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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40여개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KOFICE 통신원들이 전하는 최신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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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성당을 보며 아야 소피아 대성당이 서글퍼진 이유

  • [등록일] 2024-10-12
  • [조회]2249
 

통신원은 이번 여름 이탈리아 피렌체로 한 주간 여행을 다녀왔다. 이탈리아에는 랜드마크인 콜로세움과 피사의 탑, 트레비 분수, 미켈란젤로 광장, 성 베드로 성당 등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들이 많다.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 가운데 통신원이 여행한 피렌체는 중세를 끝내고 르네상스 시대를 태동하게 한 도시로 무수한 천재 예술가들을 배출한 장소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는 프랑스어로 '재생' 또는 '부활'이라는 뜻으로, 유럽 문명사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에 일어난 문화와 예술, 과학의 부흥 운동을 말한다.

 


< 단테의 동상 - 출처: 통신원 촬영 >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3대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비롯해 단테와 갈릴레오 갈릴레이, 조토 등 문학과 철학, 과학 분야에서도 수많은 천재들이 바로 이 시기에 배출됐다. 천재 예술가들이 동시대에 이처럼 많이 배출된 배경에는 이들의 예술적 재능이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재정을 지원해 준 메디치 가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의 문화적 부흥을 이끄는 핵심 세력이었다. 이들은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철학자, 과학자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면서 피렌체를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 (좌)단테의 신곡을 암기하는 예술인, (우)단테의 교회 - 출처: 통신원 촬영 >

 

르네상스 천재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중세 시대 오직 신의 이름으로 민중들의 눈을 가리고 인간의 지성과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했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피렌체는 꽃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도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치 거대한 미술관에 온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도시 곳곳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과 건축물로 채워져 있어 보는 재미가 있고, 좁은 골목들을 거닐면서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튀르키예 통신원으로서 이탈리아 피렌체 도시를 떠올린 데는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에서 건축물 하나가 매우 인상 깊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바로 피렌체의 정체성과 르네상스 정신을 구현하는데 대표 건축물로 꼽히는 두오모 성당이 바로 그곳이다. '두오모(Duomo)', 영어로는 '반구형의 둥근 지붕 천장'을 뜻하는데 이탈리아에서 두오모는 '대성당'을 뜻한다.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은 당시 건축 기술로는 불가능해 보였던 거대한 크기의 돔 형식으로 건축을 완성해 더 유명하다.

 


< 피렌체 두오모 성당 - 출처: 통신원 촬영 >

 

1296년 9월 9일에 착공해 공사 기간만 140년이 걸렸다. 중세 건축물에서는 볼 수 없던 독특한 돔 모양의 두오모 성당은 높이가 106m에 달한다. 피렌체 도시 정중앙에 세워져 있는 두오모 성당은 시민들이 어디에 있든 도시 한가운데 서 있는 성당을 볼 수 있다. 도시의 모든 건물들을 성당보다 낮게 세워 르네상스 피렌체 시민들에게 위엄을 보여주는 동시에 예술과 문화적 정신을 받쳐주는 상징적인 건축물이 됐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같은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의 위엄을 질투라도 하듯 그로부터 이 백 년이 지난 16세기 초 르네상스 시대에 바티칸 시국의 중심이자 가톨릭교회의 힘을 상징하는 건물로 두오모 성당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건축물로 성 베드로 성당이 세워진다. 

 

전 세계 현존하는 성당 중에서 최대 규모의 성당이다. 공사 기간도 두오모 성당에 뒤지지 않도록 120년의 공을 들였다. 설계는 유명한 건축가 돈토니오 브라만테가 맡았고 이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피에트로 안토니오와 같은 여러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성 베드로 성당이 완공된 것도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 1626년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서였다. 통신원이 돔 모양의 건축물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을 보면서 끌렸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똑같은 돔 형식의 건축물로 두오모 성당보다 훨씬 더 이전 시기에 세워졌음에도 지난 역사에서 그 어떤 찬사나 존경을 받지 못해 온 아야 소피아 성당이 두오모 성당과 오버랩돼 비쳤기 때문이다. 

 

비잔틴 제국 동로마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폴리스(현재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 소피아 성당은 두오모 성당보다 무려 구백 년을 앞서 기둥도 없이 직경 33m 거대한 돔 지붕을 올려 건축한 것이다. 이는 AD 532년∼537년 비잔틴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의해 건설됐다. 인간의 예술과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르네상스 새 시대를 열게 했던 두오모 성당도 당시에는 건축에 있어 혁신적인 기술의 진보라고 하며 찬사를 받았는데, 그보다 훨씬 더 이전에 건축한 아야 소피아 성당에 대한 당시 시민들의 기대와 자부심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이라 짐작된다. 기독교 세계의 중심이 아야 소피아 성당에 있었고 하나님의 위엄과 황제의 신성한 권위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도 아야 소피아 성당의 위용을 보여 주면서 가능했다.

 


< 아야 소피아 대성당(현 하기아 소피아 모스크) - 출처: 통신원 촬영 >

 

그러나 역사 속 아야 소피아 성당에 대한 평가는 르네상스의 새 시대를 열어 주며 시민들의 존경과 위엄의 대상이 됐던 두오모 성당과는 대조적으로 슬픔과 분노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성당이 지금의 온전한 모습으로 세워지게 된 것도 세 번의 공사 끝에 이루어진 것이다. 성당이 지금의 자리에 첫 번째 세워진 건 콘스탄티노스 대제의 아들인 콘스탄티오스 치세인 320년 2월이었다. 하지만 성당은 404년 6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흐리소스토모스를 추방한 것에 대한 성난 군중들에 의해 발생한 화재로 대부분 파괴된다.

 

군중들의 분노로 화재로 불타 버린 아야 소피아 성당은 415년 10월 다시 두 번째 아야 소피아 성당을 올리지만 532년 1월 '니카의 반란'으로 또다시 불에 타고 만다. 그렇게 성당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것 같았지만 소실된 지 39일 만에 다시 세 번째 건축에 들어간다. 황제 유스티니아노스가 생각한 성당의 모습은 앞선 두 건물과는 개념부터 다른 것이었다.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 건물이어야 했고 제국의 위엄을 보여주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이어야 했다. 또한 교회의 통일을 보여 주기 위해 건물에는 기둥이 없어야 하는 점도 중요했다.

 

그렇게 공사를 다시 시작한 지 5년 만인 537년 세 번째 아야 소피아 성당이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대성당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유스티니아노스 황제는 준공식을 마치고 성당에 들어가서 자신도 모르게 "솔로몬이여 내가 당신을 이겼습니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위용을 과시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성당은 그 후로도 여러 번 수난을 당한다. 989년과 1344년에 지진으로 건물 벽에 균열이 가 성당 출입이 중단됐고, 729년과 848년에는 성상 파괴 운동으로 대성당 안의 모자이크와 성화들이 손상된다. 그리고 1204년에는 제4차 십자군의 악랄한 약탈이 일어난다. 십자군들은 성당 안에 있는 보물들을 비롯해 성물까지도 내다 팔아 전쟁을 위한 자금으로 모두 사용한다.

 

그 후에는 13세기 말 1453년 오스만 제국 메흐멧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면서 화려했던 천 년의 비잔틴 제국은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그 후로 아야 소피아 대성당은 오스만 제국 1453년∼1922년까지 모스크로 바뀌어 사용되다가 튀르키예 공화국이 건립된 후에는 박물관으로 바뀌고 최근(2020년)에는 다시 모스크로 바뀌었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과 같은 모양, 같은 기술의 건축물이지만 존재했던 시대와 배경이 달라 지난 역사에서 온갖 수난을 겪어 와야 했던 아야 소피아 대성당에 대한 소개를 마친다.

 

사진출처: 통신원 촬영

통신원이미지

  • 성명 : 임병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튀르키예/이스탄불 통신원]
  • 약력 : YTN world 해외 리포터, 민주평통 남유럽협의회 튀르키예 지회 자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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