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 한류동향 심층분석보고서 <한류NOW>
한류몽타주
기술이 확장하는 한류, 현안과 과제

ZOOM2

창작에 손을 뻗친 AI,
어떻게 창작자 권리와 맞닿을 수 있는가

자연어 생성을 전문으로 하는 AI 서비스 챗GPT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전인 2022년, 사람들은 AI를 통한 결과물 생성이 이미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DALL-E 2’를 비롯한 이미지 생성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점이었다. 수천 년의 시간 동안 무수한 화가가 그린 작업물을 학습한 AI는 명령어만 제시하면 그럴듯한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어 냈다.
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AI의 발전 속도에 매우 놀라운 반응을 드러냈지만, 몇몇 이들은 AI 서비스의 등장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 같이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생업을 영위하는 이들은 AI의 등장이 곧 자신들의 위치를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렇다면 이미지 창작에도 본격적으로 손을 뻗친 AI를 과연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성상민 문화평론가·합정만화연구학회
1. 챗GPT 이전에 ‘이미지 생성 AI’가 있었다
2023년 가장 많은 이들에게 빠른 속도로 알려진 기술의 상징은 단연 챗GPT로 대표되는 자연어 생성 AI가 아닐까. 이전에도 자연어를 생성하는 AI 서비스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챗GPT를 비롯해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들 AI는 이전의 동종 기술 대비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결과물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단숨에 큰 화제를 낳게 됐다.
물론 챗GPT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언어를 매우 자연스럽게 이해하며,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자연어를 생성하는 등 AI의 기술이 발전했어도, AI는 수집된 정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기에 챗GPT가 생성하는 몇몇 결과물에는 상당한 오류가 담긴 경우도 적지 않다. 소설이나 극본과 같이 서사나 창작적 요소가 담겨야 하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사용 설명서 작성이나 코딩 등과 같이 기술적인 문서를 만드는 것에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파급을 강하게 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기에 어떤 이들은 자연어 생성 AI의 등장이 인간이 놓인 위치를 위협할 것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작가와 같은 창작자들 역시 전전긍긍하고 있다. 아직 창작물을 만들 정도의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더라도 챗GPT와 같은 성능을 지닌 AI가 2023년에 등장하리라고 예상했던 이가 누가 있었을까. 지속적인 기술의 성장과 방대한 빅데이터 학습으로 2023년 끝내 엄청난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처럼, 서사적 창작도 언젠가는 더욱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 가능성이 결코 적지 않다. 2023년 5월부터 두 달 넘게 계속 파업을 진행 중인 미국작가조합(WGA, Writers Guild of America)이 내건 노사 협상 조건 중 작품 제작에 있어 AI의 도입을 금지하고, 더 나아가 조합 소속 작가가 창작한 결과물을 AI가 학습하지 못하도록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우려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렇게 언어를 생성하는 AI를 놓고 많은 이들이 전전긍긍하는 가운데, 이미 AI의 본격적인 도입이 당면한 현실이 되고 있는 영역이 있다. 바로 ‘이미지’이다. 챗GPT가 세계적인 화제가 되기 조금 전인 2022년 4월 ‘DALL-E 2’를 시작으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AI가 대중들 앞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DALL-E 2는 챗GPT와 같은 자연어 생성 AI와 마찬가지로 키워드나 조건을 입력하면 그에 해당하는 결과물을 생성하는 것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실제 눈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생성한다는 점에서 DALL-E 2와 같은 서비스는 어떤 의미에서는 챗GPT 이상의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 그림은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이 스스로 창작해야만 탄생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영역이다. 이와 달리 이미지 생성 AI는 간단한 키워드만 입력하면 아무런 그림 실력이 없는 사람도 순식간에 그럴싸한 이미지 작업물을 제작할 수 있다. 학습한 데이터가 충분하다면 간단한 입력이나 설정만으로 특정한 시기나 화가의 스타일대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특정한 화풍을 지닌 빅데이터를 학습시켜 비슷한 결과물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챗GPT가 세계적인 화제가 되기 조금 전인 2022년 4월, ‘DALL-E 2’를 시작으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AI가 대중들 앞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셔터스톡)

이러한 이미지 생성 AI의 특성은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해 많은 이들에게 호기심을 자아내는 한편,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같이 상업적인 차원의 이미지 제작을 생업으로 영위하는 이들에게는 크나큰 위험 요소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같은 이미지 기반의 창작이어도 미술은 단순히 완성도가 높은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해당 작품을 만든 창작자의 이력과 경향이 함께 합산되어 작품에 대한 평가나 판매로 이어진다.
그러나 상업적인 창작인 만화나 일러스트는 다르다. 대다수의 만화나 일러스트 창작은 클라이언트의 의향에 따라 그려지거나, 현재의 대중들에게 곧바로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작가의 개성 넘치는 화풍과 기상천외한 전개로 독특한 매력을 자아내는 만화나 일러스트도 있지만, 이러한 작가주의적인 작품이 상업적 이미지 창작에서 지니는 비중은 결코 크지 않다. 현재 시장에 통용되는 다수의 만화나 일러스트는 비교적 비슷한 스타일과 특징을 지닌,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지금의 ‘유행’에 충실한 작품들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들은 이따금 ‘몰개성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시장에서 이미 검증된 스타일의 작품들이기에 다시 반복적으로 작업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2022년 이전까지는 반드시 사람의 손을 거쳐야만 했다. 한 명의 창작자가 수행할 수 있는 작업량에는 한계가 있다. 시장에서는 비슷한 느낌의 작품들을 원해도, 다시 이러한 작업물들을 그릴 수 있는 다수의 창작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수많은 기성 창작물의 스타일을 습득한 이미지 생성 AI는 간단한 설정 몇 번으로 그럴듯한 결과물을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 낼 수 있다. 약간의 학습 과정만으로 근래 유행하는 스타일의 작품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이미지 생성 AI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이들 AI가 지닌 특징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자 많은 이미지 창작자들이 동요했던 이유다.

한 명의 창작자가 수행할 수 있는 작업량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미지 생성 AI는 간단한 설정 몇 번으로 그럴듯한 결과물을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 낼 수 있다. (사진 출처: 셔터스톡)

2. 이미지 생성 AI, 본격적으로 창작의 영역에 등장하기 시작하다
2023년 현재 이미지 창작자들이 지닌 우려는 어느 정도는 현실이 됐다. 뚜렷한 창작적인 특징 없이 도구적으로 필요한 이미지의 영역에 AI를 활용한 창작물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영역은 다름 아닌 ‘웹소설’이다. 웹소설의 표지나 삽화 일러스트에 AI를 사용해 창작한 결과물들이 다량 사용되기 시작했다. 어떠한 연유로 웹소설에서 이러한 AI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일까? 웹소설은 앞서 언급한 대로 이미지 생성 AI에 바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유행에 충실한 이미지를 다량으로 필요로 하던 영역이기 때문이다. 웹소설은 이미지와 서사, 그에 부합하는 텍스트를 모두 창작해야 하는 웹툰에 비해 창작에 필요한 공력이나 진입 장벽이 낮아 다량의 창작물이 빠른 시기에 나올 수 있는 최근 각광받는 콘텐츠 창작의 영역이다.
그러나 모든 책에 표지가 있는 것처럼, 웹소설에도 표지가 있다. 웹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 글을 쓰는 작가의 필력이지만, 처음 웹소설을 보는 독자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는 한눈에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표지 일러스트의 중요성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물론 그러기에 웹소설을 위해 창작되는 일러스트는 독자들이 쉽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지극히 유행에 충실한 수준 그 이상을 넘지 못한다. 그러나 매달 수백 편이 넘는 웹소설 작품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업계 상황에서 무수하게 등장하는 작품의 일러스트를 모두 준비하는 것은 아무리 도구적인 차원에서 필요로 하는 일러스트라 하더라도 적지 않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이미지 생성 AI 서비스는 단숨에 웹소설 업계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매달 새롭게 등장시킬 웹소설 작품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별도의 일러스트레이터를 고용하지 않고도 빠르게 다량의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웹소설 표지로 쓰이는 다수의 일러스트가 정형화된 그림체를 지니는 상황에서 AI를 통해 무척이나 비슷한 느낌의 일러스트를 대량으로 만들어 낸다 해도 이렇다 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는 실제 웹소설에 자주 참여했던 일러스트레이터에게는 결코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DALL-E 2가 등장하고 일 년도 지나지 않아 AI가 서서히 이미지 창작의 일부를 잠식하고 있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웹소설 다음으로 파장이 일고 있는 영역은 웹툰이다. 정확히는 ‘스튜디오’ 차원에서 창작되는 웹툰에서 AI가 실제 사용되고 있거나, 사용이 의심되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쪽의 상황도 어떤 의미로는 웹소설 표지 일러스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웹툰은 창작에 필요한 공력이 웹소설 이상으로 소모되는 영역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스튜디오 차원의 창작 웹툰은 최대한 웹툰 창작에 필요한 여러 공정을 분업화시켜 상대적으로 적은 공력으로 웹툰 창작을 낳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를 위해서는 각각의 공정에 참여하는 창작자들에게 지급하는 인건비나 여러 관리 비용이 소모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웹툰 역시도 웹소설처럼 매달 수백 편 이상의 작품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네이버웹툰’이나 ‘카카오웹툰’처럼 일부 인기 있는 극소수의 플랫폼에 연재되는 작품을 제외하면 다수의 신작은 극도의 무한경쟁에 뛰어들어 어떻게든 자신의 작품을 알려야 한다. 특히 하나의 사업체이기도 한 스튜디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신작들이 안정적인 매출을 가져갈 수 있도록 스튜디오 차원에서 큰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스튜디오 웹툰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시기에 ‘노블코믹스(웹소설 원작 웹툰을 일컫는 신조어)’가 함께 유행했던 것처럼, 현 시장에서 통용되고 빠르게 인기를 모을 수 있는 소재나 그림체를 채택한 작품들이 빠르게 양산되기 시작했다. 웹툰 스튜디오들은 재빠르게 유행에 편승하면서도, 인건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통제하는 것이 과제가 됐다.
이러한 산업의 구도에서 이미지 생성 AI의 등장에 당연히 웹툰 스튜디오들은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개략적인 스토리나 캐릭터 설정, 콘티 구성 정도만 갖춘다면 AI를 이용해 얼마든지 그럴싸한 웹툰 작업물을 만들어내기 쉽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지가 메인이 아니라 부가적인 요소였던 웹소설에 비해, 웹툰의 AI 도입에 있어서는 독자들의 비판 여론이 결코 적지 않기에 다수의 웹툰 스튜디오들은 창작에 AI를 도입했다는 사실을 공표하거나, 검토에 대한 이야기도 쉽게 꺼내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무수한 독자들에게 AI 사용 여부가 지적돼 결국 제작 단계에서 AI를 일부 사용했음을 밝힌 웹툰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이 2023년 7월 현재로서는 AI 도입 사실을 인정한 유일한 사례이다. 그러나 웹툰 시장의 성장세가 계속되고, 빠르게 시류에 탑승한 작품이 주목받는 움직임이 멈추지 않는 한 웹툰 창작에 있어 AI의 도입을 시도하거나 검토하는 일은 결코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3. 핵심은 AI가 아니라 ‘창작자의 권리’에 있다
이렇게 AI가 이미지 창작의 전면에 등장하거나 실제 콘텐츠 산업에서 활용되면서 많은 창작자들이 경계와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다. 몇몇 창작자는 자신이 운영하는 SNS 계정을 통해 자신의 창작물을 AI로 활용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거나, 자신의 작품을 학습시켜 AI로 제작한 것이 의심되는 이미지 창작물을 발견하면 법적 조치를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공포의 외인구단>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원로 만화가 이현세처럼 작가 스스로 자신의 지난 작품들을 AI에게 학습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이러한 경우는 그다지 흔한 사례는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과연 AI에게 있는 것인가? 물론 챗GPT를 비롯한 자연어 생성 AI에 많은 사람들이 보였던 우려처럼, 이미지 생성 AI 역시도 분명 이미지 제작에 있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 챗GPT에도 제기되는 지적처럼, 이미지 AI 서비스에 활용되는 빅데이터의 저작권 문제도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이미지 AI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영역은 이미지 결과물을 최대한 빠르고 값싸게 만들어내는 것에 천착하기도 했다는 사실 역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들 영역은 이미지 생성 AI가 등장하기 전에도 다량으로 이미지를 생산하는 등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창작자의 권리에는 지극하게 무심했다.

산업혁명 시기 일부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기계를 파괴했던 ‘러다이트 운동’은 기계 그 자체가 아니라, 노동자의 위치를 쉽게 쓰다 버리는 식으로 취급했던 당대의 열악했던 노동 현실의 문제였다. 무엇이 이미지 생성 AI를 콘텐츠 창작자를 대처하는 도구로만 활용하도록 만드는가? (사진 출처: 셔터스톡)

원래 이미지 창작자의 권리가 제 가치를 존중받았다면, 이들 업계는 이렇다 할 숙의를 거치지 않고 발 빠른 속도로 AI를 도입할 수 있었을까? 어떤 의미로는 이미지 콘텐츠 제작이 지니는 공력과 무게에 제대로 된 가치를 지급하지 않고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기에 이미지 생성 AI가 지니는 다양한 가능성 중 극히 일부만 취사 선택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마치 산업혁명 시기 일부 노동자들이 기계가 자신들의 위치를 위협하는 것에 분노해 집단적으로 기계를 파괴했던 ‘러다이트 운동’이 기계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위치를 쉽게 쓰다 버리는 식으로 취급했던 당대의 열악했던 노동 현실의 문제였던 것처럼 말이다. 무엇이 이미지 생성 AI를 손쉽게 콘텐츠 창작자를 대처하는 도구로만 활용하도록 만드는가? 이에 대한 문제인식 없이 AI만을 지적하는 모습은 역설적으로 한국 콘텐츠 산업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다. 이는 나아갈 길 자체를 막는 것, 그 이상을 넘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