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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40여개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KOFICE 통신원들이 전하는 최신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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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에 돌아보는 필리핀 위안부 문제

  • [등록일] 2024-08-14
  • [조회]87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대한제국을 침탈하고 무력으로 통치를 시작했다. 한국은 빼앗긴 주권을 35년 만에 회복했으며 올해 8월 15일은 제79주년 광복절이다. 한국은 8월 15일에 주권 회복을 기념하고 있지만 필리핀은 6월 12일에 독립을 기리고 있다. 필리핀에는 독립과 관련된 날이 세 번 있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는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을 선언한 1898년 6월 12일이다. 두 번째는 일본이 필리핀을 점령 중이던 1943년 10월 14일로, 당시 필리핀을 점령한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필리핀이 독립했다는 점에서 해당 날짜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 날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 점령 하에 독립을 논했다는 점에서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필리핀 독립과 관련된 마지막 날은 1946년 7월 4일로, 미국이 공식적으로 필리핀 독립을 인정한 날이다. 필리핀은 7월 4일을 독립기념일로 기리다가 1962년에 제9대 디오스다도 마까빠갈(Diosdado Macapagal) 대통령이 6월 12일을 독립기념일로 변경했다. 1964년 8월 4일 필리핀 의회도 독립기념일 변경에 동의했으며 이에 따라 1965년부터는 6월 12일에 독립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필리핀 독립기념일 중 하나와 관련이 있는 일본은 진주만 공습 10시간 뒤인 1941년 12월 8일에 필리핀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미 극동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대통령 명령에 따라 3월 11일 필리핀에 병력을 남겨두고 호주로 철수했다. 남은 미군과 필리핀군은 1942년 4월 9일 일본에 항복했고, 약 100km가 떨어진 포로수용소까지 이동하는 바탄 죽음의 행진(Bataan Death March)을 해야만 했다. 오도넬 수용소(Camp O'Donnell)까지 이동하는 동안 최소 5,000명에서 최대 1만 8,000명의 필리핀인과 최소 500명에서 최대 650명의 미국인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으로 인한 여파는 군인에서 민간인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필리핀을 점령한 일본은 조직적으로 여성들을 성 노예로 삼았으며, 일본은 당시 문서에 이러한 피해자를 '위안부(Comfort Women)'로 지칭했다. 태평양 전쟁 중 일본은 한국에서 인도네시아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를 점령하면서 아시아 전역에서 총 20만 명을 위안부로 만들었으며 그 가운데 약 1,000명이 필리핀 여성이었다. 위안부가 된 많은 여성들이 잔인한 학대와 지속적인 신체적, 정서적 고통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자살했다. 이러한 고통은 생존자와 가족 그리고 필리핀뿐만 아니라 관련된 각국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좌)릴라필리피나 소속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 (우)일본에 항의하는 릴라필리피나 회원들 - 출처: (좌)'The Telegraph', (우)'ABS-CBN' >

 

기록에 따르면 마닐라에만 12곳에 달하는 위안소가 있었으며 마닐라 외에도 세부, 부뚜안, 다바오 등 필리핀 11개 지역에 위안소가 있었다. 당시 위안소에는 필리핀 여성뿐만 아니라 중국, 한국 여성도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종전 이후로도 수십 년 동안 이 여성들은 수치심과 사회적 낙인 속에서 침묵해야만 했다. 1992년 용감한 필리핀 여성인 마리아 로사 헨슨(Maria Rosa Henson)이 이러한 침묵을 깨뜨렸다. 그는 필리핀 최초로 위안부 피해 경험을 공개적으로 증언했으며, 이후 그녀 증언에 용기를 얻은 400여 명에 달하는 필리핀 여성들이 침묵을 깨고 사람들 앞에 나서서 그들이 겪은 고통을 세상에 알렸다. 이들이 용기를 낸 덕분에 1994년 필리핀 위안부 지원 단체 '릴라 필리피나(Lila Pilipina)'가 탄생했다. '릴라 필리피나'는 태평양 전쟁 중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알리며 이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일본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릴라 필리피나'는 1983년 도쿄 법원에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20년이 지난 2003년 일본 대법원은 "일본 사법체계는 국제법을 따르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를 기각했다. 2004년 필리핀 대법원에 청원(請願)했으나 2010년 기각됐으며, 이에 대한 재심 신청에 대해 필리핀 대법원이 2014년 8월에 다시 기각하면서 원심을 확정했다.

 

법원 판결로 인해 위안부 피해자들은 필리핀 국내 사법체계에서 구제받을 수 있는 여지가 없게 됐다. 이에 지원 단체들은 필리핀 정부 대신 2019년 국제연합(UN)에 문제를 제기했으며, 2023년 3월 국제연합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필리핀 정부가 이들 여성들이 겪은 고통과 피해 보상에 대한 실제적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성차별철폐위원회 결정에 따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Ferdinand Marcos Jr.) 대통령은 정부 기관에 포괄적인 대응을 지시했다. 이에 헤수스 크리스핀 레물라(Jesus Crispin Remulla) 법무부 장관은 피해자 관련 입법 지원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 차원에서 피해자 보상 및 지원을 위한 실제적인 후속 조치는 실행되지 않고 있으며, 실제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필리핀 정부 대응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필리핀 재무부 자료를 보면 2001년부터 2020년 사이 일본이 필리핀에 제공함 원조금은 196억 5,000만 달러에 달한다. 금전적 지원 이외에도 마르코스 정부는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과 군사적 관계를 확대하고자 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필리핀 정부는 역사적 불의를 해결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 바끌라란 성당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위안부 관련 조형물 - 출처: 통신원 촬영 >

 

관련해 지난 2019년 8월 25일 마닐라에 위치한 바끌라란 성당(Baclaran Church)에서 일본군 성노예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 조형물 제막식이 열렸다. 당초 관련 동상이 설치될 예정이었으나 설치 3일 전에 사라져 기념 조형물만 공개됐다. 사라진 동상은 필리핀에서 할머니를 뜻하는 '롤라(Lola)'라는 이름으로 조각가 호나스 로레스가 만든 것이었다. 조각가 호나스 로레스는 도난에 대해 2m에 달하는 동상 높이와 무게와 그리고 처분 문제를 고려할 때 일반적인 도둑 소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사라진 동상은 원래 2017년 12월 마닐라만에 세워졌으나 설치 4개월 만인 2018년 4월 철거됐다. 당시 일본 정부 압박으로 동상이 철거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릴라 필리피나'를 포함한 관련 단체들이 분노를 표했다. '릴라 필리피나'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4년이 지났으나 일본 정부는 성노예 희생자에게 사과하지 않고 있다."며 "일본은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사라진 동상을 대신해 천으로 된 위안부상을 설치했다는 기사도 있으나 방문한 바끌라란 성당에는 기념비 내용도, 천으로 된 조형물도 사라져 원래 무엇이 있었는지 알아볼 수도 없는 기단만 덩그러니 남은 상태였다.

 

바끌라란 성당은 일본이 필리핀 점령한 기간 동안 수난을 겪은 곳이기도 하다. 호주와 뉴질랜드 출신 사제들은 필리핀 대학 내 수용소에 강제 수감됐고 성당에 있던 제구와 제의 등을 약탈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당 한구석에 있는 기념비는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피해 여성들이 견뎌야 했던 고통을 뼈저리게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기념비 원형을 알아보기 어렵고,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는 점은 아쉽기만 하다. 이는 피해자를 위한 정의 실현 여정이 불완전하며 여전히 쉽지 않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비극적인 전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이 기념물은 단순한 상징 그 이상으로 우리가 기억하고, 결코 잊지 말아야 하며 동시에 정의를 위한 투쟁을 지속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등대와 같다. 올해 4월 기사를 보면 필리핀 내 1,000명이 넘는 피해자들 중 생존자는 이제 40명에 불과하다. 상상할 수 없는 공포와 괴로움을 견딘 필리핀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 구현은 아직도 멀고도 험난한 것으로 보이지만 인간 존엄성 수호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특히 한국을 비롯해 네덜란드, 미얀마,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 호주처럼 같은 고통을 겪은 나라들 모두 잊지 않고 진실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해야만 하는 의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ABS-CBN》 (2019. 8. 26). New 'comfort women' memorial unveiled in Manila, https://news.abs-cbn.com/news/08/26/19/new-comfort-women-memorial-unveiled-in-manila

- 《Inquirer.net》 (2019. 9. 16). 74 years on, Filipino comfort women are still fighting a war, https://newsinfo.inquirer.net/1165178/74-years-on-filipino-comfort-women-are-still-fighting-a-war

- 《The Telegraph》 (2024. 4. 26). The forgotten ‘comfort women’ of the Philippines – and their struggle for justicehttps://www.telegraph.co.uk/global-health/women-and-girls/philippines-comfort-women-second-world-war-japan-army/

- 아시아여성기금 디지털기념관, https://www.awf.or.jp/e1/philippine-00.html

통신원이미지

  • 성명 : 조상우[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필리핀/앙헬레스 통신원]
  • 약력 : 필리핀 중부루손 한인회 부회장/미디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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