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해외한류실태조사
카자흐스탄 한류 심층분석
카자흐스탄의 한류는 2000년대 한국 드라마 방영을 시작으로 점차 확산돼, 한-카 양국 간 관계가 이제 막 30년을 지난 현시점에도 활발히 지속되고 있다. 카자흐스탄 내 한국의 인지도는 97.7%로 매우 높은 편인데, 인기 있는 문화콘텐츠 항목으로는 ‘음식, 드라마, 뷰티, 케이팝’을 꼽을 수 있다. 음식의 경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배경에 카자흐스탄 국민이 한국을 접하는 첫 관문인 10만 고려인의 존재가 있다. 드라마와 뷰티 항목은 역사적 친밀감, 외모적 유사성에서 큰 공감대를 형성해 인기를 끈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케이팝은 소비에트 체제를 거치지 않은 카자흐스탄의 청년 세대가 기존 대중음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인 측면이 있으며, 단순히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Q-POP’이라는 현지화된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문화는 변동성을 지니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한류는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며, 한국이 진정한 문화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일방향적 단순 확산을 넘어 양방향적이고 지속적인 확산을 이뤄내는 것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는 듯하다.
추영민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초빙연구원
이 글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행한 『2023 해외한류실태조사』(2023.3.) 보고서의 통계 결과를 토대로 카자흐스탄 한류 현황을 심층 분석한 것입니다. 보고서 전문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홈페이지(www.kofice.or.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들어가며 – 카자흐스탄 한류의 역사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매우 좋은 편으로, 영국, 터키, 미국과 더불어 유학 혹은 이민을 희망하는 국가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실제로 2012년 1만여 명에 불과했던 국내 체류 카자흐스탄 국민의 수는 2022년 4만 명을 넘어섰다(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 2022). 10년 사이 4배나 증가한 셈이다. 이러한 통계학적 수치를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한국의 인기는 카자흐스탄 현지에서도 쉽게 체감할 수 있다. 알마티와 아스타나에 위치한 한국교육원과 한국문화원의 한국어 강좌는 대기 수강생이 발생하는 것이 매우 흔한 일이며, 현지 대학 내 한국어과의 경쟁률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Ая ӨМІРТАЙ, 2021. 4. 19).
카자흐스탄은 1991년 12월 소련으로부터 독립해 이제 막 30년을 지낸 젊은 국가이다. 한국과의 외교 관계는 독립 직후인 1992년에 수립됐고, 그 이후부터 한국의 문화를 접하기 시작했다. 카자흐스탄 한류의 시작점은 한국 드라마인데, 2000년대 초반부터 카자흐스탄 지상파 방송을 통해 <올인>, <주몽>, <대장금>, <겨울연가>, <가을동화>, <허준>, <꽃보다 남자> 등이 방영됐다. 당시 카자흐스탄의 주요 거리에서는 이들 드라마의 OST가 하루 종일 울려 퍼질 정도로 한국 드라마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13년에는 카자흐스탄 정부가 그간 지상파 드라마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한국 및 터키 드라마의 방영을 제한하고 카자흐스탄 자체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하면서 한국 콘텐츠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는 듯했으나, 인터넷 보급률이 점차 늘어난 덕분에 한국 드라마 시청자들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VK(Vkontakte)나 유튜브(YOUTUBE) 등을 통해 한국 드라마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 나갔다. 이후에는 케이팝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시작으로 BTS, 블랙핑크가 큰 인기를 끌면서 한국의 음악은 청년 세대의 소위 힙한 문화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카자흐스탄 한류의 특징은 무엇이며, 주로 어떤 요인이 카자흐스탄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본 고에서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2023 해외한류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카자흐스탄 한류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2. 10만 고려인의 존재로 친숙한 한국 – ‘인지도’와 ‘음식’
대다수의 카자흐스탄 국민은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편이다. 2023 해외한류실태조사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의 인지도는 97.7%이며,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비중은 80.9%에 달한다. 서로를 본격적으로 알기 시작한 지 불과 3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인식이 형성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고려인의 존재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카자흐스탄에는 약 10만 명(전체 인구의 약 0.6%)의 고려인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카자흐스탄 국민이 한국을 인식하는 첫 관문이자, 한국을 바라보는 창과 같은 역할을 한다. 기본적으로 고려인은 카자흐스탄 사회에서 부지런하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러한 이미지는 카자흐스탄 국민이 한국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안정적인 배경이 됐을 것이다.
조사 결과를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한국을 ‘경제적 선진국’으로 인식하는 응답자의 비중은 81.8%로 가장 높게 나타났지만, ‘문화 강국’의 이미지는 49.4%로 가장 낮았다. 이는 한국이 하드파워 측면에서는 선진국의 이미지로 점차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소프트파워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단, 과거 카자흐스탄이 한국을 ‘북한, 분단, 전쟁’과 같은 부정적인 키워드로 떠올렸던 것에 비하면 상당한 이미지의 변화인 것은 사실이다.
‘한국 최초 연상 이미지’에 관한 조사 결과에서는 ‘한국 음식’이 34.4%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는데, 여기에도 고려인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 영토에 유입된 고려인들은 현지 음식 문화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게 된다. 고려인은 주로 유목지로 활용되던 카자흐스탄 땅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빵과 고기가 주식이었던 카자흐인의 식탁에 마르콥챠(당근채), 짐치(김치), 국시(국수)와 같은 고려인 음식이 점차 스며들기 시작했다.
고려인 음식 - 짐치(왼쪽 위), 마르콥챠(오른쪽 위), 국시(아래) (사진 출처: 필자 촬영)
고려인의 음식은 오랜 시간 현지화를 거쳐 현재 우리가 즐기는 한국 음식과는 조금 거리가 있으나, 한류가 소개되기 이전부터 대다수의 카자흐스탄 국민은 고려인의 음식을 한국의 음식으로 인식하고 맛본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생활적인 측면에서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그들에게 가장 친숙한 한국의 이미지가 됐을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한국 콘텐츠의 인기가 더해지고 유튜브 먹방을 통한 한국 음식의 노출 빈도가 높아지면서 이제는 고려인의 음식과 한국의 음식을 구별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지 고려인 식당가에서는 한국 메뉴를 추가하는 변화의 움직임도 다수 관찰되는 상황이다.
3. 역사적 친밀감과 외모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 ‘드라마’와 ‘뷰티’
한국 문화 중 인기 강세를 보이는 분야는 ‘드라마’와 ‘뷰티’이다. 문화콘텐츠별 인기 국가 순위를 살펴보면, 한국은 ‘드라마’, ‘예능‘, ‘뷰티’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중 눈여겨보게 되는 항목은 ‘드라마’와 ‘뷰티’이다. 각각의 2위 국가가 무려 문화 강국 미국과 뷰티 강국 프랑스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경우, 1998년 지상파를 통해 방영된 <주몽>이 유목이라는 역사적 친밀감을 바탕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을 시작으로 점차 대중화됐다(전승민, 2018. 9. 27). 한국의 사극과 가족 드라마는 일부 역사적 동질감과 가족 중심 사회라는 정서적 공감을 바탕으로 주로 40~50대 시청자들을 매료시켰으며, <꽃보다 남자>, <상속자들>, <오징어 게임>과 같은 드라마는 10~30대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이로써 한국 드라마는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카자흐스탄 시청자를 확보하게 됐다.
41.6%라는 높은 수치를 보이는 ‘뷰티’는 다른 항목에 비해 2, 3위 국가와의 격차가 큰 것이 특징이다. 카자흐스탄의 대형 쇼핑몰에서는 미샤, 네이처리퍼블릭, 잇츠스킨, 토니모리, 메디필, 오휘, 설화수 등과 같은 다양한 한국 화장품들이 판매되고 있는데, 유럽 유명 브랜드 제품들 만큼이나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 매년 새로운 판매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추세이다. 또한, 유명 브랜드 제품이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만든 것이라면 믿고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 고가부터 저가까지 전반적인 상품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은 편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카자흐스탄 소비자들이 외모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한국 화장품을 유럽 제품보다 자신들에게 더 적합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한국 문화콘텐츠 이용자 프로파일’ 결과를 살펴보면, ‘드라마, 영화, 음악’ 콘텐츠의 인기 요인으로 ‘선호 배우 혹은 매력적인 외모’가 다수 선택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앞선 조사에서 ‘뷰티’ 항목이 상위권을 차지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양국 국민의 미에 대한 관심과 기준이 매우 유사하며, 각종 콘텐츠를 통해 노출되는 한국 연예인의 모습이 이들에게 매우 호감형으로 비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4. 케이팝의 영향을 받은 Q-POP – ‘음악’
전 연령대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기대해 볼 만한 한류 콘텐츠는 바로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케이팝’이다. 청년 세대는 앞으로 카자흐스탄을 이끌어갈 미래 세대로, 이전 세대와 큰 차별성을 나타내면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독립 이후 출생하여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경험이 없고, 2000년대 초반 카자흐스탄의 경제 성장과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으며,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는 성장배경을 가지고 있다(Tolganay Umbetaliyeva & Botagoz Rakisheva & Peer Teschendorf, 2016). 이 때문에 이전 세대와는 다른 시각으로 카자흐스탄 사회를 구성하고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나가고 있는데(Marlene Laruelle, 2019), 여기서 탄생한 것 중 하나가 바로 Q-POP(Qazaq pop)1)이다.
1) ‘카자흐스탄’이라는 국명은 카자흐어의 ‘Қ’로 시작되며, 이는 라틴문자의 Q로 변환된다.
연령별 한국 연상 이미지에 관한 응답을 살펴보면, 10대의 30.5%가 케이팝을 통해 한국을 연상하고 있다고 답변한 반면, 50대의 응답률은 0%로 사뭇 대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케이팝은 10대의 응답률이 가장 높은 항목이기도 하다.
Q-POP이 탄생하기 이전 카자흐스탄에서는 ‘토이(Toi)’라 불리는 잔치를 위한 민속 음악이 대중음악으로 여겨졌다. 이들 장르는 소비에트를 경험한 세대에게는 익숙하지만, 러시아, 미국, 영국, 한국 등의 팝을 즐겨듣던 젊은 세대의 입맛에는 잘 맞지 않는 측면이 있어 청년 세대는 새로운 대중음악 장르에 대한 깊은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2015년 Q-POP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그룹 ‘나인티원(NINETY ONE)’이 카자흐스탄 사회에 등장했는데, 이들은 밝게 염색한 머리에 화장을 하고 화려한 옷과 액세서리를 착용한 생전 처음 보는 이미지의 남성상을 등장시켰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남성성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남자들이 염색하거나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잘 입지 않는데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연습생 단계를 거쳐 그룹으로 데뷔하는 아이돌 육성 시스템도 소개됐다. 모두 케이팝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들이 보이는 또 하나의 차별성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언어에도 있다. Q-POP 이전까지 대다수의 가수들은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이것이 세련된 문화라는 인식을 가졌던 반면, 청년 세대는 과감하게 러시아어를 배제하고 카자흐어 노래와 랩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등장으로 카자흐스탄 사회 내 뿌리 깊은 성역할 고정관념이 무너지기 시작해 기성세대의 커다란 반발이 생겨났으며, 러시아어 기반의 기성세대와 문화적 단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Kakim Danabayev, Jowon Park & Piotr Bronislaw Konieczny, 2021. 9. 23).
가수 및 그룹 부문 최선호 한류스타를 살펴보면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싸이 등이 각각 1, 2, 3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나, 동시에 현지에서는 ‘나인티원(NINETY ONE)’과 같은 자국 아이돌에 대한 선호도도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익숙한 케이팝의 멜로디에 이질적인 한국어 대신 익숙한 카자흐어를 사용한다는 점 때문인지 Q-POP은 짧은 시간 안에 청년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반응에 힘입어 Q-POP 시장은 다수의 아이돌 그룹을 양산해 내며 눈에 띄게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의 가수가 유명한 카자흐어 시를 한국어 가사로 바꿔 불러 카자흐스탄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례가 있었다. 이제는 케이팝이 일방향적 전파를 넘어 양방향적 상호 교류가 가능한 단계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5. 마치며 – 지속가능한 한류를 위한 제언
지금까지 카자흐스탄 한류의 특징과 인기 양상에 대해 살펴본 내용을 정리해보면, 카자흐스탄 국민의 다수는 한국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한류는 2000년대부터 드라마의 인기를 시작으로 현재는 드라마, 음식, 뷰티 항목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케이팝은 모든 연령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아니나, 기성세대와의 차별성을 보이려는 청년 세대에게 인기 있는 문화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것이 현지화된 Q-POP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국민은 한국을 경제적 선진국으로 인식하고, 한국의 문화콘텐츠를 자발적으로 즐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문화 강국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즉, 한국의 매력이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본디 문화는 변동성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처음에는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다 점차 음식, 뷰티, 영화 등의 콘텐츠로 관심이 이동하고 확장된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문화의 변동성 속에서 한국이 문화 강국으로서의 매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확장성을 넘어 지속성을 유지할 힘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은 카자흐스탄 한류의 특징과 변화를 파악함과 동시에 미래 카자흐스탄의 변화를 이끌어나갈 청년 세대의 특성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이들과 ‘한류’라는 매개체를 통해 양방향으로 소통하며 지속적인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면,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Q-POP과 같은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문화적 측면에서의 상호 교류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면, 한류가 전반적인 양국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진정한 소프트파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