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해외한류실태조사
아르헨티나 한류 심층분석
아르헨티나는 자원 수입국인 한국에 필수 불가결한 외교 파트너이자 멕시코, 브라질과 더불어 중남미 3대 영화산업 중점 국가로 불릴 정도로 무시할 수 없는 문화 강국이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2023 해외한류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처음 한국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로는 케이팝과 한류스타가 태권도를 제치고 1, 2위를 차지했으며, 코로나19 발생 이후 한류 문화콘텐츠 소비량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르헨티나 한류 소비는 오프라인 소비가 가능한 음식을 제외한 드라마, 예능, 영화, 애니메이션 등이 대부분 온라인으로 소비되고 있는데, 이 중 드라마와 예능, 영화, 애니메이션은 넷플릭스(Netflix), 음악은 유튜브(YouTube)와 스포티파이(Spotify),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네이버 웹툰(66.1%)이 주요 접촉경로다. 한국 문화콘텐츠 중 음악이 경험률과 인기도 등 여러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다른 콘텐츠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소비되는 한국 문화콘텐츠는 출판물과 웹툰을 제외하고 인기도와 브랜드파워지수에서 콘텐츠별 선호도에 큰 차이가 없다. 접근 가능성이 용이한 ‘음악’ 이외의 콘텐츠가 더 많은 이용자, 잠재적 팬을 확보할 가능성 또한 엿보인다.
민원정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시민사회프로그램 객원연구원
이 글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행한 『2023 해외한류실태조사』(2023.3.) 보고서의 통계 결과를 토대로 아르헨티나 한류 현황을 심층 분석한 것입니다. 보고서 전문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홈페이지(www.kofice.or.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들어가며
아르헨티나는 한국에서 18,957㎞ 떨어진 지구 반대편 남미에 위치해 있다. 국가 면적은 약 2,780,440㎢으로 남미에서는 브라질 다음으로 두 번째,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서는 네 번째, 세계에서는 여덟 번째로 크며, 경제 규모 또한 남미에서 두 번째로 크다. G-15과 G20 회원국이자 UN, 세계은행(World Bank),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메르코수르(Mercosur) 등 굵직한 국제기구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특히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의 이민 영향으로 남미의 백인 국가로 알려져 있다.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1962년 2월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한성수산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다수 아르헨티나에 진출해 있다. 우리 교민은 약 2만 2천 명이 거주하고 있다. 또한, 2006년에는 한국문화원이 설립돼 한국의 문화, 역사, 예술, 사회 전반에 대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며 아르헨티나에 한국을 알리고 있다.
비옥한 넓은 토지에서 재배되는 곡물과 목축업을 바탕으로 1860년부터 1930년 대공황이 불어 닥치기 이전까지 아르헨티나는 세계 10대 강대국에 들 정도로 경제적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이후 군사독재정권과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정치·경제적 혼돈을 겪어왔다. 특히 코로나19 이후에는 지난 60년간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을 기록할 정도로 최악의 경제 위기를 맞고 있는데, 아르헨티나 국립통계조사원(INDEC)에 따르면 지난 2월 아르헨티나의 연간 인플레율은 102.5% 상승했다.
이러한 불안정한 정치·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는 자원 수입국인 한국에 필수 불가결한 외교 파트너다. 아르헨티나는 세계 2위의 셰일 가스, 세계 4위의 셰일 오일 보유국이다. 아르헨티나는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문화 강국이다. 영화산업에 대한 지원이 다른 콘텐츠 산업에 비해 활발해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국가 지원을 통해 유수한 영화감독 및 배우를 배출해 왔다. 특히 멕시코, 브라질과 더불어 중남미 3대 영화산업 중점 국가로 불릴 정도다. 아르헨티나 콘텐츠 산업의 특징은 콘텐츠별로 정책 담당 기구가 분리돼 있고, 각 기구는 아르헨티나의 광활한 영토 내에 거주하는 모든 시민이 문화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콘텐츠산업 시장 규모도 매해 증가 추세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문화산업은 약 3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 GDP의 3.5%를 차지하는 중요한 분야다. 아르헨티나는 가치를 측정하기 어려운 상징적 무형 가치를 지닌 문화산업의 본질적인 특성을 고려해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문화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서 실시한 「2023 해외한류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처음 한국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로는 케이팝과 한류스타가 태권도를 제치고 1, 2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한류가 인기를 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한류를 분석한 학술적인 논문은 아직까지는 많이 이뤄지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윤선미(2009), 김용주(2012), 손수진(2018; 2020; 2021) 등의 연구가 있는데 주로 한류와 관광, 패션 등 연관산업과 관련한 내용이다. 아르헨티나 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Del Valle Guerra(2017), Iadevito(2012; 2015; 2016; 2018; 2019), Bavoleo(2015) 등이 있는데 주로 영화와 드라마, 문화산업에 관한 내용이다. 그중 Pilar del Alvarez(2013)의 아르헨티나 케이팝 팬에 대한 연구와 Aller(2022)의 Jujuy 지역 팬들에 대한 연구, Kirstin Koeltzch(2019)의 한국대중문화에 대한 연구가 눈에 띈다.
2. 플랫폼에 따른 한국 대중문화 소비 - 음악
비록 아직 학술적인 연구는 활발하지 않지만, 코로나19 이후 한류에 대한 일반 대중과 학자들의 관심은 모두 높아지고 있다. 실제 조사 결과에서도 코로나19 발생 이후 한류 문화콘텐츠 소비량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르헨티나 한류 소비는 오프라인 소비가 가능한 음식을 제외한 드라마, 예능, 영화, 애니메이션 등이 대부분 온라인으로 소비되고 있는데, 이 중 드라마와 예능, 영화, 애니메이션은 넷플릭스(Netflix), 음악은 유튜브(YouTube)와 스포티파이(Spotify),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네이버 웹툰(66.1%)이 주요 접촉경로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문화콘텐츠 중 음악은 경험률(76.4%), 대중적 인기도(49.1%), 브랜드파워지수(61.7점), 이용 용이성(78.0%) 등에서 모두 1위이지만, 한국 문화콘텐츠 소비량은 웹툰(21.6%)과 예능(21.4%), 드라마(20.5%) 순으로 집계됐으며, 지출액이 높은 콘텐츠는 음식(US$7.46)과 패션(US$6.82), 뷰티(US$6.78) 순이었다. 이는 음악의 경우 유튜브 채널을 이용해 무료로 들을 수 있으며, 중남미 현지 콘서트는 주로 칠레와 브라질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SM World Tour(2019) 개최지나, 총 13회의 <MUSIC BANK> 녹화 중 3회(2012; 2018; 2022)가 칠레에서 열렸을 정도로 칠레는 중남미 케이팝의 허브로 알려져 있다. 2023년도에 중남미에서 있을 예정인 블랙핑크(멕시코), Jackson Wang(브라질), PH1(멕시코), ASTRO(브라질, 칠레, 멕시코, 우루과이), WOODZ(멕시코, 페루, 브라질, 칠레) 등의 콘서트 목록에서도 아르헨티나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 문화콘텐츠 중 음악이 경험률과 인기도 등 여러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다른 콘텐츠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험률을 보면 음악(76.4%)에 이어 영화(64.8%), 음식(62.0%), 애니메이션(58.9%)이 근소한 차이로 뒤를 잇고 있고, 게임(52.4%)과 드라마(45.0%)의 경험률은 증가 추세에 있다. 또한, 남성의 경우 여성 대비 음악(77.1% vs. 75.8%), 여성은 남성 대비 드라마(37.8% vs. 52.2%)와 패션(36.9% vs. 56.9%) 경험률이 높고, 10~20대는 음악 경험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음악은 이용 용이성이 높은 만큼 경험하기 쉽다. 그러나 음악의 인기가 음악 자체로 사랑받는 것인지, 다른 콘텐츠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용 용이성이 높기 때문인지는 심층 조사가 필요하다. 온라인/모바일 플랫폼 중 가장 이용률이 높은 음악 접속 채널은 유튜브와 스포티파이인데 유튜브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스포티파이의 경우 Google Play Music에 비해 무료 접속자가 청취할 수 있는 음악의 폭이 넓다. 또한 유료 채널인 Amazon Music이나 Apple Music은 접근 용이성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3. 움직이는 플랫폼 - 영화와 드라마
예능은 아직도 유튜브를 많이 이용하지만, 드라마의 경우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다. 중남미에 처음 소개된 한국 드라마는 <이브의 모든 것>(2002), <별을 쏘다>(2002), <겨울 소나타>(2005) 등이 있는데(Min, 2008), 멕시코에서 인기를 끌자 멕시코식 스페인어 더빙이 중남미 몇몇 나라에 무료로 보급돼 주요 매체가 아닌 케이블TV에서 아침 시간에 방영되는 정도였다. 이러한 노력이 한국 드라마를 중남미에 소개하는 데에 일조했음은 부인할 수 없으나, 33개국이 존재하는 광활한 중남미에 대한 지역적 특색이 고려되지 않는 멕시코식 스페인어 더빙은 남미에서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Min, 2008).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2022년도 조사 결과에서도 응답자들은 한국 문화콘텐츠의 호감 저해 요인으로 ‘번역 자막/더빙으로 인한 불편함’을 지적했다. 문화콘텐츠의 선호도 면에서도 지역적 특색이 드러나는데, 영화 <집으로>(2002)의 경우 아르헨티나에서는 인기를 끌었으나 칠레에서는 관심을 받지 못했다(Min, 2008).
아래와 같이 2022년도 조사 결과에서 <천국의 계단>(2003~2004), <꽃보다 남자>(2009) 등이 최근 인기를 끄는 드라마를 제치고 여전히 드라마 부분에서 한국 문화콘텐츠 1위와 3위를 차지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는 <기생충>(2019)이 1위를 차지했지만, <20세기 소녀>(2022)를 제외하고, <부산행>(2016), <옥자>(2017) 등과 같이 몇 년 전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응답자들이 근래에는 한국 영화를 보지 않았는지, 선호도와 취향의 문제인지에 대해 파악이 필요하다.
4. 숨겨진 보물 - 웹툰과 음식
최근 들어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아르헨티나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로 한국 문화콘텐츠 경험률, 인기도, 브랜드파워지수에서 음식은 음악과 근소한 차이로 2등을 차지하고 있다.
지출액 조사에서도 음식 지출이 가장 많았을 뿐만 아니라, 유료 이용 의향에서는 음식이 55.3%로 다른 콘텐츠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음악의 경우 무료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실제 브랜드파워지수는 음식이 더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식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고, 서구 음악과 유사한 케이팝과는 달리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케이팝이 한류를 이끄는 견인차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웃 나라 칠레와 달리, 영화 강국 아르헨티나는 영화와 드라마가 음악, 음식 못지않다. 소수 마니아층의 인기를 끄는 웹툰도 강세다. 웹툰 팬은 대다수(66.1%)가 네이버 웹툰을 통해 접속하는데, 호불호가 분명한 게임도 ‘온라인 직접 플레이(56.8%)’와 ‘모바일 직접 플레이(56.8%)’를 통해 직접 플레이를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5. 나가며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중남미는 지리·문화적 거리로 인해 한국의 관심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지역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에도 한국 문화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증가 추세에 있다. 아르헨티나의 한류를 북미와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한류 현상이나 분석의 틀에 맞출 수는 없다. 중남미의 한류는 북미나 아시아 지역과 관심을 끌기 시작한 시기가 다르고,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도 지역 내 국가별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아르헨티나에서 소비되는 한국 문화콘텐츠는 출판물과 웹툰을 제외하고 인기도와 브랜드파워지수에서 콘텐츠별 선호도에 큰 차이가 없다. 접근 가능성이 용이한 ‘음악’ 이외의 콘텐츠가 더 많은 이용자, 잠재적 팬을 확보할 가능성 또한 엿보인다.
2016년 영문판 연합뉴스는 아르헨티나에 불고 있는 한국 드라마 열풍을 보도한 바 있는데, 이 기사에서도 <천국의 계단>이 언급되었다. 기사는 한국 드라마가 해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정부의 적극적인 문화정책을 들었는데, 이로 인해 영화, 케이팝, 드라마 등 대중문화의 다양한 분야에서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한국문화원 측의 의견을 함께 보도한 바 있다. 한국 문화콘텐츠의 인기가 한국 정부의 노력인가 아닌가는 요즘 학계에서 민감하게 논의되는 분야다. 아르헨티나의 한류가 한국문화원의 역할 덕인지, 문화콘텐츠 자체의 힘인지에 대한 조사도 추후에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