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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은 '천 개의 얼굴을 가진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수많은 수식어가 있다. '동서양 문명의 교차점', '고양이 왕국',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수도'이면서 종교 외에도 대륙 간 문명의 교차로이기도 하다. 또 '유럽과 아시아의 가교'라는 수식어는 지구상에 단 한 곳, 튀르키예 이스탄불에만 허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이번에 소개할 곳도 지금까지 이스탄불을 설명하기 위해 수식해 온 수많은 문구들을 대변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매력적인 곳이다. 바로 MZ세대 사이에서 떠오르는 '핫플', 발랏 지구다. 형형색색의 집들이 제각기 다른 고풍의 디자인으로 서 있는 모습은 젊은 세대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발랏은 이스탄불 후미진 곳에 있는 달동네 마을로 가파른 계단에 빼곡히 들어차 있는 낡은 집과 좁은 골목을 보면 여느 빈민가와 다르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전 세계에서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의아하기도 하다. 발랏 거주 인구는 1만 1,000여 명으로 지금도 이곳에는 어려운 빈민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이곳에 과연 어떤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지 추측해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여느 빈민촌과도 달라 보이지 않는 발랏의 매력에 빠져 이곳을 찾는 걸까. 발랏 지구는 역사를 통틀어 화재와 버려진 공장, 돛대가 부러진 선박, 절름발이 고양이의 지역이지만 과거 유대인과 그리스인과 같은 소수 민족이 거주했던 지역이었다.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곳이었다는 뜻이다. 그러했던 발랏이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이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부터였다. 실제 복원 공사는 2003년부터 시작해 2008년 마무리가 됐다. 오스만 제국 넘어 비잔틴 제국 시대까지 사회∙종교∙문화∙역사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는 건물과 공간들을 볼 수 있는 발랏 지구로 재탄생한 것이다. 그 때문에 발랏을 찾는 이들은 단순히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를 지나면서 쌓여져 온 시간의 매력에 금세 빠져 이곳을 여행하는 내내 묘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 골든혼에서 바라보는 발랏 지구 - 출처: 통신원 촬영 >
15세기 후반 술탄 바예지드 2세가 스페인과 아프리카의 종교 재판을 피해 도망친 유대인과 무슬림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고 1492년 알람브라 법령을 통해 처음 대규모 유대인들의 마을을 형성했다. 당시 발랏은 부유한 유대인들이 거주하던 부자 동네였다. 위치 또한 저 멀리에서 골든 혼을 내려다볼 수 있어 발랏은 경치만 감상해도 절로 힐링을 경험케 한다. 골든 혼은 '금빛 뿔'이라는 뜻인데 보스포르스 해협의 뿔처럼 뻗어 나온 골든 혼이 석양 무렵이 되면 햇볕이 수면에 반사되어 황금빛으로 변한다고 해서 고대부터 황금뿔 만 '골든 혼'으로 불렸다.
그렇게 아름답고 부유했던 발랏 지구가 지금의 오래되고 낙후된 모습으로 된 이유는 1894년 발생한 대지진 때문이다. 대지진으로 마을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고 이곳에 거주하던 대부분의 부유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리스인들도 많았는데 1923년 튀르키예-그리스 전쟁으로 거의 대부분 떠났고, 대지진으로 거의 폐허로 변한 그곳에 튀르키예 어려운 빈민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당시 빈민들이 오래된 건물 위에 자신이 쓰다가 남은 여러 색깔의 페인트들을 칠해 거주했던 곳이 지금은 MZ세대의 유명 사진 촬영지로 '핫플'이 됐다.
< 카리예 모스크 외관 - 출처: 통신원 촬영 >
그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발랏 지구에서 1km 남짓 매우 가까운 곳에 있는 카리예 모스크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에게는 웅장한 아야 소피아 대성당(현재 모스크)이 잘 알려져 있는 반면 카피예 모스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카리예 모스크는 동방 정교회로 11세기부터 14세기까지 증축과 개축을 반복하면서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개조돼 명칭도 카리예 자미(Kariye Camii)로 개칭됐다. 그러나 튀르키예 정부로부터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종교 박물관이 됐다가 2020년에 복원 공사를 시작해 2024년 5월 모스크로 재개장했다.
< 원본에 가깝게 복원된 '카리예 모스크' 모자이크 성화와 모자이크 - 출처: 통신원 촬영 >
카리예 모스크는 성당으로 사용되던 시절 프레스코가 온전히 보존돼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천년 전 금빛 모자이크로 유명한 비잔틴 미술이 성당에 남아 있지만 오스만 제국의 모스크는 성상과 성화를 금지했기 때문에 그림 위에 회칠을 덮었다. 그 때문에 아야 소피아 모스크에도 많은 미술들을 볼 수 없는데, 카리예 모스크는 비잔틴 미술 모자이크를 비교적 온전하게 볼 수가 있다. 카리예 자미에는 14세기 만들어진 비잔틴 미술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모자이크와 프레스코가 원본에 가깝게 복원돼 있다.
< 아야 소피아 모스크 회칠된 성화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비잔틴 제국이 남긴 가장 대표적인 건물인 아야 소피아 대성당보다 모자이크 성화가 50점, 30점에 가까운 프레스코 성화가 온전하게 보존돼 있는 곳으로 예전 그대로의 비잔틴 제국을 만날 수 있다. 통신원은 이를 비교하기 위해 아야 소피아 모스크도 방문해 내부에 회칠된 성화도 담아봤다. 카리예 모스크에 있는 모자이크는 근대적이고 인간미가 넘쳐흘러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건물에 들어서면 벽면과 바닥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장식돼 있어 매우 인상적이다.
< 발랏의 '핫플', 컬러플한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는 관광객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다채로운 건물은 발랏에서 가장 유명하고 눈에 띄는 곳이다. 건물의 배경이 너무 예뻐 전문 사진가나 젊은 커플, 신혼부부의 웨딩 촬영지로 유명해진 발랏의 '핫플'이다. 발랏지구는 급경사 위에 세워진 만큼 예쁜 사진을 담기 위해서는 그만큼 힘을 써야 한다. 경사의 각도를 잘 활용해 원근감 있는 여러 구도의 사진을 촬영하는 것도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 중 하나다.
< 파나르 그리스 정교회 대학교 - 출처: 통신원 촬영 >
파나르 그리스 정교회 대학교는 1454년 오스만 제국 당시 지어진 건물로 이스탄불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다. 붉은 벽돌로 지어졌기 때문에 '붉은 성' 또는 '붉은 학교'라고 불린다. 마치 성처럼 보이는 이 대학교의 건축 자재들은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가져왔다. 학교 건물이기는 하지만 그 위용 때문에 유럽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성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지금은 고등학교로 사용되고 있다.
< 빈민가 발랏을 예술의 도시로 만들어 주는 그래티피 작품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다음으로 볼 곳은 지금의 발랏을 더 아름답고 현대적인 디자인의 마을로 만들어가고 있는 골목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그래티피 작품들이다. 앞서 본 오래된 건물에 여러 색깔의 페인트로 덥혀진 형형색색의 모습들도 아름다워 보이지만 세련된 그래티피 작품들로 재탄생한 건물들은 이 지역을 예술의 도시로 승화해 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발랏 거리의 그래티피 작품들은 길거리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사진을 배우려고 하는 학도들은 이곳을 찾아 작품 배경으로 담아 간다.
< 발랏의 골동품 상점 - 출처: 통신원 촬영 >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고풍의 발랏을 더 앤티크하게 해 주는 오래된 골동품 상점들이다. 통신원이 방문한 여러 상점들 중 한 곳은 1900년대 초 생산된 오래된 라디오와 레코드 전축들을 판매하는 매장이었다. 신기하게도 아날로그 라디오는 아직도 잘 작동했고 그중에는 돌 판으로 만든 레코드판 전축도 있었는다. 판에 긁히는 소리까지도 아주 고급스럽게 들렸다. 오래된 고풍의 마을 발랏을 다녀오면서 앞서 다녀간 이들이 그랬듯 통신원 역시 이 지역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해 가고 있는 현대의 흐름 속에서 오랜 역사와 문화, 종교까지도 한 아름에 품고 있는 발랏 지구만큼은 앞으로도 길이 보존되기를 바란다.
사진출처: 통신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