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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방송콘텐츠 포맷,

저작권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

방송 프로그램 포맷 수출 시장은 2010년을 기점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어 한국의 새로운 콘텐츠 수출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을 비롯한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표절 시비 및 저작권 침해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2017년, 한국 대법원에서는 “개별 요소들이 일정한 제작 의도나 방침에 따라 선택되고 배열됨에 따라 구체적으로 어우러져 그 프로그램 자체가 다른 프로그램과 구별되는 창작적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 저작물로서 보호받을 수 있다”고 판시함으로써, 방송콘텐츠 포맷이 저작권법 보호 대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해외 각국의 입법례나 판결에서는 여전히 방송콘텐츠 포맷은 단순히 아이디어에 불과해 ‘저작물로 인정받을 수 없다’고 보는 경우도 많아, 국내 방송 프로그램 포맷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보호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대법원의 판결 및 해외 여러 나라들의 입법례나 판결례를 검토해 몇 가지 해법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실무 단계에서 방송 프로그램 포맷이 단순히 아이디어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성을 확보한 ‘바이블(bible) 형식의 포맷’ 형태로 제작되고, 방송 프로그램이 ‘시리즈로 방영된 방송 프로그램’의 경우에까지 이른다면, 포맷은 저작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확률이 매우 높아 적극적인 저작권 보호 조치를 취해도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울러 국내에서도 프로그램 포맷 제작사나 방송국이 적극적으로 ‘세계포맷인증보호협회(Format Recognition and Protection Association·FRAPA)를 활용해 자신들의 권리보호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정부는 저작권 등 지식재산권 교육에 힘쓰며, 한국저작권위원회 및 한국저작권보호원 등의 기관은 해외에서의 침해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할 것이다.
민경재 ㈜성신 상무・법학박사
1. 방송콘텐츠 포맷의 현황과 문제점
2021년 TV조선이 자사 인기 프로그램인 <미스터트롯>을 MBN의 <보이스트롯>이 베꼈다며 저작권침해금지 청구 소송을 제기해, “방송콘텐츠 포맷(이하 ‘방송 포맷’이라 함)”의 저작물 성립 여부가 쟁점이 된 바 있다. 그런데 콘텐츠 포맷 저작권 침해 문제는 비단 기존의 TV 방송뿐만이 아니라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에서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사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은 유럽이나 미국으로부터 방송 포맷을 주로 수입해 왔는데, 2000년대 종편・케이블TV 등이 방송시장에 진출하면서 포맷이 활발하게 만들어졌고, 이를 바탕으로 <복면가왕>, <너의 목소리가 보여>, <꽃보다 할배> 등의 프로그램이 해외로 왕성하게 수출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2023년 현재는 ‘K-콘텐츠 포맷의 수출 황금기’라고까지 불리고 있다.
실제로 방송 포맷 산업은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먼저 발달해 이미 그 경제적 가치가 인정되고 있는 분야로, 새계포맷인증보호협회(FRAPA)의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포맷 시장의 규모는 2009년 약 98억 유로(약 12.7조 원)였고, 현재는 이보다 훨씬 더 큰 규모를 형성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포맷 수출 역시 점차 증가하고 있는데 2015년 지상파 사업자 및 계열사의 포맷 수출액은 약 4,000만 달러(약 500억 원)에서 2016년에는 약 5,500만 달러(약 6,600억 원)까지 이르렀다(정윤경 외, 2018).

해외에서 포맷이 제대로 된 권리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지식재산권법이 본질적으로 속지주의 성향을 띄고 있어, 각국의 실정법에 따라 그 보호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셔터스톡)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방송 포맷 산업이 정상적인 형태로 잘 거래되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몇 년 전 CJ ENM이 제작한 <프로듀스 101> 포맷이 텐센트(Tencent)라는 중국의 대표 콘텐츠 기업에 정식 판매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계약 관계가 존재하지 않던 아이치이(iQIYI)라는 콘텐츠 기업에 의해 거의 표절에 가깝게 제작・방송돼 문제가 된 사례가 있다(유현우, 2018). 이는 큰 틀에서 중국에서는 방송 포맷이 명시적·묵시적으로 법적 보호 대상이 되지 못하고, 거래 보호의 대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 방송사 및 제작사들이 보유한 포맷이 해외에서 표절됐다고 주장하는 사례가 상당수 있지만, 제대로 된 권리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지식재산권법(Intellectual Property Rights, IPR)이 본질적으로 속지주의 성향을 띄고 있기 때문에, 각국이 ‘방송 포맷’을 실정법상 권리보호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지에 따라, 그 보호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에서는 세계 주요국과 한국의 관련 법・제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각국의 방송 포맷 관련 주요 사례 및 제도
2-1. 방송 포맷의 개념 및 방송 포맷의 사적 보호 시도
논의를 위하여 방송 포맷의 개념을 먼저 정리하자면, 연구자들에 따라 다르게 정리되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한 독창적이고 구체적인 체재로서 줄거리, 진행 방법, 세트 디자인, 출연자의 행위 등을 포함하는 제작 계획 또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주자람 외, 2014). 그런데 이런 개념 정의만으로는 법적・제도적 차원에서 방송 포맷의 권리보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 더 세분화된 분류가 필요한데, 하나는 ‘대본 포맷(Scripted format)’으로 좁은 의미의 서면 포맷(Paper format)과 바이블 형태의 포맷(Bible format)을 포함하는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대본이 없는 포맷(Non-Scripted format, 논스크립트 혹은 언스크립티드 포맷)’이다.
한편 각국의 제도를 살피기에 앞서, 방송 포맷을 국가 제도의 해석 틀에서 벗어나 거래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사적 시도도 있다. 그 시도의 주체는 FRAPA(Format Recognition and Protection Association)로, 2000년 4월 프랑스의 칸에서 방송제작 관련 업계의 대표들이 포맷과 관련한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고 포맷 거래를 촉진하기 위해 설립했다. FRAPA의 홈페이지 정보에 따르면 현재는 100여 개의 방송 제작 관련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데, 한국 기업으로는 ‘썸씽스페셜(Something Special)’이 2015년부터 참여하고 있다. FRAPA는 구체적으로 포맷 인증을 도와주고 등록하게 하는 역할 이외에도 포맷의 무단 도용에 대한 국제적인 법적 분쟁을 중재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포맷 교역의 체계화를 시도하고 있다.
2-2. 영국
영국은 세계 1위의 방송 포맷 제작・수출국이지만 방송 포맷이 명확히 저작물이라는 입장을 갖지 못하고 있다. 한때(1993년) 저작권법 제3조에 규정된 ‘어문, 연극 및 음악저작물’에 ‘방송 포맷’을 포함해 보호하려고 시도했으나 제도화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 방송 포맷에 대한 저작권 보호 분쟁의 첫 사례로 꼽히는 1989년 ‘그린 대 뉴질랜드 방송공사(Green v. Broadcasting Corporation of New Zealand)’ 사건에서 영국의 제작자 휴이 그린(Hughie Green)은 자신이 제작한 TV쇼 <Opportunity Knocks>와 동일한 타이틀, 그리고 유사한 캐치프레이즈와 상황설정(박수 측정기의 사용)을 사용한 뉴질랜드 TV쇼에 대해 뉴질랜드 법원에 ‘스크립트 및 극적 포맷’의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문제된 ‘스크립트 및 극적 포맷’을 아이디어나 개념 이상의 것이라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저작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김명중 외, 2012). 이와 마찬가지로 방송 포맷과 관련한 몇 개의 판결이 있지만, 모두 포맷을 법적 권리로 인정하지 않았다(민경재, 2019).
2000년 이후 영국은 텔레비전 산업을 대대적으로 전환해 포맷 산업의 성장을 이끌어냈는데, 중요한 계기는 영국 포맷 개발 회사인 셀라도(Celador)가 개발한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Who Wants To Be Millionaire?)>의 세계적인 대성공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1999년 미국 수출 이후, 107개 국가에서 프로그램 제작 라이선스 계약을 맺는 등 포맷 비즈니스의 성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후 영국은 포맷 산업이 꾸준히 발전해 2007년에는 전 세계에 방송되고 있는 포맷 프로그램의 53%를 점유할 정도로 포맷 비즈니스의 선두주자가 됐다. 영국의 이런 발전에는 정책적 뒷받침이 뒤따랐는데, 방송콘텐츠의 경우 제작자에게 저작권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창작자 중심 제도・정책을 2003년부터 시행했으며, 오프콤(Ofcom)의 전신인 ITC가 ‘유통에 대한 권리강령(Terms of Trade)’을 만들어 프로그램 제작에 관한 권리 규칙을 제정, 각 방송사들이 자체적으로 강령 발표를 하도록 유도했다. 이 강령의 핵심 내용은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자신의 프로그램에 대한 권리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프로그램 제작에 소요된 제작비를 방송사가 지급하도록 권고하는 것이다. 방송사는 제작비를 지원하면서도 방송권만을 가질 정도로 제작자 중심인 제도였고, 이런 인프라 구축에 힘입어 영국은 포맷 개발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는 독립 프로덕션 분야가 가장 성공한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FRAPA, 2009).
2-3. 미국
미국에서는 저작권을 바탕으로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법적 보호 시도는 많았으나 실제 저작권법 적용으로 보호된 사례는 아직 드러난 바가 없다. 다만, 포맷에 대한 보호 범위는 장르에 따라 다르기에 일부 장르는 저작권법 적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드라마・시트콤과 같이 각본이 있는 극적 저작물(scripted dramatic works)의 경우, 어느 정도 저작권 침해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침해가 문제 되는 두 작품의 실질적 유사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 두 작품의 플롯, 주제, 분위기, 배경, 속도, 등장인물, 사건의 전개 과정, 대사 등을 분석해 유사성을 비교한다. 물론 아이디어/표현 합체의 원리나 삽화의 원리 등에 의해서 관용적으로 쓰일 수밖에 없는 배경이나 역사적 사실 등은 침해 판단에서 제외된다.
반면 게임・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의 포맷은 법적으로 보호받기 어렵다. 왜냐하면 게임쇼 프로그램의 경우, 대부분 구체적인 각본이 참가자에게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에게 개략적인 가이드라인만 제공되기에 이러한 경우에는 포맷의 특성상 아이디어적 요소가 강하다고 보아 저작물로 인정받을 수 없다. 따라서 드라마와 같은 방식으로 저작권 침해 판단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저작권 관련 분쟁이 판결보다는 ‘대안적 분쟁 해결책(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ADR; 법원 소송 이외의 방식으로 이뤄지는 분쟁 해결방식)’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저작권 침해 자체를 증명하는 것도 문제지만, 침해로 인한 피해를 특정하기가 더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해외의 여러 다른 나라들처럼 법적 보호의 필요성은 지속해서 제기되는 중이다(민경재, 2019).
2-4. 네덜란드
네덜란드는 미국, 영국과 함께 프로그램 포맷 시장의 강국으로, 포맷 권리에 대한 논쟁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포맷에 법적인 지위를 부여한 나라이다. 이와 관련한 네덜란드의 리딩 케이스(leading case)가 “Castaway Television Production Ltd. & Planet 24 Productions Limited v. Endemol (이하, 캐스터웨이 사건)”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서바이버(Survivor)>라는 프로그램 포맷을 제작한 영국 캐스터웨이 텔레비전 프로덕션(이하 캐스터웨이)이 <빅브라더(Big Brother)>를 제작한 엔데몰에 대해 저작권 침해를 주장한 사안으로, 결과적으로 네덜란드 법원은 두 프로그램 간에 상당한 유사성이 있긴 하지만, 저작권 침해로 인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법원은 포맷을 “극적 저작물을 형성하는 여러 요소들의 조합”으로 보고 이런 요소들의 조합만으로도 저작물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명시했다. 또한 네덜란드 항소법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 “포맷은 네덜란드 저작권법상 저작물의 요건을 만족시키는 한 원칙적으로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판시했다. 법원에 의하면 TV 포맷의 경우 ① 관련 작품이 충분한 정도의 창작성을 갖추고, ② 그 작품이 충분히 구체적으로 개발되고 실행됐다면 보호받을 수 있다고 명시했다(민경재, 2019).
2-5. 일본
일본은 TV 프로그램의 95% 이상을 국내에서 제작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 다음으로 TV 프로그램을 자급자족하는 국가이다. 따라서 일본은 포맷을 개발해 해외 수출에 집중하고 있는데, 특히 아시아보다는 서구 시장을 목표로 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는 서구 시장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거래 가격이 아시아 시장에 비해 10~40배나 높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은 방송 포맷 표절이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거나 소송을 제기하기도 하며, 포맷 라이선스를 구매하도록 요구하기도 한다(김명중 외, 2012).
일본의 포맷 산업이 아시아에서는 선두 위치에 있는 만큼, 포맷 보호에 대한 법적 분쟁도 적지 않은데(대부분 합의로 종료되기는 하나),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의 주요 방송사인 TBS(Tokyo Broadcasting System Television Inc)가 ABC(American Broadcasting Companies Inc)와 엔데몰(Endemol USA Inc)을 상대로 2008년 10월에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에 제기한 소송이다. 당시 TBS는 엔데몰이 제작하고 ABC가 방영한 TV 프로그램 <Wipeout>이 자신의 <SASUKE> 프로그램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 소송은 3년간 진행됐으나 분쟁 조정은 실패해 2011년 11월 30일에 판결이 내려졌는데, 판결 결과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에게만 알려졌다(정윤경 외, 2018).

2017년 대법원(2014다49180)의 판결에서 법원은 ‘방송 프로그램 포맷’을 저작권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진 출처: 셔터스톡)

3. 방송 프로그램 포맷에 대한 법률적 보호 방법
3-1. 한국의 상황
한국의 저작권법 학계의 기존 통설은 방송 프로그램 포맷이 아이디어에 불과하거나 단순한 아이디어를 넘어서는 정도의 구체화된 특징을 가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 구체화된 특징이라는 것도 저작권으로 보호가 되는 정도의 표현, 즉 아이디어가 구체적으로 표현된 창작물로 보기에는 명확하지 않아 저작물이 아니거나 아이디어와 표현의 ‘중간 영역(gray area)’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관련 업계에서는 이 불명확성에 대한 자구책으로서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저작물 등록을 꾸준히 해오며 법률적 보호 방안을 준비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민경재, 2019). 그러다 지난 2017년 대법원(2014다49180)의 판결에서 법원은 “프로그램의 요소들이 제작자의 적극적인 의도와 방침에 따라 선택, 배열된 방식, 그 전체적인 어우러짐 자체에 대해 창작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보고, 그러한 창작적 개성이 저작권법상 보호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당시의 판결은 방송 프로그램 포맷을 저작권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는 추상적 결론만을 내리고 있을 뿐, 포맷의 유형 및 단계에 따른 저작물 성립 가능성 및 보호범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다음에서는 포맷을 프로그램 제작에 필요한 아이디어에서부터 스크립트화, 방송 제작 단계, 그리고 시리즈로 만들어져 일정한 포맷이 완성되는 단계로 구분해 해당 단계별로 법률적 보호 상황(기본적으로 저작권법과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라)이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3-2. 아이디어 구상에서 포맷의 성립 과정까지 단계별 저작물 성립요건 분석
가. 프로그램 기획 단계 또는 서면 포맷(paper format) 단계
포맷 개발자가 자신이 갖고 있는 아이디어를 토론과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주요 성분과 그 성분을 결합하는 방식, 진행 방법, 출연자의 역할 등 프로그램 기획과 관련된 요소를 정리하고 이를 서면화하는 과정이다. 이때 무형이던 아이디어가 10페이지가량의 문서로 작성된 것이 ‘서면 포맷’이 된다(홍순철, 2010).
이 단계의 아이디어나 서면 포맷은 예외적으로 창작성을 인정해 하나의 ‘저작물’로 인정하지 않는 한,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에 따라 ‘개념이나 컨셉’으로 보아 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없다. 그러나 부정경쟁방지법에 의하면 이 단계의 아이디어나 서면 포맷을 불법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부정경쟁방지법상 부정경쟁행위(제2조 1항 차목과 카목)에 해당할 수 있다.
한편 이 단계에서 바이블 포맷까지 이르지 못하고 ‘대본이 없는 포맷(Non-Script)’의 형태로 방송이 제작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한국 대법원은 “구체적인 대본이 없이 대략적인 구성안만을 기초로 출연자 등에 의하여 표출되는 상황을 담아 제작되는 이른바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도 창작성이 있다면 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있다(대법원 2017. 11. 9. 선고 2014다49180 판결)”고 판시했다.
나. 바이블(bible) 포맷의 완성 단계
바이블 형식의 포맷이라는 것은 작게는 제작 노트에서부터 몇백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에 이르기까지 프로그램 전체 세부 사항과 가이드 내용을 서류 형식으로 정리한 것을 말한다. 바이블에는 각각의 에피소드 속에 담긴 내용 순서로서 프로그램의 구조, 시리즈와 경쟁의 구조, 프로그램의 외관, 스타일, 그래픽, 음악으로 이루어진 브랜딩의 구성 요소뿐 아니라 해당 프로그램이 다른 나라에 방영됐을 때의 시청률, 타깃 시청층 분석, 편성 스케줄, 제작 시 주의사항 등이 포함된 컨설팅 보고서까지 광범위하게 포함될 수 있다(은혜정, 2008).
바이블 형식으로 완성된 포맷은 (어문)저작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난점이 하나 있다. 예를 들면, 바이블 포맷을 완성한 제작사나 방송국이 아직 프로그램을 만들기 전에, 그 바이블 포맷을 만드는 데 기여한 프로듀서가 이직한 경우다. 이 경우 타 제작사에서 그 바이블 포맷을 참조해 프로그램을 먼저 만든 경우를 문제적 사례로 가정할 수 있다. 저작권법상 요리책을 보고 요리를 만드는 것은 저작권 침해가 아닌 것으로 본다(임원선, 2017). 왜냐하면 요리책에 있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저작권법은 아이디어를 보호하지 않는다. 만들어진 결과물의 표현을 보호할 뿐이다. 그렇다면 설령 기존 바이블 포맷을 참조해 프로그램을 제작했더라도 아이디어의 구체화·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저작권 침해를 묻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바이블 포맷을 참조해 이미 기존 제작사나 방송국에서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면, 만들어진 영상저작물 간의 동일·유사성을 검토해 저작권 침해 여부를 다툴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정은 바이블 포맷의 내용과 형식에 창작성이 인정돼, 저작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이 성립됐을 때의 일이다.
한편 어문 저작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바이블 포맷 자체는 기능적 저작물1)로 인식되기가 쉬울 것이지만, 충분히 구체적이고 창작성 있는 표현이 많으면 그 보호범위가 넓어질 수도 있다. 현재 방송 업계 실무에서는 포맷 중 이와 같은 ‘바이블 포맷’을 거래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고, 일부 국가(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등)에서는 지식재산권의 보호 대상으로 다루기도 한다. 결국 현행 우리 저작권법상에서도 포맷의 저작물성 성립 가능성을 이야기할 때는 포맷을 “서면 포맷”과 “바이블 포맷”으로 구분하고, 포맷이 ‘바이블 포맷’ 정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저작물성을 인정해 법적으로 보호한다고 볼 수 있다.
1)기능적 저작물이란 특별한 기능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저작물로서, 특정한 기술이나 지식 또는 개념을 전달하거나, 방법, 작업 과정, 해법 등을 설명한 것으로, 저작물성이 인정되기 어렵고, 저작물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보호 범위가 매우 좁아진다.
다. 바이블 포맷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방송물
바이블 포맷 또는 대본이 없는 포맷(서면 포맷 포함)에 의해 만들어진 영상물은 기본적으로 영상저작물이 된다. 그리고 만들어진 영상물이 시리즈화 되면서 축적된 반복적인 표현들, 즉 무대, 배경, 소품, 음악, 진행 방법, 게임 규칙 등 다양한 요소들이 일정한 제작 의도나 방침에 따라 선택되고 배열됨으로써 다른 프로그램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이나 개성이 나타나는 경우, 결과적으로 창작적 개성이 있어 저작물로서 보호받을 수 있다. 따라서 권리 없는 제삼자가 동일・유사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경우, 저작권침해행위에 해당할 수 있고 부정한 경쟁행위로서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한편 프로그램의 타이틀(제호)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프랑스 등 일부 국가는 제호를 저작권법의 대상으로 보기도 하지만, 한국 저작권법은 제호의 저작물성을 부인하고 있다는 것이 통설과 판례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제호를 보호받을 방법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상표법상 상표등록이 된다면 상표로 보호받을 수 있다. 따라서 좋은 제목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면 반드시 상표출원을 하는 것이 좋다.
4. 결론을 대신하며
현재 저작권법상 저작물의 범주가 점점 확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저작물을 범주적으로 한정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특별한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저작물의 포섭 범위를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이상정 외, 2016; 신계하, 2017). 필자는 이에 동의하며, 원래는 저작물의 성립요건(인간의 감정이나 사상이 표현된 창작물)을 충족하지 못하지만, 특례 규정으로 보호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2)처럼, ‘특례’라는 유사한 보호 방법으로 “방송 포맷”을 저작물로서 보호하는 것도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전 세계적으로 방송 포맷은 거래의 대상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그에 부합한 법률적 권리관계가 불명확하고, 이를 법원의 해석에 계속 의존하는 것은 사업 당사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법적 불안정성을 느끼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차제에 판례를 통해 ‘바이블 형식의 포맷(어문저작물)’ 및 ‘시리즈로 방영된 방송프로그램(영상저작물)’의 경우로 한정해 저작물성을 인정하는 것도 적절하다고 본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방송 포맷이 거래되고, 동시에 표절을 통한 유사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있는 이상, 프로그램 제작사나 방송국은 자신들 고유의 방송 포맷 권리를 보호하고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FRAPA와 같은 단체의 회원사로 적극 참여하는 것도 검토해 볼 일이다. 아울러 정부는 이미 주요 수출 품목 중 하나가 된 방송 포맷의 권리보호를 위해 저작권 등 지식재산권 교육에 힘쓰고, 해외에서의 침해 행위에 대해 한국저작권위원회 및 한국저작권보호원 등 관련 기관이 적극적으로 콘텐츠 제작사나 방송국을 도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2) 원래 ‘데이터베이스’는 창작성이 없는 단순한 데이터에 불과해 저작물의 성립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지만, 이것을 입법으로 해결하여 보호대상으로 삼았다.
참고문헌
김명중ㆍ한선ㆍ정영희 (2012). 「방송 포맷의 권리보호 방안 연구」.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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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PA (2009). “The FRAPA REPORT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