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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스위스 조에(ZOE) 출판사에서 출간한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작품 『속초에서의 겨울(Hiverà Sokcho)』은 스위스 문학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해당 작품은 한불 스위스 혼혈 작가가 23세의 나이에 발표한 데뷔작으로, 차갑고 황량한 항구 도시 속초를 배경으로 한 젊은 혼혈 여성이 겪는 정체성과 관계의 깊이를 탐구한 소설이다.
작품 줄거리는 한국과 프랑스의 피를 나눠 가진 혼혈의 젊은 여주인공과 가족사에 아픔을 겪고 프랑스 노르망디를 떠나 예술의 영감을 찾아온 중년의 만화가 사이의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 교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속초의 작은 마을 해변가 펜션에서 일하는 여주인공 수하는 수산 시장에서 생선 가게를 운영하는 어머니와 생면부지 프랑스인 아버지를 두었다. 수하는 경쟁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한 번도 한국을 떠나지 않았지만 책을 통해 프랑스를 알아가고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배웠다. 다른 이에 비해 큰 키와 마른 체형, 길쭉한 코를 가리기 위해 안경을 고집하는 등 자신의 외모와도 심리적으로도 복잡하다. 어느 날 프랑스인 얀 케랑이 펜션에 도착하면서 20여 년 넘게 마음속 저 편에 넣어둔 자신의 정체성과 태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작품 속 여주인공은 외모와 심리뿐만 아니라 지리적 환경으로도 주변과 고립돼 있는데 여기에 속초의 춥고 을씨년스러운 겨울 풍경이 더해져 그 느낌을 고조시킨다. 얀 케랑을 통해 궁금했던 프랑스인 아버지와 비슷한 연결 고리를 찾으려 해 보지만 그의 냉담함이 단절감을 더욱 악화시키고 결국 그가 속초를 떠나면서 또 한 번 외부인의 존재를 뼈저리게 깨닫는 내용이다. 소설은 부드럽고 담담하게 쓰인 글귀를 따라가지만 주인공이 느끼는 심리적 갈등은 한 사람의 전체를 구성하는 정체성이 흔들리는 강한 울림을 남기며 씁쓸하게 마무리된다.
이 작품은 발표 직후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같은 해 문학적 재능을 가진 스위스 신인 작가에게 수여하는 '로버트 발저(Robert Walser)상'을 수상했고 이를 통해 작가는 이름을 알리게 된다. 2021년 미국 내셔널 북 어워드 번역 문학 부문(National Book Award for Translated Literature 2021)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면서 엘리자 수아 뒤사팽은 '스위스 작가 최초 수여'라는 기록을 남겼다.『속초에서의 겨울(Hiverà Sokcho)』은 현재까지 3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고 연극 작품으로도 각색되면서 대중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 코야 카무라 감독의 영화 '속초에서의 겨울(Hiver à Sokcho)'- 출처: 프레네틱 필름(Frenetic Fims) 제공 >
지난 9월 영화 <속초에서의 겨울(Hiverà Sokcho)>은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Toron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서 코야 카무라(Koya Kamura) 감독의 첫 장편작으로 상영되며 관객 앞에 섰다. 이 영화는 한국과 프랑스의 합작으로 속초의 독특한 겨울 풍경과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위스에서는 지난 11월 제네바영화제를 통해 첫 선을 보였고 12월 중순부터 불어권을 중심으로 극장 개봉이 시작돼 스위스 각종 미디어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영화를 제작한 감독 코야 카무라는 프랑스계 일본인으로 인터뷰를 통해 "소설 속 주인공이 겪는 자아 정체에 대한 혼란과 더불어 펼쳐지는 이야기가 마치 제 이야기를 읽는 듯한 충격으로 전해져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고 고백했다. 소설 원작자인 엘리자 수아 뒤사팽 역시 여러 해 동안 여러 영화인들로부터 작품 제의를 받았으나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코야 카무라 감독은 유라시아인으로 영화 속 주인공의 심정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작품을 해석할 수 있다는 느낌에 영화 제작을 허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화 <속초에서의 겨울(Hiverà Sokcho)>은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 갈등을 장면 속 배경에 투영해 더욱 극대화하는 감독의 미장센으로 훌륭하다는 평판을 듣고 있다. 코야 카무라 감독은 스위스 불어권에서 최고로 꼽는 신문 《Le Temps(르 떵)》과의 인터뷰에서 촬영 당시를 아래와 같이 회상했다.
"2020년 처음으로 소설을 읽었습니다. 2022년 첫 시나리오를 마치고 속초를 방문했을 때 사실 많이 놀랐습니다. 제가 그렸던 속초의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상당히 변해 있었습니다. 소설은 2016년 출판됐으나 엘리자 씨가 작품을 쓰기 시작한 당시는 훨씬 전이라고 하더군요. 도시의 변화가 난감했으나 작품에 맞는 장소들을 찾아 최대한 활용하려 노력했습니다. 겨울의 한산한 회색빛 도시 속초, DMZ의 긴장된 모습, 설악산, 습기와 증기가 가득한 거리, 허름하고 좁은 숙소의 모습, 좁은 골목들, 각종 해산물을 판매하는 수산 시장의 좌판, 눈서리가 내려앉은 풍경,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길거리 음식, 매콤한 문어볶음, 복어 요리, 간장게장, 오징어순대 등 각 장면을 통해 관객들의 시각과 후각을 자극하고 싶어 장면 촬영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 코야 카무라 감독의 영화 '속초에서의 겨울(Hiver à Sokcho)'- 출처: 프레네틱 필름(Frenetic Fims) 제공 >
영화 <속초에서의 겨울(Hiverà Sokcho)>은 지난 2024년 12월 중순을 시작으로 극장 상영이 계속되고 있으며 1월 말까지 상영될 예정이다. 화려한 축제의 분위기가 가득했던 연말이 지난 1월 추운 겨울, 한 편의 영화로 위로를 받고 싶은 이들에게 유럽인들에게 '조용한 아침의 나라(Le Pays du matin calme)'로 알려진 한국의 속초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가슴 서린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영화로 기억될 듯싶다. 다음은 각종 미디어가 올린 영화 감상평이다.
"코야 카무라 감독은 작품 속에 무성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삽입해 여주인공의 무의식 속 감정, 즉 부드럽지만 고통스러운 과정을 구체화하고 다양한 색과 형상들을 통해 독특하게 승화시키고 있다. 이 부분을 코야 카무라 감독은 여주인공 수하가 얀 케랑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영화로 표현해 냈다." - 영화 평론가 콜린 슈밥(Colin Schwab),《Cineman(시네만)》
"영화 <속초에서의 겨울(Hiverà Sokcho)>은 서로의 좌절과 희망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두 사람의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만남의 이야기를 그리며 놀라운 완성도와 무한한 부드러움이 돋보이는 영화로 2025년 주목해야 할 작품으로 꼽겠다." - 줄리앙 라다(JulienLada),《Cinématraque(시네마트락)》
사진출처
- 프레네틱 필름(Frenetic Fims) 제공
참고자료
- 《Le Temps》 (2024. 12. 17). Koya Kamura: «Je voulais qu'«Hiver à Sokcho» soit un film très sensoriel», https://www.letemps.ch/culture/ecrans/koya-kamura-je-voulais-qu-hiver-a-sokcho-soit-un-film-tres-sensoriel
- 《RTS》(2024. 12. 18). Sortie du film 'Hiver à Sokcho', basé sur le roman à succès d'Elisa Shua Dusapin, https://www.rts.ch/info/culture/cinema/2024/article/hiver-a-sokcho-du-roman-prime-d-elisa-shua-dusapin-au-grand-ecran-28730345.html
- 《Cineman》(2024. 12. 17). Intérieur animé, https://www.cineman.ch/fr/movie/2024/UnHiverASokcho/review
- 《Cinématraque》(2024. 1. 9). Hiver à Sokcho: Entretien avec Koya Kamura et Bella Kim, https://www.cinematraque.com/2025/01/09/hiver-a-sokcho-entretien-avec-koya-kamura-et-bella-kim
- 《Cine-Feuilles》(N° cinéfeuilles 935). Un hiver à Sokcho, https://www.cine-feuilles.ch/film/7839-un-hiver-a-sok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