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ert
케이팝
4세대? 5세대?
아이돌 세대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최근 4세대 아이돌들이 세계적인 지명도를 획득하면서 소위 ‘아이돌 세대론’의 의미와 근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세대 아이돌들은 10대 위주의 마이크로 타깃팅을 처음으로 구사했으며, 국내 시장을 중심으로 지상파 및 케이블TV 등 전통적인 미디어들에 의존했다. 2세대를 통해 케이팝은 서구권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는데, 사실상 최초의 ‘케이팝 팬’이 이 시기를 통해 만들어졌다. 기획사마다의 음악 스타일도 서로 간의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3세대는 방탄소년단을 중심으로 한국 대중음악이 사상 처음으로 세계 시장의 정상을 정복한 세대다. ‘글로벌 케이팝’이라는 개념이 이 시기에 탄생했다. 4세대는 팬데믹 와중에 등장해 글로벌 시장에서 케이팝의 위상을 자리매김한 중요한 시기다. 특히 이 시기는 해외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커졌으며, 대부분의 신인 그룹들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고 준비돼 스타덤에 오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영대 음악평론가
1. 들어가며: ‘아이돌 세대론’의 등장
최근 케이팝 관련 콘텐츠를 접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4세대 걸그룹 약진”이라든지 “2세대 아이돌의 귀환” 같은 표현을 만나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알 길은 없지만 이 같은 세대 구분이 산업 주체와 음악 대중을 막론하고 점점 폭넓게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사실 이 같은 ‘아이돌 세대론’이 본격적으로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최근 4세대 보이그룹과 걸그룹이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지명도를 획득하게 된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뉴진스, 아이브, 르세라핌 등의 걸그룹들은 ‘뉴아르’라는 약칭으로도 불리며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케이팝 그룹으로 함께 주목받고 있는데, 이전처럼 단순히 라이벌 그룹의 구도가 아닌 이전 세대와 구분되는 4세대 그룹이라는 정체성이 훨씬 더 강조되는 점이 흥미롭다. 스트레이키즈, 에이티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 보이그룹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획사들은 소속 팀들을 홍보하는 데에 있어서 ‘4세대’라는 키워드를 유독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 같은 마케팅이나 내러티브가 상업적으로 유의미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뉴아르’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대표적인 4세대 걸그룹 뉴진스, 아이브, 르세라핌 (왼쪽 위부터) (사진 출처: 어도어, 스타쉽, 쏘스뮤직)
새삼스럽지는 않다. 어느 시대나 ‘구세대’와 구별되는 ‘신세대’의 특징을 강조하는 상업적 홍보나 구분 방식은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영어에도 ‘old school’, ‘new school’과 같은 표현이 있는데, 음악을 비롯한 예술 분야에서 이전 스타일과 구분되는 새로운 조류의 등장 혹은 역으로 지금의 트렌드와 구분되는 예전 스타일을 언급할 때 주로 쓰이는 표현이다. 그래서 이 구분은 응당 상대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케이팝의 세대 구분법은 조금 다르다. 이 구분에는 통상 대중음악에서 즐겨 쓰이는 10년(decade) 단위의 시대 구분이 느슨하게 적용돼 있거나 큰 의미를 갖지 못하고, 마치 컴퓨터나 전자기기에서 많이 쓰이는 ‘세대’ 개념이 적용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어떤 세대에 어떤 아티스트가 포함된다는 것 정도가 다소 혼란스럽게 논해지고 있을 뿐, 그 아티스트가 왜 특정한 세대로 구분돼야 하는지, 혹은 왜 그 세대가 그 이전 세대와 구분돼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논리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는 케이팝의 산업적 발전과 기술의 변화, 세계화의 판도나 홍보 방식들에 근거해 90년대 이후의 케이팝, 그중에서도 아이돌 음악의 역사를 대략 네 개 정도의 세대로 나눠 설명해 이해를 돕고자 한다.
2. 케이팝의 네 가지 특징적인 구분 지점
2-1. 케이팝 1세대: 1990~2000년대 초반
1세대는 H.O.T., 핑클, god 등을 위시한,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활약했던 아이돌 그룹들이 포함된다. 이들은 가요사에 존재한 최초의 ‘아이돌’은 아니었지만, 케이팝 아이돌 산업의 본격적인 출범 이후에 만들어진 그룹이라는 점에서 1세대로 묶일 만하다. 프로듀서나 매니저가 재능을 발굴해 훈련 후 데뷔시키는 제작 방식은 80년대 말 김완선의 사례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되며, 나아가서 70년대 ‘신중현 사단’이라고 불렸던 일군의 아티스트들에게서도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모타운, 일본의 쟈니스 사무소와 같은 아이돌 산업이 본격적으로 도입돼 현대적으로 적용된 것은 역시 이수만이 설립한 SM 엔터테인먼트의 출범 이후라고 봐야 할 것이다. SM, JYP, YG 같은 1세대 케이팝 기획사들은 ‘기획사’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에이전시와 프로듀서의 개념이 혼재된 집단이었고, 회사의 창업자들이 대부분 전직 뮤지션이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1세대 아이돌들은 10대 위주의 마이크로 타깃팅을 구사했으며, 팬덤의 이름, 색깔, 응원법 등 현재 케이팝 아이돌의 하위문화적 특성들이 모두 이 시절 제시됐다. 산업적으로 보면 지상파 및 케이블TV, VHS(DVD) 등 전통적인 미디어들이 홍보의 소통에 활용됐으며, 미약하나마 해외 진출과 그에 따른 마케팅이 이뤄지긴 했으나 여전히 주 활동 무대는 국내에 머물러 있었다. 다만 1세대의 끝 무렵에 놓여 있는 대형 솔로 가수인 보아나 비의 사례에서 보듯 케이팝의 세계 시장 공략은 결과를 떠나 분명한 의도를 갖고 있기는 했다. 물론 돌파구는 전혀 엉뚱한 데서 만들어졌지만 말이다.
2-2. 케이팝 2세대: 2000년대 중반
2세대 아이돌은 시기적으로는 2000년대 중반을 전후로 등장하는 아이돌들을 가리키는데, 단순히 기획사별 1세대 아이돌의 후속 프로젝트라는 관점만으로는 설명이 불충분하다. 결과적으로 2세대 아이돌을 그 전 세대와 구분 짓는 가장 큰 차이는 시장환경 및 팬덤과의 관계 변화로부터 만들어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05년을 전후로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원더걸스, 소녀시대 등의 그룹이 차례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친숙하고 반복적인 음악, 흔히 후크송이라 불리는 대중적인 음악을 내세워 아이돌 음악의 주류화에 성공했으며 10대 소녀 팬 이상의 연령대 및 남성층까지 적극적으로 산업에 끌어들였다. 1세대까지만 해도 단어 뜻 그대로 ‘우상’의 이미지가 강했던 아이돌은 2세대를 통해서 훨씬 친근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담보한 새로운 개념의 아이돌로 변신하게 되는데, 이 같은 변화에는 1세대 끝 무렵에 god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구축했던 일상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메이킹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가 하면 2005년에 출범한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 및 각종 인터넷 블로그 및 웹진들은 케이팝을 글로벌 시장에 소개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로써 케이팝은 일종의 우회적인 통로를 거쳐 세계 시장의 중요한 파이를 점하기 시작한다. 아시아권에 머물렀던 해외 팬덤도 서구권으로 점차 확대되는데, 사실상 최초의 ‘케이팝 팬’이 이 시기를 통해 만들어졌다. 기획사마다의 음악 스타일과 이미지도 뚜렷한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SM은 J-pop을 기본으로 한 세련된 유럽형 팝 사운드, JYP는 R&B를 기반으로 둔 친근한 레트로 스타일의 흑인음악, YG는 힙합의 사운드와 이미지, 태도를 흡수한 조금 더 강렬하고 자유분방한 이미지의 아이돌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중소 기획사들이 등장해 저마다 차별화된 전략을 펼치게 됨에 따라 기획사를 추종하는 팬덤의 분화가 일어난다. 이 같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전 세계의 케이팝 팬들이 이 2세대를 사실상 본격적인 아이돌 산업의 시작이자 지금의 케이팝 신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세대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2005년에 출범한 유튜브 및 각종 인터넷 블로그 및 웹진들은 케이팝을 글로벌 시장에 소개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로써 아시아권에 머물렀던 해외 팬덤도 서구권으로 점차 확대되는데, 사실상 최초의 ‘케이팝 팬’이 이 시기를 통해 만들어졌다. (사진 출처: 셔터스톡)
2세대는 케이팝 아이돌 음악에 있어서 몇 가지 중요한 혁신들이 일어난 세대다. 샤이니, f(x)로 대표되는 실험적이고 다소 전위적인 사운드의 도입이 그것이다. 미국의 버블검 팝(bubblegum pop), 일본의 J-pop 등에게 영향을 받은 아이돌 팝은 원래 쉽고 친근한 음악을 내세우는 대중적인 장르에 가까웠다. 하지만 시장이 분화되고 여러 그룹들이 난립하면서 그 안에서도 서로 간의 차별화를 꾀하는 다양한 사운드의 층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케이팝은 조금씩 마니악(maniac)해지기 시작했고, 당대 최신의 일렉트로닉 음악 등을 적극적으로 수입하며 세련미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었다. 이 같은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 건 2010년을 전후로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외국 작곡가들의 활약이다. 국내 작곡가들만으로는 변화하는 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본 SM은 유럽 출신의 작곡가들을 섭외해 이들과 일종의 ‘공동 작곡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현재 ‘송라이팅 캠프’라고 불리는 방식으로 양산형 케이팝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노하우가 되기에 이른다. 외국의 트렌드를 단순히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작곡가들이 직접 유입되면서 케이팝은 명실상부 글로벌한 대중음악으로서의 체제를 갖추게 된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3세대에 이르러 보다 정교화된다.
2-3. 케이팝 3세대: 2012년 전후
3세대는 2012년을 전후로 등장한 아이돌들이 중심이 되는 세대로,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엑소 등을 앞세워 케이팝이 최초로 전 세계 주류 대중음악계의 정상에 오른 세대라 말할 수 있다. 산업적으로는 이전 세대와 비교해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는데, 전통적 미디어가 아닌 SNS가 가장 중요한 홍보 및 전파의 매체로서 부상했다는 것이다. 글로벌한 시장의 관점에서 보자면 여전히 자본이나 홍보 등의 측면에서 주류 시스템에 편입되지 못하고 있던 케이팝이 강력한 팬덤의 지원으로 영미권의 팝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역으로 서구권 중심의 팝 음악이 일정 부분 지배력을 잃거나 평가절하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케이팝은 더 이상 아시아권에 국한된 현상으로 머물지 않고 팝의 본고장인 북미 시장을 정조준하기 시작했고, 뉴욕과 LA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해외 공연 및 투어도 본격적으로 시도됐다. 그런데 이 흐름에 결정적인 촉매제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비-아이돌 가수인 싸이의 성공이었다. <강남스타일>은 현재까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케이팝 곡으로 남아있고, 싸이가 일으킨 케이팝 열풍은 한국 대중음악 산업 전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케이팝 아이돌들의 성장세를 가속화시켰다. 음악 전반적으로 보면 3세대의 케이팝은 보편적이라기보다는 마니악해진 측면이 강하다. 올드 미디어에 연연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팬덤을 마이크로 타깃팅한 노래들이 만들어졌고, 국내 취향보다는 해외 팬들의 취향이 더 적극적으로 반영됐다. 이제는 흔해진 세계관 역시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케이팝 아이돌 음악은 단순히 보고 듣는 음악에서 설정과 이야기, 캐릭터를 가진 거대한 서사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이는 한국이 ‘아이돌’이라는 고도화된 하위문화에서 독자적인 위상을 점하게 됨을 의미했다. 방탄소년단은 한국적인 이야기와 서사를 앞세워 세계 정상에 올랐고, 블랙핑크는 한국적인 현대미와 서구에 뒤지지 않는 첨단의 사운드와 이미지를 앞세워 가장 인기 있는 여성 그룹의 반열에 올랐다.
3세대 케이팝은 산업적으로는 이전 세대와 비교해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는데, 전통적 미디어가 아닌 SNS가 가장 중요한 홍보 및 전파의 매체로서 부상했다는 것이다. (사진 출처: 셔터스톡)
2-4. 케이팝 4세대: 코로나19 이후
4세대는 코로나19로 인한 전례 없는 팬데믹의 와중에 등장했다. 산업적 혹은 음악적 관점에서 4세대가 3세대와 어떤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지 단정하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오히려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크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뚜렷한 차이는 역시 글로벌 시장에 대한 마인드와 접근법에서 비롯된다. 3세대를 통해 세계 시장을 정복해 본 케이팝은 이제 북미를 비롯한 세계 시장 공략을 상수로 놓음은 물론,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공격적 마케팅을 단행하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 인지도를 만들기까지 적어도 4~5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했던 3세대 아이돌들에 비해 4세대 아이돌들은 데뷔 즉시 글로벌 스타로 우뚝 서는 완전히 다른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데뷔 6개월 만에 빌보드 차트에 여러 곡을 진입시킨 뉴진스를 비롯, <Cupid>라는 히트곡을 틱톡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기반으로 성공시킨 피프티피프티 등 4세대 아이돌들의 성장세는 무서울 정도다. 그런가 하면 르세라핌, 아이브, 케플러, 엔하이픈 같은 4세대 아이돌들의 성공에는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이 큰 역할을 담당했는데, 케이팝의 중요한 산업적 노하우인 ‘발굴 - 훈련 - 데뷔’의 프로세스가 하나의 흥미로운 볼거리가 되면서 이 자체가 프리-데뷔의 중요한 홍보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전략은 현재 국내를 넘어서 해외에서 케이팝의 현지화 모델이 적용되는 방식으로 발전 중에 있다. 기획사들은 저마다 글로벌 오디션을 개최해 그것을 콘텐츠로 활용하면서 이를 통해 새로 론칭하는 그룹의 신속한 시장 안착을 꾀하고 있다. 4세대의 가장 큰 특징이 국경을 넘은, 아니 국경이나 국적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경계 없는’ 아이돌의 탄생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3. 나가며: 케이팝 5세대는 등장했는가?
아직 5세대를 논할 수 있는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보편적이고 무국적적인 세련미를 보여주는 뉴진스를 4세대 케이팝이 아닌 새로운 5세대의 선두주자로 보기도 한다. 3세대의 SNS, 4세대의 숏폼 콘텐츠처럼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이 5세대를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메이브나 플레이브 등이 내세우고 있는 가상 아이돌이나 에스파의 메타버스적 세계관이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필자가 새삼 주목하는 것은 케이팝의 정의와 범주에 대한 문제다. 한국인이 포함되지 않거나 혹은 완전히 외국에서 만든 케이팝을 우리는 여전히 케이팝이라고 혹은 5세대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하지만 그게 지금까지 보아온 케이팝 발전의 방향성이라고 본다면 그렇게 되지 못할 이유는 또 어디 있겠는가?
버추얼 가상 아이돌 그룹 메이브(MAVE:) (사진 출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넷마블)