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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구절, 정현종 시인의 <섬>이다. 지난 8월 말 취리히 중심부에 위치한 레히빈스카 갤러리(Lechbinska Gallery)에서 정현종 시인의 <섬>에서 영감을 얻어 'I_land'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김유주 도예가와 미국계 스위스 화가, 조각가 주디스 트렙(Judith Trepp) 씨가 함께 공동 전시를 열었다.
< 취리히에서 선보이는 전시 'I_land', 김유주 작가의 작품 '섬' - 출처: 김유진 큐레이터 제공 >
'섬'이라는 메타포가 관계에 관한 이야기인 것처럼 해당 전시는 스위스와 한국의 60년 외교 기념을 빌어 모든 사회 활동의 기반인 만남과 소통에 관한 작가들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한국과 스위스를 오가며 서로의 미술 세계를 나누는 작가들의 소통을 담은 인터뷰는 미술 전시가 문화적 교류에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 한국의 김유주 작가와 스위스 작가 주디스 트렙 씨의 공동 전시 'I_land', 두 작가의 담화 - 출처: 통신원 촬영 >
관람 중 흥미로웠던 점은 다양한 표면과 작은 형태들이 역동적으로 연결된 김유주 작가의 백자 조소 작품들은 가까이 가서 만져보며 관찰하는 신체적 경험을 유도하는 반면, 수공예 종이와 대형 캔버스를 사용해 추상적이면서도 익숙한 자연의 공간을 연상시키는 주디스 트렙 씨의 회화는 마치 넓은 공간을 마주하는 듯한 신체적 경험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었다. 재료를 통한 감각적 체험과 함께한 시공간의 경험은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 또 자연과 환경과의 관계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보게 만들었다. 매체와 형상에 있어 전혀 다른 도예와 회화,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관점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작품들은 서로의 차이를 오묘한 조화로움으로 감싸며 하나의 하모니로 전시장을 채웠다.
< 김유주 작가의 작품 'Migration'과 주디스 트렙 씨의 작품 'Nr 2021-01-04'- 출처: 김유진 큐레이터 제공 >
이번 전시에서 주디스 트렙의 작품은 하늘과 땅, 너와 나, 존재와 존재를 넘어선 공간의 만남을 그려낸 추상 풍경 작품이 주를 이루는 반면, 김유주 작가의 작업은 유기적 형태의 모형들을 다양하게 접목시킨 '넥서스(Nexus)' 시리즈로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를 풀어갔다. 의도와 우연 속에 일치와 불일치 이루며 서로를 만나고 헤어지는 생명체 비슷한 모형들은 서로 기대고 있는 사람 인자에서 시작한 형태적 변형으로, 사람뿐만 아니라 생명체들의 유기적 관계를 전체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가장 많은 눈길을 끄는 작업은 김유주 작가의 오밀조밀 모여 하얀 벽 위의 섬의 형상을 이루는 돌 모양 또는 작은 생명체 같은 집단 조각들로, 유약보다는 염화물로 색칠돼 부드러운 표면부터 거칠거칠한 표면까지 다양한 특성의 인간 또는 피부를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정형종 시인의 시 <섬>처럼 인간관계에 놓인 그 섬에 닿고 싶은 소통의 욕구는 '이주(Migration)'라는 작업에서는 붙고 떨어지는 흙의 관계성을 통해 통합과 분리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해석된다.
< 김유주 작가의 작품 'Nexus' - 출처: 김유진 큐레이터 제공 >
이번 전시는 취리히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김유진 씨의 두 번째 한국 도자 전시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유럽인들에게 동양의 도자와 그 역사는 그리 생소하지는 않으나 동양의 도자를 꼽는다면 중국과 일본을 표본으로 꼽는다. 이에 김유진 큐레이터는 한국의 도자를 유럽에 알리기로 했다. 유럽인들의 감성을 자극할 만한 세련되면서도 모던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을 중시하면서도 동시에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도자의 미학과 그 역사를 함께 소개할 예정이다.
통신원이 김유진 큐레이터에게 유럽의 도예 흐름에 대해 질문해 보았다. 그녀는 몇 년 전부터 도예가 공예가 아닌 본격적인 예술 분야로 인정받는 추세라고 언급했다. "한국의 많은 대학에서 도예과가 인기 학과로 자리 잡은 반면 스위스에서는 전문인을 양성하는 도예과를 갖춘 대학이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도예 예술가들은 공방 혹은 도예가에게 기술을 전수받는 방식으로 배출된다. 예술 분야의 트렌드와 예술 애호가들의 취향을 가장 많이 반영하는 아트 바젤 페어만 보아도 올해 어느 때보다 달 항아리 등 여러 도자를 선보였다. 실용 도예와 예술로서의 도예의 구분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최근 기후변화, 환경 문제가 세계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친환경 소재에 대한 관심이 인테리어 트렌드에도 많이 반영되고 있다. 자연친화적 소재를 이용한 면, 린넨, 세라믹, 목재 혹은 유리로 만든 원료로 차별성을 둔 오브제를 찾는 팬덤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맞춰 취리히에서는 오는 9월 14일부터 약 열흘간에 걸쳐 '도예 비엔날레(Rundum Keramik)' 행사를 개최해 도예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선사할 예정이다. 올해 제3회를 맞는 해당 행사는 전통 수공예품부터 예술에 이르기까지 도예의 전 면목을 소개하고, 전문인들과 함께하는 워크숍, 전시회, 공예 수업, 투어 등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스위스 도예 협회에서 엄선된 도예가들이 20여 개의 갤러리에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취리히뿐만 아니라 이번 가을 바젤, 프리부르, 쏠로툰, 제네바 등 스위스 곳곳에서 비슷한 오픈 마켓 행사와 전시가 준비 중에 있다.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 김유진 큐레이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