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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아공 인구는 남아공 부족인(흑인 토착민) 약 80.9%, 아프리카너(백인 토착민) 약 7.8%, 혼혈(컬러드) 약 8.8%, 인도/아시아인 약 2.5%로 구성돼 있다. 통신원이 남아공인(South Africa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남아공 부족인', '아프리카너'라는 단어를 사용해 설명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진 않은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과거로 살짝 거슬러보도록 하자.
이는 17세기 중반 남아공 중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케이프 지역이 식민지로 성립되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들이 남아프리카에 이주해오면서 시작된다. 이 시기부터 네덜란드 출신의 보어인*들이 정착했고 19세기에는 영국인들도 이주하게 된다. 이들은 남아공의 농업과 상업을 발전시키며 안정적인 백인 공동체를 형성한다.
*보어인(Boer): 네덜란드어로 농부를 뜻하며,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초기 정착한 네덜란드계 이주민들의 후손을 지칭
보어인과 이주 백인의 후손들은 자신을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 토착민이라고 주장하며 스스로 '아프리카너'라는 명칭을 만들었다. '아프리카너'는 네덜란드어의 후신인 아프리칸스어(Afrikaans)를 사용하며 독자적인 문화와 정체성을 발전시킨다. 그러면서 남아공의 정치, 경제, 사회적 영역에서 많은 역할을 한다. 남아공은 이후 '아프리카너'에 의한 심각한 인종차별 제도를 겪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다.
아파르트헤이트란 아프리칸스어로 '분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20세기 초 남아공에서는 이미 인종차별적인 관행이 존재하긴 했으나, 1948년 남아공 국민당(National Party)이 집권하며 법률로 공식화된 국가 정책으로 자리매김한 인종 분리제도다.
<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의 정의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 제도는 1990년대 초까지 시행됐으며 거의 모든 측면에서 인종 간 분리를 강제했다. 대표적인 예는 아래와 같다.
- 인종 분류법, Population Registration Act(1950): 모든 남아공 국민을 백인, 흑인, 혼혈, 인도인 등으로 분류하는 법률. 이 분류에 따라 각 인종 그룹은 별도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음
- 주거지 분리, Group Areas Act(1950): 각 인종 그룹이 거주할 지역을 지정하고 다른 인종이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것을 금지. 이는 대규모의 강제 이주와 재정착을 초래함
- 교육 및 공공시설 분리, Bantu Education Act(1953): 흑인 학생들에게 낮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해 이들이 단순 노동자로 남도록 유도하고 공공시설(공원, 해변, 대중교통 등)에서도 인종 간 분리를 강제 집행
- 정치적 권리 박탈: 흑인, 혼혈, 인도인은 투표권을 박탈당하고 정치적 대표성을 가질 수 없게 함
< 아파르트헤이트 당시를 재연한 통행로 - 출처: 통신원 촬영 >
위와 같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은 소수 백인의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강화하고 비백인 인구를 체계적으로 차별했다. 이 기간 동안 '아프리카너'가 남아공 사회에서 우위를 점하고 계속해서 거주할 수 있는 기반이 제공됐다. 때문에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20세기 중반 탈식민화 과정을 겪으면서 백인들이 대규모로 떠나며 영향력을 잃었지만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인해 이러한 탈식민화 과정이 지연됐다. 정책을 시행하는 사람들이 백인들이었기에 이들이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저항은 1950년대부터 시작됐는데 주요 인물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넬슨 만델라, 데즈먼드투투 등이 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사상자와 아픈 역사를 얻게 됐고,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제 사회는 경제 제재와 외교적 압력을 통해 남아공 정부에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을 요구한다. 1990년대 초 남아공 정부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점차적으로 철폐했으며 1990년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고 1994년 첫 민주 선거가 실시돼 만델라(ANC정당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아파르트헤이트는 공식적으로 종식된다.
이처럼 아파르트헤이트는 남아공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남아공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정책을 시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과거의 아픔은 미래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했던가. 정부의 노력과 국민들의 화합으로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아픈 상처를 딛고 이제는 '무지개 나라(Rainbow nation)'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다양한 인종이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이쯤에서 한국의 유사한 역사도 함께 연상된다. 그렇기에 이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아닐까 싶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는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이 마련돼 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파르트헤이트 시기에 받았던 상처와 아픔을 기억하고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으로 마련된 장소다. 혹시 남아공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을 견학하며 남아공의 아픔에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 줄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을 추천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 홈페이지, https://www.apartheidmuseu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