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1
K-포맷 르네상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업계와 정부의 역할
전 세계 50여 개국에 수출되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복면가왕>과 그 뒤를 잇는 <너의 목소리가 보여>의 성공은 한국 포맷에 대한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나가고 있다. 실제로 지난 8월에 열린 BCWW 2023에 참석한 BBC, 워너브라더스(Warner Bros.), 바니제이(Banijay), 프리맨틀(Fremantle)과 같은 글로벌 미디어 기업 관계자들도 연신 한국의 창작력에 찬사를 보내, K-포맷에 대한 달라진 인식과 인기를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 네덜란드에서 성공적으로 런칭한 <DNA Singers>와 <The Beat Box>, 영국 UKTV에 편성된 <Battle in the Box> 등 K-포맷의 수출 낭보가 이어지고 있다. 본 고에서는 이처럼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포맷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한국 포맷 산업의 현황과 정부 지원에 대해 짚어보고, 이를 통해 향후 K-포맷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전망과 과제, 그 속에서 업계와 정부의 역할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손태영 한국콘텐츠진흥원 혁신·IP전략TF팀 과장
1. 들어가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50여 개국에 수출되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복면가왕>과 20개가 넘는 나라에서 현지화된 <너의 목소리가 보여(이하 너목보)>, 이 두 ‘K-포맷 쌍두마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포맷에 대한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나가고 있다. 지난 8월 17일, 코엑스에서 열린 BCWW 20231)의 포맷 관련 콘퍼런스 세션에서는 이러한 K-포맷에 대한 달라진 인식과 인기를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세션에 참여한 BBC, 워너브라더스(Warner Bros.), 바니제이(Banijay), 프리맨틀(Fremantle), 올쓰리미디어(All3Media)와 같은 세계 유수의 글로벌 미디어 기업 관계자들이 <복면가왕>과 <너목보>를 언급하며 한국의 창작력에 연신 찬사를 보내고 협업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은 분명 이전에 이들이 한국을 대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게다가 올해 런칭된 일본판 <환승연애>(CJ ENM), 네덜란드판 <DNA Singers>(포맷티스트)와 <The Beat Box>(썸씽스페셜) 같은 새로운 포맷 수출 사례는 세계시장에서 K-포맷에 대한 수요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 글에서는 이처럼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포맷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한국 포맷 산업이 그동안 걸어온 길을 짚어보고 동반자로서의 정부 지원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앞으로의 전망과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는 물론, 그 속에서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1) BCWW : 올해로 23회째를 맞은 국내에서 개최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국제 방송영상콘텐츠 마켓(주최: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한국콘텐츠진흥원)
<DNA Singers>(포맷티스트) 포스터(위)와 일본판 ‘환승연애’ <러브 트랜짓(Love Transit)>(CJ ENM) 포스터(아래) (사진 출처: SBS, 티빙)
2. 한국 포맷 산업의 어제와 오늘
포맷은 크게 스크립티드(scripted) 포맷과 언스크립티드(unscripted) 포맷으로 구분된다.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는 드라마, 후자는 예능이나 교양 프로그램으로 인식하면 이해하기가 수월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포맷 비즈니스는 언스크립티드 분야가 가장 활발하며, 한국도 언스크립티드 포맷 수출이 2021년 기준, 전체의 82.5%를 차지하고 있다(방송통신위원회, 2022).
한국에서 포맷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 들어서다. 글로벌 포맷 시장이 21세기 들어 4대 슈퍼 포맷2)을 중심으로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2002~2004년 64억 유로(약 9조 471억 400만 원)에서 4년 뒤 93억 유로(약 13조 1,465억 7,300만 원)까지 증가한 세계 포맷 시장 규모의 변화가 영향을 끼쳤다(FRAPA, 2009). 업계에서는 방송 프로그램의 수출 다각화와 산업 확장 차원에서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포맷 산업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정부에서도 여기에 발맞춰 2009년부터 국가 예산을 편성해 지원을 시작했다.
2) 4대 슈퍼 포맷 :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Who Wants To Be Millionaire?)>, <서바이버(Survivor)>, <빅브라더(Big Brother)>, <아이돌즈(Idols)>
이후 한국 포맷은 <나는 가수다>, <아빠 어디가>, <런닝맨> 등이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세계 포맷 업계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중국과는 공동제작 형태로도 거래하며 수익성을 높였고, 그 결과 2015년부터 수출액이 급증해 2016년에는 역대 최고액인 5,500만 달러(약 729억 4,100만 원)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갑작스러운 한한령으로 인해 중국과의 거래가 급감했고, 업계에서는 북미와 유럽을 비롯해 다양한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즈음 <꽃보다 할배>는 미국에, <판타스틱 듀오>는 스페인에 진출하며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었으며, 엔데몰 샤인(Endemol-Shine)이나 바니제이(Banijay) 같은 글로벌 기업들과 포맷 공동개발 거래도 성사되며, 시장이 조금씩 확장되고 거래 형태도 다변화되기 시작했다.
<DNA Singers>
<My Boyfriend is Better>(디턴) 포스터 (사진 출처: Mnet)
2019년에는 미국판 <복면가왕>이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며 한국 포맷의 세계적 위상을 높여줬고, 그 후광효과로 이듬해 미국에 입성한 <너목보>를 비롯해 다양한 한국 포맷들의 해외 진출3)을 견인했다. 또한, 이 시기를 전후해서 포맷티스트(SBS자회사), 썸씽스페셜, 디턴 같은 새로운 플레이어들도 등장했는데, 이들은 페이퍼 포맷을 수출하거나 다른 제작사·방송사의 포맷을 배급하기도 하며 한국 포맷 산업의 스펙트럼을 넓혀주고 있다. 이번 BCWW 2023에서 소개된 <DNA Singers>와 <The Beat Box>는 각각 포맷티스트와 썸씽스페셜의 포맷이며, 썸씽스페셜은 최근 <Battle in the Box>(앤미디어)를 영국 UKTV에 배급하기도 했다. 디턴도 자사 포맷인 <My Boyfriend is Better>가 태국과 브라질에 편성됐는데, 이 같은 중소제작사의 최근 활약은 국내 포맷 산업 저변확대에 있어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3) 일본: <환승연애>(CJ ENM), <하트시그널>(채널A) / 중국: <미스트롯> / 동남아: <노래싸움 승부>(KBS), <미스터리 랭킹쇼>(MBC), <노래에 반하다>(CJ ENM), <팬워즈>(SBS), <SING or SINK>(디턴), <My Boyfriend is Better>(디턴) / 미국: <불후의 명곡>(KBS), <마이 리틀 텔레비전>(MBC) / 유럽: <300>(CJ ENM), <DNA Singers>(포맷티스트), <The Beat Box>(썸씽스페셜), <드루와>(MBN) / 중동: <드루와>(MBN) / 남미: <드루와>(MBN), <My Boyfriend is Better>(디턴) 등
3. 한국 포맷 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노력과 성과
정부에서는 포맷 산업의 가능성을 보고, 2009년에 10억 원의 예산을 편성하며 한국콘텐츠진흥원을 통해 정책적 지원을 시작했다. 포맷 산업에 진입하려는 국내 업계의 새로운 시도를 도와주고, 인재
유입과 역량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정책이 설계됐으며, 이후 가치사슬 전 단계에 걸친 효과적인 지원을 위해 꾸준히 사업을 개선·신설하고 예산을 증액해 왔다. 그 결과 2020년부터는 37억 2,000만
원 수준의 예산이 편성돼 아래 그림과 같이 업계 니즈에 부합하는 가치사슬별 지원체계를 갖추고 있다.
콘텐츠산업 발전에 있어 정부의 지원과 그 효과성에 대해서는 늘 갑론을박이 있다. 산업의 발전에는 당연히 시장에서 직접 고군분투하는 사업자들의 노력이 가장 큰 기여를 하지만, 정책적 지원도 이들이 맨주먹으로 싸우지 않게 무기나 갑옷을 제공해주는 정도의 역할은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10년 넘게 국내 포맷 산업을 지원해 온 과정과 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
먼저, 해외 포맷연수 프로그램인 EMC(Entertainment Master Class)와 포맷워크숍을 통해 지금 한국 포맷 산업의 키플레이어들을 키워냈다. 실제로 포맷티스트의 창립멤버, 썸씽스페셜의 대표와 부사장은 모두 EMC와 포맷워크숍을 수료했으며, 여기서 역량과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었다고 했다. 또한, 밉포맷(MIPFORMATS), ATF(Asia TV Forum & Market), LA 스크리닝(LA Screenings) 등 주요 국제방송마켓에서 꾸준히 개최한 K-포맷 쇼케이스는 각 사의 포맷을 홍보할 기회를 제공했으며, 이를 통해 <판타스틱 듀오>처럼 직접 수출이 되거나 신규 바이어 네트워크 확장, 한국 포맷에 대한 인식 제고 등의 간접적인 효과도 컸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평했다.
한편, 중소제작사가 새로운 포맷을 기획하고 제작·수출할 수 있게도 꾸준히 지원해왔는데, 그 결과 파일럿 <어머님이 누구니>는 중소제작사 포맷으로는 최초로 태국에 수출이 되기도 했다. ‘연예인 관찰 리얼리티’ 편중이 심한 국내 시장 상황 개선을 위해 기획개발 지원도 강화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선정된 앤미디어의 <Battle in the Box>는 인상적인 성과를 만들어냈다. 선정 이후 한영 포맷공동개발 워크숍에 참가해 피드백을 받고 해외수요를 확인했으며, 포맷 본편 제작 지원을 받아 국내판을 2021년 MBN에서 먼저 방영한 다음, 2023년 배급사인 썸씽스페셜을 통해 드디어 영국 BBC 계열인 UKTV에 편성 받았다.
2019년에 신설된 ‘포맷 랩 운영지원’사업에서도 인상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다. 글로벌향 포맷을 개발하며 국내 우수 창작자들의 역량도 키우고 포맷 권리도 합당하게 보장(창작자가 50% 이상)해주자는 취지에 공감해 썸씽스페셜을 비롯한 MBC, 포맷티스트, SJJ(스튜디오제이티비씨중앙) 같은 방송사나 대기업도 운영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 결과 포맷티스트에서 개발한 <DNA Singers>와 썸씽스페셜이 개발한 <The Beat Box>의 네덜란드판이 올해 RTL4에서 방영되는 쾌거를 이루었고, <DNA Singers> 네덜란드판은 시즌2도 편성 받았다. 포맷 랩에서 개발된 포맷은 필수 지원 조건에 따라 권리를 확보한 창작자들이 수익을 배분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수출성과가 더욱 반갑다.
4. 한국 포맷 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언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 포맷 산업은 그동안 국내 업계 관계자들의 노력과 이를 뒤에서 받쳐온 정부 지원의 민・관 협업으로 성장해왔고, 이제 <복면가왕>이라는 게임체인저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최근에도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이나 <피지컬: 100> 같은 글로벌 히트작이 계속 나오고 있어, OTT 시대에도 창작역량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검증받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K-포맷에 대한 해외수요는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이제 우리는 이 수요를 뒷받침하고 실익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해외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 포맷 산업의 저변 확대다. 아직 국내 지상파와 CJ ENM, JTBC 외에 다른 방송사들은 포맷 수출에 적극적이지 않고, 중소제작사도 썸씽스페셜과 디턴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포맷 산업은 창작과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와 외국어 역량까지 갖춘 인재는 물론, 포맷 개발과 마케팅에도 꾸준한 비용투입이 필요한 분야라 투자 대비 수익성이 낮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맷 산업이 지닌 낮은 한계비용과 네트워크 효과라는 장점은 장기적으로는 높은 수익 창출을 가능케 하기에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글로벌 포맷 기업으로 성장한 엔데몰 샤인, 바니제이 같은 슈퍼 인디들이 입증한 바 있다. 물론 중소제작사 입장에서는 포맷 권리 확보의 어려움이 가장 큰 문제지만 최근에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어 합리적인 관행으로 자리 잡도록 정책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포맷 수출에서 수익성을 높이는 것 또한 아주 중요한 과제다. <복면가왕>과 <너목보>가 수십 개국에 수출된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포맷 수출액은 중국에 수출하던 시절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봐도 포맷 수출액이 우리의 8.6배나 되는 영국은 차치하더라도, 전체 방송콘텐츠 수출액 규모가 한국의 30% 수준인 프랑스도 2020년 기준 포맷 수출액은 우리보다 1.8배가 높다(손태영, 2023). 포맷 비즈니스는 현지 제작비의 4~10% 정도의 로열티만 받는 라이선스 거래 외에도 현지 광고, 부가사업권, 컨설팅, 공동제작 등 거래 형태와 계약 조건에 따라 수익에 큰 차이가 날 수 있어 선진 노하우 습득을 통한 비즈니스 스킬을 고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에서도 고급인재 육성, 에이전시 매칭, 컨설팅, 네트워킹 등의 정책을 잘 설계해 지원한다면 업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상기에 언급한 2가지 과제는 향후 한국 포맷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꼭 개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도 현재 포맷 육성 지원사업들을 개선하고 재구조화해 기업의 상황이나 규모에 적합한 맞춤형 지원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포맷의 본질은 ‘IP’로, 포맷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한 이러한 노력은 결국 다른 콘텐츠 IP 비즈니스로 확장할 수 있는 일종의 테스트베드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이 단순히 콘텐츠를 잘 만드는 공급기지가 아닌 진정한 콘텐츠 IP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