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 인공지능과 더불어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크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과 잘하지 못하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자발성이 있는지, 다시 말해 어떤 의도나 의지를 발휘해서 자기 작업을 제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요컨대, 영역이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일을 두루 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여러 일을 오가며 수행하도록 하는 하나의 제어 주체가 있다는 점이 본질이다. 현존하는 인공지능은 모두 인간이 시키는 일을 최적으로 수행하도록 짜여 있다. 우리가 ‘생성’, ‘창작’ 같은 말을 쓰지만, 겉으로 볼 때만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는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기계가 인간의 일을 상당 부분 대신할 수 있다면 인간은 노동의 의무에서 벗어나서 자기의 삶 자체에 더 집중할 기회를 얻게 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노동의 의무에서 벗어나면 일 말고 다른 것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 이 점에서 인문학과 예술 문화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최근 한류를 이끈 힘은 비트 공간의 스마트함이다. 기술은 마음을 사로잡는 데로 수렴해야 하며, 모범이 될 만한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1. 창작에 있어 의식과 평가
1-1. 생성 인공지능이 주는 두려움
생성 인공지능과 더불어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크다. 인공지능을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곳곳에서 보인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잘 모르는 새로운 창작 도구가 나오면 창작자는 일단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그랬다. 주로 초상화를 그려 먹고 살던 화가들은 밥줄이 끊겼다고 절망했다. 이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다른 길을 찾은 화가들도 있었다. 이들은 또 다른 신기술인 튜브 물감을 가지고 야외로 나가 작업했으며, 결국 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발명했다. 바로 ‘인상주의’를 시작으로 한 현대 미술이 시작된 것이다. 미래의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사진의 등장은 미술의 본질을 더 깊게 성찰하게 한 계기였다.
포토샵이 처음 나온 게 1990년이다. 그 후 그림 그리는 일은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종이에 그려서 스캔하거나 사진 찍는 일은 일반적인 작업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다들 노트북과 태블릿, 혹은 이와 유사한 도구를 써서 그림을 그린다. 요즘에는 포토샵이 과하다는 말이 사라졌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쓰니까. 중요한 건 결과물의 품질이다. 새로운 도구가 나올 때 현업이던 사람은 거부감이 크다. 반면 시간이 지나 도구가 충분히 보급된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한 사람에게 도구는 기본값이다. 이게 역사적 진실이다. 지금은 생성 인공지능이 위협을 준다고 여기는 현업 작가가 많다. 생계를 꾸리는 법을 다시 짜야 한다. 게티이미지나 픽사베이 수준의 결과물이 자신의 최선이라면 실직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학생의 입장은 어떨까? 학생들은 생성 인공지능을 기본값으로 여기고 그런 세상을 바탕으로 자기 미래를 설계할 거고, 대응 방안을 찾고야 말 거다. 기술의 흐름을 거스르려 하기보다 흐름을 타고 자기 진로를 정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과 잘하지 못하는 것, 혹은 아예 할 수 없는 것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첨단기술 관련 보도를 보면 과장과 오해가 심한 편이다. 과장이 심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언론인들이 기술을 잘 몰라서 틀린 내용을 보도하며, 종종 화제성 있다고 생각되는 쪽으로 치우친다. 둘째, 빅테크들이 자신들의 기술을 과장하고 이를 통해 주가를 부양하거나 투자를 유치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1-2. 인공지능은 의식이 없다
조금 깊게 들어가면 인공지능이 자발성이 있는지, 다시 말해 어떤 의도나 의지를 발휘해서 자기 작업을 제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인간 수준의 용어를 쓰자면, 인공지능이 ‘의식’을 가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 문제는 인공일반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1)이라는 주제와도 관련이 깊다. 인간이나 몇몇 동물은 일반지능을 갖고 있다. 서로 다른 여러 지능 영역을 오가며 활동한다는 뜻이다.
의식이 있다는 것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자기가 직접 목표를 세운다는 점이다. 그걸 실현하기 위한 중간 과정을 설계하거나 문제를 풀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요컨대, 영역이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일을 두루 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여러 일을 오가며 수행하도록 하는 하나의 제어 주체가 있다는 점이 본질이다. ‘맥가이버 칼’로 알려진 스위스아미나이프가 여러 일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의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어 주체가 맥가이버라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챗GPT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코드도 짠다고 해서 인공일반지능의 초입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챗GPT는 자신이 생성하는 결과에 책임질 능력이 없는 도구 혹은 미디어에 불과하다.
1) 인간과 동등한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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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가이버 칼’이 여러 일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의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진 출처: Unsplash의 Patrick)
현재 인공지능 기술의 구조상, 좀 더 전문적인 용어로는 ‘아키텍처(Architecture)’를 짤 때, 즉 컴퓨터 시스템의 기본 설계를 할 때, 일반지능을 염두에 두는 방식으로는 설계돼 있지 않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인공지능 교과서 『인공지능: 현대적 접근』의 저자 스튜어트 러셀과 피터 노빅에 따르면, 현존하는 인공지능은 모두 인간이 시키는 일을 최적으로 수행하도록 짜여 있다. 생성은 물론 인식이나 분류나 예측과 같은 과업에 대해 인공지능은 인간이 부여한 숙제, 태스크(Task)를 잘 해결하도록 만들어진 도구다. 따라서 SF에 등장하는 식으로 인간을 절멸시키거나 인간과 싸우거나 인간을 이용하는 방식의 인공지능은 나올 수 없다. 적어도 인공지능 교과서에 따르면 그러하다.
1-3. 평가는 인간만의 능력
직접 목표를 세우지 못한다고 해도 그림이나 언어, 음악, 동영상처럼 창작의 영역에서는 충격이 상당하다. 우리가 ‘생성’, ‘창작’ 이런 말들을 쓰는데, 과연 진짜 하는 것이냐 아니면 겉으로 볼 때만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는 것에 불과하냐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가령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나보다 그림을 잘 그려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식으로 보통 사람들의 ‘평균치보다는 잘한다’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아주 수준이 높을까를 물어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통계에서 종 모양의 정규분포가 있다. 인공지능은 중앙 부분에 볼록 솟아 있는 부분의 결과들은 잘 만들어내곤 한다. 그런데 창작에서 중요한 건 정규분포의 롱테일 부분, 그러니까 양 끝의 꼬리처럼 길게 늘어진 부분인데, 이 지점에서는 전문가 수준의 결과물들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전에 없던 남다른 솜씨와 안목이 필요한 부분 말이다. 인공지능 생성물은 결국 통계적인 평균에 쏠리는 경향이 있다.
하나 더 주목해야 하는 건 평가 행위다. 생성 인공지능을 통해서 하는 작업은 최종적으로 사람이 결과물을 평가해서 내놓는 방식일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어떤 품질의 결과물을 내놓는 게 아니라 사람이 이런저런 시행착오와 노하우를 동원해서 결과물을 확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뽑아낸 결과물은 최종적으로는 사람이 직접 평가한 후에 내놓은 것이라는 점에서, 인공지능과 인간 작업의 차이가 확인된다. 인공지능은 무작위로 결과물을 내놓을 뿐이다.
인공지능 생성물은 결국 통계적인 평균에 쏠리는 경향이 있다. (사진 출처: 셔터스톡)
2. 노동에서 놀이로
2-1. 가난과 굶주림을 언제까지?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뺏긴 인간이 먹고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많다. 주로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재앙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빼앗고, 인간은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모습. 하지만 낙관적인 방향을 설계하는 일도 필요하다. 기계가 인간의 일을 상당 부분 대신할 수 있다면 인간은 노동의 의무에서 벗어나 자기의 삶 자체에 더 집중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니까. 일하는 시간이 대폭 줄어 주 4일 근무도 얘기되는데, 그런 방식으로 제도도 바꾸고 삶의 여유도 찾아야 할 것이다.
2023년 1월 발표된 옥스팜(OXFAM)의 보고서 ‘슈퍼리치의 생존(Survival of the Richest)’에 따르면, 2020~2021년 동안 새롭게 창출된 부의 63%를 최상위 부유층 1%가 가져갔고, 하위 90%가 약 10%만 가져갔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극심한데, 극소수의 사람이 그렇게 많이 가져가는 것은 과연 정당한 일일까? 글로벌 거버넌스(governance)를 통해 가난과 굶주림 때문에 고통받지 않을 수준까지 부의 배분을 모든 인간에게 보장해야 마땅하고, 그 후에 더 즐길 사람은 즐기고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소소하게 자기 기쁨을 찾는 방식으로 사회 구조나 제도를 바꿔야 할 것이다.
2-2. 잘 노는 것이 삶의 숙제
지금은 노동이 전부인 삶을 살다 보니 일 자체가 곧 나다. 그런데 노동의 의무에서 벗어나면 일 말고 다른 것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찾아가야 할까? 인간이 인류의 역사 전체를 통해서 성취하려고 했던 게 뭐였을까를 생각해 보면 ‘노동에서의 해방’인 것 같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특히 젊은 친구들의 꿈은 모두 건물주다. 나는 항상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건물주가 돼서 월 소득 1억이 됐다고 쳤을 때, 어떻게 살 거야?”, “돈이 충분하고 시간이 충분하다면 너는 어떻게 살 거야?”, “뭐가 너한테 재밌는 거야?” 그런데 대개는 답을 못한다. 여행 좀 가고 맛있는 것 먹고? 그건 금방 질리고 만다. 부유층이 마약을 하고 극단적으로 가는 것도 재미있게 노는 법을 몰라서다.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에 매여 있는 시간 동안에는 별 고민을 안 해도 됐는데 노동에서 놓여나는 순간 실존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하고, 정말 이때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타인과의 관계는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혼자 있을 때 뭘 해야 할지 등등의 질문이 물밀듯이 들이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아마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들이 먼저 겪게 될 사회적인 문제다. 미국의 이른바 상류층, 중산층 이상 사람들이나 유럽에서 잘 사는 사람들도 여유가 생긴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고민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조금 먼저 닥친 문제고, 한국도 이미 선진국이니까 곧 닥칠 문제다. 그래서 인문학이나 예술 문화가 해야 할 역할이 더 커질 것이다.
노동의 의무에서 벗어나면 일 말고 다른 것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 앞으로 들이닥칠 실존적인 질문에 인문학이나 예술 문화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다. (사진 출처: 셔터스톡)
2-3. 스마트파워: 한류가 삶의 모범을 제시해야
나는 디지털의 핵심을 스마트파워(Smart Power)라고 본다. 스마트파워는 경제력과 군사력 중심의 하드파워(Hard Power)와 자발적으로 따르고 싶은 매력을 뜻하는 소프트파워(Soft Power)를 대신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권력 개념이다.
여기서 스마트는 두 가지를 가리킨다. 첫째로 스마트는 디지털 기술력이다. 디지털 비트 공간을 건설하고 이용하는 능력을 뜻한다. 스마트폰이라고 할 때의 그 스마트를 떠올리면 된다. 물론 이때는 ‘똑똑하다’는 뉘앙스가 강하지만, 지금은 똑똑한 기술력 전반을 지칭하는 용어가 됐다. 둘째로 스마트는 비트 공간에서의 주목도, 즉 마음 점유율(mind share)이다. 한국어로 ‘멋진’ 혹은 영어로 ‘쿨(cool)’한 것을 가리킨다. 주로 콘텐츠를 묘사할 때 사용되지만, 거기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제품이나 서비스라도 그에 수반되는 매력이 있어야 구매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비트 공간은 무한하지만, 인간의 주목은 유한하다. 비트 공간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주목을 끄는 힘이 스마트다. 최근 한류를 이끈 힘도 바로 비트 공간의 스마트함이다. 이 두 가지 의미의 스마트 중에서 후자가 더 중요하다. 기술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은 마음을 사로잡는 데로 수렴해야 한다.
한류를 이끈 힘도 바로 비트 공간의 스마트함, 즉 ‘주목’을 끄는 힘이다. 기술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기술은 마음을 사로잡는 데로 수렴해야 한다. (사진 출처: 셔터스톡)
비트가 아톰을 선도하는 시대에, 스마트파워는 권력의 중심이 됐다. 마음 점유율을 좌우하는 것이 스마트파워다. 과거 브랜드파워라고 불렸던 것도 여기로 수렴된다. 애초 브랜드는 기업에 뒤따르는 용어였지만, 지금은 개인에서 국가나 초국가 단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브랜드로 대표된다. 브랜드를 넘어 콘텐츠도 지칭할 수 있는 개념이 스마트파워다. 음악,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 등을 즐기는 것은 그 콘텐츠가 스마트파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즐기는 일은 멋지고 쿨하다.
인공지능은 강력한 도구다. 그 도구를 어떻게 쓰느냐는 결국 인간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