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 한류동향 심층분석보고서 <한류NOW>
한류포커스
K-포맷을 움직이는 사람들

Focus 2

예능 예능의 글로벌 K-포맷 개발과 IP 확장,

어디까지 왔는가?

위축되고 있는 대한민국 예능 제작의 현실 속에 우리가 봐야 할 새로운 글로벌 시장, 그 시장이 바라보는 ‘한국’은 지금 어디에서 항해하고 있을까? 그리고 ‘IP’를 확보하지 못하는 창작자들은 얼마나 더 표류해야 하는가?
박원우 크리에이티브 메이트 디턴(dIturn) 대표·
<복면가왕> 작가
1. 짧은 글을 시작하며 우리가 각자 써야 하는 반성문
결국 나는 반성문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초중고를 다니며 그렇게 쓰기 싫었던 반성문을 다시 써야 한다니 더구나 무조건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반성문이 아니다 보니 이 주제가 더 힘들었다.
원고 청탁은 한 달 전 8월 초쯤 받았다. 이 원고 청탁의 주제인 ‘글로벌 K-포맷의 시대’라는 말의 무게감도, ‘예능작가의 창작 권리’라는 이야기도 너무 어려운 주제다. 나는 아직도 이 숙제를 풀어 나가는 사람이며 그 어떤 수학 문제보다 어려운 문제에 도전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주제가 지금 나의 앞에 던져진 이유가 무엇일까? 2022년 ‘K-포맷’은 미국과 동일한 수치의 포맷 시장 점유율을 보였다. 10.2%로 세계 4위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99%가 <복면가왕>과 <너의 목소리가 보여>로 올린 실적이었다. 이 사실은 이미 K7 미디어에서 공개한 자료에 나와 있으니 쉽게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K7 Media, 2022).

<복면가왕> 포스터 (좌), <너의 목소리가 보여> 포스터 (우) (사진 출처: MBC, Mnet)

그러면 이러한 실적을 당신은 공감하고 있는가? 현실로 느껴지고 있는가?
아마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유는 한국 매체는 K-포맷과 관련된 주제에 대해 민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능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낮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장르라 그럴 것이다. 그저 소문으로 ‘그랬단다’라는 정도의 이야기만 창작자들 사이에서 떠돌 뿐 현실감 없는 수치다. 그 수치 역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체감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계에서 K-포맷에 대한 관심도는 현재 최고치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이다. 주식으로 치면 상한가다. 예를 하나 들면, 2023년 LA에서 열린 <REAL SCREEN WEST>의 메인 세션 주제 중 하나가 “아시아와의 협력을 잘하는 방법”이었다는 것이 바로 그 실례다. 놀라운 일이며, 그 자리에 패널로 초대받았던 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의 작가가 북미 중심의 포맷 바이어와 프로듀서, 제작자들 앞에서 이야기한다는 영광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러한 현재 국외 상황을 볼 때 나는 부끄러운 부분이 있다. 나 역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창작자가 우수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한국 방송국에서 나의 아이디어, 기획이 누군가에게 뽑히고 방송이 되기만 한다면 최고라는 착각을 하며 일했다. 그 시간을 생각해 보면 해외 사업을 시작한 2018년 이전까지인 대략 24년 정도의 시간이다. 24년간 국내의 시장만 보고 살아온 창작자. 왜 한국 방송만을 위해 그렇게 피땀 흘리며 일했을까? 그런데 이것이 비록 필자만의 경험일까? 이것이 분명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는 금지다. 다만 우리가 반성해야 하는 첫 번째는 우리에게 해외 시장으로 진출할 충분한 가능성이 잠재돼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일어난 몇 가지의 사건을 보면 예능 작가 중 몇몇은 자신이 만든 페이퍼 포맷을 해외로 진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장정희 작가의 <The Beat box>나 곽상원 작가의 <Battle in the box>는 국내에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외에서 방송했거나 준비 중이다. 필자의 회사인 ‘디턴(diturn)’도 해외 시장에서 방송했거나 준비 중인 작품이 10여 개다. 솔직히 믿기 힘든 숫자다. 한국의 기획안이 해외에서 판매되는 날이 왔다는 사실에 누구든 물음표를 머릿속에 떠올릴 것이다. 모두 국내 방송 시스템과는 다른 조건으로 계약이 되고, IP를 인정받아 수익을 배분받을 수 있거나 해외 배급에도 직접 관여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해외 시장은 무엇이 우리와 다를까?

<REAL SCREEN WEST 2023> 중 세션의 패널로 참가한 박원우 작가

2. 글로벌 시장이 바라보는 창작자의 존재감
다시 한국 방송국의 현실로 돌아와 회의실과 국장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디어가 프로그램으로 런칭되는 과정을 떠올려 보자.
당신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당신은 누구를 제일 먼저 찾아갈 것인가? 첫 번째로 예능 작가라면 방송국 PD를 찾아가거나 기획안 공모를 노릴 것이다. 두 번째로 프로듀서라면 자신의 위치에서 편성과 제작비를 받을 수 있는 스테이션의 책임자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피칭(편성, 투자, 공동제작 등을 목적으로 기획・개발 단계의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일종의 투자 설명회)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번째의 사례는 잠시 잊어야 한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개인의 IP 개발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개인이란 창작자, 프로그램 기획자, 프로덕션 등으로 한정 짓겠다. 첫 번째 사례로만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IP를 빼앗길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자신의 아이디어가 피칭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페이퍼 포맷을 누군가에게 피칭했을 경우, 그 아이디어가 이미 바이러스처럼 상대방에게 전이돼 아이디어의 권리가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해야 한다. 물론 창작자가 가진 자신의 아이디어를 전해야 하는 숙명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반대로 해외의 경우를 보자. 아이디어가 바이어의 마음에 들었다면, 그 아이디어를 구매하는 계약부터 IP 존중의 논의가 시작된다. 쉽게 말하자면 오리지널 아이디어를 구매하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 논의 및 금액 지급이 이뤄진다. 어느 방송국에 피칭할 것인지? 아이디어의 어느 부분을 수정할 것인지?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수정해도 되는지? 오리지널 창작자에게 동의를 얻는다. 이것이 바로 창작자를 존중하는 그들의 기본자세다.

물론 우리나라도 드라마, 영화와 같은 스크립트 분야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올바르게 정립돼 있다. 하지만 예능을 포함한 언스크립트(unscripted) 장르에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다. 창작자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이뤄진 계약은 십여 장의 계약서를 파악하고 서로 간의 조건을 맞춰가는 과정을 거친다. 약 한 달 이상 여러 과정을 거쳐 오고 간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 개발 과정에 돌입한다. 이 부분에서 한국과 다름을 느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는 왜 IP를 비롯한 창작자의 권리가 존재할 수 없는가?” 한국의 경우 공유한 아이디어가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는 동안 오리지널 아이디어가 희석된다. 물론 예능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공동 작업이라는 상황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리지널 아이디어가 없었다면 테이블에 앉지 못할 것이란 상황을 인지한다면, 현재 한국의 방식은 조금 빠르다. 계약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프로젝트 시작은 이미 권리의 일부가 절단된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해외 포맷 시장은 다르다. 계약이 먼저다. 이 점이 바로 해외의 제작자들이 창작자를 바라보는 가볍지 않은 무게감이다.
누구나 안다. 방송을 송출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을 누가 제공하느냐에 따라 IP의 위치가 달라지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반대로 해외에서는 아이디어의 가치와 돈의 가치가 공존한다. 이것이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에 대한 존중이며 존재감이다. 아무리 돈이 있어도 좋은 아이디어가 없다면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글의 시작에서 정한 ‘확장’이라는 말을 논의하기 전에, IP의 위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디어를 만든 사람에게는 창의력이 존재한다. 이는 재력과 맞먹는 힘이다. 그동안 우리는 창의력을 재력에 넘기는 착오를 반복해 왔다. 그 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이라도 이를 자각하고 올바른 위치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내일부터 가능할까? 내일이 아니라면 한 달, 일 년, 이 년이라면 가능할까? 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문제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의 아이디어가 해외로 많이 유랑하기를 바란다. 많은 예능 아이디어가 세계를 떠돌아 제대로 된 IP를 인정받아 정착하게 되면, 한국의 수많은 방송국과 플랫폼, 그 외 스테이션들도 아이디어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으로 생각한다.
3. 하지만 창작자에게는 버거운 현실, 우리에겐 다리가 필요하다
다시 한번 이 문제를 잘 생각해 보면서, 우리나라 방송국을 떠오르는 대로 세어 보자. KBS, MBC, SBS가 가장 먼저 생각날 것이고, tvN, JTBC, TV조선, MBN, 채널A 등의 케이블이 뒤이어 떠오른다. PD, 작가와 같은 창작자가 늘어나는 수와는 맞지 않는 스테이션 숫자이며, 최근 경영난에 허덕이는 방송국들의 제작 감소 상황을 본다면 경쟁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텔레비전을 오락거리로 삼는 전 세계 수많은 시청자를 위해 쇼를 만들기로 맘을 먹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내일이라도 당장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세계 방송국의 문을 두드린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해외 진출을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요소 중 첫 번째로 언어 문제를 돌파해야 한다. 물론 요즘은 영어를 잘하는 인력이 많으니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두 번째는 해외와의 계약서를 봐야 한다. 국제 변호사의 도움을 얻거나 국내 대형 로펌에서 저작권 문제를 담당하는 변호사와 그와 함께 일하는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변호사와 상담해야 할 수도 있다. 물론 변호사를 쓰지 않고도 영어만 잘한다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용어 문제가 있다. 해외에서 쓰는 전문 용어들이 존재한다. 필자는 그 용어를 모두 다 파악하는 데에만 몇 년의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때로는 우리가 사용하는 방송 용어와 다른 것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멍한 느낌을 느낀다. 세 번째는 버틸 힘이다. 해외로 나의 아이디어를 보내면, 한국처럼 다음 달에 방송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15년, 처음 MBC에 <복면가왕> 기획안을 보내고 첫 회의를 시작한 날이 1월 5일이었다. 그리고 첫 방송은 그해 2월 18일에 전파를 탔으니 얼마나 빠르게 제작이 가능했다는 것인가? 하지만 해외는 다르다. 1년이면 빠르게 런칭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2년에서 3년은 있어야 자신의 아이디어가 해외에서 방송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나는 요즘 이러한 제안을 하고 다닌다. 개인 창작자는 물론 프로덕션까지 모두가 해외 시장 진출을 활발하게 모색할 수 있는 ‘해외 IP 수출 지원 센터’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이러한 센터를 통해 창작자나 프로덕션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해외에 진출시킬 수 있는 정보와 도움을 받게 되고, 대한민국은 K-포맷의 시장 확대를 통해 우리의 문화와 방식을 더 많은 나라에 알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에도 허브가 될 수 있는 다양한 곳들이 있다. 대형 방송사의 글로벌 사업팀이 하는 일처럼 배급을 도와주는 다양한 독립 회사들이 존재한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그 회사에 일정액 수수료를 주고 대행을 의뢰하면 된다. 대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방향성과 전략도 함께 고민해 준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창작자와 독립 제작사를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국가적 차원에서 만들어진 센터의 존재는 국내 시장의 창작자들이 자신의 IP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개인 창작자는 물론 프로덕션까지 해외 시장 진출을 모색할 수 있는 ‘해외 IP 수출 지원 센터’가 필요하다. 국가적 차원에서 만들어진 센터의 존재는 국내 창작자들이 자신의 IP를 지킬 방법이 될 것이다.

4. 하지만 거북이는 빠르다
필자는 작은 회사를 운영 중이다. 그 회사의 주요 업무는 해외로 우리의 아이디어를 파는 일이다. 때로는 국내에서 시청률이 높지 않아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되는 프로그램도 해외에 판매해 수익을 얻기도 한다. 우리는 거북이처럼 하루하루를 반복되는 업무와 회의로 살아왔다. 한때는 빠르게 걷던 예능 시장의 흐름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느리다. 경영난에 시달리는 방송국들과 정부 정책의 변화로 비틀거리는 방송사도 있다. 투자보다는 자물쇠를 채우고 해외 OTT에게 시장을 빼앗겼다고 울상을 하는 방송사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때로는 절망하고, 가끔은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한다. 이 글의 첫머리 주제처럼 예능이 글로벌화됐고, <복면가왕>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포맷 4위가 됐어도 이것은 그저 일부 창작자들의 이야기일 뿐 아직 우리의 잠재력은 해외에 맛도 보여주지 못했다. 단 서너 개의 쇼가 어찌 대한민국 창작의 힘을 대변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이 글의 끝에 당당히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는 좀 느렸다. 자신의 권리를 깨닫는 과정도 힘들었고, 자신의 능력이 해외에서도 잘될 수 있다는 증명을 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엉금엉금 기었다. 하지만 빠르게 달리는 시간보다 느리게 걷는 시간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습득했다. 아이디어, 기술, 제작 노하우, 스타일, 컬러, 세련됨, 그리고 글로벌 스타가 된 수많은 연예인까지. 모두 우리는 천천히 경험해 왔다. 이제는 결승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거북이 창작자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이제 바다로 수영을 하자.
참고문헌
K7 Media (2022). “Tracking The Giants: The Top 100 Travelling TV Forma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