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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일본통신원] 한국 열풍의 한해
- [등록일] 2004-12-24
- [조회]6162
이제 다음 주 이맘 때면 사람들은 카운트 다운을 외치고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할 것이다. 우리는 새해에 떡국을 먹지만 일본에서는 소바면을 먹는다.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인스턴트 컵 소바면으로 새해를 맞으라는 광고가 종종 등장하는데 새해 아침부터 인스턴트 소바면을 먹는다고 한다면 어쩐지 서글퍼진다. 해를 넘기는 의식은 즉석에서 만들어지는 간편한 인스턴트 음식이 아닌 손이 가고 정성이 들어간 음식과 함께 해야 그 의식의 과정이 완성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올해는 기상이변도 심각했지만 문화적으로도 이변이 일어났다. 한일관계에 있어 수뇌부의 회동은 문화적인 큰 변수로 작용하였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지면서 양국의 문화교류가 시작되었는데 이는 이승만 정권이 식민지 시기에 뿌리 내리려 했던 일본 문화 잔재 퇴치 운동을 벌이며 국교 정상화를 거부해 온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었다. 한일 양국민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의 주선에 의해 이루어진 이 외교적 관계는 한국에 있어서는 경제적 원조를 받을 수 있는 명분을 제시하였으며 일본에게는 자본 제공을 통한 막대한 이득을 보상받는 기묘한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박정희 군사 정권 시절, 문화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게다가 건전문화를 지향했던 그 시대에 대중문화는 통제의 대상이었다. 비록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졌다 해도 일본의 대중 문화는 저질 왜색 문화라 하여 통제의 대상이었다. 한 예로 우리나라 사람에 의한 작사 작곡 노래인 대중가요라 할 지라도 일본풍의 노래는 음반 판매 금지 조치 처분을 받는 등 수난을 당하였다. 유교적 전통 하에 클래식을 즐기는 고상한 고급문화와 딴따라를 즐기는 저급한 저질문화로 이분화 되어있던 문화적 개념은 박정희 군사정권을 이어 전두환 정권시절과 노태우 정권 시절에까지 이어진다. 국교 정상화 이후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문화 교류는 고급 문화에 한해서만 가능하였다. 청소년 문화 체험 교류, 일본어과의 설치, 제2외국어 일본어 선택 가능 등 국익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선별적으로 선택하여 일본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문화의 개념이 이중적이고 대중을 선도하기 위해 저급한 일본의 대중문화는 공연법 제19조에 의해 국민의 감정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배격했던 시절에도 우리가 일본의 대중문화에 노출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아톰><마징가 제트> 등 공상 과학에서 소녀의 심금을 울린 <캔디 캔디>나 요즘의 일본 만화 영화를 통해 우리는 그들의 대중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끊임없이 가져왔다. 국교 정상화에서 최근까지 사실 일본의 대중문화는 일방적으로 전파되었다. 다시말해 그 역, 한국에서 일본으로 대중문화가 확산되는 것을 기대한 적은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올해 <겨울연가>가 일본 NHK의 지상파를 타면서 일본에 한국의 열풍이 강타하였다. 하와이를 제치고 한국이 일본인들 여행지 1위로 등장하는가 하면 늠름하고 남자다워 보이는 한국인 남성들을 소개하는 전문 브로커가 생기는 등, 한국의 인기는 정말 대단하였다. <겨울연가>의 배용준은 ‘욘사마 특수’를 불러와 많은 액수의 수익을 벌어들이기도 하였다. 일련의 한국 열풍은 협상테이블에서 불가능했던 외교 교섭을 가능하게 하는 등 기대하지 못한 효과를 수반하였다. <일본통신원-김정민> ※ 본 게시물은 통신원 개인의 견해로서, 재단의 공식적인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