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40여개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KOFICE 통신원들이 전하는 최신 소식입니다.
각 국에서 사랑받고 있는 한류소식부터 그 나라의 문화 소식까지 매일 매일 새롭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과 관련한 현지 매체 기사가 10월 하순까지도 계속 나오고 있다. 그중 일간 영자신문 《The Jakarta Post(자카르타 포스트)》의 10월 12일자 논평을 통해 한국 도서산업과 한강 작가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평가와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국의 한강 작가는 비교적 뒤늦게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나 그의 대표작이 마침내 영어로 번역되자 불과 9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한국에서 2007년 출간된 그의 작품 『채식주의자』는 스스로 많은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기도 한 그의 아버지가 '곧바로 서랍 속에 들어가 묻혀버릴 종류의 책'이라 한 평가를 증명이라도 하듯 영어 번역본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지나야 했다. 그러나 2016년 마침내 영문 번역판이 출간되자마자 그해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부커상을 수상하는 파괴력을 보였다. 해당 작품은 이후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돼 세계 각국에 소개됐지만 스웨덴 한림원이 지난 10월 10일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결정하기까지 17년 동안 정작 한국에서는 백만 권도 채 팔리지 않았다. 여기에는 한국인의 상대적으로 낮은 독서율과 쇠약해 가는 한국의 도서인쇄산업의 영향도 있다. 하지만 한국 독자들은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마치 그간 '낭비돼 버린 시간'을 보복적으로 벌충하듯 서점으로 몰려가 그의 소설과 시집, 단편집들을 쓸어 담았다. 한강 작가는 그간 노벨 문학상 유력 수상 후보 목록에 올라 있지 않았기에 한림원의 발표는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케이팝과 <오징어 게임>의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고 문학적 생동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한국 문학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간 일본 및 중국 문학에 비해 국제사회 인지도가 그리 높지는 않았다."
"(중략) 그는 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해 당시 민주화 봉기가 군화발에 짓밟혔던 역사적 트라우마를 되돌아 조명했다. (중략) 군 시절에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며 BTS의 뷔가 목요일 SNS에 축하 메시지를 게재함에 따라 한강 작가의 작품들은 (인도네시아에서도) 더 큰 인기를 누리며 각광받게 될 전망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케이팝 아이돌이 추천하거나 언급한 도서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하지만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는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절판된 상태여서 일반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다.
한강 작가 작품의 인도네시아 출판 IP 계약 만료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한국에서 처음 출판된 것이 2007년의 일인데 2016년 영어 번역본이 출간돼 곧바로 그해 부커상을 받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여 『채식주의자』의 인도네시아 판권을 따낸 곳이 있다. 그라메디아나 미잔그룹 같은 대형 출판사가 아닌 바짜 출판사(Penerbit Baca)라는 중소업체였다. 『채식주의자』는 그렇게 바짜 출판사의 첫 한국 원작 번역 도서가 됐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는 2017년에 순차적으로 번역 출간됐다. 『소년이 온다』의 영문 번역판엔 'Human Acts' 즉 '인간의 행위'라는 영어 제목이 달렸는데, 인도네시아판은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사물을 잘 분간하지 못하는 '야맹증'이란 의미의 'Mata Malam'으로 번역됐다.
현재 두 책이 모두 절판된 이유는 IP 계약이 연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지 열흘이 지난 10월 20일까지만 해도 바짜 출판사 홈페이지에서는 이들 도서에 92%~93% 할인 가격인 5,000루피아(약 400원) 균일 가격표를 붙여 재고를 털고 있던 상황이었다.
< 2024년 10월 20일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인도네시아판 가격 - 출처: 바짜 출판사 홈페이지 >
현지 유명 작가인 레일라 S 추도리의 작품들, 라띠 꾸말라의 『시가렛걸』 같이 1960년대 이른바 '인도네시아 대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한 도서가 크게 각광받는 인도네시아에서 비슷한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 『소년이 온다』 같은 작품이 절판되고 만 것은 양국의 문화나 독자 감성의 차이보다는 번역 결과물의 수준이 만족스럽지 못했거나, 상대적으로 작은 바짜 출판사의 마케팅 역량 부족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과거 영화 <기생충>이 칸국제영화제와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하자 인도네시아에서 과거 가장 많은 관객이 들었던 <부산행>, <군함도> 등에 비해 세 배 넘는 관객을 기록하며 흥행했고 이는 한국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를 크게 개선했다.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역시 그에 견줄 만한 사건으로 한강 작가 작품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 전반의 경쟁력을 홍보하고 한국 원작 번역 도서의 현지 판매량을 크게 북돋을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다. 그러나 바짜 출판사의 인도네시아 출판 IP 계약 종료로 사실상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를 홍보할 주체도 없고 서점에 나와 있는 재고도 없어 천재일우의 기회가 그냥 지나가고 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에도 관련 기획이 있는지 문의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마침 주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이 주최한 'K-북 메타버스를 타고 도서전'이 수상 발표 바로 다음 날인 10월 11일부터 사흘간 자카르타 시내의 한 몰에서 진행됐지만 순발력 부족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이란 국가적 차원의 사건을 해당 전시회에 반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침 9월 23일부터 11월 24일까지의 기간 중 인도네시아에서 '2024 한국문화의 달' 행사가 한국문화원 주최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때 뭔가 의미 있는 기획이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하다못해 대사관 담벼락이나 한인회 건물에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축하 현수막이라도 걸리길 바랐지만 결국 한인회 발행 교민지 《한인뉴스》 11월호에 관련 헌정 페이지가 실리는 것이 현재로서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일 듯하다.
한편 노벨 문학상 발표 직후 보낸 질문에 바짜 출판사가 열흘쯤 뜸을 들인 후 마침내 회신 메일을 보내왔다. "현재 두 작품에 대한 IP 연장 계약을 한강 작가의 해외 출판 에이전시인 영국의 RCW와 추진 중이며, 또 다른 작품인 『흰(The White Book)』의 추가 번역 출판을 협의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움직임을 입증하듯 바짜 출판사의 홈페이지에는 『소년이 온다』의 기존 할인율(93%)이 10%로 바뀌어 있었다.
< (좌)전시회 서가에 진열된 한강 도서, (우)2024년 10월 24일 '소년이 온다' 인도네시아판 가격 - 출처: (좌)통신원 촬영, (우)바짜 출판사 홈페이지 >
하지만 인도네시아 전국에 100개 이상 대형 오프라인 매장을 가진 그라메디아 체인 서점 어느 곳에도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 재고가 전혀 남아있지 않음을 10월 23일 재확인했으므로 한강 작가의 작품들이 인쇄돼 다시 현지 서점에 배치되기 시작하는 것은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The Jakarta Post》 (2024. 10. 12). Han Kang's Nobel spurs hope of global recognition for Korean literature, https://www.thejakartapost.com/culture/2024/10/12/han-kangs-nobel-spurs-hope-of-global-recognition-for-korean-literature.html
- 주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 홈페이지, https://id.korean-culture.org/ko/1525/board/232/read/132421
- 바짜 출판사 홈페이지, https://penerbitbaca.com/buku/?product-pag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