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 한류동향 심층분석보고서 <한류NOW>
VOLUME. 52    2023 1+2
한류몽타주
호명과 인정, 국제시상식을 통해 본
한류의 성공과 의미

ZOOM4

한국의 EGOT를 기다리며

시상식은 매해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문화콘텐츠에 대한 상대적, 절대적 평가를 제공하고 그 의미를 되새김하는 일종의 기록행위이다. 한 해, 한 해의 기록이 쌓이면서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가 쌓이고 그게 한국 대중문화의 권위와 미래를 구성한다.
전 세계로 뻗어 있는 OTT 플랫폼과 드라마, 대중음악의 전파 속도와 힘, 방향성과 영향력은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파급력과 속도감에 가장 적합한 문화콘텐츠 중하나가 바로 한국 대중문화콘텐츠이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영향력에 걸맞은 대중문화콘텐츠 시상식이 존재하느냐고 묻는다면, 주최 측의 상업적 이익에 콘텐츠 생산 주체와 크리에이터, 셀러브러티들을 소모적으로 낭비하는 일회적이며 산발적인 시상식이 거의 전부라고 말하는 편이 더 현실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런 시상식을 갖기 위해선 과연 무엇이 마련되어야 할까? 에미(Emmy), 그래미(Grammy), 오스카(Oscar), 토니(Tony)를 아우르는 미국 대중문화 분야의 대표적 시상식 4개의 앞 글자를 따 ‘EGOT’라고 부른다. 아무리 시청률이 떨어지는 추세라 해도, 여전히 별들의 잔치로 주목을 끄는 이들 시상식을 통해 한국의 EGOT를 위한 제언을 고찰한다.
강유정 문화평론가·강남대학교 글로벌문화학부 교수
1. 오늘의 시상식, 우리가 없는, 그들만의 시상식
2023년 새해가 밝았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올 때면 습관처럼 보게 되는 행사가 있다. 바로 연말 시상식이다. 대중적으로 가장 관심을 많이 받는 시상식은 아무래도 대중문화와 연관된 시상식일 테다. 영화, 드라마, 예능, 가요 등 말이다. 그러나 상술한 장르 구분이 이제는 좀 어색해졌다. 과거에야 지상파, 케이블 플랫폼이 경쟁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OTT 플랫폼이 가세해, 영화, 드라마, 예능 등 전 분야, 전 장르를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전통적으로 영화는 필름에 촬영해 영화관 스크린에서 상영한 것을 가리켰다. 하지만 디지털 촬영으로 아날로그 필름의 영역이 무너지고, 이젠 스크린 상영이라는 제한도 무의미해졌다. 제한의 최종 교두보가 사실 시상식이었다. 칸 영화제는 여전히 OTT 플랫폼의 영화들, 그러니까 스크린이 아니라 TV 나 모니터를 통해 볼 수 있는 영화에 대해 미심쩍어한다. 하지만 아카데미를 비롯한 대개의 영화상은 코로나19의 창궐 속에서 이미 후보작의 문호를 열어 주었다. 엄밀히 말해, OTT가 없었다면 2021년과 2022년 영화, 드라마계는 생존권조차 위협받을 뻔했다.
그러니까, 넷플릭스나 애플TV, 디즈니 플러스 같은 OTT 플랫폼이 제작한 오리지널 영화들은 고전적 방식에서의 영화 시상식 후보작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다. 그렇다면 가요는 어떨까? 어느새 가요라는 용어 자체가 어색하다. 이젠 케이팝이 가요라는 용어를 대체했다. 그런데 케이팝만 다루기엔 또 최근 들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하는 트로트는 배제되는 게 아닌가 싶다. 드라마로 가면 어떨까? 대중에게 드라마 시상식 하면, 12월 말 지상파 3사가 날짜를 나누고, 돌아가며 거행하는 지상파 자사 드라마 시상식이 떠오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지상파 드라마의 주목도나 인기는 케이블 채널 드라마, OTT 플랫폼 시리즈의 영향력보다 훨씬 떨어진 지 이미 꽤 오래전 일이 되어 버렸다.
이는 지상파 시상식이 늘 포함하는 예능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이번에도 <1박 2일>이야?’, ‘또 유재석이야?’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는 것은 새로울 것도, 기대할 것도 없다는 진부함과 뻔함에 대한 대중의 솔직한 반응이다. 그러니까 이제, 지상파 방송사 시상식은 대중적 호소력을 잃었다. 한 해 동안 수고했던 자사 직원들 그러니까 자사 방송사에서 월급 받는 정규직들이나 그 회사에서 연말 정산 서류를 떼는 비정규직 내지는 계약직 방송 직군들과 함께 한 해의 소회를 나눠도 될 만한, 즉 사내 행사로 치러도 누구 하나 불만이 없을 듯싶다. 거꾸로 말하자면, 각 사내 방송 혹은 사내 행사로 치러져야 할 일들이 공중파, 지상파를 통해 공유되고 있다면 여기엔 분명 시대착오적 문제가 있는 것이다. 왜 모두가 원하고, 기다리고, 공감하는 시상식이 아닌 전파 낭비식의 시상식이 거듭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시상식 자체가 필요 없는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상식은 말 그대로 매해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문화콘텐츠에 대한 상대적, 절대적 평가를 제공하고 그 의미를 되새김하는 일종의 기록행위이다. 한 해, 한 해의 기록이 쌓이면서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가 쌓이고 그게 한국 대중문화의 권위와 미래를 구성한다. 문제는 단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시간이 곧 권위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의 3대 영화상 중 하나인 대종상은 그 전신이라 할 수 있을 ‘국산영화상’까지 따져보면 1958년에 시작된, 유서 깊은 영화상이다. 한국 전쟁 이후 가장 먼저 생긴 영화상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셈이다. 1962년 ‘대종상’으로 이름을 바꾼 이후 이미 60년이 지났으니, 시간을 따져본다면 그 무게감을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다. 그러나 관제 영화상으로 시작되어, 영화 제작 쿼터제, 검열 등의 문제와 결부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사 과정에서의 잡음이 늘 있다 보니, ‘대종상’은 오히려 시간이 쌓일수록 권위가 떨어지는 기이한 현상과 마주하게 된다. 나머지 ‘청룡영화상’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이 한국의 3대 영화상으로 이야기되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청룡영화상’은 조선일보사라는 특정 언론사가 주최하는 영화상이라는 점에서 완전한 독립성을 인정받기 어렵고,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은 그 역사와 공정성은 인정받기는 하지만 워낙 규모 면에서 작기에, 일종의 명예로운 상이긴 하지만 대중적 영향력이나 화제성이 적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는 대중음악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서울가요대상’, ‘골든디스크’, ‘멜론뮤직어워드’, ‘엠넷아시안뮤직어워드’ 등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대중음악 시상식이 있지만 막상 ‘그래미어워즈’ 같은 뚜렷한 무게 중심을 가진 권위 있는 대중음악 시상식은 없다. 한국의 문화콘텐츠, 케이팝, 영화, 드라마의 인기는 더 이상 국내에 머무르거나 아시아권에 머무는 국지적 문화 현상이 아니다. <기생충>(2019)의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오스카 4개 부문 수상, <오징어 게임>(2021)의 프라임타임 에미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수상은 일회적 수상의 우연이 아니라 그동안 쌓아 온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 저력의 상징적 결과이다.
전 세계로 뻗어 있는 OTT 플랫폼과 소셜 미디어를 통한 드라마, 대중음악의 전파 속도와 힘, 방향성과 영향력은 거의 실시간 수준의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파급력과 속도감에 가장 적합한 문화콘텐츠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의 대중문화콘텐츠이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영향력에 걸맞은 대중문화콘텐츠 시상식이 존재하느냐고 묻는다면 중구난방식의 즉, 주최 측의 상업적 이익에 콘텐츠 생산 주체와 크리에이터, 셀러브러티들을 소모적으로 낭비하는 일회적이며 산발적인 시상식이 거의 전부라고 말하는 편이 더 현실에 가깝다. 즉, 수준에 맞는 시상식이 아직 우리에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시상식을 갖기 위해선 과연 무엇이 마련되어야 할까?

2020, 2021 그래미어워즈 포스터 (출처: Grammy Awards)

2. 아카데미, 그래미에 있는 것
에미(Emmy), 그래미(Grammy), 오스카(Oscar), 토니(Tony)를 아우르는 미국 대중문화 분야의 대표적 시상식 4개의 앞 글자를 따 EGOT라고 부른다. 에미상은 텔레비전을 통해 즉, 집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대상으로 하고, 그래미는 대중음악, 오스카는 영화 그리고 토니는 연극과 뮤지컬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수상자를 결정하는 주체,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회원들 그리고 그들 중 상을 결정할 권한을 갖는 투표자들이다. 네 개의 상은 모두 회원 결사체라고 할 수 있을 각 분야 아카데미를 두고 있다. 바로 이 아카데미 회원들이 투표권을 갖고 투표를 해서 매해 후보자를 결정하고 그 가운데서 투표를 통해 수상자를 정한다. 사실 EGOT의 권위는 바로 이 직능별 아카데미로부터 비롯된다.
우리는 흔히 영화상만 아카데미에서 주최한다고 알고 있지만, 영화계만 아카데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에미상 역시 텔레비전예술과학 아카데미(ATAS·National Academy of Television Arts and Sciences), 전미 텔레비전예술과학아카데미, 국제 텔레비전예술과학아카데미로 크게 분류된 아카데미가 주최한다. 다만 생중계를 ABC, NBC, CBS 등 미국의 4대 지상파 방송국이 돌아가면서 할 뿐이지 수상 장르 구분 및 후보작 선정, 최종 수상작 선정 등의 결정적 선택은 모두 현장 업무를 훤히 알고 있는 전문가로 구성된 아카데미 회원들이 한다.
이런 전문성은 영화와 대중음악 시상식인 ‘아카데미상’과 ‘그래미어워즈’에서 더 돋보인다. 그래미어워즈의 경우 각 음악 레이블이 그래미 후보작으로 음반, 트랙을 출품하고 나면 150여 명 이상의 전문가들이 출품된 레코딩을 심사해 장르를 재분류한다. 중요한 것은 출품자가 주장하는 대로 장르를 받아들여 주지 않고, 전문가들이 그 장르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를 트로트로 출품한다고 해도 만약 전문가들이 스크리닝 과정에서 댄스/일렉트로닉이라고 결정한다면 그 분야에서 경쟁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간혹 논쟁이 있긴 하지만 그래미의 권위는 늘 논쟁을 압도했다. 이후 후보작이 선정되고, 최종 후보가 선별되며 이렇게 선별된 후보가 공개되면 이후 회원들에 의해 투표가 이뤄진다. 투표권은 미국 레코딩아카데미(NARAS·National Academy of Recording Arts and Sciences) 회원에게만 있다.

그래미어워드의 경우 150여 명의 전문가들이 출품된 레코딩을 심사해 장르를 재분류하며, 투표권은 미국 레코딩아카데미(NARAS) 회원에게만 있다. (출처: 셔터스톡)

EGOT 중 1929년 가장 먼저 시작된 아카데미는 좀 더 정교한 시스템을 공고히 갖추고 이를 투표와 대중적 인지도, 흥행에 반영하고 있다. (출처: Unsplash)

EGOT 중 1929년 가장 먼저 시작된 아카데미는 좀 더 정교한 시스템을 공고히 갖추고 이를투표와 대중적 인지도, 흥행에 반영하고 있다. 미국영화예술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매년 돌비 극장(구 코닥 극장)에서 이뤄진다. 눈길을 끄는 것은 영화예술아카데미 회원 가입 자격과 아카데미시상식 투표 자격이다. 우선 영화예술아카데미에는 배우, 캐스팅디렉터, 촬영감독, 의상디자이너, 감독, 경영진, 마케터 등 영화를 만들고, 유통하고, 배급하는 시스템 내부자여야만 가입이 가능하다. 영화평론가, 영화학자, 영화과 교수, 언론인, 영화 전문기자, 극장업자, 영화 팬 등 제작 실무와 관련이 없는 투자자나 이론가가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이다. 이는 심지어 언론사가 거의 모든 영화상을 주최하는 한국의 형편과 완전히 대조적이다. 대종상이 국가가 주도하는 관제 영화상으로 시작했다면 청룡영화상은 조선일보사, 백상예술상은 한국일보사가 시작해 현재 일간스포츠로 그 주최가 이어져 오고 있다. 이는 심사위원과 투표권 구성에서도 차이를 가져온다. 한국의 영화상 심사위원 구성을 보면 대부분 이론가나 투자자, 언론종사자들이며 영화인은 유명 배우 몇 명으로 오히려 소수에 국한된다. 촬영감독, 조명감독, 의상디자이너, 편집, 미술감독 등 전문 영역 종사자들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사례는 거의 본 적이 없다.
미국의 오스카, 아카데미시상식 투표권은 아카데미 회원이라고 해서 평생, 모두에게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는 1편 이상 자기 작품을 개봉하고, 제작자 이하 스태프들이나 배우는 3편 이상의 경력이 있어야 우선 투표권이 생긴다. 그나마도 가입 이후 5년 이상 경력이 없으면 자격이 소실된다. 앤서니 홉킨스 경 정도 되는 대배우나 프랜시스 코폴라 정도 되는 대감독이 아니라면 5년 전에 필모그래피를 갱신해야만 투표권이 유지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아카데미가 각각의 직능별로 세분되어 구성되어 있고, 그 직능별 아카데미에서 전문적으로 후보작을 선정한다는 사실이다. 즉, 의상 디자이너 길드에서 의상 디자인 부문 후보작을 올리고, 프로덕션 디자이너 길드에서 그 후보작을 올리며, 시각효과 길드에서 시각효과 후보를 올리고 음향 지부에선 음향상을 편집자 지부에서는 편집 분야 후보를 고른다. 업계 전문가들이 동료 평가를 통해 전문적 식견으로 후보작을 선택하는 것이다. 단, 작품상만이 전 분야에서 후보작을 추천할 수 있다.

미국배우조합상의 수상 결과는 오스카의 향방을 예측하는 일종의 실마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출처: 셔터스톡)

그래서 2월 마지막 또는 3월 첫째 일요일 오후 진행되는 시상식 전에 열리는 배우조합시상식인 SAG(Screen Actors Guild)의 수상 결과나 감독조합에서 주는 감독상이 아카데미 오스카의 향방을 예측하는 일종의 실마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배우 조합상의 투표권을 가진 배우들이오스카에도 투표하고, 감독 조합의 감독들이 오스카에도 투표를 하니 말이다. 자연스럽게 12월부터 시상식까지 오스카 캠페인 기간이 되어 노미네이트를 바라는 영화들을 12월을 개봉 시기로 삼고, 1월에 후보작들이 발표되면 본격적인 캠페인을 이어가며 주목도를 높인다. 이는 투표권을 가진 LA 할리우드 영화계의 주목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시상식, 오스카 자체에 대한 호기심도 높이고 이 자체가 매우 중요한 영화 산업의 기폭제 역할을 해 흥행에 도움을 준다. 최근 들어, 아무리 시청률이 떨어지는 추세라 해도, 여전히 아카데미 시상식은 슈퍼볼을 제외한 단일 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보여주는 별들의 잔치로 주목을 끈다. 할리우드가 전 세계 영화 콘텐츠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모든 스타가 탐내는 영화 산업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아카데미 시상식을 통해 다시 한번 전 세계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3. 한국 대중문화 시상식이 가야 할 길
결국 문제는 길드, 조합, 아카데미이다. 시상식의 주최가 언론사, 투자자, 돈을 가진 특정한 기업체가 아니라 대중음악담당자, 영화 생산 주체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후보작을 선출하는 과정 자체가 이를 통해 전문성과 공정성을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다. 영화인들 스스로 선정하는 과정이기에 수상작뿐만 아니라 탈락한 작품들이 납득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그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권위이기도 하다. 몇몇 언론사의 자기 홍보 수단으로 시상식을 활용하고, 그 과정에서 유력 배우들을 액세서리로 초청하는 게 아니라 영화인 스스로 주최자가 되어 중계권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편, 각 직능 조합은 미국 영화와 대중음악 산업이 단순히 돈을 벌어오는 황금알일 뿐만 아니라 선진국형 문화 산업 기지로 가는 첨단 기지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마련되어야 하는 일종의 인권, 복지 담당 기구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애플TV에서 제작한 <파친코>(2022)에서 일본어 고증 자문을 했던 연극배우 고종수 씨는 촬영을 위해 캐나다로 향하는 길에 매우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고 한다. 비록 얼굴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출연 배우들의 언어를 도와주는 그 역시 연극배우이기 때문에 배우 조합에 단기 가입되었고, 배우 조합원으로서의 권리를 제공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5시간 이상의 비행은 무조건 비즈니스석으로 이동해야 하며, 계약된 촬영 시간 외에는 작업할 수 없고, 일정 수준 이상의 숙소를 제공받아야 하는 권리의 혜택을 ‘처음’ 누렸다고 한다. 배우와 제작자가 일대일로 만나 껄끄러운 분위기 가운데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이미 마련된 배우 조합의 조항들 속에서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권리 보장으로 실현되고 있음을 체험한 것이다.
각 분야의 조합, 길드는 영화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를테면, 비합리적인 처우 문제를 개선하고 표준계약으로 문서화하는 데 앞장서 왔다. 미국 영화 산업의 현장, 할리우드가 전 세계 영화 시장의 첨단이자 최고가 된 것은 단지 자본뿐만이 아닌 이런 방식의 보장 제도도 함께 마련된 바도 크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결실 중 하나가 바로 회원들이 후보작을 고르고 투표하는 시상식이다. 언론이나, 자본, 이론가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진정 업계 내부의 창작자들과종사자들이 주최하여 일 년에 한 번 동료들의 작품에 기쁘게 권한을 행사하는 것, 바로 이 기본부터 마련되지 않는다면 우리 대중문화산업 속에서 그래미나 아카데미는 존재하기 어렵다. 상금 여부, 트로피의 무게가 중요한 게 아닌 이유는 상의 권위는 그런 환산 가능한 값어치에서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