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해외한류실태조사
캐나다 한류 심층분석
캐나다의 한류 소비 성향은 이웃 국가인 미국, 그리고 문화적으로 근접성을 지닌 서구 유럽이나 호주 등과 유사하다. 그런데 이들 국가 중에서도 특히 캐나다는 한국문화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 다문화를 국가정체성으로 삼는 캐나다는 자연스럽게 타자의 문화에 개방적이며,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문화에 개방적이고 호의적이다. 그런데 캐나다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한국 문화콘텐츠의 소비로 직접 연결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넓은 영토에 적은 인구, 인구의 높은 도시 집중도, 영어권과 프랑스어권으로 나누어진 문화적 지형도, 미국과 대비되는 국가적 정체성 성립의 어려움, 미국 대중문화의 압도적인 영향력 등이 캐나다의 문화적 특성이다. 캐나다에서 한류 문화콘텐츠의 확산을 위해서는 이와 같은 특성에 적응해가는가가 관건이다. 또한 미국이나 호주와 마찬가지로 이민자들로 이뤄진 다문화국가 캐나다에서 한류의 양상이 서구 유럽 국가들과 다른 점은 캐나다의 한인 디아스포라, 즉 아시아계 캐나다인들의 정체성 형성에 한류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조만수
충북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전 캐나다 UQAM대학 교환교수
이 글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행한 『2023 해외한류실태조사』(2023.3.) 보고서의 통계 결과를 토대로 캐나다 한류 현황을 심층 분석한 것입니다. 보고서 전문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홈페이지(www.kofice.or.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들어가며 : 캐나다의 문화적 특성
캐나다의 한류 콘텐츠 소비 양상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캐나다의 기본적인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우선 캐나다는 거대한 국가 면적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많지 않은 나라이다. 인구 3억 3,000만 명의 미국과 맞붙어 있는 캐나다의 인구는 3,800만 명에 불과하다. 거대한 영토에 비해 인구가 적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적은 나라인데, 캐나다 인구의 대부분은 미국과의 국경지대인 캐나다 남부 도시들에 밀집돼 있다. 캐나다는 2022년 기준, 우리보다 앞선 세계 9위의 경제 규모를 지닌 국가이다. 구매력 높은 인구가 도시에 밀집돼 있다는 점은 캐나다의 문화소비 양태를 결정짓는 요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또 다르게 주목해야 하는 캐나다의 특성은 다문화, 다인종적 구성을 지닌 신대륙의 이민 국가라는 점이다. 그런데 신대륙 이민국으로서 캐나다가 미국, 호주와 다른 점은 인구 구성의 절대다수를 이루는 백인사회가 영어권과 프랑스어권으로 나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캐나다는 영어, 프랑스어 2개 국어를 공용어로 삼는다. 900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어권 인구는 퀘벡주에 주로 거주하며, 이들은 영어권과 정치적으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문화적 소비 양상도 달리한다. 이처럼 양분된 주류 백인사회 문화인 캐나다는 국가의 존속을 위해 미국이나 호주보다도 더 강력한 다문화주의를 시행하고 있으며, 다원적 가치 그 자체가 캐나다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캐나다의 이 같은 다문화주의적 토양은 서구의 다른 나라들에서보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상대적으로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지고, 존중받을 수 있는 조건이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점은 캐나다가 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동일하게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회이기 때문에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점이다. 반면 프랑스어권 캐나다는 언어적 차별성 때문에 미국은 물론 캐나다 영어권과도 구별되는 문화적 특성을 보이며, 대중문화 생산에 있어도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영어권 캐나다는 원심력에 미국문화의 영향력이 놓여 있기에 취향적으로 미국 대중문화에 친숙하면서도, 이와 구분되는 대안적 문화에 적극적으로 열려있다.
마지막으로 캐나다의 다양한 이민집단 중 하나로 한인 이주집단이 존재하며, 이들은 한류에 영향을 끼치는 동시에 한류 또한 한인 이주집단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캐나다에는 현재 약 24만 1,750명의 한인 이민자가 거주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254만 6,982명), 중국(246만 1,386명), 일본(82만 4,977명)에 이어 4번째로 큰 규모이다.
2. 캐나다 한류의 시작과 전개
한류가 북미대륙에서 가시화된 것은 2012년 7월 발매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그해 8월부터 유튜브에서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이후다. 하지만 ‘싸이’ 이전에도 케이팝 팬들은 캐나다에 존재하고 있었다. 소수였지만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팬들의 헌신적인 활동이 이후의 한류 붐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같은 여건 속에서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북미 시장 진출을 시도했으며, ‘보아’, ‘비’, ‘원더걸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북미 시장 진출을 포기하지 않았다. 2011년 7월 10일 파리 제니트(Zénith)에서의 SM 엔터테인먼트 공연이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한류의 기폭점이 됐던 것처럼, 비슷한 시기인 2011년 10월 23일 SM은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Madison Square Garden)에서도 공연했으며, 다음 해 2012년 3월 21일에는 토론토의 쿨하우스(Kool Haus)에서 <Korea Nights>를 개최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후 케이팝 콘서트가 증가하게 되는데, 2012년 10월 13일 몬트리올의 케이팝 팬들은 퀘벡에서의 케이팝 공연을 촉구하기 위해서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상대로 플래시몹을 조직하기도 했다.
이후 케이팝 그룹은 미국 투어의 일부 공연에서 토론토나 밴쿠버를 경유함으로써 캐나다에서도 공연이 이뤄지는데 BTS, 엑소, 세븐틴, 레드벨벳 등이 공연했다. 이 같은 움직임 속에서 2018년 BTS가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케이팝이 주류 대중음악의 중요한 일부임을 공인받기에 이르고, 2022년 11월에는 블랙핑크가 해밀턴에서 공연했다.
캐나다에서 한국 영화는 지역 영화제를 통해서 간간이 소개되고 있었다. 2005년 이래로 국제영화제의 지위를 상실했지만, 그 이전까지 국제적인 권위를 지녔던 몬트리올영화제에서 1988년 임권택 감독의 <아다다>가 여우주연상(신혜수)을, 1991년 장길수 감독의 <은마는 돌아오지 않는다>가 각본상 및 여우주연상(이혜숙)을, 그리고 1992년에 박종원 감독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리고 아시아 영화의 비중이 높은 밴쿠버영화제에서 1996년, 1997년에 홍상수와 이창동이 연이어 용호상을 받았으며, 토론토영화제, 그리고 몬트리올에서 개최되는 누보시네마페스티벌 등을 통해 현재까지 적지 않은 한국 영화가 소개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홍상수, 이창동, 봉준호, 박찬욱, 김기덕 등 국제적으로 알려진 한국 감독의 영화들이 캐나다 영화제에서 지속적으로 소개됐다. 하지만 캐나다 일반 관객에게 한국 영화를 익숙하게 만든 것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를 통해서 <부산행>(2016) 등이 인기를 끌면서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2019)의 성공은 흥행을 중요시하는 북미 시장에서조차 한국 영화를 대중의 관심 대상으로 만들었다. 아카데미상 등을 수상한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2020)와 마찬가지로 캐나다에서는 앤소니 심(Anthony Shim) 감독의 <라이스보이 슬립스>(2023)가 밴쿠버영화제, 토론토영화제 등에서 수상했는데, 이들 영화는 한인 이민자들의 이민사를 다룬 작품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류가 북미대륙에서 확산되는 시기에, 북미대륙에서의 한인공동체가 자신들의 서사를 현지 대중문화 속에 확산하고 있었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더불어 한인공동체를 넘어서 아시아공동체, 크게는 이주민공동체들의 초민족적 정체성 형성의 계기로 작동하는 ‘한류’의 기능에 대한 연구도 캐나다에서 활발해지고 있다.
TV 드라마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캐나다에 이민 온 한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김씨네 편의점(Kim’s Convinience)>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4개 시즌에 걸쳐 캐나다 국영방송 CBC에서 방영됐으며,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에서도 시청이 가능해졌다. 코로나19의 유행은 글로벌 OTT를 통해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에 확산되는 계기가 됐고, 캐나다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징어 게임>(2021)은 이 같은 흐름의 정점을 보여준다. 결국 2020년부터 2022년까지의 코로나 시기는 마침 한국 문화콘텐츠에 대한 국제적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시기였는데,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매체를 이용한 문화 수요가 물리적 거리감을 극복하게 하고, 이 때문에 한국 문화콘텐츠에 대한 소비가 증가하게 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3. 캐나다에서의 한류 수용 양상
캐나다는 2023년에 처음으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해외한류실태조사’ 조사 대상국이 됐다. 그렇기에 금번 조사 결과를 이전 결과와 비교해 추이를 분석할 수는 없다. 캐나다의 한류실태를 상대적 위치에서 분석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와의 비교를 통해 살펴봐야 한다. 사회발전단계는 물론 문화적 근접성을 고려했을 때 캐나다의 한류 소비 양상은 아시아 혹은 중남미 국가들과는 크게 다르다. 그보다는 미국, 호주 그리고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서구 유럽 국가에 더 가까운데, 실제로 금번 조사 결과 데이터의 상당수가 이를 보여준다.
한국에 대한 ‘인지도’는 조사 대상 국가 전체의 평균이 96.9%인데, 캐나다는 이보다 낮은 95.4%이며, 이는 호주(94.4%)와 미국(94.7%), 프랑스(94.7%), 스페인(94.2%)보다 높은 수치이다. 한국을 연상하게 하는 ‘이미지’는 캐나다의 경우(1순위 응답 기준), 음식(21.9%), 케이팝(18.3%), 한류스타(5.4%)였다. 특이한 점은 ‘북핵 위협’을 한국 연상 이미지로 제시한 캐나다 응답자 비율(4.4%)이 독일(9.9%), 스페인(9.7%), 이탈리아(9.4%), 미국(9.3%). 영국(7.0%), 프랑스(6.9%)와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캐나다(71.2%)가 미국(65.2%)은 물론 영국(65.2%), 프랑스(63.6%), 스페인(59.0%), 이탈리아(52.4%), 독일(58.2%)보다 월등히 높다. 이는 특별히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해 호감도가 높다기보다는 다른 문화에 열려있는 캐나다의 다문화주의 개방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추측할 수 있다. 반면에 한국 콘텐츠에 대한 캐나다의 호감도는 미국, 호주 등 영어권 신대륙 국가들보다는 약간 낮으며, 유럽 국가들보다는 확연히 높았다. 그런데 ‘한국에 대한 인식’에서 문화강국인가를 묻는 항목에 대해서는 53.8%로 낮게 나왔는데, 이 수치는 호주(54.7%)를 제외한 미국(50.3%), 영국(50.2%), 프랑스(51.6%) 등 다른 국가들보다는 높지만, 한류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북미, 서유럽 국가들에게 한국이 문화강국 인식을 심어주지는 못했음을 알게 해준다.
한국문화 경험률은 음식(80.1%), 음악(68.8%), 영화(49.2%) 순서로 높은데, 이 콘텐츠별 순위는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이 비슷했다. 다만, 캐나다의 특이점은 한국 음식에 대한 경험률이 유난히 높다는 점이다. 이는 한인 이주민의 규모가 훨씬 큰 미국(73.8%)보다 높으며, 영국(66.4%), 프랑스(57.9%)보다는 크게 높다. 도시에 밀집된 캐나다 인구분포로 인해 상대적으로 한국음식점의 접근이 용이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캐나다 소비자들이 한국 문화콘텐츠 중 가장 높은 호감도를 보인 음식(80.1%)의 경우, 미국은 81.3%였고, 호주는 80.6%, 영국은 78.2%, 프랑스는 68.8%, 이탈리아는 63.4%였다. 두 번째로 호감도가 높은 항목은 영화(74.7%), 세 번째는 뷰티(72.3%)다. 캐나다가 음식-영화-뷰티 순으로 호감도가 높았다면, 미국은 음식-드라마-예능 순이었고, 호주는 음식-예능-드라마·출판, 영국은 드라마-음식-영화, 프랑스는 음식-웹툰-영화 순이다. 미국이 예능, 프랑스가 웹툰을 선호하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콘텐츠 호감도는 해당국의 문화적 경향성을 드러내는데, 캐나다인들이 뷰티를 선호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캐나다 내부에서는 미국 대중문화 콘텐츠가 가장 인기가 높았고,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는 드라마, 예능, 영화, 음악, 패션, 뷰티 등에서 상위의 인기를 누리지만, 음식은 5위 안에 들지 못했다. 이는 다문화사회로서의 캐나다에서 다양한 음식문화가 존중받고 있으며, 한국인 공동체가 그리 크지 않은 캐나다 사회에서 한국 음식은 저변을 확대하는 추세이지만, 아직 지배적인 소비 대상이 되지는 못했음을 알려준다.
대부분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음악(54.2%)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낮은 것은, 강력한 팬덤을 기반으로 한 케이팝의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케이팝에 대한 반감 역시 적지 않음을 알려준다. “케이팝을 타인에게 추천할 의향이 있는가?”라는 설문에 대해서도 음악의 추천 의향이 가장 낮다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음식-음악-뷰티순의 한국 문화콘텐츠 인기도는 북미, 유럽권 대부분의 나라에서 비슷하다. 한국 문화콘텐츠의 브랜드 파워지수 또한 음식-음악-뷰티 순서였는데, 캐나다에서 한국 문화콘텐츠 전체에 부여한 브랜드 파워지수는 55.3%로 북미, 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높았다. 반면에 한국 문화콘텐츠 소비량(9.7)에 있어서는 북미, 유럽 국가 8개국 중에서 영국(11.2), 미국(10.1)에 이어 세 번째였다. 한국 문화콘텐츠 소비 비중(19.1%)에서도 호주(22.4%), 미국(21.0%), 프랑스(19.4%), 독일(19.4%), 영국(19.2%)에 이어 여섯 번째에 위치하며, 지출액(17.5)에서도 영국(28.0), 미국(21.6), 호주(19.9), 프랑스(18.6)에 이어 다섯 번째였다.
4. 나가면서
‘다문화’국가의 정체성을 이루는 캐나다는 다른 문화에 대해 열린 사회이며, 그에 따라 한국문화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 아시아, 남미 지역만큼은 아니지만, 북미, 오세아니아, 서유럽 국가 중에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높은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는 한국 문화콘텐츠 소비량과 소비비중에 있어서는 호감도만큼 높은 수치를 보여주지 못했다. 더욱이 한류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문화강국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실제로 BTS,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이 전 세계인에게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를 각인시킨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결국 음악, 영화, 드라마, 음식 등에서 일어나는 한류를 지속시키며, 뷰티, 게임, 웹툰 등으로 한류의 영역을 확산시키는 장기적인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금번 조사에서는 캐나다를 전체 단일 단위로 일원화시켰지만, 캐나다는 영어권과 프랑스어권 문화가 확연하게 구분되는 사회이다. 특히 한국이 대중문화를 해외로 진출시키듯이, 프랑스어권 캐나다 퀘벡은 공연문화, 영상, 게임 등의 영역에서 해외 진출이 활발한 지역이기도 하다. 미국 한류에 대한 실태조사 분석에서 미국을 남부, 서부, 북동부, 중서부로 나눠 조사했듯이 차후에는 캐나다 한류의 조사를 적어도 영어권 캐나다와 프랑스어권 캐나다로 나눠 조사한다면, 캐나다 시장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