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 한류동향 심층분석보고서 <한류NOW>
한류포커스
K-포맷을 움직이는 사람들

Focus 3

뮤지컬 K-뮤지컬,

새로운 K-콘텐츠로
떠오를 수 있을까?

K-드라마에 대한 열풍으로 일기 시작한 한류 바람이 케이팝에 이어 K-영화, K-웹툰 등 문화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K-콘텐츠 열풍은 다음 주자로 뮤지컬을 주목한다. 그러나 아직 ‘K-뮤지컬’을 이야기하기에는 섣부른 감이 있다. 한류 열풍으로 들불 번지듯 이곳저곳에 붙고 있는 ‘K’라는 것의 실체를 냉철히 보아야 한다.
박병성 공연칼럼니스트·공연한오후 대표
1. 뮤지컬 포맷 수출은 가능할까?
‘K-뮤지컬’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이번 호 주제인 ‘글로벌 K-포맷’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야겠다. 뮤지컬을 비롯한 공연 콘텐츠는 해외에 포맷 형식으로 진출하는 케이스는 거의 없다. 성악가나 뮤지컬 배우가 팀을 이뤄 경쟁하는 오디션 TV 프로그램 <팬텀싱어>가 중국에 수출되어 <슈퍼 보컬>이란 이름으로 방영됐다. 일종의 포맷이 수출된 경우다. 이처럼 TV 프로그램에서는 포맷 수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공연은 작품 자체를 수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연에서 포맷이라고 하면 일종의 아이디어인데, 저작권법에서 아이디어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다. 히트 가수의 노래를 이용해 만든 뮤지컬을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 한다. 그룹 아바(ABBA)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맘마미아!>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다른 제작사에서 주크박스 뮤지컬 포맷을 이용해 다른 작품을 만든다면 <맘마미아!> 창작진에게 로열티를 지불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아티스트의 자유로운 창작을 위해 아이디어를 법적으로 보호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공연에서 포맷 수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독일의 다큐멘터리 연극을 추구하는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Rimini Protokoll)의 <100% 도시> 시리즈는 각 도시의 시민들을 무대에 등장시켜 도시의 역사성과 특수성을 깨닫게 하는 공연이다. 시민들은 정해진 대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OX 퀴즈를 통해 시민들의 성향이나 생각을 보여주거나 24시간 그들이 생활하는 패턴을 보여주기도 한다. 주어진 형식에 솔직하게 참여하는 시민들을 통해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100% 베를린>으로 시작한 공연은 런던, 파리, 브뤼셀, 도쿄 등을 거치며 새로운 작품으로 태어났다. 국내에서는 <100% 광주>가 공연되기도 했다. <100% 도시> 시리즈는 리미니 프로토콜이 직접 그 나라에 방문해 해당 도시의 시민들과 함께 공연을 만들어갔지만, 포맷을 수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아이디어와 공연이 일치하는 특수한 작품인 경우 공연도 포맷을 수출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2. K-뮤지컬의 실체
한국 드라마와 웹툰, 케이팝 등 K-콘텐츠의 전 세계적 열풍으로 실체와 무관하게 ‘K’ 딱지를 붙이는 경향이 생겼다. ‘K-전통’, ‘K-신파’, ‘K-디자인’ 등 실체가 모호한 것들에도 ‘K’를 붙여 강조했다. K-뮤지컬도 아직은 성급한 측면이 있다. 한국 뮤지컬 시장은 지난해 4,000억 원대 규모를 넘어서면서 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게 팬데믹 침체를 벗어났다. 한국 뮤지컬은 시장 규모 면에서도 세계 5위 안에 들고, 뮤지컬의 메카 브로드웨이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시장이다. 그러나 한국 뮤지컬 내수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레베카>와 같은 라이선스 뮤지컬이다. 라이선스와 내한 공연의 시장 비율은 60%를 넘어선다. 창작뮤지컬의 작품 수는 근 70% 이상을 차지하지만, 시장 점유율은 30%대에 불과하다. 한국 뮤지컬 시장을 이끌어가는 것이 해외 창작진이 만든 라이선스 뮤지컬임을 부정할 수 없다. 국내 시장에서 창작뮤지컬이 해외에서 만든 라이선스와 투어 뮤지컬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K-뮤지컬을 논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그렇다면 K-뮤지컬는 허황된 수사일까? 그렇게 야박하게 판단하기에는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실제적인 성과가 있다. 게다가 뮤지컬의 장르적 특성을 고려한다면 좀 더 고민할 여지가 있다. 뮤지컬은 완성된 콘텐츠가 수입되는 영화나 음반과는 다르다. 뮤지컬의 라이선스(License) 진출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현지 배우가 출연하지만 그 외에 원작 뮤지컬 그대로를 공연하는 레플리카(Replica)와 대본과 음악만 가져오고 연출, 안무, 무대, 의상, 조명 등 나머지 요소는 현지 창작진이 만드는 논레플리카(Non-Replica) 방식이다. 전 세계 동일한 방식과 퀄리티로 공연되는 <오페라의 유령>, <라이온 킹>, <맘마미아!> 등은 레플리카로 공연되고, 연출과 무대에 한국 창작진의 아이디어가 가미된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잭 더 리퍼> 등은 논레플리카 방식으로 만든 작품이다. 논레플리카 방식의 라이선스 뮤지컬의 경우 해외 작품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상당 부분 한국 창작진의 역량이 투여된다. 실제 체코 뮤지컬 원작을 대본까지도 상당 부분 수정해서 새롭게 올린 <잭 더 리퍼>와 <삼총사>는 국내 공연의 개별 저작권을 인정받아 체코가 아닌 한국 제작사가 일본 진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음반과 영화처럼 완전품을 들여오는 산업이 아닌 뮤지컬은 라이선스라 하더라도 한국의 뮤지컬 역량이 투여되고 이를 통해 관련 분야의 성장에 영향을 준다. 라이선스 위주로 성장했다고 해서 그것이 한국 뮤지컬의 성장과 별개가 아니라는 말이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좌)과 <맘마미아!> 포스터(우) (사진 출처: 에스앤코, 신시컴퍼니)

한국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창작뮤지컬을 만드는 나라이기도 하다. 서울 지역에서 한 해 올라가는 뮤지컬 300여 편 중 70% 정도가 창작뮤지컬이다. 주로 대학로 중소형극장에 올라가는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많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곳이 없다. 대극장에서는 160여 년의 뮤지컬 역사를 지닌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경쟁에서 뒤지고는 있지만 중소극장 사정은 다르다. 다양한 소재와 형식의 중소극장 창작뮤지컬이 라이선스 뮤지컬을 압도하고, 이들 작품이 일본과 중국 시장에 수출되면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일본과 중국 뮤지컬 시장의 상황은 다르지만, 점차 한국 뮤지컬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엔데믹 이후 공연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한국 뮤지컬을 수입하는 작품 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3. 한국 뮤지컬 해외 진출 사례
일본에 한국 뮤지컬이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2010년 초반이다. 이때는 케이팝의 열풍에 힘입어 아이돌 가수가 출연하는 한국 뮤지컬의 일본 투어 공연이 활발히 이뤄졌다. 2010년대 초반 반짝 히트했던 투어 위주의 한국 뮤지컬 일본 진출은 중반으로 넘어오면, 아이돌 가수의 적은 출연 횟수에 비해 높은 티켓 가격과 캐스팅 일정이 늦어지면서 힘을 잃어갔다. 더불어 한일 관계 악화도 일본에서 한국 뮤지컬을 위축시켰다. 한류 붐에 힘입어 진출하던 투어 공연은 줄어들었지만, 한국 공연에 일본 창작진들이 연출과 무대, 안무, 의상에 참여한 스몰 라이선스 공연들이 점차 늘어가기 시작했다.
2023년 8월까지 일본에 진출한 한국 뮤지컬은 총 8편이다. 한국 뮤지컬 전용관인 일본 아뮤즈 뮤지컬 시어터에서 연속적으로 한국 뮤지컬을 수입했던 2013년 20편의 기록을 넘기지는 못하겠지만, 그다음으로 많은 작품이 진출한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2023년 상반기 진출작 8편은 모두 라이선스 방식으로 진출한 것으로 해마다 라이선스 진출작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더욱 반가운 것은 한국 뮤지컬을 소개하는 일본 제작사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한번 거래가 성사되면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경향이 있어 일본에 진출하는 한국 뮤지컬 수는 당분간 늘어날 것이다.
중국 시장 진출은 더욱 뜨겁게 확장하고 있다. 2012년 이후 매해 조금씩 증가하던 중국 진출작이 팬데믹 직전인 2019년 12편으로 정점을 찍었다. 팬데믹 기간에는 공연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에 진출작 또한 많지 않았는데 팬데믹이 끝난 2023년에는 8월까지 총 12편이 진출했다. 하반기를 포함하면 2023년은 중국에 가장 많은 한국 뮤지컬이 소개되는 해가 될 것이다. 중국 뮤지컬 시장은 2014년 1억 5,700만 위안에서 2021년 10억 위안 시장으로 7년 만에 6배가 성장했다. 그럼에도 아직 2,000억 원 시장에 이르지 못했다. 인구수나 경제 규모로 본다면 중국 뮤지컬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중국 뮤지컬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한국 뮤지컬 수출이나 합작 등 한국 뮤지컬의 기여가 많아질 것이다.
아직 대만 뮤지컬 시장은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지만 타이페이, 가오슝, 타이중의 공공극장을 중심으로 한국 뮤지컬을 투어 형태로 초청하여 소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만은 공공극장을 중심으로 한국 창작진이나 제작사와 교류하면서 대만 뮤지컬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이처럼 아시아 시장 내에서 한국 뮤지컬은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와 <마리 퀴리> 포스터 (사진 출처: 연우무대, 라이브)

아직 영미권에서 의미 있는 사례가 등장하진 않았지만 영미권 진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마리 퀴리>, <어쩌면 해피엔딩>, <레드북>, <호프> 등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지닌 중소형 창작뮤지컬이 아시아 시장을 넘어 영미권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마리 퀴리>가 마리 퀴리의 고향인 폴란드에서 콘서트를 통해 좋은 평가를 받은 후 폴란드 공연을 준비하고 있고, <어쩌면 해피엔딩>은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레드북>과 <마리 퀴리>는 영국 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이러한 작품들이 뮤지컬 종주국인 영미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해마다 우수한 창작뮤지컬이 등장하고, 공공단체에서도 영미권 진출 지원을 확장하고 있어 머지않아 의미 있는 사례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4. K-뮤지컬 가능성과 과제
K-뮤지컬은 팝이나, 영화, 드라마 등 K-콘텐츠에 비해 아직 세계 시장에서 덜 주목받고 있지만, 아시아를 중심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 K-뮤지컬이 다른 K-콘텐츠와 같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요소가 있다.

상업예술인 뮤지컬의 상품 가치는 규모에서 나온다. 대형 뮤지컬은 장기공연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한다. 1997년 초연한 뮤지컬 <라이온 킹>의 전 세계적인 매출이 8조 원을 넘겨 엔터테인먼트 상품 중 가장 높은 매출액을 올렸다. 상위 20개의 대형 뮤지컬 매출액이 전체 한국 뮤지컬 시장의 40%를 차지한다. 세계적인 콘텐츠가 되기 위해서는 규모가 중요하다. 창작뮤지컬은 중소극장과는 달리 대극장에서 라이선스 뮤지컬을 비롯한 해외 뮤지컬과의 경쟁에서 밀린다. K-뮤지컬이 좀 더 확실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해외 시장에서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대형 창작뮤지컬 개발이 필요하다. 다행히 2014년 이후 대형 창작뮤지컬 중에서도 경쟁력 있는 창작뮤지컬이 한두 작품씩 등장하고는 있다. <프랑켄슈타인>, <마타하리>, <웃는 남자> 등은 국내 시장에서도 크게 흥행하고, 이후 일본 시장에도 수출되는 등 일정 부분 성과를 냈다. K-뮤지컬이 좀 더 명확한 존재감을 갖기 위해서는 대형 창작뮤지컬 중 킬러 콘텐츠가 꾸준히 등장해야 한다.
한국 뮤지컬의 해외 진출이 아시아권에 한정된 현상이라는 것도 한계로 다가온다. 훨씬 큰 공연 시장을 확보한 영미권에서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낸 한국 뮤지컬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 다행히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영미권 진출 지원사업이 늘어나면서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는 작품들이 늘고 있다. 영미 시장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국가의 지원을 통해 영미 시장 진출도 성과를 내야 한다.
K-뮤지컬이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 창작진 양성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해외에 진출한 대형 창작뮤지컬 중 <프랑켄슈타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해외 창작진이 참여했다. 대형 뮤지컬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제작비가 들기 때문에 창작진 선택에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현재는 국내 뮤지컬 창작자 중에서 믿고 대형 뮤지컬 제작을 맡길 창작자가 아직은 적기 때문에 해외 창작자들을 영입하고 있다. 특히 작가와 연출가의 부족을 호소한다. 뮤지컬 창작자를 양성하기 위한 뮤지컬 아카데미가 필요한 이유다. 한국 영화가 오늘날과 같은 성장을 하게 된 데에는 뛰어난 영화감독을 양성한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뮤지컬 역시 창작자를 양성할 수 있는 아카데미가 필요하다.
그동안 뮤지컬은 연극의 하위 분류로 포함돼 있어 규모나 특성에 맞는 지원을 받기 힘들었다. 지난해 뮤지컬은 업계 바람대로 독립 장르로 인정받으며 연극의 하위 분류에서 벗어났다. 상업예술인 뮤지컬이 별도 장르로 독립된 만큼 이젠 장르의 속성에 걸맞은 지원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뮤지컬진흥법 발효와 뮤지컬 진흥원 설립이다. 한국 영화가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해 세계적인 영화 시장을 구축했던 것처럼 뮤지컬 역시 이와 유사한 제도와 기관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K-뮤지컬이 단순한 수사에 그치지 않도록 다양한 지원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뮤지컬은 새로운 K-콘텐츠로 성장할 준비가 돼 있다.
참고문헌
예술경영지원센터 (2021). “KOPIS 특집”. 《공연전산망》, 1호.
예술경영지원센터 (2022). 「2022 공연예술 데이터 포럼」. 예술경영지원센터 포럼. 서울.
원월아 (2019). 《한국 뮤지컬의 중국 시장 진출 사례 연구 : <블랙 메리 포핀스>, <시간 속의 그녀>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5). 「2014 아시아 뮤지컬시장 진출방안 연구」.
Shirai, A. (2021). 《한국 뮤지컬의 일본 시장 진출 사례 연구 : 〈프랑켄슈타인〉, 〈빨래〉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