속에서 각국의 스타들이 어우러져 빚어낼 훈훈한 교류의 풍경이 위화감 없이 다가왔다. 



 네트워킹 나잇부터 물오른 아티스트들의 케미

 그렇다고 해서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비약적으로 늘어난 축제들 사이에서 무늬 뿐인 교류를 표방하는 부실한 축제도 급증한 탓이다. 다행히 아송페는 그런 우려를 뒤로하고,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에서 기관명에 충실한 내실 있는 기획을 선보였다. 그 일환으로, 공연 전 참여 아티스트들을 위해 준비한 ‘네트워킹 나잇’을 꼽을 수 있다. 

  네트워킹 나잇은 공연 전날 밤 아티스트들이 함께 식사를 하며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마련된 자리로, 국외 아티스트들의 컨디션과 편의를 고려해 그들이 묵는 호텔 내에서 진행됐다. 식사를 마치고 시간이 흐를수록 아티스트들의 대화도 점점 깊어져 갔는데, 주로 한국에 대한 각자의 인상과 내일 있을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나눴다. 특히 한국에 여러 차례 방문하며 공연을 하기도 했던 태국 아티스트 ‘윔(WIM)’이 아직 한국을 잘 모르는 아티스트들에게 자신의 내한 공연 후기를 들려주며, 홍대, 명동, 이태원 등의 관광 명소까지 추천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불과 2시간 남짓 진행된 짧은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아티스트들은 행사 마감 무렵이 되자 벌써 서로 정이 들어 악수는 기본이고 포옹을 나누기도 하며 끈끈해진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공연 전날 밤부터 물오른 아티스트들 간의 케미는 분명 다음 날 무대까지 이어지리란 예감이 들었다. 




 아시아송 페스티벌: 모두가 모두의 팬이 되었던 현장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시작된 아송페는 흥겨운 붐업 공연으로 서서히 시동을 걸었다. 붐업부터 오프닝 공연을 담당한 팀들은 객석을 가득 메운 다양한 문화권의 관객들 모두에게 친숙할 만한 곡들을 선보였다. 그 중 댄스팀 ‘다올’이 원조 아시아의 별 ‘보아’의 No.1부터 시작된 K-팝 메들리에 맞춰 낯익은 안무를 선보이자 장내 분위기가 금세 달아올랐다. 객석 여기저기서 아는 곡들을 열심히 따라 부르는 관객들의 소리를 들으며, 역시나 아는 맛의 무서움을 실감했다.  

 본격적으로 펼쳐진 1부 공연은 마치 기승전결이 있는 한 편의 스토리처럼 유려하게 흘러갔다. 시작부터 속을 알 수 없는 ‘바밍타이거’ 특유의 양파 같은 바이브는 이어질 공연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며 기대를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이어서 무대에 오른 자메이카 뮤지션 ‘자 릴(Jah Lil)’은 밥 말리의 계승자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울림 있는 레게 공연으로 페스티벌의 무게감을 더했고, 인도네시아의 대표 스타 ‘아프간(Afgan)’은 한강의 야경을 적시는 감미로운 R&B 사운드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해외 가수들의 좋은 퍼포먼스에 힘입어 등장한 한국 보이그룹 ‘8TURN’은 K-팝 고유의 감성과 에너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며 큰 박수를 받았다. 덧붙여, 8TURN과 베트남의 라이징 스타 ‘미앙(My Anh)’이 함께 아이콘(iKON)의 ‘사랑을 했다’를 부른 콜라보 무대는 어떻게 K-팝으로 세계가 하나가 되어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2부 공연은 강바람이 차가워질 무렵 시작되었으나, 1부 못지않게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됐다. 태국에서 큰 사랑을 받은 신스팝 듀오 하입스(HYBS)의 멤버 ‘윔(WIM)’은 실험적이면서도 따뜻한 감성의 음악으로 2부의 시작을 알렸다. 앞서 콜라보 공연으로 무대에 올랐던 미앙은 본인 밴드와 함께 다시 등장해 미성과 허스키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음색을 한층 또렷이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뒤이어, 열정 넘치는 필리핀 뮤지션 ‘다이오넬라(Dionela)’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관객의 텐션마저 끌어올렸다. 한편, ‘토미오카 아이(Tomioka Ai)’는 직전 무대와는 달리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서정적인 음색을 드러내며, 왜 자신이 최근 J팝 붐의 주역으로 꼽히는지를 입증했다. 2부의 후반부는 최근 한국에서 화제의 중심에 있는 여성 그룹들로 채워졌다. 먼저, ‘QWER’은 아송페에 참여한 유일한 한국 밴드로서 인기의 기저에 탄탄한 라이브 실력과 퍼포먼스가 있음을 가감 없이 선보였다. 페스티벌의 대미를 장식한 ‘프로미스나인’은 멤버 각각의 개성이 드러난 의상과 함께 등장한 와중에도, 공연이 시작되자 멤버들이 하나 되어 K-팝 특유의 칼군무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이끌어냈다.



 공연이 모두 끝난 뒤에는 참가 아티스트들의 단체 기념사진 촬영이 진행됐다. 무대 위로 아티스트들이 하나 둘 올라 자리를 잡아 나가는 동안, 옆자리에 있던 관객 분께 이때다 싶어 말을 걸었다. 그는 공연 내내 프로미스나인 응원봉을 들고 있었지만, 공연이 끝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아낌없이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그 점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원래 프로미스나인 외에 다른 아티스트들도 좋아했는지 물었더니, 그는 몇몇 한국 아티스트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들어본 적조차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객석에서 모든 아티스트들을 열렬히 응원한 건, 팬으로서의 존중이었다고 밝혔다. 자신의 아티스트들을 존중하는 만큼, 이런 페스티벌에서는 다른 아티스트들도 같은 마음으로 존중한다는 의미였다. 아마도 그와 같은 성숙한 팬들이 객석 곳곳을 지켜준 덕에, 고국에 팬들을 두고 온 해외 아티스트들도 이곳에서 어색함 없이 온기를 느끼며 공연을 마칠 수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문화잇지오: 세계 문화의 과거부터 미래까지

 아송페와 더불어 세계의 여러 이색적인 문화를 한국과 연결하는 또 다른 축제인 ‘2024 문화잇지오’(이하 문화잇지오)도 인상적이었다. 올해는 필리핀과 자메이카의 문화 체험을 중심으로 개최되어, 각 나라별 빌리지에서 소품, 전통의상, 음식, 댄스 등의 문화적 요소를 다방면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사실 이런 체험 기반의 행사들은 최근 쏟아져 나오는 팝업 이벤트들로 인해 그 가치가 많이 희석되었다. 특히 성수, 홍대, 가로수길 등 이른바 팝업의 성지를 자주 드나드는 방문객들에게는 웬만한 이벤트로 만족감을 주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문화잇지오는 나름대로 자기만의 해법을 찾은 듯 했다.

 괜히 트렌드에 발맞춰야 한다는 강박 아래, MZ세대들을 겨냥한 체험형 행사를 기획하기보다는 한강에 나들이를 온 가족 단위 방문객을 주요 타깃으로 삼은 점이 주효했다. 힙한 척하는데 어설프게 힘을 쏟기보단, 각 나라별 문화만이 가진 독특한 지점을 가족들이 함께 즐기며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현장을 조성하는 데 집중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나치게 교육적이거나, 유희적이지 않은 적절한 수위의 프로그램들은 방문객 입장에서 참여 허들이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다고 느낄 법했다. 일례로, 필리핀 빌리지에서 진행된 ‘티니클링 대나무댄스’는 한국의 고무줄 놀이처럼 간단해 보여도 막상 해보면 결코 쉽지만은 않다. 이렇게 가볍게나마 몸을 움직여 새로운 문화를 체험해보는 과정은 당시에는 별것 아닌 듯해도, 그 문화를 이해하는 데 꽤나 유익하고 재밌는 기억으로 남곤 한다. 이때 방문객들이 새로운 문화를 제대로 체험하도록 돕는 스태프들의 역할도 중요한데, 전반적으로 각 부스를 지키는 스태프들의 밝고 능숙한 진행 역시 보기 좋았다.



 문화잇지오 역시 아송페와 마찬가지로 체험형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공연 행사도 함께 마련했다. 본 공연은 요약하자면, 필리핀과 자메이카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반영하고 있었다. 공연 초반부는 각 국가의 전통 댄스 공연이 이어졌는데, 필리핀의 ‘라몬 오부산 민속 공연팀(Ramon Obusan Folkloric Group)’이 화려한 전통 의상으로 볼거리가 풍성한 공연을 선보였다면, 자메이카의 ‘댄스 익스프레션즈(Dance Xpressionz)’는 긍정적인 에너지와 위트로 가득한 공연을 선보였다. 



 두 공연이 각 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할을 했다면, 이어서 등장한 젊은 아티스트들은 각 나라의 현재로부터 미래를 가늠하게 만들었다. 전날 밤 아송페를 빛낸 두 아티스트 ‘다이오넬라(Dionela)’와 ‘자 릴(Jah Lil)’이 각각 필리핀과 자메이카를 대표해 다시 한 번 무대 위로 올랐다. 두 아티스트 모두 문화잇지오 공연에선 전날보다 더 많은 곡을 선보이면서 자신들의 매력을 십분 발산했다. 이들의 공연은 진한 여운을 남기며 각 문화의 밝은 미래를 예감하게 했다.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등장한 하하와 스컬의 ‘레게 강 같은 평화’는 다 년 간의 공연 경험에서 우러나온 ‘짬바(짬에서 나온 바이브)’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공연 시작과 함께 부쩍 추워진 날씨에 움츠러든 관객들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든 뒤, 다 함께 소리 높여 즐기는 분위기를 센스 있게 유도했다. 뿐만 아니라, 외국 관객들을 무대 위로 불러 함께 춤을 추고, 직접 객석으로 찾아가 관객들과 다정하게 사진을 찍기도 했다. 덕분에 문화잇지오의 공연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허물어진 채, 진짜 교류란 이런 것임을 떠올리게 하는 화합의 장을 연출하며 막을 내릴 수 있었다.




 한류는 더이상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BTS, 봉준호, 손흥민 … 렛츠고” 한국의 월클(월드클래스)라인을 열거한 가수 박재범의 가사가 한동안 화제를 모으며 밈처럼 돌곤 했다. 이 가사는 K-컬처의 주역들이 이렇게나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음을 단박에 인지시키며, 수많은 한국인들을 이른바 ‘국뽕’에 취하도록 이끌었다. 하지만 이에 깊이 취해 간과하지 말아야할 사실이 있다면, 이런 비범한 성과 뒤에는 언제나 그 여정을 함께 지켜온 전 세계의 팬들이 있다는 점이다. 월클의 반열에 오른 스타들을 지지하는 팬들이 없었다면 그들이 꾸준히 세계인의 주목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들로부터 파생된 여러 K-수식어들도 지금처럼 크게 조명 받진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제는 직시해야 할 차례가 아닐까. 한국이 한류의 본류일지는 몰라도, 더 이상 한류가 한국만의 소유는 아님을. 오히려 한류를 소비하고 확장하는 주체는 이 문화에 열렬한 관심을 보이는 국내외 관객들이다. 그렇기에 정말 중요한 건, ‘한류’ 또는 ‘K-컬처’의 이름 아래 펼쳐지는 이런 국제 행사들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세계의 관객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으로 기능하는 것일 테다. 

올해 한강을 수놓은 아송페와 문화잇지오는 형식으로 보나 태도로 보나, 진정한 교류의 의미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히 엿보였다. 일단 다양한 국가에서 참여한 아티스트들 간의 관계 형성부터 세심하게 신경 쓰며 행사의 포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랬고, 행사 현장에서도 여러 문화권에서 방문한 관객들이 한국의 가을 하늘 아래 신선한 경험과 뜻 깊은 추억을 쌓아갈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렇게 아송페와 문화잇지오는 총 방문객 4만 8천 여 명이 한강 공원 위로 각자만의 서사를 써내려 가며 막을 내렸다. 

 두 행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소감은 다음과 같이 한 줄로 정리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일단 ‘올해로 딱 스무 살이 된 아송페는 좋은 성인식을 치뤘다’고. 앞으로 KOFICE에서 성년이 된 아송페와 함께 무럭무럭 성장 중인 문화잇지오를 얼마나 더 근사하게 키워 나갈지 한 명의 관객으로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