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눅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영화관의 추억은 이제 부모 세대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지방 소읍에까지 퍼져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우리 영화 산업의 인프라를 매우 튼실하게 만들었다. 이제 한국은 운영시스템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플랜트 수출 방식으로 중국이나 베트남에까지 수출하여, 한국 영화산업의 인프라 수준을 세계에 과시하고 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한국 영화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데에는 안정된 인프라 구축이 그 원인으로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한국 영화관 기술이 세계 엔터테인먼트의 본 고장인 미국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국내 최대의 멀티플렉스 체인 영화관 ‘CJ CGV’가 올 11월 드디어 미국에 첫 선을 보인다.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 근처에 들어서게 될 CGV 영화관은 총 3개관, 648석으로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LA의 기존 영화관들보다 훨씬 고급화된 인테리어와 영사 시설 등을 갖추어 확실한 차별화를 시도할 예정이다.

더 반가운 것은 이 극장이 들어서면, 우리 영화의 미국 진출도 더욱 용이해질 것이라는 소식이다. 사실 그 동안 한국 영화가 미국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으면서 상영된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전국 개봉은 심형래 감독의 <디 워>가 고작이다. 하지만 이제 적어도 한국 영화를 귀하게 대접해주는 스크린 하나는 확보하게 된 셈이다. 상영관의 50% 정도에서는 한국 영화를 상영하겠다는 것이 극장 관계자의 말이다. 물론 지금도 LA에는 한국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영화관이 두어 군데 정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한인들만을 위한 극장이기 때문에 미국 영화도 한국어 자막을 삽입하여 상영을 하고 있는 처지이니, 미국 관객은 아예 없다고 봐도 좋은 상태이다. 하지만 이제 제대로 된 시설에서 LA 시민 전체를 마케팅 대상으로 하는 극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니, 기대가 크지 않을 수 없다. 이 극장이 한국 영화의 미국 진출에 든든한 교두보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편 이렇게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미국 진출을 시도하는 기업도 있지만, 아쉽게도 일보 후퇴를 하는 기업도 있다. 지난 2006년 SK텔레콤은 인터넷 서비스 공급업체인 ‘어스링크(EarthLink)’와 협력하여 ‘힐리오(Hilio)’라는 브랜드로 미국 통신 시장에 첫 발을 힘차게 내딛었다. 미국 통신시장을 점령해 보겠다는 굳은 의지로 시작한 SK는 초기 자본금 약 2억 2천만 달러(한화 약 2,200억원)를 시작으로 총 4억 1천만 달러(한화 약 4,120억원)를 투자했다. 또한 당시 타 통신사들이 거의 음성 통화에만 주력하고 있을 때, 다양한 네트워크의 구축, 핸드폰을 이용한 GPS 검색, 멀티 문자 메시지 및 메신저 채팅 등의 첨단 서비스를 앞세워 미국의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6강 체제의 거대한 미국의 통신회사(AT&T, 버라이즌, 스프린트, 티-모바일, 알텔 등) 구조를 허무는데 결국 실패했고, 그로 인해 약 2년 8개월여의 영업 기간 동안 17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는데 그쳤다. 작년 한 해만도 무려 3억 5천만 달러(한화 약 3,500억원)의 적자를 낸 힐리오는 결국 미국의 ‘버진모바일(Virgin Mobile)’ 회사에 매각되면서 미국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버진모바일은 영국계 회사로서 버진 애틀랜틱 항공, 버진 메가스토어을 비롯해 전 세계에 약 200여개 이상의 관련회사를 둔 거대 그룹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