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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6일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이하 김대건 신부) 선종 178년이 되는 날이다. 1821년 8월 21일에 태어난 김대건 신부는 성 피에르 모방 신부 추천으로 1837년 6월 마카오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조선인 최초로 가톨릭 사제가 됐으며, 1년 후인 1846년 9월 16일에 향년 25세로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함께 순교한 78명과 함께 1925년에 시복됐고, 1984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김대건 신부를 성인으로 추대했다. 한편 2023년 9월 16일에 가톨릭 총본산인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외벽 450㎝ 높이에 높이 3.77m, 가로 1.83m, 폭 1.20m 규모로 김대건 신부 성상이 설치됐다. 이는 바티칸에 세워진 첫 아시아 성인 성상이자, 수도회 창설자가 아닌 성인으로는 처음으로 대성당 외벽에 성상이 설치된 것이다.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에는 8개월이 소요됐으며, 성상 축복식에 한국 주교단 등 한국 가톨릭교회 대표단 400여 명이 참석했다.
<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외벽에 자리한 김대건 신부 성상 - 출처: 'Philstar' >
이보다 앞선 지난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김대건 신부가 선정되기도 했다. 유네스코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김대건 신부 삶과 업적이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이념과 부합한다고 밝히면서 김대건 신부를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했다. 또한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2021년 제작된 김대건 신부 전기 영화 <탄생>에 배우 안성기를 비롯해 이문식, 윤경호, 김강우, 정유미 등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출연했다.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 장소는 바티칸 만이 아니라 한국에도 많다. 논산시, 대구광역시 그리고 인천광역시 등에는 김대건 신부 이름을 딴 대건중학교와 대건고등학교가 있다. 서강대학교에 김대건관이, 가톨릭관동대학교에는 대건관이 있다. 많은 한국 성당 역시 주보성인으로 김대건 신부를 모시고 있는데, 사병 양성 요람인 논산 육군훈련소 성당도 주보성인으로 김대건 신부를 모시고 있다. 또한 한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명동성당 경내에서도 김대건 신부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 롬롬보이에 자리한 성 김대건 신부 성당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국 땅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김대건 신부는 민중봉기와 아편전쟁 등으로 인해 마카오를 떠나 유학 생활 중 일부를 필리핀에서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김대건 신부는 마닐라를 거쳐 서북쪽 불라깐 보까웨 롤롬보이(Lolomboy, Bocaue, Bulacan)로 이동해 공부를 지속했다. 현재 롤롬보이에는 성 김대건 신부 성당(Shrine of St. Andrew Kim Tae-gon)이 있다. 지난 2002년 8월 김대건 신부를 모시는 성안드레아수녀회가 해당 부지를 매입한 이후 성지 관리를 맡고 있다. 과거 이 지역에는 목이 없는 귀신이 출몰한다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성지가 조성된 이후로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필리핀 사람들은 성 김대건 신부 성당을 '한국 사찰(Korean temple)'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지역민들도 김대건 신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다. 해당 지역 출신으로 성안드레아수녀회에 소속해 있는 유일한 필리핀인 로셀 수녀(Sr. Rocel Peralta)는 성당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한국 성인을 널리 알리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ABS-CBN》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어린 시절 로셀 수녀는 유명한 관광지도 아닌 롤롬보이를 찾는 한국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수녀가 된 이후 개인 사정으로 수녀원을 떠난 로셀 수녀는 성지를 찾는 한국인들에게 영어와 따갈로그를 가르치는 일도 했다. 성지를 찾는 한국인들을 보면서 로셀 수녀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 다시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현재 로셀 수녀는 사진 촬영을 위해 성당을 찾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촬영 후 잠시 성당에 들러 기도할 것을 권하고 있다. 로셀 수녀는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성당을 찾아오는 한국 드라마와 음악을 좋아하는 필리핀 젊은이들에게 타의 모범이 될 '오빠', 특히 '성스러운 오빠(Holy Oppa)'에 대해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로셀 수녀는 "케이팝과 K-드라마의 인기에 감사하고 있다. 조선 왕조 역사와 당시 박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국 드라마 덕분에 방문객들이 김대건 신부 의복과 성당 건축 양식이 필리핀 성당과 다르다는 점을 쉽게 알아봅니다."라고 말했다. 로셀 수녀는 "오늘날 청년들은 매우 역동적이고 용감합니다. 김대건 신부 역시 그러셨습니다."라고 덧붙였다.
< (좌)망고 나무가 있던 자리, (우)성당에 있는 김대건 신부 성상 - 출처: 통신원 촬영 >
필리핀 언론이 '성스러운 오빠(Holy Oppa)'라고 묘사한 김대건 신부는 고국으로 보내는 편지에 "롤롬보이 지역이 공부와 명상에 적합한 곳"이라고 서술했다. 해당 지역에는 망고나무와 대나무가 많았고, 김대건 신부는 망고나무 그늘 아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김대건 신부는 라틴어로 쓴 편지에 "마닐라에서도 꽤 잘 지냈지만, 여기가 더 좋습니다. 우리는 혼자 있고, 아무도 우리를 방해하지 않는다. 우리는 원하는 만큼 공부합니다."라고 적었다. 하지만 그늘과 위안을 선사했던 망고나무 아래에서 늘 즐거운 소식만 들을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1839년 9월 건강을 회복한 김대건 신부가 받은 편지에는 아버지 김제준이 순교했다는 소식이 담겨 있었다. 고향과 부모를 그리워하며 거닐던 망고나무 아래에서 그는 자식으로서 죽은 아버지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순교한 아버지 소식에 가슴을 부여잡던 김대건 신부 모습을 모두 지켜봤던 망고나무는 폭풍우에 고사했다. 성인 곁을 지켰던 망고나무는 이 세상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성소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오늘날 김대건 신부가 머물렀던 롤롬보이는 김대건 신부가 있던 당시와는 다르지만 여전히 김대건 신부 영혼과 숨결을 기를 수 있다. 성지를 향하는 순례자들은 단순히 관광을 넘어 그곳에서 김대건 신부가 느꼈을 고뇌와 신앙을 되새기며 삶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로셀 수녀는 이 성소를 찾는 사람들에게 김대건 신부가 보여준 숭고한 정신을 전하고, 케이팝과 K-드라마로 시작된 필리핀 젊은 세대의 관심이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와 더 나아가 신앙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비록 망고나무는 사라졌지만, 김대건 신부가 남긴 신앙과 그 정신은 여전히 롤롬보이 대지 위에 깊이 새겨져 있다. 한국과 필리핀을 연결하는 이 성지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로 양국 사람들에게 신앙과 역사, 그리고 희망을 나누는 특별한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The Macao News》 (2021. 7. 11). Andrew Kim Taegon: The Macao seminary student who became a Korean Catholic saint, https://macaonews.org/life/andrew-kim-taegon-the-macao-seminary-student-who-became-a-korean-catholic-saint/#related
- 《ABS-CBN》 (2023. 4. 4). Korea’s first Catholic priest and patron saint found refuge in Philippine barrio, https://news.abs-cbn.com/spotlight/04/04/23/koreas-patron-saint-found-refuge-in-philippine-barrio
- 《Philstar》 (2023. 12. 28). South Korea’s patron saint who lived, has shrine in Philippines given Vatican statue, https://www.philstar.com/lifestyle/arts-and-culture/2023/12/28/2321953/south-koreas-patron-saint-who-lived-has-shrine-philippines-given-vatican-stat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